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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4월 3일 금요일
[(홍) 주님 수난 성금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는 성찬 전례를 거행하지 않고, 말씀 전례와 십자가 경배, 영성체로 이어지는 주님 수난 예식을 거행한다. 본디 이날의 전례는 말씀 전례가 중심을 이루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십자가 경배와 영성체 예식이 들어와 오늘날과 같은 전례를 거행하고 있다. 오늘은 금육과 함께 파스카 단식을 한다.
오늘은 주님 수난 성금요일입니다.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되신 주님의 종께서는 병고에 시달리셨으며,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 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십니다. 말씀 전례와 십자가 경배를 통하여 주님의 고통과 죽음을 깊이 묵상하며, 주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의 종은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고 한다(제1독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음으로써 순종을 배우셨다고 한다(제2독서). 요한이 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이다(복음).
제1독서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주님의 종’의 넷째 노래)>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2,13―53,12
13 보라, 나의 종은 성공을 거두리라.
그는 높이 올라 숭고해지고 더없이 존귀해지리라.
14 그의 모습이 사람 같지 않게 망가지고 그의 자태가 인간 같지 않게 망가져
많은 이들이 그를 보고 질겁하였다.
15 그러나 이제 그는 수많은 민족들을 놀라게 하고
임금들도 그 앞에서 입을 다물리니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을 그들이 보고
들어 보지 못한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53, 1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던가? 주님의 권능이 누구에게 드러났던가?
2 그는 주님 앞에서 가까스로 돋아난 새순처럼, 메마른 땅의 뿌리처럼 자라났다.
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 만한 모습도 없었다.
3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4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 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6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7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8 그가 구속되어 판결을 받고 제거되었지만
누가 그의 운명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던가?
정녕 그는 산 이들의 땅에서 잘려 나가고
내 백성의 악행 때문에 고난을 당하였다.
9 폭행을 저지르지도 않고 거짓을 입에 담지도 않았건만
그는 악인들과 함께 묻히고 그는 죽어서 부자들과 함께 묻혔다.
10 그러나 그를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주님의 뜻이었고
그분께서 그를 병고에 시달리게 하셨다.
그가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면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 살고
그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11 그는 제 고난의 끝에 빛을 보고 자기의 예지로 흡족해하리라.
의로운 나의 종은 많은 이들을 의롭게 하고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리라.
12 그러므로 나는 그가 귀인들과 함께 제 몫을 차지하고
강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누게 하리라.
이는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버리고
무법자들 가운데 하나로 헤아려졌기 때문이다.
또 그가 많은 이들의 죄를 메고 갔으며
무법자들을 위하여 빌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순종을 배우셨고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4,14-16; 5,7-9
형제 여러분, 14 우리에게는 하늘 위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가 계십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굳게 지켜 나아갑시다.
15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
16 그러므로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자비를 얻고 은총을 받아 필요할 때에 도움이 되게 합시다.
5,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
○ 해설자 + 예수님 ● 다른 한 사람 ▣ 다른 몇몇 사람 ◎ 군중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으로 가셨다.
거기에 정원이 하나 있었는데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들어가셨다.
2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여러 번 거기에 모이셨기 때문에,
그분을 팔아넘길 유다도 그곳을 알고 있었다.
3 그래서 유다는 군대와 함께,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보낸
성전 경비병들을 데리고 그리로 갔다.
그들은 등불과 횃불과 무기를 들고 있었다.
4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닥쳐오는 모든 일을 아시고
앞으로 나서시며 그들에게 물으셨다.
+ “누구를 찾느냐?”
5 ○ 그들이 대답하였다.
▣ “나자렛 사람 예수요.”
○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나다.”
○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서 있었다.
6 예수님께서 “나다.” 하실 때, 그들은 뒷걸음치다가 땅에 넘어졌다.
7 예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 “누구를 찾느냐?”
○ 그들이 대답하였다.
▣ “나자렛 사람 예수요.”
8 ○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나다.’ 하지 않았느냐?
너희가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들은 가게 내버려두어라.”
9 ○ 이는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사람들 가운데 하나도 잃지 않았습니다.” 하고
당신께서 전에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10 그때에 시몬 베드로가 가지고 있던 칼을 뽑아,
대사제의 종을 내리쳐 오른쪽 귀를 잘라 버렸다. 그 종의 이름은 말코스였다.
11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르셨다.
+ “그 칼을 칼집에 꽂아라.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이 잔을 내가 마셔야 하지 않겠느냐?”
12 ○ 군대와 그 대장과 유다인들의 성전 경비병들은 예수님을 붙잡아 결박하고,
13 먼저 한나스에게 데려갔다. 한나스는 그해의 대사제 카야파의 장인이었다.
14 카야파는 백성을 위하여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고 유다인들에게 충고한 자다.
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가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 제자는 대사제와 아는 사이여서,
예수님과 함께 대사제의 저택 안뜰에 들어갔다.
16 베드로는 대문 밖에 서 있었는데,
대사제와 아는 사이인 그 다른 제자가 나와서 문지기 하녀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갔다. 17 그때에 그 문지기 하녀가 물었다.
● “당신도 저 사람의 제자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요?”
○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 “나는 아니오.”
