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아 !
정이월 다가고 3월이라네
강남 같던 제비가 돌아오며는
이땅에도 보~오옴이 봄이 온다네
봄이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강남을 어서나 가자 ~~~
노래 제목도 모르는 이 노래, 오래전 돌아가신 내 어머니가 부엌에서 일하시며
즐겨 흥얼거리셨는데...
최근 인터넷을 뒤지다 이 노래가 전문 판소리꾼에서 전문 민요 가수로 전향한
“장사익”이 부른 “강남 아리랑”과 흡사한 노래임을 알게 되었는데 내 어머니가
부르시던 노래와 곡조도 틀리고 가사도 약간 다른 것임을 발견 하였네.
참고로 “장사익‘이 부른 가사를 옮겨 보면...
정이월 다가고 3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 오며는
이땅에도 또다시 봄이 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이번엔 무얼 친구들한테 소개할까 ? 생각하니 지난 2월말 아내와 친구내외
(정확하게는 6년 연하인 성당의 대자–반포 살 때 89년 서초동성당에서 영세)
와 다녀온 남해 하동 여행이 떠오르네,
남해대교에서 차로5분 거리에 있는 “바다전원” 펜션에 여장을 풀고, 여러번
남해에 왔었지만 들른적이 없던 하동 악양면 평사리에 있는 “토지”의 무대인
“최 참판댁” 나들이에 나섰지.
평사리에 들어서 저멀리 산중턱에 펼쳐진 여러채의 옛날 기와집 모습이 우선
범상칠 않았는데...
가까이 가보니 유명 사찰처럼 관광단지화 되어있는데 유명 관광지 어디나 그렇듯
식당과 선물가개들이 양쪽에 즐비한 골목을 지나니, 참판댁 입구가 나오는데 너른
광장 한쪽에 이곳에서 촬영한 영화들의 포스터를 붙여논 전시판이 있더군, 죽
훝터보니 꽤 이름있는 영화 포스터들이 많이 있었네. 얼굴을 들이밀면 대감이 되고
한복입은 여인으로 변신하는 가면에 우리 부부와 친구 부부도 어린아이들처럼 인증샷
찰칵 한컷하고, 이어서 참판댁에 들어서 사랑채 안채 등등 나름 소설속 현장들을 요모
조모 구경할 수 있어 좋았고, 다 구경하고 난 다음 참판댁 앞마당에서 악양 너른 들판을
소설속 최 참판 처럼 한참을 내려다 보았지.
오랜만에 조선조 시절 대갓집 이모저모를 구경할 수 있어 좋았고 일부러라도 한번
쯤 들러볼만하다 싶은 곳이었네.
다음은 내가 익산지점장 시절, 과장으로 있던 친구 (이름은 “이은옥”–여)가
군산지점장을 마지막으로 은행퇴직후 순천으로 내려가 민물장어집
(식당이름 : 가곡동 외식공간)을 운영중인데, 오랜만에 얼굴도 볼겸 순천까지
넘어가 식사를 했는데, 그리 반가워하더군, 그런데로 할만 하다 하는걸 보니
은행원 하다 식당 영업이 쉽지않을텐데...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네.
친구가 들려준 여담인데, 최 참판댁 가는길은 남해대교를 지나서 가는데,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3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로 건설된 남해대교는 40여년 시간이 흐르면서
교통량이 늘어난데다 노후화된 다리의 안전성을 고려, 옆에 제2교량을 건설중인데, 명칭을 두고
하동과 남해에서 서로 자기 지역 이름으로 해야된다는 다툼이 있어 오랜 시비 끝에 이순신 장군의
노량대첩을 기억하는 측면에서 “노량대교”로 하자는 절충안을 양지역이 받아들여 완공되면
“노량대교”로 불리게 된다는구먼.
다음은 최근 완독한 시인 이자 여행 작가인 “류시화”가 쓴 인도 여행기 “지구별 여행자”
뒷 표지에 있는 “작가의 말”이 너무 인상 깊어 친구들 한테 소개하고 들어갈까 싶네,
나는 여행이 좋았다.
삶이 좋았다.
내 정신은 여행길 위에서 망고 열매처럼 익어 갔다.
내가 다녀야 할 학교는 세상의 다른 곳에 있었다.
교실은 다른 장소에 있었다.
보리수 나무 밑이 그곳이고, 기차역이 그곳이고, 북적대는 신전과 사원이 그곳이었다.
사기꾼과 성자와 걸인, 그리고 동료 여행자들이 나의 스승이었다.
여행을 떠날 때는 따로 책을 들고 갈 필요가 없었다, 세상이 곧 책이었다.
기차안이 소설책이고, 버스 지붕과 들판과 외딴 마을은 시집이었다.
그 책을 나는 읽었다.
책장을 넘기면 언제나 새로운 길이 나타났다.
그것은 시간과 풍경으로 인쇄되고, 아름다움과 기쁨과 슬픔 같은 것들로 제본된
책이었다.
나는 그것을 읽는 것이 좋았다.
그것에 얼굴을 묻고 잠드는 것이 좋았다.
내 여행의 시간은 길고 또 그길은 멀었다.
여행 중에 나는 진정한 홀로임을 알았고, 그것을 통해 세상과 연결하는 법을 배웠다.
내가 살아 있음을 가장 잘 증명해 줄 수 있는 것은 곧 여행이었다.
여행이 좋았다. 여행 도중에 만나는 버스 지붕과 길과 반짝이는 소금 사막이 좋았다.
생은 어디에나 있었다.
참고로 “지구별 여행자”는 2002년 첫 발간후, 내가 읽은 책이 발간된 2008년 까지
6년간 무려 84쇄 까지 인쇄 되었으니, 2008년 이후 약10년간 얼마나 더 많은 책이
추가로 인쇄 되었을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책이네.
다음에 또 만날까 ?
죽전골 샌님
素 雲 이가
첫댓글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하동“최 참판댁” 나들이를 중심으로
소중한 분들과의 여행을 통하여 인생을 공부한 소운!
노년을 매우 부러울 정도로 즐기고 계십니다.
감사하고 축복합니다.
"이신"의 덕담 땜에 오늘 하루도 팔팔한
하루가 될것 같은 예감, 고마워 !
삼천포 창선대교가 생기기 전엔 남해대교가 남해를 섬에서 해방시키는 유일한 다리였다
그전엔 배로 사람들을 실어날랐다,그러다가 남해대교를 놓았는데 그때는 다리 이름갖고 싸우지 않았다
그 다리가 남해를 섬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수단이었으니까 남해대교가 맞다.제2남해대교도 마찬가지이다
육지 하동을 섬과 연결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 남해를 육지와 연결시키기 위함이면 제2남해대교가 맞는것 같은데...
그런데 해협이 노량앞 바다이니 노량대교도 괜찮은것 같다.보통 이쪽 동네는 하동노량 저쪽동네는 남해노량 이렇게 부르니까
남해대교를 건너가면 이순신장군이 이곳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것을 기념하는 '이낙포'가 있다
"이낙포" ? 역사적인 유래가 깊은 곳 인데 처음 듣네 !
다음 남해 여행시 꼭 가봐야겠군, 고마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