엄마의 기일이라는 말이 생소하기만 하다. 엄마는 내 이야기 속에서 불쑥불쑥 등장하는 그리움의 존재이다. 일부러 엄마를 끌어들이는 것도 아닌데 세월이 흐를수록 말끝에 엄마를 등장시킨다. 보라색을 보면 라일락꽃이나 보랏빛 향기를 부르던 강수지를 떠올리기보다는 어느 해 엄마 생일 선물로 사드린 보라색 스웨터를 아낀다고 옷장에 걸어놓고 계시던 엄마 모습을 떠올리며 ‘아끼다 똥 된다고 하던데’ 하면서 소녀처럼 웃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반찬을 하면서도 청소하면서도 친구랑 이야기하다가도 가족끼리 식사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대화 속에 엄마를 데려온다. 아마도 엄마 기일이 가까워지는 날인 것 같다.
올해도 현충원에 가지 못했다. 가을이 더 깊어지면 갈 생각이다. 추석이나 보내고 한가롭게 다녀올 생각이다. 남동생이 개인적으로 너무도 아픈 일을 당해서 동생들이 현충원에 다녀오는 일로 대신했다. 기일에 맛있게 지은 밥이랑 탕국이랑 정성스럽게 떠 놓고 절을 했다. 술 한 잔 따라드리고 존경하는 마음과 그리움을 전해드렸다. 엄마가 나에게 다녀가셨다. 우리 딸 잘 지내고 있어서 고맙다고 안아주셨다. 더 깊은 가을에 국화꽃 한 아름 안고서 엄마를 찾아갈 겁니다. 예쁜 동생이랑 함께 손잡고 대전 현충원으로 아버지 엄마 만나러 갈 터니 너무 서운하게 생각 마세요.
살면서 생소한 단어들이 하나둘 늘어난다. 은사님의 부재도 낯설고 죽고 못 살게 좋았던 친구도 연락도 없이 지내면서 이름 석 자도 아련한 관계가 되었음이 낯설다.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지만 가끔은 낯설고 슬프다. 엄마의 기일을 보내는 마음이 그렇다.
엄마 사진을 보면서 엄마 뒷모습이 언제나 외롭게 보이는 이유를 이제는 알 것도 같기에 아프다. 여행 한 번 함께 가보지 않음이 돌이킬 수 없이 후회되지만, 그때는 다음, 다음 하다가 영원히 기약할 수 없는 다음으로 가버렸다. 할 수 있을 때 미루지 말고 실천에 옮기는 것도 아플 일 하나 덜어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본다. 며칠 전화 못 한 벗에게 힘내라고 풀피리 소리를 들려줘야겠다. - 2022년 8월 3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