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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한양) 탐구10-(서울의) 사찰(절)
<배경 영상 음악> 삼귀의(三歸依)와 반야심경(般若心經) 등
《삼귀의(三歸依)》는 삼보[三寶]인 불[佛]. 법[法]. 승[僧]에 귀의하는 것을 말한다.
《반야심경(般若心經)》은 불교의 중심이 되는 경전으로《대반야바라밀다경》의 요점을 간략하게 설명한 짧은 경전으로, 당나라 삼장법사인 현장(玄裝)이 번역한 것이다. 260자로 되어 있다.
음악이나 동영상이 보려면 https://www.youtube.com/embed/cN0ArYAF7oM/span> <=요걸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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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퀴즈] 정답은 본문 내용 및 이 글 끝에...
[퀴즈 1] (서울) 성북동에 있는 사찰로 법정 스님과 인연이 있는 절의 이름은?
[퀴즈 2] 북한산 아래에 있어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은 둘러봤을 사찰이다. 이 절의 이름은
[퀴즈 3] 도성 밖 비구니 사찰로 왕실과 후궁, 상궁 등 궁인에게 사랑받은 절 이름은?
[퀴즈 4] 신촌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뒤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의 절로 서재필은
자서전에서 이곳을 ‘개화파의 온상’이라고 하였다. 이 절의 이름은?
[퀴즈 5] 본래 경기도 광주 수도산(修道山)의 산사(山寺)였지만, 지금은 서울시 강남구
도심 한가운데 있는 사찰이 되었다. 돈이 많은 부자(富者) 절로 소문난 이 절은?
[퀴즈 6] 경기도 남양주 운길산(雲吉山)에 있는 사찰로 세조의 명으로 중창된 절이다.
두물머리(양수리)를 바라볼 수 있는 저명한 경관 전망지인 이 절의 이름은?
[퀴즈 7] 한국 불교 최대 종단인 조계종 本寺로 근정전 크기의 대웅전이 있는 이곳은?
[퀴즈 8] 조계사 바로 옆에 있는 한국 최초의 우체국으로 갑신정변이 일어난 곳의 이름은?
[퀴즈 9] 서울시 은평구에 있는 사찰로 고려 현종의 목숨을 구한 인연으로 왕실의 지원과
보호를 받았다. 2009년 3.1운동 당시에 쓰였던 태극기가 발견된 이곳은?
[퀴즈10] 이성계의 비호를 받아 '조선의 왕사(王寺)'라고 불렸던 경기도 양주에 있던 이
사찰의 이름은?
[나무위키]-링크 | 홈페이지 | 현 위치(주소) |
관문사(觀門寺) | www.gwanmunsa.org/main | 서울 서초구 우면동 |
금선사(金仙寺) | www.geumsunsa.org/ | 서울 종로구 비봉길 137 |
길상사(吉祥寺) | http://kilsangsa.info/ | 서울 성북구 성북동 323(선잠로5길 68) |
도선사(道詵寺) | www.doseonsa.org/ | 서울 강북구 삼양로173길 504(우이동 264) |
묘각사(妙覺寺) | www.myogaksa.net/ | 서울 종로구 숭인동 178-3 |
보문사(普門寺) | http://www.bomunsa.or.kr/ | 서울 성북구 보문동3가 168 |
봉원사(奉元寺) | http://bongwonsa.or.kr/ | 서울 서대문구 봉원사길 120 |
봉은사(奉恩寺) | www.bongeunsa.org |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531 (삼성동) |
수국사(守國寺) | www.suguksa.org/ | 서울 은평구 구산동 |
수종사(水鐘寺) | x ?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1060 |
연화사(蓮花寺) | x | 서울 동대문구 제기로31길 10-3(회기동) |
정각원(正覺院) | https://jeonggak.dongguk.edu/ | 서울 중구 필동로1길 30 |
조계사(曹溪寺) | www.jogyesa.kr/ |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55 |
진관사(津寬寺) | www.jinkwansa.org/ | 서울 은평구 진관길 73 |
호압사(虎壓寺) | www.hoapsa.org/ | 서울 금천구 호암로 278 |
회암사(檜巖寺) | www.hoeamsa.com/ | 경기도 양주시 회암사길 281 |
화계사(華溪寺) | www.hwagyesa.org/ | 서울 강북구 화계사길 117 |
흥천사(興天寺) | www.heungcheonsa.net/ | 서울 성북구 흥천사길 29 |
조계사, 봉은사, 진관사, 화계사, 금선사, 묘각사에서 등에서 운영하는 템플스테이(템플라이프)에 참여하면 사찰 체험과 함께 그 절의 내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알림-
이 글 내용은 [나무위키 www.namu.wiki]에서 대부분 가져왔지만, ‘가나다’ 순으로 배열하고 편집 요약하였다.
