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전주 시립박물관에 들렀다. 그 곳에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보자기가 있다. 고려 말에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되는 수보(繡褓)는 한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보자기로 알려졌다. 나는 그것을 보고 우리 조상들이 옛날부터 이런 보자기를 써왔다고 생각하니 감동적이다. 괴나리봇짐에 짚신을 매달고 걸어가는 옛 선비가 과거보러 가는 게 연상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도 책보를 들고 다녔다. 부자 집 아이들은 가죽가방을 메고 다녔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책보다. 그 때는 가방을 멘 아이가 부러웠다. 책보는 들고 다니기가 불편했다. 그 걸 메거나 두르고 뛰면 필통 속에 있는 연필이나 도시락 통 속의 작은 반찬 그릇이 딸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연필은 골아 깎으면 심이 부러졌다. 물자가 귀하던 시절이라 대부분 보자기를 썼다.
보자기는 물건의 수납·또는 휴대하고 다닐 수 있게 헝겊으로 만든 작은 보다. 보자기로 쓰이는 재료도 공단·무명·베 등이다. 보자기는 물건을 싸는 생활일반의 용도뿐만 아니라 각종 예절과 격식을 차리는 의례용으로도 널리 쓰였다. 책보·이불보·상보·전대 보(纏帶褓) ·폐백보 등의 혼례용보나 보쌈 보나 영정봉안보 등 특수한 용도의 보자기도 있다.
요즘 명품 핸드백이 값이 비싸도 소지 하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도 명품하나쯤은 소지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비닐제품이 나오기 이전에는 누구나 보자기를 사용하였다. 보따리 행상이 팔 물건을 싸고 머리에 이고 다니기도 하였고 젊은 아낙은 목에 스카프로 두르기도 하였다. 요즘은 보자기를 쓰는 사람이 없다. 모든 일회용품이 나와 한번 쓰고 버리니 그 쓰레기 처리에 곤욕을 치른다. 비닐제품은 수 십 년이 가도 썩지도 않는다. 환경론자들은 세계적으로 보자기 쓰기 운동을 벌리고 있다.
한국의 뛰어난 전통 자수와 결부되어 예술작품으로 보아야 할 만한 것들도 많다. 예전에는 여자가 결혼하려면 수를 놓아 혼수를 장만 하였다. 밥상보와 쓰다 남은 헝겊을 조각조각 이어 만든 조각보의 현대적 예술성은 근래에 와서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함을 싸는 함보나 폐백음식을 싸는 폐백보 등은 그 형태와 예술성이 뛰어나다. 상보에 수놓인 <수복강녕(壽福康寧)>이나 함보의 <백년동락(百年同樂)> 같은 글귀는 소박한 민간 신앙적 배려도 보여 준다.
성장하면서 써왔기에 책보나 보자기에 익숙하다. 보자기를 보면 옛날이 생각나고 괴나리봇짐이 생각 난다. 등산을 갈 준비를 하면서 배낭을 챙기다 생각해 보았다. 괴나리봇짐이란 옛날 나그네가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싸서 등에 지고 다니던 보따리를 일컫는 말이다. 요즘의 배낭에 해당하는 걸로 등산객 등이 배낭에 필요 물품을 넣어서 짊어지고 다닌다. 나도 산을 좋아 하여 등산용 배낭이 있다. 식사도구나 침낭까지 챙겨 산에서 침식하면서 지나려면 큰 배낭이 필요하다.
옛 선인들은 배낭이 없으니 괴나리봇짐에 필수용품을 챙기고 다녔으리라. 한양까지 가려면 주막에서 자고 며칠을 걸었을 것이다. 선인들도 괴나리봇짐을 등에 지고 뒷 꽁무니에 짚신을 주렁주렁 매달고 여행 떠나는 것을 즐겼을 것이다. 그들은 팔도강산을 발로 걸어 두루 유람하고 백두산. 금강산. 지리산 등 유명한 산에 허위허위 올라 호연지기를 마음껏 구가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전국 방방곡곡에 널려 있는 강과 산은 단순한 관광과 감상의 대상이 아니다. 민족과 역사의 숨결을 함께 호흡해 보고 마음을 닦으며 조상의 얼을 되새겨 보는 수양의 터전이었을 것이다.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격세지감이다. 자동차와 도로 또한 엄청 발전하였다. 생활이 편리한 만큼 사람들은 문명의 이기를 잘 활용해야 하는데 나태해지고 정신이 오히려 물질의 지배를 받는 것 같다. 자동차의 사고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 운동 부족으로 비만과 성인병으로 연결 되어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금년계획에 해동하면 옛날 괴나리봇짐을 생각하면서 멋진 배낭에 필수품과 침낭을 챙기고 제주도 일주 둘레길 여행이나 한 번 떠나 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