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들이 엄지와 검지를 들어 L자와 V자를 만들면, ‘패션 은어(隱語)’가 된다. 바로 ‘명품’을 상징하는 코드가 된, 루이비통(Louis Vuitton)의 이니셜이다. 루이비통은 여성들뿐 아니라 모든 기업들의 로망이다.
고가(高價)전략과 고(高)성장은 현대기업의 패러독스. 이 모순을 루이비통만큼 절묘하게 소화해내는 글로벌 기업도 드물다. 핸드백 하나에 100만원을 호가하지만 전 세계 여성들은 마치 필수품처럼 구매대열에 뛰어들고 있고, 153년의 역사를 가졌어도, 매년 변신을 거듭해 나이를 먹지 않는 신생 브랜드처럼 빛난다. 매출, 시가총액, 브랜드 가치 등 어떤 기준으로 따져도, 전 세계 명품업계(luxury goods) 1위다.
“루이비통이니까.” 만약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낸 이유를 천부적인 브랜드파워에서 찾으려고 한다면 틀렸다. 비밀의 열쇠는 이 기업을 지난 18년 동안 이끌어 온, 이브 카르셀(Yves Carcelle·59) 회장 겸 CEO가 쥐고 있다. 그의 재임기간에 루이비통의 매출과 순이익은 약 5배로 올랐고, 사치스럽지만 따분한 이미지의 루이비통 브랜드는 라이벌 회사들이 좇는 ‘명품의 척도’가 됐다.
위클리비즈는 ‘명품 경영자’ 이브 카르셀 회장을 단독 인터뷰했다. 지난 6일 압구정 현대백화점 루이비통 매장에서 만난 그는 한국 나이로 60세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고 날씬했다. 그의 옷과 시계, 구두는 모두 루이비통제품이었다. 그러나 그의 경영철학을 파고들수록, 실용성으로 무장한 비즈니스맨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도요타’의 경영방식을 벤치마킹하고, 유행을 따라 일본의 팝 아티스트를 고용했다.
그는 비행기를 타면, 짐칸을 돌며 짝퉁 루이비통을 찾아내, “이건 범죄행위”라고 큰소리로 항의한다. 그의 판매방침에 ‘세일’은 없다. 재고가 발생하면 모조리 없애버린다. 전 세계 모든 제품은 루이비통의 기술자들만 만든다. 아웃소싱이 없는 유일한 명품업체, 품질에 대한 비타협이 그의 경영철학이다.
프랑스어, 영어,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독일어와 이탈리아어로도 소통이 가능한 그를 놓고 일부 서구언론은 ‘카멜레온’이라는 표현을 쓴다. 비즈니스상 합리성이 필요하면 미국인이 되고, 남성의 매력이 필요하면 이탈리아인으로 변신하며, 자존심(ego)이 요구되면 프랑스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졸업 후 글로벌 생활용품회사에서 목욕 타월과 살충제를 팔았다. 이제 그는 세계 최고의 명품을 판다. 그가 만든 루이비통의 브랜드가치는 226억달러(FT 발표. 2007년). 루이비통보다 8배가량 매출이 많은 삼성전자 브랜드 가치의 거의 두배에 이른다. 다음은 카르셀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왜 세계인들은 루이비통을 비롯한 명품에 열광하나요?
“‘명품(luxury goods)’은 ‘욕망’이죠. 사람들은 부(富)가 허락하는 한, 그 감성을 누리고 싶어해요. ‘가졌다는 것’. 그런데 최근 더 많은 사람들이 부유해지고, 더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명품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신흥 국가들의 등장과 중산층들의 구매력 강화죠. 특히 이들은 명품 중에서도 루이비통을 사랑해요. 여행을 가면 자신을 위해, 혹은 아내와 딸을 위해 루이비통 제품을 한두 개씩 사지 않습니까. 돈이 좀 부족한 사회 초년생일 땐 작은 동전 지갑이나 키홀더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돈을 벌고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가방, 신발, 옷 등으로 옮겨 가게 됩니다. 우리 제품은 주인과 함께 정말 멋지게 나이가 들거든요.”
