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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벨리우스 : 교향곡 1, 2, 5, 7번
레너드 번스타인 /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프로덕션 노트 ===
번스타인의 미완성 시벨리우스 사이클
번스타인 마니아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값진 영상이 Blu-ray로 발매되었다. 번스타인은 1980년대 후반 빈 필하모닉과 더불어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전집에 착수했었다. 1986년 교향곡 2번을 시작으로 매년 한 작품씩 무지크페라인 홀에서 콘서트 실황으로 진행될 계획이었으며, DG와 Unitel에서 각각 CD와 영상물로 출반되었었다.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1990년 2월 교향곡 1번의 녹화가 완료된 이후 더 이상 이 사이클은 진행되지 못했다. 그해 10월 14일 72세를 일기로 번스타인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것은 시벨리우스의 일곱 교향곡들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품들인 1,2,5,7번의 녹음이 완료되었다는 점이다. 번스타인의 강렬한 카리스마와 빈 필의 비단결 같은 소노러티가 조화를 이룬 이 미완성의 시벨리우스 사이클은 음반으로서도 크게 호평을 받았던 번스타인 만년의 역작이었다. 그 감동이 영상을 통해 또 다시 우리 곁으로 생생하게 찾아 올 것이다. 번스타인의 팬들은 물론, 시벨리우스 애호가들이라면 반드시 갖춰야할 필수 아이템으로 적극 추천한다.
Symphony No.1 in e minor, Op.39
Symphony No.2 in D major, Op.43
Symphony No.5 in E flat major, Op.82
Symphony No.7 in C major, Op.105
=== 작품해설 === <네이버캐스트 2012년 4월 23일 / 황장원 글>
시벨리우스, 교향곡 제2번 D장조 Op.43
시벨리우스의 가장 인기있는 교향곡
1901년에서 1902년 사이에 작곡되었고, 1902년 3월 8일 헬싱키에서 시벨리우스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1902년 3월 8일, 헬싱키에서 시벨리우스 자신의 지휘로 거행된 [교향곡 제2번 D장조]의 초연은 핀란드 음악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로 기억된다. 해당 공연이 대성공을 거두었음은 물론이고, 그 직후 일주일 남짓한 기간 동안 앙코르 공연이 세 차례나 열렸으며, 일련의 공연들은 전부 매진되었던 것이다. 당시 핀란드 국민들은 [핀란디아]의 작곡가가 발표한 ‘애국적인’ 신작 교향곡에 열렬한 관심과 지지를 보냈다. 특히 시벨리우스 음악의 권위자였던 지휘자 로베르트 카야누스는 이 교향곡을 ‘러시아의 압제에 대한 핀란드의 저항정신과 궁극적인 승리를 그린 작품’으로 규정했다. 나아가 역시 시벨리우스 스페셜리스트였던 지휘자 슈네보익트는 각 악장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기도 했다.
“제1악장은 압제, 압박이라든가 사상에 번민하지 않는 핀란드인의 한가로운 전원생활을 나타내고, 제2악장은 러시아의 잔인한 압박에 시달리며 애국심에 불타는 핀란드인의 심정을 나타낸다. 그리고 제3악장은 국민적 감정을 환기시키면서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국가 조직에 대한 요구를 말하고 있다. 이어서 제4악장은 구세주의 출현을 예상하는 위안과 미래에 대한 희망과 신념을 노래한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실제로 작품과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이 곡의 감동적인 피날레를 들으면서 ‘애국심’을 떠올리는 건 별로 어색한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 교향곡은 ‘핀란드의 국민 작곡가’의 작품이 아니던가. 심지어 1940년대에 한 음악학자는 아예 작품에다 ‘해방 교향곡’이라는 별명까지 붙였다. 오늘날에도 핀란드에서는 이 작품이 종종 ‘독립 교향곡’으로 불린다. 하지만 정작 작곡가 자신은 그러한 ‘국가주의적인’ 해석을 거부한 바 있다.