18 ○ 날이 추워 종들과 성전 경비병들이 숯불을 피워 놓고 서서 불을 쬐고 있었는데,
베드로도 그들과 함께 서서 불을 쬐었다.
19 대사제는 예수님께 그분의 제자들과 가르침에 관하여 물었다.
20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였다.
나는 언제나 모든 유다인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쳤다.
은밀히 이야기한 것은 하나도 없다.
21 그런데 왜 나에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이들에게 물어보아라. 내가 말한 것을 그들이 알고 있다.”
22 ○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곁에 서 있던 성전 경비병 하나가 예수님의 뺨을 치며 말하였다.
● “대사제께 그따위로 대답하느냐?”
23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 “내가 잘못 이야기하였다면 그 잘못의 증거를 대 보아라.
그러나 내가 옳게 이야기하였다면 왜 나를 치느냐?”
24 ○ 한나스는 예수님을 결박한 채로 카야파 대사제에게 보냈다.
25 시몬 베드로는 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 “당신도 저 사람의 제자 가운데 하나가 아니오?”
○ 베드로는 부인하였다.
● “나는 아니오.”
26 ○ 대사제의 종 가운데 하나로서, 베드로가 귀를 잘라 버린 자의 친척이 말하였다.
● “당신이 정원에서 저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않았소?”
27 ○ 베드로가 다시 아니라고 부인하자 곧 닭이 울었다.
28 사람들이 예수님을 카야파의 저택에서 총독 관저로 끌고 갔다.
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그들은 몸이 더러워져서 파스카 음식을 먹지 못할까 두려워,
총독 관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29 그래서 빌라도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나와 물었다.
● “무슨 일로 저 사람을 고소하는 것이오?”
30 ○ 그들이 빌라도에게 대답하였다.
▣ “저자가 범죄자가 아니라면 우리가 총독께 넘기지 않았을 것이오.”
31 ○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 “여러분이 데리고 가서 여러분의 법대로 재판하시오.”
○ 그러자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 “우리는 누구를 죽일 권한이 없소.”
32 ○ 이는 예수님께서 당신이 어떻게 죽임을 당할 것인지 가리키며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33 그리하여 빌라도가 다시 총독 관저 안으로 들어가 예수님을 불러 물었다.
●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34 ○ 예수님께서 되물으셨다.
+ “그것은 네 생각으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너에게 말해 준 것이냐?”
○ 빌라도가 다시 물었다.
35 ● “나야 유다인이 아니잖소? 당신의 동족과 수석 사제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긴 것이오. 당신은 무슨 일을 저질렀소?”
36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37 ○ 빌라도가 물었다.
● “아무튼 당신이 임금이라는 말 아니오?”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38 ○ 빌라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 “진리가 무엇이오?”
○ 빌라도는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다인들이 있는 곳으로 나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 “나는 저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하겠소.
39 그런데 여러분에게는 내가 파스카 축제 때에
죄수 하나를 풀어 주는 관습이 있소.
내가 유다인들의 임금을 풀어 주기를 원하오?”
40 ○ 그러자 유다인들이 다시 외쳤다.
◎ “그 사람이 아니라 바라빠를 풀어 주시오.”
○ 바라빠는 강도였다.
19,1 그리하여 빌라도는 예수님을 데려다가 군사들에게 채찍질을 하게 하였다.
2 군사들은 또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예수님 머리에 씌우고
자주색 옷을 입히고 나서, 3 그분께 다가가 이렇게 말하며 그분의 뺨을 쳐 댔다.
▣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4 ○ 빌라도가 다시 나와 말하였다.
● “보시오, 내가 저 사람을 여러분 앞으로 데리고 나오겠소.
내가 저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하였다는 것을
여러분도 알라는 것이오.”
5 ○ 이윽고 예수님께서 가시나무 관을 쓰시고 자주색 옷을 입으신 채
밖으로 나오셨다. 그러자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 “자, 이 사람이오.”
6 ○ 그때에 수석 사제들과 성전 경비병들은 예수님을 보고 외쳤다.
▣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 빌라도가 말하였다.
● “여러분이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죄목을 찾지 못하겠소.”
7 ○ 그러자 유다인들이 빌라도에게 대답하였다.
◎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소. 이 율법에 따르면 그자는 죽어 마땅하오.
자기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하였기 때문이오.”
8 ○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9 그리하여 다시 총독 관저로 들어가 예수님께 물었다.
● “당신은 어디서 왔소?”
○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10 그러자 빌라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 “나에게 말을 하지 않을 작정이오? 나는 당신을 풀어 줄 권한도 있고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다는 것을 모르시오?”
11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 “네가 위로부터 받지 않았으면 나에 대해 아무런 권한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너에게 넘긴 자의 죄가 더 크다.”
12 ○ 그때부터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 줄 방도를 찾았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외쳤다.
◎ “그 사람을 풀어 주면 총독께서는 황제의 친구가 아니오.
누구든지 자기가 임금이라고 자처하는 자는 황제에게 대항하는 것이오.”
13 ○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리토스트로토스라고 하는 곳에 있는 재판석에 앉았다.
리토스트로토스는 히브리 말로 가빠타라고 한다.