원문을 보려면 클릭=> 절(불교)/한국 - 나무위키
* 주1: 사찰 설명 중 ‘금선사’ ‘도선사’ ‘묘각사’ ‘수국사‘를 제외한 나머지는 [나무위키]에서 가져 왔다.
* 주2: 경기도 지역의 사찰이지만 ‘수종사’는 태조 이성계, ‘회암사’는 세조와 관련이 깊어 본 자료에 포함
시켰다.
- 가나다순 -
관문사(觀門寺) 참조 링크: 관문사(觀門寺) www.gwanmunsa.org/main
서울시 서초구 우면동에 위치한 대한불교천태종 사찰로 1970년 천태종 중창조(重創祖)였던 상월원각대조사가 큰 천태사원을 세우라는 유지를 받들어 시작했다. 1996년 11월 3일 법당 상량식을 거쳐 1997년 12월 31일에 불사를 마쳤다.
금선사(金仙寺) 참조 링크: 금선사(金仙寺) www.geumsunsa.org/
금선사(金仙寺)는 북한산국립공원 남서쪽 산기슭(서울시 종로구 비봉길 137)에 있는 사찰로
조선 초, 태조 이성계 곁에서 조선의 건국과 한양 천도를 도왔던 무학대사가 창건했다.
금선사는 조선 후기 정조 임금과 관련한 설화가 전해져온다. 대구 파계사에서 수행정진 중이던 용파스님은 사찰에 부과되는 각종 부역으로 전국의 사찰이 피폐하게 되자 왕과 담판을 지으려고 서울로 올라왔다. 어느 날 임금을 만나 담판을 하였는데 임금은 왕자의 탄생을 조건으로 걸게 된다. 이후 임금의 후궁인 수빈 박씨의 꿈에 한 스님이 나타나 아들이 태어날 것을 점지하였고 수빈 박씨가 음력 6월 18일 아들을 낳았다. 같은 날 목정굴에서 기도하던 농산스님이 앉은 채로 열반에 들었다. 이에 농산스님이 열반에 들어 수빈 박씨 몸에서 다시 태어난 것이라 여기고 해마다 이날 순조 임금의 탄신제를 올리고 있다.
금선사는 일제강점기에 전소되어 중창된 지가 60년밖에 되지 않기에 유형문화재가 많지 않다.(내용출처: 위키백과)
길상사(吉祥寺) 참조 링크: 길상사(吉祥寺) http://kilsangsa.info/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323(선잠로5길 68)에 위치한 불교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송광사의 말사이다. 1997년에 세워졌으므로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최고급 요정이었던 대원각(大苑閣)이 불교 사찰로 탈바꿈한 특이한 설립 이력이 있는 곳이다.
본래는 '대원각'이라는 이름의 고급 요정이었으나 요정의 주인이었던 고 김영한(법명 길상화)이 법정 스님에게 자신이 소유한 요정 부지를 시주하여 사찰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1995년 6월 13일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말사인 '대법사'로 등록하여 사찰이 되었고, 초대 주지 로 현문이 취임하였다. 1997년에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이름을 바꾸어 재등록되었다.
길상사(吉祥寺)의 절 이름은 ‘길하고 상서로운 절’이란 의미로, 묘길상(妙吉祥) 곧 문수보살의 별칭에서 인용된 불교용어이며, 승보사찰(僧寶寺刹) 송광사(松廣寺)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내용출처: 위키백과)
도선사(道詵寺) 참조 링크: 도선사(道詵寺) 홈피: www.doseonsa.org/
서울시 강북구 삼양로173길 504(우이동 264) 북한산 만경대 하단부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계열의 사찰이다. 신라 경문왕(景文王) 2년(862)에 도선(道詵)이 세웠다. 도선은 이곳의 산세가 1,000년 뒤의 말법시대(末法時代)에 불법을 다시 일으킬 곳이라고 예견하고 절을 창건한 뒤, 큰 암석을 손으로 갈라서 마애관음보살상을 조각하였다고 한다.
