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세시 무렵 느즈막히 운주사를 찾았다
벌써 몇 번째인가, 20여회까지는 세어 보았는데 그 다음부터는 기억이 없다
더듬는다면 아마 60여회는 넘었을 것이다
내가 운주사를 처음 접한 건, 군대 가기 전 그러니까 82년도 초에 이 절을 처음 만났다
그 당시 휴학계를 내고 남도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는데
남도 이곳저곳을 떠돌다 우연히 길가 간판에서 어디서 많이 듣던
운주사의 이름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그전에는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에서 처음 운주사를 접했지만,
그때는 여기에 있는 운주사가 그 운주사인지 조차 몰랐었다
사실 운주사는 20여 년 전까지는 거의 알려진 절이 아니었다.
나 또한 운주사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여러 분야의 문학책 덕분이었다
위에서 말한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에서 관군에 참패한 길산이 능주로 숨어든 것처럼
암시적으로 유도하여 소설 앞부분에 도입해 놓고 있었고
또 천불 천탑을 세워 마지막으로 누워있는 와불을 일으켜 세우면 민중해방의 용화세계가
열린다는 운주사의 전설을 이곳 천불산 골짜기에 삽입하여 대미를 장식하였다.
이제운의 "소설 토정비결"에서는 황진이의 미모에 무너졌다는 지족 선사를
천불천탑을 깎고 있는 도인으로 묘사해 놓고 있었고,
또한 이우혁의"퇴마록"에서도 천불천탑이 건립된 이유는 우리나라가 풍수지리적으로
동쪽이 기우는 형상이기 때문에 동쪽으로 기우는 것을 막기 위해
서쪽에 천불천탑을 지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사실은 장길산을 빼고는 다 90년도 이후에 출판된 책이어서 아무래도
장길산을 통해 운주사를 처음 알았다는게 정답일성 싶다
나도 이런 책들을 통해 운주사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고 운주사의 천불천탑에
마음이 혹 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그곳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기회가 왔었다
"
운주사는 온 산과 온 계곡에 온통 탑과 불상으로 이루어진 절이다
어느 절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가람배치가 신비러움을 더해주며
누구든지 자신의 길로 찾아 드나들 수 있는 넉넉함이 가득한 절이다
제법 넓은 주차장을 지나 입구에서 처음 만나는 것은 일주문이다
몇 년 전에 복원한 일주문인데 세월의 무게가 실려 있는 운주사와는 영 거리가 멀었지만
그래도 그나마 복원이 제대로 된 것 같아 그럭저럭 볼만했다
"영구산 운주사"의 현판 글씨도 괜찮게 보였고....
일주문을 지나 비포장 길을 걸어가다 보면 어느 산사에도 느낄 수 없는
운주사 만의 독특한 신비감이 세속에 시달린 마음을 조용히 감싸 주는것 같아
정갈한 기분이다
개울물을 옆에 끼고 평평한 길을 느릿느릿 걸으며 문득 마주치는 손 마주잡은
겸허한 불상과 자연석을 그대로 쌓아올린 듯한 불탑의 어수룩한 모습이
지친 심사를 서서히 떠받들어주며 행복한 환상에 빠지게 한다
이렇듯 옛날 천불천탑의 전설을 간직한 채 마치 야외 박물관 같은 절 마당을 거닐며
문득 마주치는 탑과 돌부처들을 대하면서 그 지극한 마음의 정성과 평화에 대한
사실적 환각을 갖게 한다
언제 어떻게 부처들이 이 산골짝에 서게 됐는지,
누가 불탑은 세웠는지, 그 미완성의 꿈은 무엇인지...아직도 수많은 추측과 탐구로
해체의 도전을 받으며 베일에 가려져있는 절집,
한때 천불천탑의 위용은 어디가고 이제 겨우 남은 21기의 불탑과 93구의 불상이 가진
제각각의 생김새 그대로 그럴싸한 전설이 얽혀있는 절이다
하지만 그 100 여기의 잔해로도 운주사는 신비의 탈을 벗지 않으니
그것은 남아있는 탑과 불상들의 기기묘묘함 때문일 것이다
그런 기묘함은,
구름이 머문다는 절집, 운주사의 앞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만나게 된다
맨 처음 만나게 되는 탑은 클로버 무늬가 새겨진 몸돌과 묘한 사선의 추녀를 지닌
9층 탑이다
안정감과 균형감은 떨어지지만 상승감이 돋보이는 전형적인 고려시대 탑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몇 걸음 더 가다 만나게 되는 두 번째 탑은 XX의 표식으로 눈길을 끄는가 하면
오른편 산자락에 있는 탑은 투박한 자연석을 그대로 옥개석으로 올려놓은 파격적인
기묘함을 보여 준다
절의 앞마당에는
어떻게 보면, 탑과 불상들이 질서 있게 배치되어 있는 것도 같고
혹은, 아무렇게나 배치되어있는 것도 같다
절 앞마당에 아무렇게나 배치된 돌탑과 불상들.....