남국의 새로운 환경과 개인적 고뇌
시벨리우스는 1901년 2월, 이탈리아의 라팔로에서 이 교향곡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후원자 악셀 카르펠란 남작의 권유에 따라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 3개월 정도 체류했다. 라팔로는 제노바에서 멀지 않은 리구리아 해 연안의 마을인데, 그는 그곳의 여관에 아내와 두 딸을 투숙시켜 놓고 자신은 주로 산 위에 있는 어느 별장의 서재에 머물렀다. 그 별장은 아름다운 정원에 둘러싸여 있었고, 정원에는 장미, 동백, 선인장, 포도나무, 야자수 등 온갖 꽃과 과실이 가득했다. 그는 자신의 고향과는 사뭇 다른 남국의 자연환경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으며 재충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아울러 그는 서재에서 몇 권의 책을 읽었는데, 그 중에서도 ‘돈 후안과 석상 손님’ 이야기에서 중요한 영감을 얻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석상의 이미지를 새 교향곡의 느린 악장의 주제로 삼게 된다. 다만, 그때만 해도 시벨리우스는 교향곡이 아니라 [레민케이넨의 전설]처럼 네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연작 교향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따라서 [교향곡 제2번]의 느린 악장은 다분히 교향시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하겠다.
그런데 사실 그에게 이탈리아 체류기는 행복과는 거리가 먼 시기였다. 비록 새로운 환경이 그의 창작력을 자극하긴 했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그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재정 문제로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고, 어린 딸은 발진티푸스를 앓고 있었다. 또 얼마 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처제에 관한 생각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누적된 스트레스 탓이었던지, 어느 날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라팔로에 남겨둔 채, 알리지도 않고 혼자 로마로 가서 한 동안 지내기도 했다. 그의 정신적 방황은 가족들을 데리고 피렌체, 비엔나, 프라하를 거쳐 고국으로 돌아온 다음에도 한 동안 지속되었다.
그 해 여름, 그는 핀란드 남부의 로히야에 있는 장모의 영지에서 머물며 작곡에 매달렸다. 그는 우선 피렌체에서 구상했던, 단테의 [신곡]에 기초한 교향시를 쓰려던 계획을 폐기했고, 대신 그 동안 축적한 악상들을 바탕으로 다분히 자전적인 성격을 지닌 새 교향곡을 써나갔다. 작업은 11월에 거의 마무리되었지만, 그 달에 잡혀 있던 초연 일정이 연기되자 그는 대폭적인 개정을 단행했다. 그리고 이듬해 3월, 마침내 완성된 [교향곡 제2번 D장조]를 발표했던 것이다.
시벨리우스의 전원 교향곡
[교향곡 제2번 D장조]는 시벨리우스의 창작 이력에서 ‘터닝 포인트’의 의의를 갖는다. 전작인 [교향곡 제1번 e단조]에 차이콥스키를 위시한 선배 작곡가들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면, 이 작품에는 시벨리우스만의 개성이 보다 뚜렷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그 화려한 음색과 드라마틱한 전개는 후기낭만주의 교향곡의 전통을 가리키고 있지만, 동시에 그의 성숙기 교향곡들에서 부각되는 보다 고전적인 경향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작품의 첫머리에 등장시킨 단순한 음계를 바탕으로 전곡을 구축해나가는 기법이 그러하다. 이런 면에서 이 곡을 베토벤이나 브람스의 교향곡에 견주는 견해도 있다.
혹자는 이 곡을 가리켜 ‘시벨리우스의 전원 교향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작품이 시벨리우스의 자연에 대한, 특히 핀란드의 자연에 대한 애정을 풍부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관점은 예의 ‘애국적 해석’과 궤를 같이 한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곡에 투영된 자연의 이미지는 복합적이다. 다시 말해서 남유럽의 이미지와 북유럽의 이미지가 혼재돼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작곡 당시의 정황을 돌아보면, 이 작품의 내용은 ‘핀란드 민족정신의 발현’보다는 ‘시벨리우스 개인의 위기와 극복’ 쪽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다만 이 두 명제에 서로 상통하는 면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사실 이 곡의 매력은 이처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데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이 곡에서 남유럽의 온화한 풍광과 눈부신 태양을 볼 수도 있고, 어떤 이는 북유럽의 서늘한 기운과 신비로운 오로라를 볼 수도 있다. 또 어떤 이는 이 곡을 들으며 불타는 애국심과 민족정신의 고양을 느낄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고뇌에 대한 돌파구를 찾거나 해방감을 만끽할 수도 있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다.