그 뒤 조선 후기까지의 중건·중수에 관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북한산성을 쌓을 때는 승병들이 이 절에서 방번(防番: 보초 임무)을 서기도 하였다. (내용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묘각사(妙覺寺) 참조 링크: 묘각사(妙覺寺) 홈피: www.myogaksa.net/
서울시 종로구 숭인동 178-3 낙산 동쪽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불입종의 총본산이다. 『법화경』을 중심으로 수행과 대중 불교운동을 지향한 법화신앙(法華信仰)의 중심사찰로, 현 위치에 절을 세우면 서울이 평안하고 시민생활에 안정을 가져온다는 풍수지리설에 의하여 터를 잡았다고 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석굴암(石窟庵), 요사채가 있다.(내용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웅전은 1975년에 착공하여 1981년 6월에 완공한 건물로서, 내부 천장이 매우 높고 지붕은 청기와를 사용하였다. 법당의 본존불은 청동불로서 합장을 한 특이한 모습이며, 좌우에는 4대 보살상, 뒤편에는 목각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또, 석굴암의 불상은 모두 북향을 하였는데, 일반적인 불상 배치법과는 달리 북쪽을 향한 것은 이북동포의 안녕과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뜻에서 취한 것이라고 한다.
보문사(普門寺) 참조 링크: 보문사(普門寺) 홈피: http://www.bomunsa.or.kr/
대한불교 보문종의 총본산인 보문사는 고려 예종 10년(1115) 담진(曇眞) 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창건 당시부터 비구니 즉 여승들을 위한 사찰이었다. 조선 시대에도 '탑골승방'이라고 불리며 비구니들이 거처하던 도성 밖 4대 비구니사찰 가운데 하나였다.
대한불교 보문종의 실제 개조(開祖)이자 중흥조는 일제강점기에 보문사를 중창한 비구니 긍 탄(亘坦: 1885-1980)과 그 제자 보암당 은영(恩榮: 1910-1981)이다.
2017년에 보문사 극락보전을 중수할 때에 발견된 상량문에 따르면 청 건륭 12년(조선 영조 23, 1747) 처음 중건하고 도광 4년(순조 24, 1824)과 동치 4년(고종 2, 1865)에 더 중수했다. 동치 4년 상량문에는 조선 왕실의 시주를 받아 불사를 진행하고 후궁과 상궁 등 궁인에서부터 사대부, 평민에 이르기까지 불사에 동참하였다는 내용도 있다.
보문사에는 왕실에서 하사한 연(輦)수식과 인로왕번(引路王幡)을 비롯하여 조선 후기에 제작한 석가불도, 신중도, 지장보살도는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조선 전기에 제작된 묘법연화경은 국가지정문화재이다.
보암당 은영은 1971년에 오갈 데 없는 여신도들을 위하여 시자원(施慈院)이라는 양로원을 만들었는데, 여기서 순정효황후와 황후를 모셨던 마지막 궁녀들이 여생을 보냈다. 말 그대로 조선 왕실의 여인들과 마지막까지 함께한 사찰이다.
봉원사(奉元寺) 참조 링크: 봉원사(奉元寺) 홈피: http://bongwonsa.or.kr/
서울 서대문구 봉원사길(세브란스병원 뒤)에 위치한 한국불교태고종의 절이다. 889년(진성여왕 3)에 도선국사가 금화산 서쪽에 있는 신도의 집을 희사 받아 창건한 뒤 반야사(般若寺)라 했다고 한다. 그 뒤 고려 말 공민왕 때 태고(太古) 보우가 중건·보수하고 금화사라고 개칭했다. 1651년 봄에 큰 화재로 많은 피해가 있었고, 1655년 다시 중건하였다. 그 후 6.25때 많은 피해가 있었지만 복원을 해서 지금의 봉원사가 되었다.
구한말에는 개화파인 이동인이 이곳 봉원사에서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 많은 개화파 인사들과 비밀리에 접촉하여 근대문명과 관련된 책을 읽고, 자주 모여 토론을 벌이고 갑신정변을 모의하기도 했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 때문에, 서재필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곳 봉원사를 ‘개화파의 온상’이라고 하였다.
봉은사(奉恩寺) 참조 링크: 봉은사(奉恩寺) 홈피: www.bongeunsa.org
봉은사는 서울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 (삼성동)에 위치한 도심 속의 고찰(古刹)로 대한불교 조계종 직영사찰이다. 본래 경기도 광주 수도산(修道山)의 산사(山寺)였지만 지금은 서울시 로 편입되어 강남구 도심 한가운데 있는 사찰이 되었다. 돈이 많은 부자(富者) 절로 소문나있다.
