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사 마령 교당에 가시니 오 송암(吳松庵)이 와서 뵈옵고 말하되 [저의 여식 종순(宗順) 종태(宗泰)가 입교한 후로 출가(出嫁)를 거절하는 것이 제 뜻에는 맞지 아니하오나, 그들의 뜻을 굽히지 못하여 그대로 두오니, 그 장래 전정을 책임져 주소서.] 하거늘,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나의 법은 과거 불교와 달라서 결혼 생활을 법으로 금하지는 아니하나, 그와 같이 특별한 서원 아래 순결한 몸과 마음으로 공부 사업하겠다는 사람들에게 어찌 범연할 수야 있겠는가. 그러나, 그들의 장래는 부모나 스승에게보다 그들의 마음에 더 달려 있나니, 최후 책임은 그들에게 맡기고 그대나 나는 정성을 다하여 지도만 하여 보자.] 하시니, 송암이 일어나 절하고 두 딸의 전무출신을 흔연히 승낙하니라.
☆ 어구 해석
오 송암(吳松庵) : 본명은 병열(柄烈). 법호는 휘산(輝山). 전북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에서 부친 상동(相東)과 모친 최몽경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인 윤황운과 쌍둥이 딸 오종순ㆍ오종태 자매를 전무출신 시켰다. 1934년(원기19) 9월, 오송암은 마령교당을 방문한 소태산대종사에게 두 딸의 장래를 책임져 줄 것을 당부했다.
여식 : 남에게 자기 딸을 이르는 말
종순(宗順) : 1913~1935 본명 미상 전북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에서 부친 송암(松庵)과 모친 윤황운(尹黃雲)의 7남매 중 3녀로 출생했다. 오종태의 쌍둥이 언니이다. 전무출신을 결심하고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주 편창 제사공장에 나가며 그 급료를 익산총부 상조부에 저축했다. 이 과정에서 결핵에 걸려 마령 집으로 돌아가 요양을 해야 했다. 어느 정도 효차가 있자 집안에서는 시집가기를 권유했으나 이를 뿌리치고 1932년(원기17) 임신동선(壬申冬禪)에 참예했다. 하지만 이후 더욱 병세가 악화되어 1935년(원기20) 1월 2일 마령자택에서 21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소태산은 이 비보를 접하고 “종순은 순결한 정녀로 본회 공중사업을 위해 활동하려 하다가 천명을 거역치 못하여 열반에 들었으니 곧 정식정녀부(正式貞女簿)에 승급시켜 이후 정녀의 원시(元始)가 되게 하라”고 하명했다고 한다.
종태(宗泰) : 1913~1976 본명 효순(孝順), 법호 형타원(亨陀圓). 전북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에서 출생. 1930년(원기 15) 최도화의 인도로 입교하고 이듬해에 출가하였다. 교단 초창기에 조전권·김영신 등과 함께 교당의 교리 훈련에 법풍을 크게 불렸다. 교화일선과 교육기관 등에서 큰 활동을 하였고, 소태산 대종사·정산종사·대산종사를 잘 보필하였고, 대의에 밝았다. 대봉도 법훈을 받았다.
출가(出嫁) : 일반적으로는 집을 떠나감의 의미. 불교적으로는 번뇌에 얽매인 세속의 인연을 버리고 수행생활에 들어감. 원불교적으로는 몸과 마음을 원불교의 발전과 제생의세의 큰 사업을 성취하기 위해 전무출신 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정 : 앞으로 가야 할 길. 전정이 구만리 같다는 말이 있다.
전무출신 : 원불교 교단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헌신 노력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 원불교의 출가 교역자를 총칭하는 개념인 ‘전무출신’은 원불교의 개교 초기부터 사용한 ‘전무주력자(專務主力者)’, ‘전무노력자(專務努力者)’라는 용어에서 유래하여 ‘전무출신이라는 개념으로 발전되었다. 그 의미는 ‘오롯이 공도에 힘써 일하기 위해 원불교에 출가하여 헌신한다.’는 의미이다. 〈원불교교헌〉에는 “출가교도로서 교규의 정한 바에 따라 본교에 공헌한 이를 전무출신이라 한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