특히 산등성이와 바위위에 아슬 하게 서있는 탑들은 파격적인 아름다움의 절정을 보여 준다
하나하나의 탑들은 그 형상이 특이하다
탑은 높이가 높고 너비는 좁으며 옥개석은 평면이고 탑신에는 그 근원이 특이한
기하학적 무늬가 돋을새김 되어있어 이질적이다
자연석을 그대로 쌓아올린 모습, 호떡 같은 납작한 원반을 층층이 얹어놓은 모양,
버섯모양, 항아리모양, 실패 주판알 모양, 자연석을 그대로 기단부로 이용한 모양,
그리고 7층.9층 4층 등 형식에 얽메이지 않는 탑의 파격적인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가
흙 반죽이나 밀가루 반죽으로 빚어 놓은 듯 천진함과 친근한 조형미를 보여 준다
불상들 역시도 눈, 코, 입, 귀만을 단순화시켜 간단히 조각하였고
별다른 기교를 부리지 않았다
특히, 얼굴 모습은 너무도 평화롭고 신비스럽다 그와 동시에 너무나 우스운 모습으로
하나의 찡그림 없고 못생긴, 그러나 어디선가 많이 보아 왔던 모습이다
그들의 표정은 모딜리아니의 그림에서 갓 건져 올린 듯한
그로테스크한 표정들을 닮아있다
수인도 대부분 옷 주름에 가려있어 잘 볼 수는 없지만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스럽고 기발하게 처리되어 있다
귀족적인 느낌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고 서민적이며 한 무더기의 동일한 모습들 속에서도
천차만별의 다양한 느낌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운주사에 널려있는 많은 불상들에게 느껴지는 것은 무언가에 대한 강한 기다림이다
그들은 높은 곳에 앉아 예배를 받는 부처님과는 거리가 멀고
차라리 낮은 땅이나 암벽 아래에 기대어 내세울 것 없이 비슷비슷한 무표정으로
볕 나면 볕 쬐고 비 오면 비 맞으며 여러 세월을 보냈다
그 긴 묵시와 끈질긴 기다림, 그리고 그치지 않은 기원은
오랜 세월의 볕과 비바람에도 결코 풍화되지 않고 오히려 강렬하게 살아온다
하나하나의 돌부처에서 발음되어 나오는 가느다란 기원의 말들은
반복과 병렬과 개개의 무표정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웅얼거림으로 증폭되어
이 넓은 골짜기를 가득 채우고 있다
거기에는 깊은 바닷물의 일렁임 같은 두툼한 리듬이 있다
이렇듯 이 골짜기에 돌부처를 무리로 세워 자신들의 기원을 새겨 넣은 것은
어느 때 누구였을까? 그리고 그 기원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운주사를 둘러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게 되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주사 마당을 걷다보면 거칠고 황량한 느낌보다는
어떤 집단적 기다림으로 가득 찬 특별한 세계를 느낄 수 있다
민초들을 닮은 듯한 무작위한 형상들의 불상들,,,
이 불상들에게서 느끼는 수수한 형상은 서서히 자기 안에 소용돌이치는
강렬하고 역동적인 힘으로 생성되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저 흔하디흔한 암석아래 기대어선 못난이 불상들의 어깨 위로 세월의 덮개가 묻어있다
불상들이 하나같이 투박하고 인간적인 모습이다
어찌 보면 가족들이 한군데 모여 뭔가를 의논하는 것 같기도 하고........