서기 794년 신라 원성왕 시절에 처음으로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의 이름은 '견성사(見性寺)'였고, 위치도 선릉 근처라 지금과 달랐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서 성종의 능인 선릉을 지키는 '능침사찰'이 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많은 땅을 하사받았다. 이 때문에 절 이름을 '은혜를 받든다.'라는 뜻의 봉은(奉恩)으로 바꾸었다.
이후 불교를 사랑했던 문정왕후 때에 승과시(僧科試) 시험장이 되었다. 이 때문에 숭유억불을 국시로 삼았던 조선 유생들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았다. 그나마 능침사찰이라 회암사처럼 불태워지는 사태는 없었다. 하지만 승과고시 때문에 당시 학식 있는 사람들이 승려로 입산하였고, 휴정, 유정 같은 명망 있는 승려들이 나와 임진왜란 등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말기인 1939년에 큰 화재를 겪었으며, 1950년 6.25 전쟁 때 전각이 대부분 파괴되었다가 이후에 재건되었다. 때문에 봉은사 건물은 판전 등 소수의 건물을 제외하면 주로 1940년대와 1980년대 전후로 재건된 것들이다.
수국사(守國寺) 참조 링크: 수국사(守國寺) 홈피: www.suguksa.org/
- ‘수국사’ 관련 이 부분의 내용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가져온 것이다. -
서울시 은평구 구산동에 있는 절이다. 크기는 5층짜리 건물 정도로 20세기에 지어졌다.
외부와 내부 모두 99.9% 순금이라고 하나 사실 금으로 지은 것이 아니고 얇은 금박을 나무에 붙인 것이라고 한다. 기존의 사찰 건물은 나무에 단청을 칠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나무가 썩고 단청이 지워진다. 이를 보수하는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간다. 하지만 금을 입히면 이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수종사(水鐘寺) 내용출처: 수종사(水鐘寺)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운길산(雲吉山)에 있는 사찰로 조선전기 제7대 세조의 명으로 중창 된 사찰이다. 수종사에 대한 유래는, 1458년(세조 4) 세조가 금강산(金剛山) 구경을 다녀오다 이수두(二水頭 : 兩水里)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한밤중에 난데없는 종소리에 잠을 깬 왕이 부근을 조사하자, 주변에 바위굴이 있고, 굴 안에 18나한(羅漢)이 있었으며, 굴 안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울려나와 이곳에 절을 짓고 수종사라고 하였다고 전해온다.
두물머리를 깨우는 종소리를 들어보려면 요걸 클릭.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 나올 수도 있으며, 아래 동영상 보려면 ▷클릭=> https://youtu.be/bnsWLJBgGfg
운길산 수종사(水鐘寺)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양수리 兩水里)를 바라볼 수 있는 저명한 경관(景觀) 전망지이다. 예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이곳의 풍광을 시·서·화로 남겼으며, 서거정(1420~1488)은 수종사를 ‘동방에서 제일의 전망을 가진 사찰’이라 하였다. 봄·여름·가을·겨울 연중 내내 신록·단풍·설경이 신비스럽고, 일출·일몰·운해 등 어느 시간의 풍광이라도 대단히 아름다운 전망을 지니고 있어 조망지점으로서 경관(景觀) 가치가 큰 곳이다.
정약용은 일생을 통해 수종사에서 지낸 즐거움을 ‘군자유삼락’에 비교할 만큼 좋아했던 곳 이다. 또한 다선(茶仙)으로 일컬어지는 초의선사가 정약용을 찾아와 한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차를 마신 장소로 차문화와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다. 현재 수종사는 삼정헌(三鼎軒)이라는 다실을 지어 차 문화를 계승하고 있어 차(茶) 문화를 상징하는 사찰로 이름이 높다.
겸재 정선(1676~1759)의 경교명승첩(한강의 북한강·남한강 주변경관과 한강과 서울의 인왕산, 북악산 등의 경관을 그린 화첩으로 총 33점으로 이뤄짐)중 독백탄(獨栢灘)은 현재의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 兩水里’의 경관을 보여주는 고서화로서 그 시대의 명승지 경관과 현재의 경관을 비교 감상할 수 있어 회화 가치가 높다.
연화사(蓮花寺) 참조 링크: 연화사(蓮花寺)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로31길 10-3(회기동)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원찰로 세워진 사찰이다.
정각원(正覺院) 참조 링크: 정각원(正覺院) 홈피: www.heungcheonsa.net/
이 정각원 건물은 조선의 5대 궁궐 중 하나인 경희궁의 정전(正殿)이었던 숭정전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경희궁 전체를 완전히 해체하면서 숭정전의 목재들이 팔려 나왔고, 그 것을 일본 사찰이었던 대화정 조계사(大和町 曹溪寺)가 사들여 법당으로 사용하였다. 이 조계사는 현재의 대한불교 조계종의 조계사와는 다른 절이다.
