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과 감나무
어느 지인께서 한 보따리 감을 선물로 주셨다. 경남 하동産의 대봉으로 크고 먹음직스럽게 잘 생긴 감을 받고 보니 먹기도 전에 배가 부르다. 사양하지 못하고 선뜻 받았으니 무엇으로 보답을 해야 하나 고민도 되지만, 워낙 좋아하는 과일이라 감사히 먹기로 했다.
여러 가지 먹을거리가 흔한 세상인데다 각종 과일이 풍성한 가을철이지만 어린 옛 시절의 추억들이 많이 깃든 감이기에 다른 과일과는 달리 생각된다.
요즘의 과일가게에선 흔하디흔한 바나나는 물론이요 밀감이나 귤, 키위 같은 것들은 이름조차 듣기가 어려웠던 5-60년대 시절, 태어나고 자랐던 지대 높고 골 깊은 산속마을 내 고향엔 과일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았다. 사과는 오일장에 다녀오시는 아버지께서 국광능금 몇 개 사오시면 맛이나 보았던 귀한 것이었고, 대추는 제사상이나 차롓상에 올리고 난 다음에야 맛 볼 수 있었다.
아랫마을 면소재지 종갓집 뜰에서 처음으로 석류와 모과를 보고 신기해했었던 기억이 있는데 석류란 과일은 지금도 좀 체로 보기가 쉽지 않다.
우리 마을엔 추자(호두) 나무와 배나무도 몇 그루 있었지만 모두가 중농 이상의 부잣집 소유의 것들이었던 걸로 보면, 과일나무마저 빈부의 차가 있었다.
그 중 그래도 흔한 것이 감과 밤이었는데, 밤나무는 산과 들이나 밭가에 주로 심었던데 비해서 감나무는 뒷뜰과 울타리나 마당가에도 심었기에 생활 속 친근감이 훨씬 더한 나무다.
철없이 날뛰는 송아지를 매어두고, 빨랫줄을 묶고, 트랜지스터라디오의 전파를 잡기 위해 안테나용 철사 줄을 높은 가지에 걸기도 했다.
바람 부는 이월 영동엔 영동할매를 영접하는 색동 헝겊을 걸기도 하고, 봄날엔 별처럼 반짝반짝 앙증맞은 감꽃을 주워 무명실에 엮어서 놀기도 하고, 여름날엔 그늘 밑에서 매미소릴 들으며 삶은 감자를 먹고 삼껍질을 벗기고.....
가을이 시작되면서는 매일같이 감나무에 올랐다.
개미나 벌레가 건드린 감은 일찍 홍시로 변하기에, 달콤한 감홍시를 따 먹기 위해 학교가 파해 집으로 오기가 바쁘게 책 보따리를 마루에 휙 던지고 장대부터 찾았던 것이다.
위태한 가지에 올라 잘 익은 홍시를 조심스럽게 따먹을 때의 그 희열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과 밀접한 스킨십을 했던 나무가 감나무 말고 또 무엇이 있었던가. 신기한 것이 감나무는 사람 손을 타야 감도 잘 열리고 병도 걸리지 않고 튼튼하게 자라는 것이다.
어쩌다 외딴 산골의 폐가를 보게 되면,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라 쉽게 허물어짐을 알게 되는데, 주변의 감나무도 함께 몰락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감나무의 특성은 또 다른 곳에 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난다지만, 감 심은데에는 감이 나지 않는다. 고염나무 줄기에 감나무의 접을 붙여야만 제대로 된 감을 열리게 하는 까다로운 특성이 있는 것이다.
'가지접' '눈접'등과 'T자형' 'Y자형'등 접붙이는 종류와 방식을 이론으로는 배운 적이 있지만 실습을 해보지는 못했다. 우리 집 감나무 중엔 어떤 분의 작품인지 가지마다 다른 감이 열리는 재미있는 나무도 있었다.
마을엔 감의 종류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호박처럼 골이 있던 '골반시', 검정 반점이 있으면서 홍시가 되어도 섬유질을 따라 쩍 갈라지는 '먹두리', 예쁜 혹이 잘 생기는 '맛종감', 물동이 받침처럼 납작하게 생긴 '따배감', 흔하긴 하지만 곶감이나 만들까 도저히 그냥은 먹을 수 없이 떫기만 했던 '장뒤감', 등등이 있었고, 잘디잘지만 홍시가 달콤했던 '꼭개감'이 우리 집 뒤안에 있었다.