14 그날은 파스카 축제 준비일이었고 때는 낮 열두 시쯤이었다.
빌라도가 유다인들에게 말하였다.
● “보시오, 여러분의 임금이오.”
15 ○ 그러자 유다인들이 외쳤다.
◎ “없애 버리시오. 없애 버리시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 빌라도가 그들에게 물었다.
● “여러분의 임금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말이오?”
○ 수석 사제들이 대답하였다.
▣ “우리 임금은 황제뿐이오.”
16 ○ 그리하여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그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넘겨받았다.
17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터’라는 곳으로 나가셨다.
그곳은 히브리 말로 골고타라고 한다.
18 거기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도 예수님을 가운데로 하여 이쪽저쪽에 하나씩 못 박았다.
19 빌라도는 명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달게 하였는데,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라고 쓰여 있었다.
20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 도성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그 명패를 읽게 되었다.
그것은 히브리 말, 라틴 말, 그리스 말로 쓰여 있었다.
21 그래서 유다인들의 수석 사제들이 빌라도에게 말하였다.
▣ “‘유다인들의 임금’이라고 쓸 것이 아니라,
‘나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 하고 저자가 말하였다고 쓰시오.”
22 ○ 빌라도가 대답하였다.
● “내가 한번 썼으면 그만이오.”
23 ○ 군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
그분의 옷을 가져다가 네 몫으로 나누어 저마다 한몫씩 차지하였다.
속옷도 가져갔는데 그것은 솔기가 없이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었다.
24 그래서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 “이것은 찢지 말고 누구 차지가 될지 제비를 뽑자.”
○ “그들이 제 옷을 저희끼리 나누어 가지고 제 속옷을 놓고서는
제비를 뽑았습니다.” 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그래서 군사들이 그렇게 하였다.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 이어서 그 제자에게 말씀하셨다.
+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28 그 뒤에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말씀하셨다.
+ “목마르다.”
29 ○ 거기에는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
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 “다 이루어졌다.”
○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무릎을 꿇고 잠깐 묵상한다.>
31 ○ 그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32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33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35 이는 직접 본 사람이 증언하는 것이므로 그의 증언은 참되다.
그리고 그는 여러분이 믿도록 자기가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36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37 또 다른 성경 구절은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볼 것이다.” 하고 말한다.
38 그 뒤에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게 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하였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다인들이 두려워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빌라도가 허락하자 그가 가서 그분의 시신을 거두었다.
39 언젠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도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왔다.
40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다인들의 장례 관습에 따라,
향료와 함께 아마포로 감쌌다.
4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정원이 있었는데,
그 정원에는 아직 아무도 묻힌 적이 없는 새 무덤이 있었다.
42 그날은 유다인들의 준비일이었고 또 무덤이 가까이 있었으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그곳에 모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우리가 거행하는 이 전례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기억합니다. 일 년에 한 번, 늘 곁에 계시던 예수님의 ‘부재’를 가장 뚜렷이 체험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날을 ‘거룩한 날’이라 부르고, 수난기를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바로 여기서 십자가의 신비가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치욕스러운 수난으로써 부활의 영광에 이르셨습니다. 그 치욕은 모욕이 아니라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하느님의 뜻이 드러난 영광이었습니다.
오늘 수난기에는 여러 인물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와 그분을 배척한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 책임을 회피한 빌라도, 군중, 그리고 끝까지 함께한 여인들,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까지 ……. 그들을 보며 우리 스스로 묻게 됩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 누구와 닮아 있는가?” 우리 삶에도 빛과 어둠, 기쁨과 고통이 함께 존재합니다. 죄와 악이 우리를 상처 입히고, 두려움이 우리를 옥죄는 현실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십자가가 절망으로 끝나지 않음을 믿습니다. 십자가는 죽음을 넘어 부활로, 패배를 넘어 승리로 이끕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 그러므로 우리도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부재’를 체험하면서도, 오히려 그분의 존재를 가장 깊이 묵상할 수 있는 날입니다. 구원을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주신 그 사랑 앞에서, 우리 스스로 물어봅시다.
“예수님의 수난 앞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나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거듭 치유되고 기적을 본다 해도 우리 모두 언젠가 죽을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성목요일 저녁 예수님께서 행하신 세족례를 묵상하면서, 참된 신앙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신앙에도 거짓 신앙, 사이비 신앙이 있습니다. 무늬만 신앙인, 겉과 속이 다른 수박 신앙인도 있습니다.
그들은 신앙생활을 해나가면서도 달콤함과 신비스러움, 기적과 치유, 세상에서의 성공과 안녕만을 추구하지, 고통이나 십자가는 철저하게도 외면합니다. 나와 내 가족의 승승장구만을 기원하지, 공동선이나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과의 연대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이비요 수박 신앙인이 확실합니다.
수난이 시작되기 직전 식사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갑자기 허리를 굽히시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그 작지만 강렬한 행위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참된 신앙은 희생과 봉사, 헌신과 겸손에 뿌리내려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요즘 한국 가톨릭교회의 이단이라고 할 수 있는 ‘마리아의 구원 방주’ 문제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다가오는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세력 확장의 좋은 기회로 여기고, SNS를 통한 적극적인 홍보에 목숨을 걸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지난 수십 년간 펼쳐온 행태는 신천지나 통일교 등 사이비 집단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보잘 것 없으며 나약하기 그지없는 한 존재를 신격화시킵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생계가 달려있는 협력자들이 기생하고 있습니다. 치유니 기적이니 하며 모은 막대한 헌금은 대대적인 부동산 매입으로 이어집니다.