이후 이 절의 부지에 동국대학교 건물들이 세워지자 1976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져 동국대학교 안의 법당이 되었다.
(사족) 동국대학교 근처의 서울 신라호텔 자리에는 박문사(博文寺: 이토 히로부미 伊藤博文 사당으로 1932년 완공된 건물)가 있었다. 이때 경희궁에 있던 흥화문을 헐어 옮겨와 박문사 입구 문으로 썼다.
현재 경희궁의 원래 자리에는 새로운 숭정전으로 복원되어 있다. 원래의 (동국대)정각원을 다시 제자리로 옮기려 했으나 건물이 낡아 이전이 어려웠다. 1989년부터 6년에 걸쳐 원래 자리에 새 건물을 지어 복원했다고 발표했다. 그렇지만 복원된 경희궁 숭정전의 완성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이제 와서 불교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정각원을 다시 회수하는 것도 어렵게 되었다.
조계사(曹溪寺) 참조 링크: 조계사(曹溪寺) 홈피: www.jogyesa.kr/
대한불교 조계종의 총본산인 조계사는 서울시 종로구 우정국로 55 (수송동)에 위치한 사찰 이다. 사찰 규모는 아담하지만 대한민국 불교 최대 종단의 본사(本寺)답게 경복궁 근정전에 맞먹는 큰 대웅전이 있고, 경내에는 천연기념물 제9호인 백송이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 재위 4년(1395)에 창건되었다고 말하나, 실질적 창건은 구한말 순종 융희 4년(1910)에 되었다. 한국 근대사가 그렇듯, 조계사도 역사는 짧지만 매우 복잡하다. 한국불교의 친일과 민족투쟁 역사의 중심에 있던 절이기도 하다.
대한제국 시절, 한국불교에는 구심점이 될 종단이 없어 계속 밀고 들어오는 일본 불교 세력에 한국 불교가 위축되었다. 이런 상황을 개탄하여 만해 한용운 등 민족적 불교 인사들이 새 종단을 구성하고자 노력하였다. 이에 1902년 흥인지문(동대문) 밖 지금의 창신동 창신초등학교 자리에 원흥사(元興寺)를 창건하고, 1908년에 각 도의 사찰 대표 65인이 원종(圓宗) 종무원을 설치하였다.
조선왕조 내내 유교 성리학을 숭상하고 불교는 억제하는 숭유억불정책으로 인해 사찰(절)도 산으로 추방당하거나 방화(放火)로 사라지는 판에, 한양도성 사대문 안에 절이 생기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게다가 1895년까지는 승려는 천민 신분으로, 도성 출입마저 원칙적으로 금지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사대문 안에 절을 세운다는 것은 억압받던 한국 불교계에 있어 의미가 컸으며 또한 시대가 달라졌음을 뜻했다.
갑신정변(甲申政變)과 우정총국(郵征總局) 참조 링크: 갑신정변 -나무위키
조계사 바로 옆에 있는 우정총국(郵征總局)은 갑신정변이 일어났던 곳으로 한국 최초의 우체국이라고 할 수 있는 건물이다.
갑신정변(甲申政變)은 1884년(갑신년)에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급진 개화파가 서구식 근대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이다. 일본공사와 일본군의 지원을 받아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에서 난을 일으켰다. 급진 개화파는 여러 온건 개화파들을 살해했다. 윤태준, 한규직, 이조연 등 영선사 출신이나 민씨 척족 중에서 민영목, 민태호 그리고 조영하 등 여러 온건 개화파들이 살해당했다.
고종을 속이고 새 내각을 구성해 정강 14조 등 개혁을 추진하려 했으나 청나라 군사(淸軍)가 창덕궁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하고 민중들이 일본공사관을 공격하자 계획이 좌절되었다. 김옥균이 일본으로 망명하며 삼일천하로 끝났다.
이 정변은 고종에게도 큰 충격을 준 사건으로 급진 개화파와 온건 개화파 모두 상당수의 인재들이 사라져 향후 근대화에 걸림돌이 되고 청의 내정간섭이 심해지는 등 큰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
진관사(津寬寺) 참조 링크: 진관사(津寬寺) 홈피: www.jinkwansa.org/
서울시 은평구 진관길 73 (진관동 354번지)에 위치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 말사로 ‘북한산 진관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신라 진덕여왕 때에 처음 지었다는 유래가 있기는 하지만 이 사찰이 거의 창건 수준으로 대대적으로 중창된 것은 고려 초기의 일이었다. 고려 초 이곳은 진관(津寬)이라는 승려가 홀로 수행하던 신혈사(神穴寺)라는 이름의 작은 암자였다고 한다.