특이한 감의 종으로는, 반쯤 단감성분이 있는 감나무 한그루가 상주할매네 뒤안에 있어서 몰래 훔쳐 따 먹곤 했었고, 앞개울 건너 안산 역골아지매네 밭가에 나무로 깎은 팽이 모양의 큰 감이 열리는 한그루가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몰래 따먹곤 했는데 이름도 '이(利)많은 감'이라 불렀었다.
추수도 끝나고 일손이 한가해 질 늦가을이면 많은 집들이 곶감을 만들었다.
통나무 기둥을 4면에 세워 틀을 만들고, 싸리 꼬챙이에 깎은 감을10개씩 끼워서 새끼줄에 달아매어 말리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따사로운 가을볕과 새벽 서리를 맞으며 수분을 빼어가던 붉은 곶감은 하얀 분을 만들어 내었고, 배속에 볏짚을 넣어 볼록하게 치장을 하고 왼쪽으로 나란히 다섯 개, 오른쪽으로 나란히 다섯 개, 열 개를 한 묶음으로 보석처럼 포장을 하면 완성품이 되는데, 매우 일손이 많이 가는 공정이었다.
나이 들어 대처생활을 하면서 여러 지방 감의 산지들을 여행한 적이 있다.
삼백의 고장 상주, 시내 길의 가로수가 온통 감나무로 심어진 영동, 들과 산에 무수히 많은 감나무의 가을 풍경이 아름다운 정읍, 위도상으로는 북쪽이지만 따뜻한 해안성기후의 강원도 강릉 등, 모두가 공통점은 따뜻한 고장이다. 추위에 약한 감나무는 양평이나 철원 등 겨울추위가 심한 곳에서는 귀한 나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을 딸 일손도 귀한데다가 감나무와 어울려 놀아줄 아이들도 없으니 자연 고향집 주변의 감나무들도 쇠퇴하는 모양이다.
바로 옆 지방인 함양에는 아직도 감농사를 많이 한다는데, 어느 때 부터인가 우리 고향에는 감보다도 사과가 더 유명한 특산품이 되었다.
예전처럼 타작마당으로도 사용하지 않는 시골집 마당 주변의 노는 땅들에 개량종이거나 토종이거나 감나무 몇 그루 더 심으면 좋은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얼룩무늬 고운단풍 잎을 수북이 떨어뜨리고 난 다음에야 홍시를 땅에 내려 놓는 감나무의 깊은 뜻을 깨우치고, 까치밥 한두 개쯤 남겨두는 옛 어른들의 여유와 배려에 생각이 머무는데, 우수수 낙엽지는 소리를 따라 도시의 가을밤이 깊어만 간다.
첫댓글 아른아른 어린날의 기억이 되짚어집니다
그중에서 감꽃(감또개)을 질나래미에 끼어 가지고 놀다
떫뜨름함도 잊은채 달콤함만 느끼며 먹던 기억이 가장 선명해 집니다
지인께서 귀한마음으로 보내주신 감은 선배님 어린날의
아련한 기억마저도 어제일인냥 떠올리시게 하셨네요
역시 나눔은 사랑입니다
한줄 한줄이 우리 모두의 추억이였습니다
여러색을 띄우며 물들어 가는 감잎은 차로도 쓴다지요?
감에 얽힌 추억이 없는 동문들이야 없을 것입니다.
나이 탓인지 감 하나에도 많은 생각이 미칩니다.
덜익은 감 먹고 생목올라 고생하던 날처럼, 추억의 잔상들이 목울대를 누르고 있습니다.
잎차도 좋다하고 목재는 가구용으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더군요.
참감 장디감 따바리감 먹감 쑤시감 조리감,그냥한번 어릴때 멋모르고 소리나는대로 듣고 익혔던 감이름을 읊조려 봤습니다.마지막 글이 참 와닿네요. 잎을 떨군후에 살포시 홍시를 내려놓는 감나무의 자식사랑 ㅎㅎ 어린시절 감은 뗄레야 뗄수없는 어린날의 간식거리였죠..추억 한페이지 제대로 들추고 갑니다.