가톨릭교회 당국 그 누구로부터의 인준을 받지 않았음에도 수도자 복장을 한 사람들이 모여있고, 불행하게도 균형감각을 상실한 사제들이 미사를 봉헌하고 있으니,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교님들이 지속적으로 당부해오신 것처럼 교도권에 순명하지 않는 단체인 나주에서 봉헌되는 모든 미사나 성사는 무효입니다.
그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지속해온 각종 이벤트 행사들, 참으로 기괴하고 유치합니다. 모든 행사에 꼭 따라다니는 것이 있습니다. 불치병의 치유입니다. 그들이 충실하게 업데이트하는 영상물에는 추종자들이나 은혜받았다는 사람들의 간증으로 빼곡합니다.
사실 불치병이나 중병에 걸린 사람들, 말기 암 환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치유니, 기적이니 하며 미끼를 던지며 세를 불려가는 동시에 사업을 확장시키는 것입니다.
저는 기회 닿을 때마다 강조를 합니다. 너무 치유나 기적, 특별하고 기이한 현상에 연연하지 말라고. 우리 가톨릭 신앙은 균형과 상식을 기반으로 한 종교이기에 그렇습니다. 신앙은 이성과 함께 가야 합니다. 만일 누군가가 끝도 없이 치유되고 또 치유되어 200세가 되었다면, 그 사람이 행복할까요?
중병에 걸리면 제일 먼저 병원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첨단 의료 기술로 고통 중에 있는 환자들에게 희망과 새 삶을 건네고 있는 이 시대 또 다른 치유자 예수님이신 유능한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병고 속에서도 낙관적인 마음 잃지 않고, 부단히 하느님 자비와 은총을 청할 것입니다.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병과 맞서 싸우는 등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이제 때가 왔나보다 생각하며, 평생 기다려왔던 주님을 만날 시간을 준비하셔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치유되고 소생되며 기적을 본다해도 우리 모두 언젠가 죽을 것입니다. 루르드의 목격자 벨라뎃다 성녀도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철저한 순명과 기도와 겸손한 은수생활로 지금은 하늘의 빛나는 별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직도 기적이니 신비니 치유니 하며 먼 곳까지 왕복하시느라 고생하시는 분들, 고백성사 통해 따뜻하고 자상하며 균형 잡히고 상식적인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톨릭교회는 값싼 신앙을 거부합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탁월한 신앙인이라 할지라도 신격화하지 않습니다. 신앙이라는 상표를 붙여 어색하고 조잡한 물건을 강매하지 않습니다.
고통과 십자가는 외면하고 부와 성공, 건강과 치유만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아버지 뜻에 순명하기 위해 철저한 침묵 가운데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예수님을 삶과 죽음을 이정표로 삼습니다.
성모님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 한가운데 비범함을 사신 분입니다. 매일의 고통과 십자가를 기쁘게 수용하셨고,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일상에 충실할 것과 매일의 시련을 잘 견디라고 권하십니다. 성모님께서는 결코 피눈물 흘리고, 소리소리 지르면서 나뒹구는 모습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어색하고 기상천외한 신앙 행태를 원치 않으십니다.
십자가는 또 다른 세족례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어졌다." (요한 19,30)라고 말씀하시며 숨을 거두신 그 현장에 서 있습니다. 성 금요일의 십자가는 단순히 한 의로운 인간의 비극적인 처형장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아들만이 하실 수 있는 거대한 '낳음'의 현장이자, 인류의 찌든 자아를 씻어내는 '두 번째 세족례'의 현장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유다인들도 자신들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하느님의 아들과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느님의 아들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진정한 하느님의 아들은 '죄를 없애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죄란 무엇일까요?
창세기에서 뱀은 배로 땅을 기어 다니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는 인간이 오직 자기 자신, 즉 '자아'만을 위하며 땅의 것(욕망과 두려움)에만 집착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느님께는 그런 마음이 없으십니다. 하느님은 오직 사랑만을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성 목요일에 베드로의 발을 씻어주신 것과 오늘 십자가 위에서 옆구리를 열어 피와 물을 쏟으신 것은 본질적으로 같은 행위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피와 물로, 땅에 붙어 자아라는 감옥에 갇힌 우리의 '발'을 씻겨 하늘로 들어 올리시는 '피의 세족례'를 거행하신 것입니다.
1942년 8월 5일,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에서 일어난 야누슈 코르차크(Janusz Korczak) 박사와 192명 아이들의 마지막 행진은 이 피의 권능을 명백히 증명합니다. 나치가 고아원 아이들을 트레블린카 가스실로 끌고 가려 할 때, 아이들은 처음엔 극심한 공포라는 '죄'에 짓눌려 있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아이들은 구석에 몰려 바들바들 떨며 비명을 질렀고, 박사의 옷자락을 붙들고 "살려주세요, 무서워요!"라며 울부짖었습니다. 오직 자기 생명을 지키려는 본능(뱀의 발)에 묶여 아수라장이 된 상태였지요.