진관사가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은 고려 현종의 목숨을 구한 사찰임과 동시에 사찰에서 6백 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수륙대재’ 덕분이기도 하다. 땅 위, ‘수륙재’는 물속의 모든 의지할 곳 없는 영혼들과 아귀(餓鬼)를 위하여 법요를 열고 음식을 공양하는 행사이다. 진관사의 경우 조선 태조가 몸소 국가행사로 명한 기록이 남아 있다. 조선 초기의 문신 권근이 태조의 명으로 지은 진관사수륙재조성기(津寬寺水陸社造成記)에 따르면 태조 6년(1397년) 태조가 이 절에 수륙사(水陸社)를 설치하고 여러 번 행차하여 수륙재를 지냈다고 한다.
이를 본받아 태종도 태종 13년(1413년) 이 절에서 아들 성녕대군(誠寧大君)을 위한 수륙재를 열고, 향과 제교서(祭敎書)를 내렸으며, 수륙재위전(水陸齋位田) 100결을 하사하여 재를 계속하게 하였다. 이후부터 진관사에서는 매년 1월 또는 2월 15일에 수륙재를 열게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진관사 수륙대재(국가무형문화재 제126호)라는 이름으로 해마다 음력 9월에 거행되고 있다.
그 뒤 세조 9년(1463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성종 1년(1470년) 벽운(碧雲)이 중건하였으며, 철종 5년(1854년)과 철종 7년(1858년)에 중수하였다. 고종 16년(1879년)에 경운(慶雲)이 대방을 중수하였다. 1908년에는 송암(松庵)이 오층석탑을 세우고 1910년에 대웅전의 삼존상을 개금하였으며 명부전을 중수하면서 지장보살상을 개금하였다. 또한 독성전과 칠성각을 새로 지었다.
그러나 6.25 전쟁 때 나한전 등 3동만을 남기고 모두 소실되었다. 1964년부터 최진관 비구니가 당우를 차례로 재건하여, 현재에는 대웅전을 비롯한 명부전, 나한전, 독성전(獨聖殿), 칠성각, 홍제루(弘濟樓), 종각(鐘閣), 일주문, 선원(禪院), 대방(大房) 등을 갖추었으며, 비구니 수도도량으로 이용하고 있다.
2009년 칠성각 보수 당시 불단 뒷면에서 3.1운동 당시에 쓰였던 태극기와 신대한 2·3호, 자유신종보, 조선독립신문 32·40호 경고문 등 국외 독립운동과 불교계의 관계를 알려주는 유물들이 새롭게 발굴되기도 했다.
호압사(虎壓寺) 참조 링크: 호압사(虎壓寺) 홈피: www.hoapsa.org/
서울시 금천구 시흥 2동 호암산(虎巖山) 아래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사찰로 조계사의 말사(末寺)이다.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봉은사의 말사였다고 한다.)
화계사(華溪寺) 참조 링크: 화계사(華溪寺) 홈피: www.hwagyesa.org/
중종 17년(1522) 신월(信月)선사가 창건했다. 고려 광종 때 탄문(坦文)과 법인(法印)이 현재 화계사 근처 부허동(浮虛洞)에 세운 보덕암(普德庵)을 신월이 서평군 이공(西平君李公)과 함께 현 위치로 옮긴 것이다. 광해군 10년(1618) 화재로 전소되어 도월(道月)이 중창했다. 이후 고종 3년(1866)에도 낡은 건물들을 보수했다. 구한말에는 흥선대원군이 개인적으로 후원을 하였다.
회암사(檜巖寺) 참조 링크: 회암사(檜巖寺) 홈피: www.hoeamsa.com/
경기도 양주시 천보산에 위치했던 사찰로 숭유억불 정책을 추진한 조선왕조에서도 왕과 왕후들의 비호를 받으며 '조선의 왕사(王寺)'라고 불렸던 조선 최대의 절이었다. 선대왕들의 제사를 지내는 사찰이므로 더욱 특별히 보호받았다. 행궁으로도 기능했으므로 그 모습이 궁궐 건축에 가까웠다.