달리 간식거리 없기도 했음이요, 흔한 것이 그나마 감이었지요.
물동이에 삭힌감은 운동회날의 필수 먹거리!
하교길에 갈밭 만당 주변의 남의 감을 따서, 뜨뜻한 나락논 뻘속에 박아 놓았다가 하루쯤 지난후 개울에 씻어 먹던....
이크, 주인 알고 쫒아 올라!
그때는 그랬지요 학교에 갔다오면 감나무에 올라가서 홍시 따먹는 재미가 쏠쏠 했지요
내동생은(40회)감나무에 올라 갔다가 떨어져서 기절하고 그랬어요.그놈도 벌써 나이가 52살 이네요
선배님 글을 읽으면 고향생각이 절로 납니다
우리집 뒤안에는 서리 맞아야 먹는 큰 배나무가 있었는데 무슨밴지 생각이 안나네요
반시.먹두리 장디 이만시 오리께끼 등등 참 종류도 많았지요
꽂감은 정말로 환상적인 맛이었지요.아버지 몰라 몇개 먹었다가 많이 혼났지요
그시절이 그립습니다.좋은글 감사합니다 건강합시다 선배님~~
홍시로 변해가는 감은 언제쯤이면 먹을 수 있을것이란 계산으로 점을 찍어 놓곤 했지요.
서리 맞아야 맛드는 토종배라도 꽤 귀한 것이었지요.
중산리엔 어찌나 높아서 오르기도 힘든 동네 제일의 키다리 배나무가 한그루 있었는데, 엄청 많은 배가 달리더니 고목이 되어서는 알도 잘아지고 하더군요.
나무삐까리 같은 까치집을 여러개 달고 있던, 벼락맞고 쓰러졌다는 그 배나무가 생각납니다.
작은 거 하나에도 거침없는 선배님의 해박함에 놀랍니다.
쨍한 겨울밤 달빛에 마당 가득 드리운 감나무 그늘에 어느듯 봄 새순이 돋고
아침에 일어나면 간밤의 별들이 마당에 가득 감꽃으로 피어나더니
매미소리 왕왕대는 여름날 방학숙제하던 평상위에 그늘을 드리워 주고
들녘 벼가 익어가는 철에 맞춰 선홍색 속살 채워 무서리 성성한 날 아침의 그 맛인란....
어릴적 막내오빠랑 곶감 빼먹고 살살 간격조정해서 엄마 아빠 눈속임을 하던 일이....ㅋ..ㅋ.
결코 모르시진 않았을텐데...
장날 새벽녘이면 칡줄기 갈라 동그랗게 모양잡아가며 곶감 엮어시던 아버지 모습이 ... "그립네요"론 차마 다 풀 수가 없는 마음입니다.
감나무로 인해 유년의 정서가 그나마 풍부할 수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ㅋ, 그러나 같은 감나무의 기억에 이리 차이 날 수가!
범생이 어떤 분은 그늘 평상에서 공부를 하고..... 막나니 어떤 사람은 책보따리 부터 집어 던지고....
곶감 많이 먹은 사람 ㅎㅎ,뿡~~하면......... 다 알 수 있어요.
ㅋㅋ... 하루종일 같은 페이지만 펼쳐져 있어....그 장만 노랗게 빛이 바랬지요..^^ 숙제한답시고 책만 펴놓고 뭐했을까요!!!
어머님께선 공부 열심히 한다고 옥수수 삶아 주시곤 했을터!
[방학생활]이던가? 숙제 과제용 책이 생각납니다.
개학 이틀 남기고 한달간의 일기는 물론이요 다 해치워 버렸지요.
어떤 때는 개학하는 날 아침에도 부랴부랴!!!
동네 감홍시를 다 따먹던 어린 시절 까치밥 홍시를 따 먹다 발밑에 나무가 뚝 부러저서 그 자세 그대로 떨어져 다리뱅신이 되기전 마지막 가지를 붙들고 매달려 전신을 떨면서 혼이 났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다음 한동안은 감나무에 올라가지도 못했습니다.
세상에나! ㅋㅋㅋ, 까치 몫을 탐냈으니 벌 받을만도....
사실 제일 꼭대기 것들을 남겨 두니까 당연히 위험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