그때 코르차크 박사는 도망칠 수 있는 사면권을 찢어버리고 아이들 한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아이들의 공포를 씻어주기 위해 기적 같은 명령을 내립니다. "얘들아, 이제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배낭을 메거라. 우리는 지금 소풍을 가는 거란다."
박사는 겁에 질린 아이들의 눈을 하나하나 맞추며 속삭였습니다. "선생님이 너희 곁에 끝까지 함께 있을게. 하느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아름다운 나라로 가는 거니 무서워할 것 하나도 없다."
이 '피 끓는 사랑의 선언'이 떨어지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조금 전까지 땅바닥을 기며 살려달라고 울던 아이들이, 마치 새로 태어난 이들처럼 당당하게 일어섰습니다. 목격자 예호슈아 페를레(Joshua Perle)는 그 장면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것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고아들의 행렬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박사님이 만들어준 초록색 '국왕 매트 1세'의 깃발을 앞세우고, 깨끗한 옷을 입은 채 노래를 부르며 행진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공포 대신 말할 수 없는 평화와 존엄함이 감돌았다."
아이들은 박사가 자신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 동행한다는 것을 믿었을 때, 비로소 자기 생명에 집착하던 '뱀의 발'을 떼고 하느님 자녀로서의 ‘날개’를 회복하여 그 위엄을 회복했습니다. 이 희생적인 죽음만이 타인을 두려움이라는 죄의 무덤에서 해방할 수 있습니다. (출처: 베티 진 리프턴, 『아이가 있는 곳이 천국이다: 야누슈 코르차크의 생애』)
자아는 죽음의 두려움으로 세상 것에 집착하도록 만듭니다. 그러니 죽어도 된다는 믿음, 그리고 누군가가 그것을 보여준다면 자아는 힘을 잃고 죽습니다. 이것이 발씻김입니다. 우리 나라 영화에 이런 예도 있습니다.
1597년 명량해전을 앞두고 이순신 장군이 보여준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군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 부하들은 '두려움'이라는 죄에 압도되어 죽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배를 뒤로 물리고 머뭇거렸습니다. 살려고 하면 죽는다는 역설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이순신 장군은 장수들을 불러 모아 엄명합니다. "병법에 이르기를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고 하였다.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 장군은 비겁하게 뒤에서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대장선 한 척을 몰고 적진의 한가운데로 홀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저들을 깨우려면, 내가 죽어야겠지!"
부하들은 멀리서 지켜보았습니다. 장군이 홀로 적들을 무너뜨리며 피 흘리는 그 '죽음의 헌신'을 목격하자, 그들의 가슴 속에서 '두려움'이라는 낡은 자아가 죽고 '용기'라는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저분처럼 할 수 있는 존재다.”
이 믿음이 두려움의 죄에서 벗어나게 하였습니다. 장군의 죽음을 각오한 선구자적 행동은 부하들의 발을 땅(두려움)에서 떼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배를 몰아 적진으로 돌진했고, 결국 불가능해 보이던 승리를 일구어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쏟은 땀과 피가 부하들의 비겁한 발을 씻어준 세족례가 되었고, 그들을 진정한 전사로 다시 낳은 것입니다. (출처: 이순신, 『난중일기』 1597년 9월 15일 자)
결국 하느님 자녀로서 죽음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새로운 하느님 자녀를 탄생시킬 수 없습니다. 피 없이 탄생하는 생명은 없습니다. 오늘 십자가 아래에서 우리는 이 신비를 완성하신 예수님을 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셨지만,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이 하느님 자녀의 존엄함입니다. 이것을 믿게 하시기 위해 직접 십자가의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현대의 성녀 에디트 슈타인(St. Edith Stein), 즉 십자가의 데레사 베네딕타 성녀의 사례를 보십시오. 그녀는 1939년 6월 9일 자신의 영적 유서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위해 마련하신 죽음을 저는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주님, 저의 삶과 죽음을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특별히 유다 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속죄의 제물로 받아 주소서."
그녀가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수송 열차에 실려 웨스테르보르크(Westerbork) 임시 수용소에 머물 때였습니다. 수용소는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수천 명의 유다인을 짓눌렀고, 특히 어린아이를 둔 어머니들은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습니다. 어머니들은 며칠 동안 넋이 나간 채 아이들을 돌보지 않았고, 아이들은 굶주림과 오물 속에서 울부짖었습니다. 공포라는 '뱀의 저주'가 어머니들의 모성마저 마비시켜버린 것입니다.
이때 에디트 슈타인이 나섰습니다. 그녀는 마치 성 목요일의 예수님처럼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녀는 공포에 질린 어머니들을 대신해 아이들을 씻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의 머리를 빗겨주고, 옷에 묻은 오물을 닦아주며, 어머니들의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천상의 평화가 감돌았습니다.