태조 이성계는 회암사를 매우 아꼈다. 나옹화상의 제자인 무학대사를 회암사에 머무르게 하였으며, 불사가 있을 때마다 대신을 보내 찬례(讚禮: 불(佛), 법(法), 승(僧) 삼보(三寶)에 예배하고 그 공덕을 찬탄함)토록 하였다. 이성계가 왕위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회암사에서 수도생활까지 했을 정도였다. 비록 이성계는 조선의 왕이었지만 그 자신은 유학자 출신이 아니었으며, 불교문화 속에서 성장한 고려시대 인물인지라 불교를 좋아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나름대로 독실한 불자였던 세조 등에 힘입어 회암사도 계속 번창하였다. 성종 3년(1472)에는 왕실의 가장 큰 어른이자 대왕대비인 정희왕후가 더 크게 중창하기도 하였다. 조선 초기에도 숭유억불 정책이 존재했으나, 실제로 많은 왕족들은 불교에 관심이 있었다. 조선 초기는 왕의 권력이 신하들보다 더 강했기에, 국왕의 개인적인 생각에 따라 신료들의 반대를 누르고 사찰을 지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 중기에 유학자들의 힘이 강해지고 점점 숭유억불 정책도 강경해지던 중, 16세기 후반에 원인 모를 화재로 폐사가 되었다. 19세기에 이 절터 근처에 재건한 작은 회암사가 남아있다.
회암사지(檜巖寺址) 참조 링크: 회암사지 -다음백과
회암사는 1313년 이전에 이미 절이 창건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1326년 고려에 온 인도 승려 지공이 창건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1376년 지공의 제자인 나옹이 이 절을 중창했다. 태조 이성계는 무학대사를 이곳에 머물게 했고, 그 자신도 퇴위 후 이곳에서 생활했다. 1472년 세조비인 정희왕후의 명으로 정현조가 중창했고, 명조 때에는 보우를 신임한 문정왕후의 비호로 전국제일의 수선도량이 되었다. 왕후가 죽은 뒤 보우가 처형되고 절도 황폐해졌다. 선조 이후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옛 절터 부근에는 1977년 중건한 대웅전·삼성각·영성각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 회암사지 선각왕사비(보물 제387호)·회암사지 부도(보물 제388호), 회암사지 쌍사자석등(보물 제389호) 등이 남아 있다.
흥천사(興天寺) 참조 링크: 흥천사(興天寺) 홈피: www.heungcheonsa.net/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 조계사의 말사로 서울시 성북구 돈암동에 위치한 이 곳은 조선 시대의 사찰로 원래 한양 도성 내에 있었다.
조선 태조 5년(1396년) 태조의 정비였던 신덕왕후 강씨가 죽자 태조는 강씨의 능원인 정릉을 도성 내에 조성하고, 강씨의 원찰로써 흥천사를 지었다. 흥천사를 지은 후 태조 7년(1398년) 7월에 열린 우란분재(盂蘭盆齋: 불교에서 사후에 고통 받고 있는 자를 위해서 음력 7월 15일에 음식을 공양하는 의식)를 직접 참여하거나, 8월에는 신덕왕후의 천도회(薦度會:죽은 이의 넋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해 행하는 의식 모임)에 사찰 승려들을 몸소 만나 시주하고 천도회를 주도하는 등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계모 신덕왕후를 거의 증오하다시피 했던 태종이 즉위한 뒤인 태종 3년(1403년)에 사찰에 딸린 전답과 노비의 수를 줄이고, 태종 8년(1408년)에는 절의 건물 170칸을 뜯어서 명(明) 사신들의 객사인 태평관(太平館)을 짓는데 사용했다. 그나마 사찰 자체를 없앤 것은 아니어서 태종 10년(1410년) 태조의 유지(遺旨)를 좇아 절을 수리하고 이듬해에는 사리각을 중수하였다.
세종 6년(1424년) 선교양종 통합 당시 선종에 속하게 되었다. 세종 19년(1437년)부터 세종 23년(1441년) 3월까지 왕명으로 사찰을 중수하였고, 세조 8년(1462년)에는 범종을 만들어서 이 사찰에 봉안하였으며, 옛 흥천사 부지에 의경세자의 부인이자 며느리인 한씨의 사저를 지어주기도 했다.
성종 11년(1480년) 절을 다시 중수하였으며, 연산군 10년(1504년) 대궐 안에 있던 내원당(內願堂)을 이 절로 옮겼는데, 그 해 12월에 화재로 절이 소실되어 사리각만 남았다. 중종 5년(1510년)에는 이 사리각까지 불타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렸고, 선조 2년(1569년) 사찰이 정릉과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왕명으로 함취정(含翠亭) 옛 터로 절을 옮겨지었다.
