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가톨릭 문화와 역사 탐방] (4 · 끝) 로욜라 · 몬세라트 · 만레사
예수회의 고향에서 성 이냐시오 따라 회심의 기도를
- 이냐시오 성인이 1년간 영신수련을 했던만레사 동굴에서 한 순례자가 기도하고 있다.
예수회를 설립한 스페인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1491~1556년, 그림)는 그보다 3세기 앞서 탁발수도회를 세운 성 프란치스코(1181~1226년)와 참으로 많이 닮았다. 신분은 달랐으나 어릴 적부터 유복하게 자라 호기로운 생활을 했다. 둘은 기사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전투에 참가했다가 부상을 입고 포로가 되어 감옥생활을 하다 풀려나 요양을 하면서 성경과 성인전을 읽고 회심을 했다. 또 둘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삶의 방식으로 자발적 가난을 선택했고 기도와 관상을 통해 탁월한 신비가가 됐다. 아울러 둘은 세상 모든 이방인에게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수도회를 설립했고, 깊은 성체 신심과 교회 가르침에 대한 충실한 순명으로 교회 쇄신을 이끌었다.
교회가 내부적으로 이교와 프로테스탄트 분열로 혼란스러울 때 프란치스코와 이냐시오 성인 같은 인물이 나타나 쇄신과 개혁을 이뤄낸 것은 분명 하느님의 섭리, 성령의 이끄심이다. 물질만능주의와 반생명의 문화가 맘몬으로 자리한 오늘날 예수회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이 쇄신과 개혁의 십자가를 진 것은 분명 예사롭지 않다.
- 하느님의 보다 더 큰 영광을 위하여 예수회를 설립한 이냐시오 성인의 생가가 있는 로욜라 대성당.
로욜라
‘하느님의 보다 더 큰 영광을 위하여’(Ad Majorem Dei Gloriam)
예수님의 벗들로 불림을 받은 예수회원들의 행동양식이다. 이냐시오 성인의 생가가 있는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 로욜라의 대성당 벽과 성인상 곳곳에 이 모토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예수님의 벗들은 이곳에서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을 통해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을 도모한다. 이 영적 성장을 바탕으로 그들은 가난과 순명, 정결의 전통적 수도생활 양식과 함께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인 교황과 결속해 신앙의 증거자로 파견되고 있다.
- 몬세라트의 검은 성모상. 이냐시오 성인은 이 성모 앞에 칼을 봉헌하고 성모의 기사가 될 것을 약속한다.
로욜라 성지 접견 책임자 아이노아 빌라씨는 “연간 10만여 명이 이곳을 찾아오고, 지난해만 4000여 명의 한국인 순례자가 다녀갔다”며 “순례자가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후 25%나 늘었다”고 말했다. 또 “한 번에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곳 영성센터는 연중 예약이 꽉 차 있다”며 “이곳에서 양성된 예수님의 벗들은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세상을 위해 특히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돌벽으로 지어진 요새였던 생가는 이냐시오 성인의 생애를 누구나 꿸 수 있도록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특히 성인이 회심했던 방에는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의 환시를 보는 이냐시오 성상이 있는데 그 강렬한 눈빛이 순례자들의 회개를 이끌고 있다.
회심한 이냐시오는 31살 때인 1522년 집을 떠나 순례 길에 오른다. 그는 스페인 동북부 카탈루냐 지방 성 베네딕도회 산타 마리아 데 몬세라트 수도원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또 한 번 회심의 밤을 겪는다. 총고해를 한 그는 입고 있던 화려하고 값비싼 옷을 가난한 이들에게 모두 벗어주고 거친 감자포대로 만든 넝마자루를 걸쳤다. 그리고 명예와 권위를 상징하는 장검과 단검을 ‘몬세라트의 검은 성모’ 제단에 봉헌하고 그리스도의 충실한 종이 될 것임을 서약했다.
아울러 이냐시오는 몬세라트의 검은 성모상 앞에서 성모 마리아의 청빈과 겸손, 단순함을 닮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이냐시오 영성의 두 기둥인 ‘가난’과 ‘겸손’은 만레사 동굴에서 완성되지만 아마도 그 시작은 죽음의 순례길을 체험하고 총고해를 한 몬세라트 수도원에서의 단련 시기일 것이다.
‘그리스도의 포로’라 스스로 고백했던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와 사막의 은수자 성 바실리오, 엄격한 수도규율 아래 수도공동체를 이끈 성 베네딕토를 존경했던 이냐시오는 하느님의 뜻을 찾는 식별의 영성에 기초한 예수님의 벗들을 위한 수도 소명을 아마도 이곳에서 받았을 것이다.
몬세라트
- 몬세라트 수도원 전경. 톱날같은 산봉우리들이 서있어 ‘몬세라트’라 불린다.
해발 723m 뾰족한 톱날 산에 자리한 성 베네딕도회 산타 마리아 데 몬세라트 수도원은 이냐시오 성인 때와 변함없이 많은 순례자가 찾아와 검은 성모상 앞에서 회심의 전구를 청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이 검은 성모상은 성 루카가 조각한 것으로 베드로 사도가 스페인에 가져왔다고 한다. 검은 성모상은 무어인 지배 때 동굴 속에 감춰져 있다가 880년경에 우연히 발견됐다. 이후 12세기 들어 이 수도원에서 성모 발현과 기적이 있다는 소식이 퍼져 모여들기 시작해 오늘날까지 끊이지 않는 순례자들이 이냐시오 성인처럼 검은 성모상 앞에서 ‘성모의 기사’가 되길 간구하고 있다.
몬세라트 산에서 내려온 이냐시오 성인은 수도원에서 15㎞ 떨어진 만레사 마을 인근 동굴 안에서 1년간 영신수련을 했다. 이 시기 그는 관상과 내적 쇄신을 통해 은총의 지배를 받는 속량된 몸으로 그리스도의 새로운 인간(로마 6장 참조)으로 태어났다.
- 이냐시오 성인이 만레사 동굴에서 영신수련을 하며 사용했던 나무로 깎은 탁발그릇.
만레사 동굴
하지만 그의 영신수련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회심의 순간을 단 한시라도 잊지 않기 위해 몬세라트 산봉우리가 바라다보이는 동굴에서 그는 연일 단식과 고행을 하며, 때때로 나무를 깎은 탁발 그릇을 들고 문전걸식으로 생명의 끈을 유지한 채 추위를 견디며 어둡고 습한 동굴 안에서 하느님과의 만남에 전념했다. 한때는 어두운 밤에 갇힌 자신의 영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살을 생각할 만큼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영신수련에는 기도방법뿐 아니라 삶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지력과 의지의 수련법도 어우러져 있다.
이 만레사 동굴 위에는 바로크풍의 예수회 성당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도 영성센터가 있어 수많은 이들이 영신수련을 하기 위해 찾고 있다. 이냐시오 성인이 1년간 은수했던 동굴 경당 입구에는 그가 사용했던 500년 가까이 된 나무 탁발 그릇이 전시돼 있다. 경당 안에는 청동으로 만든 작은 원형 제대와 성체조배를 위한 감실이 있다. 제단 벽에는 몬세라트 산을 바라보면서 「영신수련」의 초안이 되는 수기를 적고 있는 이냐시오 부조상이 꾸며져 있다.
‘하느님의 보다 더 큰 영광을 위하여’ 성모 마리아의 가난과 겸손, 단순함을 배우기 위해 회심의 칼을 품은 제2의 이냐시오들이 오늘도 이곳에서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평화신문, 2015년 7월 26일, 글 · 사진=리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