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구나무
배 정수
애미산이 포근히 감싸고 있는 노리미 동네 초입에 내가 우뚝 서 있는지가
40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나는 누구에 의해서 이 곳에 서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아마도 노리미에는 나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대를 이어 살았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6.25 난리 후 까지도 나보다 몇 백년 더 나이 먹은 할어버지 둥구나무와
내 또래, 나보다 나이 적은 동생, 여러 그루가 있었다.
상정말(높은 산 아래 삼갈래 길)과 새터 뿌리에 있었다.
어느 손에 잘리어 땔감으로, 혹은 무늬목으로 팔려 가고 지금은 나혼자
쓸쓸히 마을 사람들의 살아 가는 모습을 보고 있다.
동네 아낙들은 나를 영험한 나무라고 치성을 들이는 아낙도 있고
내가 봄에 잎 피는 것을 보고 그 해의 길 흉을 점 치고 찔레 꽃 머리 내 우듬지에
찾아와 앉아서 노래하는 소쩍새 소리 듣고 풍년, 흉년을 점친다.
내 잎이 위에서 붙어 한꺼번에 몰쪽 피면 흉년 된다고 언짢아 한다.
소쩍새가 소쩍, 소쩍 울면 솥텅, 솥텅 가마솥이 텅 빈다는 소리로 흉년을 점치고
소소쩍, 소소쩍 울면 솥적다, 솥적다 풍년이 들어 가마솥이 적다고 해석해
풍년이 든다고 좋아한다.
봄이 되면 우듬지에 까치가 집을 짓고 알을 품어 애소리가 되면 동네 개구쟁이들이
이를 데려 가려고 올라오다 미끄러워 못 올라 오면 내 몸 내 주변은 돌쩌귀로 쪼아 발판을
만들고 올라와 애소리를 데려간다.
땅개비 잡아다 먹이고 지렁이도 먹여서 키워 데리고 놀다가 날려 보낸다.
어쩌다 개구쟁이 눈을 피해 애소리가 커서 퍼들껑 거리며 가는 것을 보면 내가 잘 보듬어 주었다.
환희를 느끼고 내년에 탯 자리 찾아 오겠지 기다려진다.
오월 단오가 되면 집으로 동아줄을 틀어 그네를 맨다고 하면 내 팔 내주어 동네 총각들은
그네를 맨다.
처녀들 그네를 뛸 때 바람에 치맛 자락 휘 날리고 당속곳 안 시원한 바람이 스치면 마냥 즐거워한다.
그네를 뛰다가 동아줄이 끊어져 다친다.
손을 놓쳐 다치는 안타까운 일도 간혹 있었다.
고약한 개구쟁이가 내 몸 속에 불을 놓는 바람에 뜨거워 쩔쩔매는데 청년들이 달려들어 꺼주었다.
상정말 할아버지 둥구나무는 여러 차례 화재를 만나 모 속에 장정 여나무 명이 들어갈 수 있게
텅 비어 있었다.
할아버지가 살아 있으면 동네가 옛 스러워 보일 것이다.
꼬마 개구쟁이들이 내 몸 속 구멍에다 앞 부끄리를 대고 쉬를 한다.
어스렁 달 밤 인적이 드문 때 처녀 총각이 내 다리를 깔고 앉아 사랑을 속삭이고
뽀뽀하던 처녀 총각들 의지 삼아 앉아 여러 대 이어온 청춘 남녀, 개구쟁이들 아마도 지금 쯤
하늘 나라에 있고 늙어 할아버지 할머니되고 아저씨되고 아주머니 또는 애기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지금 나는 행복하다.
몇 십년 전 만해도 영양 실조 몸 속 화재로 내 몸에 구멍이 나서 몸 속으로 장정이 들락거렸다.
5.16혁명 후 산림 녹화 정책에 힘 입어 나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아
나의 건강은 회복되었다.
몸의 구멍도 아물어서 상처를 찾아 볼 수 없다.
싹스리 바람에 팔 가지가 찌져질까 휘영청하면 받침목으로 바쳐 주고 나의 다리 둘레에
흙으로 보안하여 영양 먹는데 지장이 없다.
동네 사람들 고마워 시원한 바람 불어 오면은 보듬어 안고 있다가 여름 한 더위에
내 그늘에 찾아오면 시원하게 내어 땀을 식혀 주고 그늘에 한 숨 자고 쉬어가게 한다.
동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안타깝다.
나를 즐겁고 귀찮게 굴던 개구쟁이들을 볼 수가 없다.
개구쟁이들이 많을 적에 나를 개개면 성가실어 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 때가 재미가 있었고 그리워진다.
내 그늘 아래 배 기덕 선생님의 시비(詩碑)가 있어 소개한다.
시비(詩碑)는 선생의 후배들이 선생 문학을 기리고져 애미 10인 회에서 경비 부담으로 세웠다.
애 미 산 아
엄마의 포근한 치마 폭 처럼
온 마을 감싸 주는 애미산아
너는 따스한 엄마의 품 속
너는 다정한 사랑의 손길
아련한 옛 얘기 들려 주었지
내가 400년 동안 마을을 지켜 보면서 사람들의 사라온 이야기
그간 변해온 동네 이야기는 다음에 적어 보기로 한다.
첫댓글 이상신 시인님 올려주신글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나 시인님.... 배 정수 님은 충청효우 문우님 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