성녀의 이 '피 끓는 세족례'를 목격한 어머니들은 전율했습니다. 성녀가 죽음의 길에서 보여준 의연한 희생은 마비되었던 어머니들을 깨웠습니다. 어머니들은 다시 일어나 아이들을 안아주었고, 하느님 자녀의 존엄함을 회복한 채 가스실로 향했습니다. 성녀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공포의 노예였던 이들을 당당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낳은 것입니다. (출처: 성녀 십자가의 테레사 베네딕타의 『영적 유서』, 1939; 월터 허브너, 『에디트 슈타인의 생애와 순교』)
예수님은 우리에게 멋진 교훈을 주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당신의 옆구리를 열어 우리를 낳아주러 오신 참된 어머니이십니다. 자녀를 낳는 어머니의 피 흘림이 있어야 새 생명이 태어나듯, 예수님의 피 흘림이 있었기에 우리는 비로소 '자기를 위하는 마음'이라는 죄의 태반을 끊고 아직 묶여 있는 이웃을 바라볼 수 있고 하늘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시편 강해』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라는 침상 위에서 교회를 당신의 신부로 낳으셨다. 그분의 피는 우리를 씻기는 물이 되었고, 그분의 죽음은 우리의 생명이 되었다." (출처: St. Augustine, Enarrationes in Psalmos, 127).
이번 성 금요일, 주님의 수난을 슬퍼만 하지 마십시오. 그분이 흘리신 피의 무게만큼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 죽어줄 용기를 가집시다. 죽어야 삽니다. 살려고 하면 죽습니다. 낳아서 자녀를 주님께 봉헌해야 그분 앞에 갈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비참한 패배의 장소가 아니라, 사랑이 증오를 이기고 생명이 죽음을 삼켜버린 가장 찬란한 승리의 보좌이자, 영원한 생명이 태어나는 거룩한 자궁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지난 2월 23일에 ‘엘파소’엘 다녀왔습니다. 3년 전에 서울대교구에서 사제를 파견했던 공동체입니다. 저는 두 번 엘파소엘 방문했었습니다. 본당 신부님은 제게 30일 피정 지도를 받았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환영차 방문했습니다. 2년 전에는 신부님이 초대해서 포트워스 신부님과 함께 방문했습니다. 신부님은 비자 문제가 있어서 작년 4월에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 뒤로 엘파소 한인 공동체는 한국인 사제가 없이 미국 성당에서 신앙생활 했습니다. 교우들은 제게 ‘판공성사와 미사’를 부탁했습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도움을 주기 위해서 엘파소로 갔습니다. 16명의 교우는 모두 성사를 보았고, 감사의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날 복음 말씀은 마태오 복음 25장 ‘최후의 심판’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착하고 성실하게 살았던 사람은 오른쪽으로, 악하고 게으르게 살았던 사람은 왼쪽으로 나누었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힘들었고, 배고팠고, 헐벗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 나를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그러니 영원한 생명이 있는 천국으로 가라.’
그러자 오른쪽에 있던 사람이 말합니다. ‘우리가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가장 배고팠고, 헐벗었고, 나그네 되었던 사람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저는 1년 동안 한국어 미사를 하지 못했던 엘파소 공동체로 갔고, 미사와 판공성사를 해 주었으니, 오른편에 있을 자격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엘파소 한인 공동체는 제게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한인 공동체는 제가 앞으로도 와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두 달에 한 번은 가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다음 방문일정은 5월 26일로 정했습니다. 예전에 한비야 씨가 이런 이야기 했습니다. ‘일에는 4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보람 있고 즐거운 일, 보람 있지만 힘든 일, 보람 없지만 즐거운 일, 보람도 없고 힘든 일’ 이번 엘파소 방문은 보람 있었고,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신앙인은 보람 있지만 힘든 일도 기쁜 마음으로 하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성금요일입니다. 오늘 빌라도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진리가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러 왔습니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진리를 위해서 몸 바치게 하십시오.’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습니다.’ 돈이 진리인 사람이 있습니다. 돈이 진리인 사람은 돈 때문에 양심을 버리고, 돈 때문에 친구를 배반합니다. 명예가 진리인 사람이 있습니다. 명예가 진리인 사람은 그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은 물론 주변의 사람까지 위험하게 합니다. 명예는 지킬 힘이 있을 때 지켜지는 것입니다. 자존심이 진리인 사람이 있습니다. 자존심이 진리인 사람은 자존심 때문에 소중한 것을 버리기도 합니다. 성공이 진리인 사람이 있습니다. 성공이 진리인 사람은 희생과 나눔을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이 진리인 사람이 있습니다. 권력이 진리인 사람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폭력을 정당화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생각하는 진리를 위해서 살아갑니다.