제1악장 : 알레그레토, D장조, 6/4박자
지극히 단순한 음계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8마디의 서주에 이어 ‘전원의 테마’로 불리는 주요주제가 클라리넷과 오보에로 제시된다. 이 경쾌하고도 소박한 주제의 후반부는 호른의 고즈넉한 울림이 장식한다. 이후 곡은 이 주요선율을 중심으로 다양한 모티브들이 어우러지며 자유로운 환상곡풍으로 전개된다. 혹은 또 하나의 주제를 짚어내 ‘소나타 형식’으로 분석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전원 주제에 의한 환상곡’으로 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한다. 그만큼 풍부하고 다채로운 이미지와 변화무쌍한 흐름을 내포하고 있는 악장이기 때문이다.
다만 시벨리우스 특유의 주도면밀한 전개수법은 반드시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주요선율에 다양한 모티브들이 얽히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치밀한 기법과 절묘한 호흡은 대단하다. 무엇보다 첫머리에 등장하는 단순한 모티브가 모든 악장의 주제를 도출해내는 씨앗으로 기능하게 된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제2악장 : 템포 안단테 마 루바토, d단조, 4/4박자
이 비극적인 악장은 전곡에서 가장 어둡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시벨리우스가 라팔로에서 읽은 책에서 얻은 아이디어, 즉 ‘돈 후안과 석상 손님’을 주제 삼아 작곡된 또 하나의 환상곡이자 온전한 교향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석상 손님’은 보통 ‘죽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곡은 팀파니의 묵직한 연타에 이어 콘트라베이스와 첼로가 피치카토를 연주하며 시작된다. 죽음의 이미지는 파곳이 꺼내놓는 음산한 단조 주제로 표현되며, 이것을 바탕으로 긴장감 넘치는 극적 장면들이 펼쳐진다. 이와 대비를 이루는 유려한 장조 주제는 위로 혹은 비애처럼 다가온다. 이 주제의 유래는 시벨리우스가 피렌체에서 떠올린 그리스도의 이미지로 알려져 있는데, 그렇게 종교적인 차원에서 접근하자면 이 곡은 준엄한 최후의 심판대를 마주한 인간의 불안과 고뇌를 적나라하게 표출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제3악장 : 비바치시모, B♭장조, 6/8박자
이 악장은 흔히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c단조(일명 ‘운명 교향곡’)]의 스케르초 악장에 비견된다. 그 곡처럼 이 곡도 스케르초와 트리오(중간의 삽입구)로 이루어져 있고, 단락 없이 다음 악장으로 이행한다. 다만 베토벤의 경우에는 스케르초의 재현이 확대되며 피날레로 넘어가는 데 비해, 이 곡에서는 트리오가 한 번 더 재현된 다음 넘어가는 점이 다르다. 질주하는 스케르초와 목가적인 트리오의 대비를 통해서 독특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악장이다.
제4악장 : 알레그로 모데라토, D장조, 3/2박자
앞선 악장의 말미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이 영웅적인 피날레는 찬란하고 감동적이며 사려 깊다. 더없이 단순하기에 뇌리에 즉각적으로 각인되는 첫 번째 주제선율은 때로는 힘차게 노래되고 때로는 점진적으로 고조되면서 듣는 이에게 가슴 벅찬 감흥을 안긴다. 그 흐름은 마치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처럼 좌절과 혼돈의 시간을 떨치고 승리와 확신의 시간을 향해 나아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반면에 핀란드 민요풍의 두 번째 주제선율은 비감에 젖어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시벨리우스의 부인인 아이노의 말에 따르면 이 선율에는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처제에 관한 상념이 녹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그 모든 고뇌와 역경을 딛고 희망의 미래를 향해 의연하게 전진하는 발걸음이 그려진다. 그 절정에서 오보에, 트럼펫, 트롬본 등이 함께 연주하는 찬가는 실로 눈부시다.
