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骨)
어머니 자궁속에 태아와 같이
밀폐된 관 속에 그녀는 황골(黃骨)로 불만이 없었다.
그 볼을 곱게 물들이던 피 한 방울, 머리칼 하나,
살 한 점 안 남기고, 남 몰래 사랑으로
빛났을 눈동자, 아 한 번도 사나이 가슴을
대 본 일이 없었기에 수밀도(水蜜桃)처럼 익었을
젖가슴의 심장이나마 남은들 어떠리오.
허나
조찰이 골(骨)만 누웠네요. 땅 속에 자라난
무슨 기묘한 식물과도 같이, 아름다운 변신일까.
그녀가 묻힌지 십 오년 만에 발굴된 무덤,
이 제껴진 관 속에 쏟아지는 햇빛의 조롱이여.
무덤 파는 일군의 굵직한 손가락이 골에 닿자 마자
마디 미디 으러지는 그것은 가루, 보니 두골(頭骨)이
치워진 자리엔 반쯤 담겨진 향수병 하나.
향수(香水)
고승(高僧)의 골회(骨灰)에선 사리가 나온다지만
그녀의 고운 마음, 향수로 화(化)함인가.........피도 힘줄도
내장도 살도 그 몸을 감았던 베옷과 함께
삭아서 검은 티끌 위에 호올로 숨 쉬는 향수병(香水甁)
투명한 그 속에 반쯤 담기어, 상기 은밀히 떨고 있는
향스이 내력을 어느 시인이 풀이할 수 있으리오.
별에 흘렸던 그녀의 눈물, 잠결에 새어난
한숨이 모여 향기로운 이슬다이 어리운 것일까.
이젠 영원히 새어 날 수도 없이, 유리의 그릇 속에
죽음을 뚫고 고여진 사랑. 허나 이 그지없이
고귀한 향수에게 햇빛은 잔인해라, 차라리 흙을
그 팍팍한 흙을 덮으라요. 다시 십 오 년이 지나간 뒤
이곳에 길이 나고 집들이 선들, 그녀의 고혼(孤魂)이야
깊고 어둔 흙 속에 보석으로 오롯이 맺히리니.
회복기(恢復期)
어머니, 눈부셔요.
마치 금싸라기의 홍수 사태군요.
창을 도로 절반은 가리시고
그 싱싱한 담쟁이넝쿨잎 하나만 따 주세요.
그것은 살이 있는 5월의 지도
내 소생안 손바닥 위에 놓인
신생의 길잡이, 완벽한 규범,
순수무구한 녹색의 불길이죠.
삶이란 본래 이러한 것이라고.
병이란 삶 안에 쌓이고 쌓인 독이 터지는 것,
다시는 독이 깃들지 못하게
나의 살은 타는 불길이어야 하고
나의 피는 끊임없이 새로운 희열의 노래가 되어야죠.
참 신기해요, 눈물 날 지경이죠.
사람이 숨쉬고 있다는 것이,
그래서 죽지 않게 마련이라는 것이
저 창 밖에 활보하는 사람들,
금싸라기를 들이쉬고 내쉬면서
저것은 분명 걷는 게 아니예요.
모두 발길마다 날개가 돋쳐서
훨훨 날으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웃음소리, 저 긴나게 떠드는 소리,
사람의 몸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날까요.
그것은 피가 노래하는 걸 거예요,
사는 기뿜에서 절로 살이 소리치는 걸 거예요.
어머니, 나도 살고 싶습니다.
나는 이직 한번도 꽃 피어 본 일이 없는 걸요.
저 들이붓는 금싸라기를 만발한 알몸으론
받아 본 일이 없는 이 몸은 꽃봉오리
하마터면 영영 시들 뻔하였던
이 열 일곱 어지러운 꽃봉오리
속을 맴도는 아픔과 그리움을
어머니, 당신 말고 누가 알겠어요.
마지막 남은 미열이 가시도록
미 좁은 이마 위에
당신의 큰 손을 얹어 주세요.
죽음을 쫓는 손,
그 무한이 부드러운 약손을.
[한국인의 애송시 II, 청하]
첫댓글 목요일부터 제주 폭설로 결항되어 토요일까지 발목을 잡고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