정조 18년(1794년) 이 절의 승려 성민(聖敏), 경신(敬信) 등의 발원으로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짓고 절 이름을 신흥사(神興寺)라 하였다. 그 뒤 헌종 12년(1846년) 구봉(九峰)이 칠성각(七星閣)을 지었고, 철종 1년(1849년) 성혜(性慧)가 적조암(寂照庵)을 창건하였으며, 철종 4년(1853년) 대웅전(지금의 극락전)을, 철종 6년(1855년) 명부전(冥府殿)을, 고종 2년(1865년) 대방(大房)과 요사채를 짓고 이름을 창건 당시의 이름인 흥천사로 되돌렸다.
[요약퀴즈] 정답은 본문 내용 및 이 글 끝에...
[퀴즈 1] (서울) 성북동에 있는 사찰로 법정 스님과 인연이 있는 절의 이름은?
[퀴즈 2] 북한산 아래에 있어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은 둘러봤을 사찰이다. 이 절의 이름은
[퀴즈 3] 도성 밖 비구니 사찰로 왕실과 후궁, 상궁 등 궁인에게 사랑받은 절 이름은?
[퀴즈 4] 신촌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뒤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의 절로 서재필은
자서전에서 이곳을 ‘개화파의 온상’이라고 하였다. 이 절의 이름은?
[퀴즈 5] 본래 경기도 광주 수도산(修道山)의 산사(山寺)였지만, 지금은 서울시 강남구
도심 한가운데 있는 사찰이 되었다. 돈이 많은 부자(富者) 절로 소문난 이 절은?
[퀴즈 6] 경기도 남양주 운길산(雲吉山)에 있는 사찰로 세조의 명으로 중창된 절이다.
두물머리(양수리)를 바라볼 수 있는 저명한 경관 전망지인 이 절의 이름은?
[퀴즈 7] 한국 불교 최대 종단인 조계종 本寺로 근정전 크기의 대웅전이 있는 이곳은?
[퀴즈 8] 조계사 바로 옆에 있는 한국 최초의 우체국으로 갑신정변이 일어난 곳의 이름은?
[퀴즈 9] 서울시 은평구에 있는 사찰로 고려 현종의 목숨을 구한 인연으로 왕실의 지원과
보호를 받았다. 2009년 3.1운동 당시에 쓰였던 태극기가 발견된 이곳은?
[퀴즈10] 이성계의 비호를 받아 '조선의 왕사(王寺)'라고 불렸던 경기도 양주에 있던 이
사찰의 이름은?
[요약퀴즈 정답]
[퀴즈 1] 성북동에 있는 사찰로 법정 스님과 인연이 있는 절의 이름은? 답.=> 길상사
[퀴즈 2] 북한산 아래에 있어 오르내리는 사람은 둘러봤을 절이다 이곳은? 답.=> 도선사
[퀴즈 3] 비구니 사찰로 왕실, 후궁, 상궁 등 궁인에게 사랑받은 절 이름은? 답.=> 보문사
[퀴즈 4] 세브란스병원 뒤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의 절로 서재필은 자서전에서 이곳을
‘개화파의 온상’이라고 하였다. 이 절의 이름은? 답.=> 봉원사
[퀴즈 5] 본래 경기도 광주 수도산(修道山)의 산사(山寺)였지만, 지금은 서울시 강남구
도심 한가운데 있고, 돈이 많은 부자(富者) 절로 소문난 이 절은? 답.=> 봉은사
[퀴즈 6] 경기도 남양주 운길산(雲吉山)에 있는 사찰로 세조의 명으로 중창된 절이다.
양수리를 바라볼 수 있는 저명한 경관 전망지인 이 절의 이름은? 답.=> 수종사
[퀴즈 7] 한국 불교 최대 종단인 조계종 本寺인 이곳은? 답.=> 조계사
[퀴즈 8] 한국 최초의 우체국으로 갑신정변이 일어났던 곳의 이름은? 답.=> 우정총국
[퀴즈 9] 서울시 은평구에 있는 절로 고려 현종의 목숨을 구한 인연으로 왕실의 지원을
많이 받았다. 3.1운동 당시에 쓰였던 태극기가 발견된 이곳은? 답.=> 진관사
[퀴즈10] 조선왕실의 비호를 받아 '조선의 왕사(王寺)'라고 불렸던 경기도 양주에 있던 이
사찰의 이름은? 답.=> 회암사
(계속)
첫댓글 오늘도 서울의 사찰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