신앙인에게 진리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입니다. 세상의 가치와 기준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나라입니다. 성공, 명예, 권력이라는 사다리를 타고는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나라입니다.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자비로운 마음을 지녀야 볼 수 있는 나라입니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만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나라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이,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이, 자비를 베푸는 이,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이,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는 이들에게 문을 열어주는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 땅에서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고난의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 언덕을 올라 십자가에 매달리시어 숨을 거두신 ‘성금요일’ 예식을 할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들 생의 한가운데서 가장 부끄럽고, 가슴 아팠던 순간들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어떤 분은 친구를 배반했던 일을 떠올릴지 모릅니다. 어떤 분은 부모님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주었던 일을 떠올릴지 모릅니다. 어떤 분은 자신의 지위와 힘을 이용해서 약한 이를 괴롭히고 짓밟은 일을 떠올릴지 모릅니다. 어떤 분은 다른 이에게 자신의 잘못을 전가했던 일을 떠올릴지 모릅니다. 어떤 분은 아내 모르게 다른 여인에게 눈길을 주었던 일을 떠올릴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보라 십자 나무 세상 구원이 여기에 달려 있네. 모두 와서 경배하세’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깊은 경배를 드립니다. 십자가 위에 계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 일어나 갑시다.’ 비록 그 길이 십자가의 길이라고 해도, 그 길이 외로움의 길이라고 해도, 그 길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해도, 그 길이 죽음의 길이라고 해도 함께 하자고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사람들의 환호 속이 아니라, 침묵과 조롱 속에서 걸어가셨습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돌길을 걸어 올라가셨습니다. 넘어지셔도 다시 일어나셨고, 쓰러지셔도 끝까지 걸어가셨습니다. 그 길은 패배의 길이 아니라 사랑의 길이었습니다. 억울함의 길이 아니라 용서의 길이었습니다. 저주의 길이 아니라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주님, 저희도 저마다의 고난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보람은 있지만 힘든 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길, 때로는 외롭고 눈물 나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먼저 걸어가셨기에 그 길은 절망의 길이 아니라 희망의 길입니다. 십자가 끝에는 부활이 있음을 믿습니다.”
오늘의 성인
성 루이지 스크로소피(Luigi Scrosoppi)
활동년도 : 1804-1884년
신분 : 신부, 설립자
지역 : 우디네(Udine)
같은 이름 : 스크로쏘피, 알로이시오, 알로이시우스
성 루이지 스크로소피는 1804년 8월 4일 이탈리아 북부 프리울리(Friuli) 지역의 우디네에서 신심 깊고 자애심 많은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12살 때 그는 우디네 교구의 신학교에 들어가 사제직을 준비해 1827년 사제품을 받았는데, 첫 미사를 봉헌할 때 그의 형제인 카롤루스(Carolus)와 세례자 요한(Joannes) 신부가 옆에서 그를 도왔다.
1800년대 프리울리는 기근과 전쟁 그리고 페스트로 말미암아 극심한 가난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형제인 카롤루스가 운영하던 고아원의 운영을 도와 우디네와 그 주변 지역의 가난하고 버려진 소녀들을 모아 교육하는데 헌신하였다. 그는 그의 모든 재물과 힘과 애정을 그들에게 쏟아 부었다. 소녀들을 위해 더 큰 시설이 필요해지면 우디네와 인근 지역의 거리를 돌며 구걸하듯이 사람들의 지원을 호소하면서도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다.
그가 하느님께 대한 굳은 신뢰 속에서 소녀들의 교육에 헌신하는 모습은 인근 지역에서 가난하고 버려진 이들을 위해 활동하던 몇몇 여성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 여성들은 재봉과 자수에 숙달된 기술을 갖고 있었고, 읽고 쓰고 계산하는 법을 가르칠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연령대와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갖고 있었지만 하느님의 손길에 이끌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안에 살며 하느님을 섬기고자 했다. 성 루이지 스크로소피 신부의 영적 지도를 받으며 봉사하던 9명의 여성들은 마침내 1837년 2월 1일 모든 소유에서 벗어나 가난 안에서 하느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헌신하는 삶을 살기로 선택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 섭리의 수녀회가 설립되었다. 계속해서 다른 이들이 동참했는데, 그들은 부자, 가난한 자, 교육 받은 자, 문맹자, 귀족 출신, 비천한 출신들이 모두 섞여 있었다. 하느님 섭리의 수녀회는 이들 모두에게 열려 있었고, 설립자는 그들이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소녀들을 사랑으로 대하도록 격려하며 이끌어 주었다.
그러면서 성 루이지 스크로소피 신부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의 가난에 대한 이상과 보편적 형제애에 매혹되어 하느님께 전적으로 헌신할 필요성에 대해 고심했다. 하지만 그의 삶은 그를 기쁨과 자유의 시인, 기도의 성인, 겸손과 사목적 열정의 소유자였던 성 필리푸스 네리(Philippus Neri, 5월 26일)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이끌었다. 결국 그는 1846년 42세의 나이에 오라토리오회(Oratoriani)에 가입하여 성 필리푸스 네리의 영적 아들이 되었고, 그로부터 온순함과 다정함을 배웠다. 이는 그가 하느님 섭리의 수녀회 설립자이자 사제로서 더 합당하게 처신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수녀들의 자기 개발과 성덕의 성장을 위해 깊은 관심과 존경을 갖고 충고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수녀들의 성소를 조심스럽게 살피고 그들이 더욱 강인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때때로 그들의 신앙을 시험하기도 했다. 또한 허영과 공명심에 빠지지 않도록 인도하고 위선과 천박한 태도를 보일 때는 엄하게 대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항상 아버지다운 자애로써 수녀들의 약점을 바라보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지원하고 위로하였다. 성 루이지 스크로소피 신부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베들레헴의 육화에서 드러난 겸손과 가난, 나자렛의 노동자로서의 단순함, 십자가 위에서 바친 온전한 희생, 성체성사의 침묵 안에서 수녀회를 이끌 영성의 기초를 만들어갔다.