―루이비통이 매년 전 세계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수십 조원에 달합니다. 그만큼 제품이 많이 팔린다는 건데, 과다한 공급으로 인해 명품이 갖는 특유의 ‘희소성’이라는 가치가 희석되는 것 아닌가요?
“그게 바로 명품 업계의 ‘모순(paradox)’이에요. 두자릿수 성장을 계속 하면서도 명품의 가치를 계속 유지하는 것, 두 마리 토끼를 같이 잡는 형국이죠. 실제로 예전에 명품에 접근하기 힘든 중산층들이 부를 축적하면서 명품에 더 가까이 가게 됐어요. 하지만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바로 ‘명품의 민주화(democratization)’입니다. 그 표현의 이면에는 ‘질이 떨어진다’ ‘값이 싸다’라는 말이 숨어있거든요. 저희 제품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그 흔한 세일 한번 하지 않았거든요. 지금 하는 얘기를 듣고 다소 놀랄지도 모르는데요…. 다른 명품 업체들은 그해에 남은 물량은 세일을 해서 처분하지만 우리는 그냥 폐기 처분해 버립니다. 그냥 모조리 없애버리죠.”
―예외는 없었습니까.
“물론, 직원 세일은 있습니다. 직원들에게 자사 제품을 입고, 신고, 걸칠 기회를 주는 거죠. 그 외엔 예외가 없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스위스에 갔는데요, 구찌(Gucci) 시계가 20프랑(약 1만5000원)에 팔리더라고요. 아니, 웬일입니까. 그러면서도 ‘명품’이라고 주장할 겁니까. 고객들이 마음먹고 수천 달러짜리 가방을 샀는데, 3주 후에 20% 세일이라는 푯말을 발견했다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2000년대 들어 가방이나 지갑 같은 가죽 제품에서 시계, 보석, 기성복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자 경쟁업체들은 ‘세일을 안하곤 못 버티겠지’라고 장담했습니다. 가죽 제품이야 수십 년씩 오래 가니까 고객들이 비싼 가격을 감수하지만, 옷은 그보다 수명이 훨씬 짧으니까 세일을 해야 겨우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린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우리에게 ‘타협’이란 없습니다. 가격은 가격일 뿐입니다. 타협 않는 것이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많이 팔수록 더 귀해진다
신화를 만든 ‘패러독스 경영철학’
‘명품의 명품’ 루이비통 CEO 이브 카르셀, 성공의 DNA를 말하다
■ 153년 세월을 이긴 비결? ‘고집’
―루이비통은 153년에 걸쳐 명품의 상징으로 떠올랐는데…. 세월을 꿰뚫는 비결이 뭡니까.
“똑같은 질문을 동종업계 CEO들로부터 많이 받습니다. 도대체 ‘루이비통의 기적(miracle)이 뭐냐’는 거죠. 루이비통이 153년 동안 고집스럽게 지켜온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중앙에서 매장을 100% 통제하고 관리한다는 원칙입니다. 전 세계 어느 루이비통 매장을 가더라도 본사에서 훈련을 받은 순수 우리 직원들로부터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명품 업체들처럼 중간 업체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제품을 유통시키지 않아요.
저는 우리와 비슷한 전략을 가진 샤넬(Chanel)을 존경합니다만, 최근 선글라스를 출시하면서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말더군요. 하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아웃소싱이 없는 유일한 명품 업체가 된 거죠.”
―공장 기술자들도 모두 루이비통에서 직접 훈련시킨다고 알고 있는데요.
“맞습니다. 기술자들 모두 적게는 수 개월, 많게는 수 년씩 루이비통 선임 기술자들로부터 직접 훈련을 받습니다. 바로 루이비통 성공의 두 번째 비결이죠. 한땀 한땀을 중요시하는 장인 정신이에요.”
그는 루이비통 시계를 찬 오른팔을 흔들어 보이며 웃었다. 그의 양복이나 넥타이, 구두 모두 루이비통 제품이었다.