추천음반
우선 왕년의 명반으로는 존 바비롤리(EMI, Chesky)와 유진 오르먼디(Sony, RCA)가 대표적이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토머스 비첨, 앤소니 콜린스, 로베르트 카야누스 등을 언급할 수도 있겠지만, 음질을 고려한다면 바비롤리와 오르먼디 정도에서 멈추는 편이 나을 듯싶다. 전자는 콜린 데이비스, 알렉산더 깁슨 등으로 이어지는 영국계 스페셜리스트들의 대표자라 할 수 있고, 후자는 생전의 작곡가가 극찬했던 챔피언의 노련한 솜씨를 보여준다.
역사적 맥락을 따지자면 다소 아이러니하지만 아쉬케나지(Decca), 얀손스(EMI) 등 러시아계 지휘자들도 훌륭한 명반을 남겼다. 그 중 아쉬케나지의 두 가지 데카 음반 중에서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의 구녹음이 활력에 넘친다면, 보스턴 심포니와의 신녹음은 음색 면에서 좀 더 풍부하고 해석은 보다 여유롭다. 다만 현재는 구녹음을 구하기가 더 쉬울 것이다.
작곡가와 동향인 핀란드 지휘자들의 음반은 확실히 뭔가 다르다. 레이프 세게르스탐(Ondine), 유카-페카 사라스테(RCA), 오스모 밴스캐(BIS) 등도 좋은 연주지만, 역시 올해 작고한 파보 베르글룬드가 대표 격이다. 헬싱키 필하모닉을 지휘한 녹음(EMI)이 유명하지만, 유럽 체임버를 지휘한 녹음(Finlandia)의 실내악적인 명징함은 한층 인상적이다. 개성 충만한 연주를 찾는다면 레너드 번스타인(DG)과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EMI)이 있다. 특히 빈 필하모닉을 지휘한 번스타인의 신녹음은 다분히 자극적이고 과장됐으면서도 극도로 감동적이며, 동시에 현대 오케스트라 기능미의 한 극치를 만끽하게 해준다.
=== 교향곡 제1번 ===
1899년 작곡
시벨리우스의 E단조 교향곡은 그가 처음으로 완전한 교향곡의 지위를 부여한 작품으로, 고향에서 들을 수 있는 원시적인 음악을 더 넓은 세상에 내놓으려는 노력의 결실이었다. 광시곡적인 선율에서 추상적인 작품을 이끌어 낸 것을 보면 차이코프스키와 보로딘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비창》이 1894년과 1897년에 헬싱키에서 연주되었다). 게다가 교향곡 제1번은 번스타인이 미국 밖(몬트리올)에서 가진 최초의 연주회에서 집중 조명을 받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번스타인의 마지막 시즌에서도 이 작품은 두각을 드러냈다.
번스타인은 무척 주관적인 해석을 바탕으로 육중한 울림을 강조하고 악구를 매우 공들여서 연주했다. 러시아의 거장들에게 진 빚을 확실하게 보여 주려는 것처럼 말이다. 젊은 시절의 번스타인은 넘치는 에너지를 악보에 온통 쏟아 부으며 다른 가능성은 모두 물리쳐 버렸다. 하지만 백발이 성성해진 마에스트로는 모든 소절마다 거대한 족적을 남기며 이전보다 훨씬 독특한 해석을 시도했다. 실황 연주를 편집했기 때문에 시벨리우스의 작품을 담은 그 어떤 음반보다 강렬한 느낌을 접할 수 있다. 피날레의 육중한 선율을 그렇게 무겁게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싶겠지만 연주는 경이 그 자체이다. 특히 빈 필이 가장 좋아하는 객원 지휘자인 번스타인의 강렬하고 몰입한 연주는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들어 이 교향곡을 슬라브적인 전통과 분리해서 템포를 더 빠르게 연주하곤 하는데, 그럴 때면 젊은 시절의 번스타인이 생각난다. 아마도 번스타인은 곡에 담긴 경쾌한 생동감을 처음부터 믿었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역사적 정확성을 재현하기보다 생동감을 살리는 연주에 더 중점을 두었다.
“이 작품은 지휘자를 자신과 이 곡을 동일시하게 만드는 자력과도 같은 힘으로 끌어들인다.”
DG 해설집에서, 제임스 헤포코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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