그는 일생 동안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서 가장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을 추구했다. 그는 죽기 전에 열두 개의 수녀원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열두 개의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수녀들은 겸손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들의 도움이 필요한 젊은 소녀들과 가난하고 병들고 버림받고 늙어 홀로 남겨진 이들을 위해 봉사했다. 또한 그는 수녀들이 선의를 지닌 사람들과의 폭넓은 공동 협력을 통해 가난한 이들을 지원하도록 했다. 교회의 모든 활동에 적극 협력했던 그는 우디네 신학교의 젊은이들, 특히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보다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19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여러 지역들이 통일의 역사를 걷게 되었다. 정치적 · 군사적 측면에서 이러한 통일은 유럽의 북부와 남부, 동부와 서부의 국경이자 교차로인 프리울리 지역 전체에 고통스런 시련을 가져왔다. 통일의 결과물 중 하나는 불행하게도 반성직주의(反聖職主義)였다. 이러한 풍토는 고아원과 오라토리회 사제들을 억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성 루이지 스크로소피 신부는 자신들의 활동과 고아들의 선익을 지키기 위한 힘겨운 싸움을 시작했다. 고아들을 지키는 데 있어서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지만 불행히도 그는 우디네의 오라토리회의 파괴를 막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와 오랜 세월의 경험을 통해 성 루이지 스크로소피 신부는 영적인 지혜와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특별한 직관력을 갖게 되었다. 그는 1883년 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자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 병마와 싸웠다. 자신의 마지막이 가까웠음을 알고 그는 모든 수녀들에게 마지막 인사말을 썼다. “나의 죽음 이후 수녀회는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 새로운 삶이 주어질 것이다. 애덕! 애덕! 이것은 수녀회 가족의 정신이다. 영혼들을 구하고 애덕으로 그들을 구하여라.”
1884년 4월 3일 목요일 밤, 그는 마침내 예수님을 만나러 떠났다. 우디네 전체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서둘러 모였고, 하느님께서 그를 보호해 주시기를 간청했다. 가난하고 어려움 중에 있는 젊은이들의 선익을 위한 그의 노력은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과의 일치, 동정과 사랑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지금도 하느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걷는 이들의 발걸음에 동행하고 있다. 그는 198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1년 6월 10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는 알로이시우스 스크로소피(Aloysius Scrosoppi)로도 불린다.
성 리카르도 (Richard)
활동년도 : 1197-1253년
신분 : 주교
지역 : 치체스터(Chichester)
같은 이름 : 리까르도, 리까르두스, 리차드, 리처드, 리카르두스
잉글랜드(England)의 위치(Wych)에서 태어난 성 리카르두스(Richardus, 또는 리카르도)는 옥스퍼드를 비롯하여 파리(Paris)와 볼로냐(Bologna)에서 수학했고, 1235년에 옥스퍼드 대학의 사무국장이 되었으나, 당시 캔터베리(Canterbury)의 대주교인 애빙던(Abingdon)의 성 에드문두스 리치(Edmundus Rich, 11월 16일)를 만나 그를 돕기 위해 즉시 사무국장의 직책을 사임하였다.
그 후 1240년 성 에드문두스 대주교가 프랑스의 퐁티니로 망명했을 때 그를 수행한 성 리카르두스는 에드문두스 성인이 사망한 후 오를레앙(Orleans)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에서 은거하며 신학을 연구하고 서품을 받은 후 영국으로 돌아왔다. 1244년 성 리카르두스는 치체스터 교구의 주교가 되었다. 그의 업적은 교구의 완전한 개혁으로 교회 내의 친족 등용과 성직매매를 적극 반대하고 금지시킨 것이다.
성녀 부르군도파라 (Burgundofara)
활동년도 : +657년
신분 : 수녀원장
지역 :
같은 이름 : 파라
앙네릭(Agneric) 백작의 딸인 성녀 부르군도파라는 결혼하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물리치고 수녀원으로 들어가 원장이 되었다. 그녀는 손수 수녀원을 세우고 37년이나 지도하였다. 에보리아쿰(Evoriacum)이라 부르는 이 수도원은 그녀의 사후에 개명된 것으로, 지금은 파르무티에(Faremoutier)의 유명한 베네딕토 수도원이 되었다. 그녀는 파라(Fare, Fara)로도 알려져 있다.
복자 간둘포 (Gandulf)
활동년도 : +1260년
신분 : 수사
지역 : 비나스코(Binasco)
같은 이름 : 간둘푸스, 간둘프
간둘푸스(Gandulphus, 또는 간둘포)는 이탈리아 밀라노(Milano) 교외 비나스코에서 태어나서 성 프란치스코 생존시에 입회한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의 일생은 극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얼마 동안은 은둔생활을 하려는 헛된 꿈을 꾸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파스칼 수사와 더불어 팔레즈모를 떠나 황야로 갔으나,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열망을 저버릴 수 없었다. 폴리치에서 행한 그의 설교는 성공적이었다. 그는 자신이 예언한 날인 성 토요일에 운명하였는데, 한 무리의 새들이 지붕 위에 날아와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