―공장은 대부분 어디에 위치해 있습니까.
“17개 공장 중 미국 캘리포니아를 제외하고는 모두 유럽에 있어요. 그 중 절반 이상이 프랑스에 있고 나머지는 스위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 분포돼 있습니다.”
―중국으로 공장을 옮길 생각은 없으십니까?
“제 대답은 ‘노(no)’입니다. 사실 비슷한 제안을 매번 받습니다. 값싼 중국으로 공장을 모두 옮기라는 제안이요. 하지만 공장은 가능한 파리 본사에서 가까울수록 좋아요. 그만큼 관리가 더 치밀할 수 있고요. 가끔은 저의 이런 경영 철학이 주주의 이익과 상충할 때도 있지만, 원칙에 위배될 때는 과감하게 저항해야 합니다.”
―그 많은 제품 생산을 수작업으로 감당할 수 있나요?
“전 세계 매장에서 ‘물량이 달린다. 제발 물건을 좀 보내달라’고 난리입니다. 예전보다 공급 물량이 많긴 하지만, 그보다 수요가 더 급증했거든요. 그때마다 ‘미안, 미안, 물건을 더 생산해 낼 수가 없어’라고 대답하고 있어요. 우리는 기술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제품을 만들어 냈는지에 대해선 묻지 않습니다. 생산 수량과 월급은 전혀 관계 없습니다. 얼마나 완벽한 물건을 만들어 내는지를 따집니다.”
〈루이비통이 속한 LVMH(루이비통 모에 에네시·Louis Vuitton Moet Henessy) 그룹의 지난해 매출은 약 18조 8000억원에 달한다. LVMH는 루이비통 이외에 셀린느·지방시·펜디·겐조 등 패션 브랜드와 디오르·게를랑 등 화장품, 모에샹동 같은 주류 회사 등을 거느리고 있지만, 매출액의 약 40%, 순이익의 약 80%가 루이비통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 도요타에서 생산성을 배우다
―지난해 루이비통이 일본 자동차회사인 도요타의 생산 방식을 도입했다고 해서, 화제가 됐었는데요. 루이비통이 ‘품질’과 ‘희소성’ 대신, ‘대량생산’을 선택했다는 비아냥도 있었지요.
“그건 오해입니다. 도요타 방식이 곧 대량생산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더욱이 ‘장인정신’과의 작별을 뜻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명품 업체가 자동차 제조업에서 생산 방식을 배워 오냐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오히려 덕분에 루이비통은 우수한 품질과 생산성을 동시에 이뤘어요.”
―무엇을 배워 오셨나요?
“‘린 생산방식(lean production)’이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한 생산 라인에 8~12명 정도로 구성된 소규모 팀이 투입됩니다. 이들은 각각 가죽 자르기, 바느질, 색감 입히기 등을 담당하죠. 그리고 각 근로자는 자신의 작업 이전의 상태를 평가합니다. 문제가 발견되면 ‘여기, 문제가 발견됐다’고 소리치고 즉시 긴급 회의를 신청합니다. 그러면 다들 모여서 어디서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찾아내죠. 기술자들이 기계처럼 맡은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제조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그런 방식이라면 품질은 향상이 될 것 같은데, 생산성은 어떻게 높아지나요?
“린 생산방식을 통하면 오류 제품을 중간 단계에서 잡아낼 수 있죠. 다시 말해, 잘못된 제품을 끝까지 만드는 데 투입되는 시간을 아낄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이 익숙해지면 오류를 잡아내고 이를 수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점점 빨라지죠. 당연히 불량품도 크게 줄어듭니다. 불량품을 생산해서 항의를 받을 바에야 아예 물량을 적게 공급하는 게 나아요.”
―명품 제조와 자동차 제조 과정은 다를 텐데, 도요타 생산방식을 그대로 주입시켜도 문제가 없나요?
