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한바퀴 97-용문사
9월11일 유종완이가 맛있는 맛집이 지평에 있다는 소리에 이완복, 유종완이랑 용문역에 내렸습니다.
용문역에 내리니 용문 천년시장이 있습니다.
택시를 타고 "지평보리밥"을 갔습니다. 가니 오후 2시반인데 점심시간이 끝나서 영업을 안한다고 합니다.
물론 떠나기전에 추석연휴라 전화를 걸어 영업하냐고 물어보니 영업한다고 해서 왔는데, 점심을 굶고 서울에서 왔다고 하는데도 영업 끝났다고 말한마디로 황당해지더군요.
택시를 못잡아 지평파출소에 가서 택시회사 전화번호 받아 전화하여 약15분가량 있으니 택시가 와서 용문사로 향했습니다.
"지평보리밥"은 아무리 보리밥이 별미고 티브프로그램에 나왔다고 해도 용서가 안됩니다. 영업 매너가 꽝이더군요.
운전수가 소개한 용문산 중앙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더덕산채정식이 1만5천원한데 나물이 맛있습니다.
지평막걸리를 주문하니 생막걸리와 안주로 전을 붙여서 옵니다
전을 붙이며 서빙하는 아가씨가 월남에서 온 월남아가씨로 한국말을 잘 합니다.
용문산 중앙식당은 용문역에서 차량 서비스를 하는데 오후 2시전까지 용문산역에 내리면 식당까지 차량서비스를 하고 저녁6시까지는 식당에서 용문산역까지 차량서비스를 합니다.
용문사를 보고 6시에 차를 이용해 용문역으로 갔습니다.
용문사의 유래는 원효대사가 금산을 찾아와 보광사를 짓고 산명을 보광산이라고 했습니다. 이때 현 용문사에 첨성각이 세워졌다고 전하고 있으며 금산에 있던 보광사를 이곳으로 옮겼다고 전해졌습니다. 다른유래는 현종원년(1660년)에 남해현의 유림이 금산에 위치한 보광사의 입구가 향대와 면대하였다 하여 다른곳으로 옮기라 하므로 백월당 대사가 남쪽에 있는 용소 위에 터를 정하고 용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용문사는 경기도 양평군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입니다.
신라 신덕왕2년인 913년에 승려 대경(大境)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다른설에 따르면 신라 마지막왕인 경순왕이 행차하여 직접 세웠다는 말도 있습니다. 세종29년인 1447년에 세종의 둘째왕자인 수양대군이 어머니인 소헌왕후 심씨를 위해 보전을 다시 지었습니다. 수양대군은 왕이 된후 왕명으로 용문사를 중수하도록 관심을 보였습니다.
절을 지키고있는 은행나무는 나이가 1100~1500년으로 추정되며 천념기념물 제30회로 지정되었습니다.
높이는 42m, 뿌리부분이 15.2m 입니다. 우리나라 은행나무 중에서 나이와 높이에 있어서 최고 높은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줄기 아래 혹이 있는것이 특징입니다. 이나무는 신라시대 경순왕(재위 927~935년)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설음을 안고 금강산을 가다가 심었다는전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닌던 지팡이를 곶아놓은것이 됐다는 설도 있습니다.
용문사로 올라가는 숲속이 걷기에 딱좋으며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습니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조선세종(재위1418~1450년)때 당사관(정3품)이란 품계를 받을만큼 중히 여겨져 오랜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이며 생물학적 가치로서도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날씨가 선선한것이 가을에 들어섰습니다.
은행나무 높이가 60m가 되었는데 유실수로 동양최대의 거목이었으나 2001년 고사위기에 처하자 상당한 규모로 가지치기한 결과 지금은 39m로 높이가 낮아졌습니다.
1960년도때는 은행이 20여석이 수확되어 용문사 살림을 책임질 정도였지만 지금은 5석 남짓 수확이 되어 수확된 은행은 행사를 통해 일반인에게도 분배를 한다고 합니다.
은행나무는 암나무 숫나무가 있는데 이곳은 암나무라고 합니다. 즉 할머니 나무인셈입니다.
이곳에 항일투쟁 기념비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