“루이비통은 순전히 장인들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생산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어차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공장의 총괄본부장 자리에 도요타 출신을 앉힌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도요타 방식의 핵심은 제품을 만들기 시작해서, 시장에 선보일 때까지의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스트 인 타임 (JIT·Just In Time) 시스템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그날 시작한 작업은 재고를 쌓지 않고 바로 당일에 끝낼 수 있죠. 소규모 팀이 작업을 하니, 각 기술자가 담당하는 일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됩니다. 그러다 보면 작업의 전체 흐름이 보이고 가방 하나를 완성시키기 위해 유연성을 발휘하게 되죠. 이론상으론 오늘 주문한 고객의 물품이 다음날 배달될 수 있습니다.” (루이비통의 ‘품질’에 대한 집착은 파리 본사 건물 지하에 위치한 ‘제품 실험실’로 대변된다. 일명 ‘최첨단 고문실’이라 불리는 이 실험실에서는 3~4㎏짜리 돌멩이를 채운 루이비통 가방을 4일 동안 바닥으로 내동댕이치고, 로봇 방망이로 가죽을 수십 시간 동안 두드린다. 내구성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다. 또 변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자외선을 집중적으로 쬐게 하고, 지퍼의 견고함을 살펴보기 위해 5000번 이상 지퍼를 열었다 닫았다 한다.)
■ ‘두려움 없이 변화하라’
신선한 디자이너들 영입
―루이비통은 어두운 갈색에 L과 V 로고가 들어가 있는 ‘모노그램 캔버스’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대변신을 하는 것 같아요. 가방에 낙서 같은 그라피티(graffiti)나 앙증맞은 빨간 체리 문양까지 그려 넣은 걸 보면요.
“보통 루이비통하면, 떠올리는 문양이 바로 모노그램 캔버스인데, 이것은 우리의 정체성이고 핵심 ‘DNA’입니다. 1896년 처음, 모노그램 캔버스가 등장한 이후부터 10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우리 제품의 뿌리는 모두 모노그램 캔버스에 있어요. 우리는 마크 제이콥스(Jacobs)와 무라카미 다카시 등 창조적인 디자이너들을 통해 모노그램을 끊임없이‘재해석(reinterpretation)’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모노그램 캔버스 자체는 바뀌지 않을 거예요.”
―그렇다면 변신을 시도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시점은 언제고, 왜 그랬습니까?
“모노그램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행사를 가졌던 1996년의 어느 날이었어요.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Arnault) 회장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우리, 이제 클 때가 된 것 같아’. 기존의 ‘여행 가방’이라는 좁은 영역에서 좀 더 젊고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하자는 뜻이었죠. 조금은 위험할 수 있지만, 그 말을 들으니 아주 흥분이 되더군요. 그래서 제가 대답했죠. ‘아르노, 나는 준비가 됐어요’라고. 그래서 만난 것이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였어요. 저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마크, 내가 당장 뉴욕으로 가도 될까’라고 물었고 한걸음에 달려가 그를 만났죠. 사실 반신반의했어요. 마크 제이콥스 하면, 아주 톡톡 튀는 이미지기 때문에 루이비통과 잘 조화가 될까 하는 의심도 있긴 했죠.”
기자가 귀를 쫑긋 세우며 의자를 당겨 가까이 앉자, 그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아, 혹시 우리가 넥타이를 매고 사무실에서 만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라고 물었다.
“그냥 우리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얘기했어요. 나는 루이비통의 혁신을 원한다고 전달했고, 그는 이것을 이해했어요. 그리고 무엇을 그린 종이를 나에게 건네더군요. 큼지막한 루이비통 로고를 사용한 새로운 디자인이었어요. 신선한 활력이 확 느껴졌어요. 저는 ‘앗! 이거다’라는 직감이 들었고, 즉시 그에게 ‘빨리 먹어. 갈 데가 있어’라고 했죠. 그리고 디자인실로 전화를 걸어 모두 집합시킨 뒤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제이콥스 이후에도 무라카미 다카시가 디자인한 파격적인 제품들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끌었는데, 찬반 양론은 있었죠? ‘품격이 떨어진다’는 주장과 ‘참신하다’는 반응이요.
“우리는 단순히 장난친 게 아니에요. 9·11 테러가 있은 직후, 세계는 우울증에 걸려 있었고 여행 수요도 크게 줄어 들었어요. 명품 구매는 여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에겐 타격이었죠. 우울증도 털어내고 다시 파이팅하는 의미에서 즐거움을 불러올 수 있는 파격적인 제품을 만들어 보기로 했어요. 그때 제이콥스의 추천으로 만난 것이 무라카미 다카시였어요. 그는 가방에 알록달록한 색깔을 녹여 낸 ‘멀티컬러(2003년)’를 만들었고, 그 후에 빨간 체리가 모노그램에 곁들어진 가방이 나왔죠. 아주 멋졌어요.”
루이비통엔 3가지가 없다- 3無
①세일 ②아웃소싱 ③짝퉁에 대한 관용
■ 짝퉁과의 전쟁
―당신은 정말 ‘짝퉁’을 싫어하겠군요. 특히 루이비통은 짝퉁업자들이 가장 많이 베끼는 상품인데요.
(짝퉁과 관련된 카르셀의 일화는 많다. 그는 최근 방콕에서 열린 매장 오프닝 파티에서 가짜 루이비통 가방을 메고 나타난 프랑스 대사관 직원을 그 자리에서 크게 야단친 적이 있고, 여행을 다닐 때마다 비행기 안 짐칸을 관찰하고 다니며 가짜 루이비통 제품이 발견되면 “이건 범죄 행위”라고 경고를 하고 다닌다.)
“사실 창업자 루이비통은 위조 방지를 위해 일부러, 이니셜인 ‘LV’를 트레이드 마크 등록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L자와 V자가 오히려 짝퉁업자들의 도용 대상이 되고 말았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어요. 짝퉁은 돈세탁이나, 어린이 노동 착취, 마약 등과 같은 명백한 범죄 행위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무관용 원칙(zero tolerance)을 고수하고 있어요. 각 나라의 정치인들을 만나 로비도 하고 다닙니다. 단지 루이비통만을 위한 노력은 아닙니다. 지하 경제를 없애기 위한 공공적인 성격을 띱니다.”
―지금은 어느 나라가 가장 심합니까.
“한국 이태원도 빼 놓을 순 없겠죠. 하지만 요즘 ‘전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에서 가짜 상품들이 많이 유통됩니다. 중국 유통 당국은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짝퉁에 대해 철퇴를 가할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만, 너무 큰 나라다 보니까 통제가 잘 안되나 봅니다.”
―방법이 있나요?
“저희는 소송도 불사하고, 할 수 있는 법적 조치는 다 합니다. 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루이비통 매장을 최대한 많이 여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진품을 보고 가짜와의 근본적인 차이를 알 수 있도록 말입니다. 한번 진품의 맛을 본 사람은 중독되기 때문에 다시는 짝퉁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요.”
―하지만 여전히 명품 매장은 보통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기엔 좀 불편한 생각이 듭니다. 짝퉁을 사는 심리의 일부분도 ‘친숙함’ ‘거리낌 없다’는 느낌이 작용하지 않을까요.
“사실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백화점에도 매장을 심어 놓고 있어요. 단독 빌딩 매장보다는 그래도 쇼핑하다가 잠깐 들르기에 덜 위협적이니까요. 백화점 매장과 빌딩 매장을 적절히 배치시키는 전략이죠.”
※ JIT 시스템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만 납품해 내는 적시(適時) 생산 시스템을 의미한다.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와 인력을 제때 공급해 ‘당일발주-당일생산-당일배송’을 실현시키자는 목적이다. JIT 시스템을 통하면 재고품이 획기적으로 줄어, 관련 물류비나 인건비 등 총비용도 줄어든다.
※ 린 생산방식 (lean production)
컨베이어 벨트의 분업 형태와 달리 소수의 숙련공들이 한 조가 돼 제품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라인당 투입되는 인력이 줄어드는 대신 한 사람이 담당하는 일은 여러 가지로 늘어난다. 한 팀이 제품의 총생산 과정을 책임지므로 공정과 공정 사이에 쌓이는 재고가 거의 없고 불량품이 줄어드는 등 생산 과정이 슬림하다고 해서 ‘린(lean·마른)’이라는 표현이 붙었다.
※ 마크 제이콥스 (Marc Jacobs·44·왼쪽)
루이비통의 수석 디자이너(artistic director)이자 자체 브랜드를 갖고 있는 스타 디자이너다. 1998년 루이비통에 합류해 150년 된 전통의 벽을 깨면서도 최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LV 전통 문양에 스포티즘을 가미시키는 등 루이비통을 성공적으로 변신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다.
무라카미 다카시(Murakami Dakasi·45·오른쪽)
일본의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 그는 2002년 이후 루이비통의 전통적이던 모노그램 백을 알록달록한 색으로 꾸미거나 익살스러운 빨간 체리나 만화 캐릭터를 그려 넣는 등, 일명 ‘무라카미 백’으로 세계 패션 시장에 이름을 떨쳤다.
■ 사모펀드도 군침흘리는 명품시장
140조 규모… 매년 8%씩 성장 中·러 등 ‘新 명품 블랙홀’
전 세계 명품 브랜드 시장은 2006년 기준 약 1500억 달러(140조원) 상당. 이는 미국 컨설팅 회사인 텔시 그룹이 추정한 수치로, 2000년 이후 명품 시장은 전년 대비 약 8%씩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 최대 명품 그룹인 LVMH의 1분기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3% 증가했고, 까르띠에와 몽블랑 등 브랜드가 속한 리치몬드 기업은 16% 정도 늘었다. 이 같은 성장세의 배경에는 중국, 인도, 러시아 등 신흥국가의 왕성한 명품 소비 욕구가 자리잡고 있다. 특히 중국은 명품의 블랙홀이라고 할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해 이미 세계 3위권의 명품 시장으로 올라섰다. 중국 바로 다음은 러시아다. 부유층 대상의 전람회를 개최하는 ‘밀리어네어 전시회’의 엘레나 쿠도조바 이사는 “러시아는 최고만 원하고, 최고는 곧 가장 비싼 것을 원한다”고 말했다.
전 세계 중산층의 구매력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명품 시장을 키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보스턴컨설팅 자료에 따르면 과거 명품의 주요 소비자는 상위 2%에 국한됐지만, 지금은 명품 소비량의 약 70%가 중상류층에서 나온다. 명품컨설팅 그룹 인터코퍼레이트의 아만도 브랑치는 “2000년 이전만 해도 명품 사업은 경기에 따라 매출 변동성이 컸지만 세계 경제 성장의 축이 다각화되면서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며 사업 위험성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돈이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 간다는 사모펀드들에게 명품업체들은 인기 인수 합병 대상이다. 최근 가족 중심 경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인 ‘프라다’의 매각 전쟁에 영국의 사모펀드인 ‘페르미라’와 미국 사모펀드 칼라일 그룹 등이 뛰어들었다. 올 초엔 유럽의 사모펀드인 ‘퍼미라’가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인 발렌티노의 지분 30%를 10억 달러에 사들여 대주주가 됐고, 타워브룩 캐피탈은 명품신발업체 ‘지미추’를 3억 5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 루이비통 마케팅의 비밀
일부러 고객을 애타게 하라
명품 브랜드와 상류 사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이젠 브랜드 이름이 돼 버린 루이비통이 1852년 프랑스 황후 유제니를 비롯한 귀족들을 위해 여행 가방을 만들었듯, 21세기의 명품 기업 루이비통도 자본주의의 귀족인 ‘부유층’을 위한 제품을 만든다. 이들의 구체적인 마케팅 전략은 무엇일까?
▲ 7월5일 현대백화점 루이비통 매장에서 이브카셀 사장을 만났다. /채승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