거기다 전혀 다듬거나 꾸민 흔적이 없고 기교도 부리지 않았다
마치 불상이 아니라 돌에서 돌로 돌아가고 있는 영원의 모습들로도 보이기도 하고.....
지금은 그저 바위에 기대어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지만 한 때는 강한 의식을 불러 일으켰던
민초들의 기원적 표현이 아니었을까....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띤 것은 석조불감이었다
지금은 보수작업을 하느라 공사가 한창이다
서로 다른 부처가 감실 안에서 등을 맞대고 배치되어 있다
처음 보는 독특한 배치다
어떻게 보면 쌍둥이 불상이 등을 맞대고 남북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두 불상 모습이 얼굴만 너무 길어 부자연스럽고 그 머리 끝에 지붕을 이고 있어
너무 힘들어 보인다
그래도 감동적인 것은 저 좁은 감실 속에 굳굳히 버팅겨 지탱해온
너그러움이 자유를 닮아있다
불감은 팔작형태의 지붕을 갖추고 그 위에 용마루, 치미 등이 모각되어
목조건축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감실 내부를 남북으로 통하게 하고 불상2구를
등을 맞댄 형태로 안치하였다.
남향의 불상은 결가부좌하고 오른손을 배에 댄 모습인데 이곳의 다른 불상들과 마찬가지로
입체감이 거의 없는 평면적인 신체에 경직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여기에 도식적인 평행선으로 간략히 옷주름을 표현하였다
석가모니불로 보고 있다
북향의 불상 역시 같은 양식을 보이는데 옷 속에 싸인 두 손은 가슴에 모아
지권인을 취한 것으로 생각 된다
화엄존의 주존불인 비로자나불로 보인다
이들 좌상은 단순화되고 경직된 불상 양식과
도식적인 옷 주름 표현 등 고려시대의 지방화 된 불상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석조불감 안에 등을 맞댄 쌍배불은 그 유례가 없는
특이한 형식으로 희귀한 가치가 있는 불상이다
이런 형태의 감실 부처상은 오직 운주사 밖에 없으며 아주 귀한 감실상이다
그 옆에 있는 원형다층석탑도 눈에 띤다
탑의 모양이 둥그런 형상이어서 독특하다
흡사 호떡을 쌓아 올린 듯한 이 탑은 연화탑, 오가리탑, 떡탑 등으로도 불린다
현재 높이는 5.7미터 남짓하지만 원래는 더 높았던 것으로 생각 된다
기단을 인공적인 거북형의 하대석 위에 자리한 10각 기단부, 연꽃문양의 기단갑석에
둥근 탑신석과 둥근 원형의 옥개석(지붕돌)을 갖춘 아름다운 석탑이다
원과 원으로 이어진 우주전체를 조형하고 있는듯한 인상이다
기단갑석에 두른 연꽃문양, 그 위에 올라갈 수 있는 것은 부처밖에 없다
탑 전체가 부처를 상징한 탑이다
달리보면 일반적인 탑의 꼭대기 부분인 앙화와 보륜 그 위의 보개, 수연, 보주, 찰주 등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석탑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현재 6층만 남아있으나 더 높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온전히 남아있었다면
9층탑은 되었을성 싶다
이처럼 우아하고 개성적인 아름다운 석탑은 이곳 운주사만이 가지고 있는
최상의 석탑 예술의 특징이다
둥근 처마를 잘빗어 내린 옥개석(지붕돌)과 둥근 탑신의 절묘한 조화도 경이롭고
자세히 관찰해보면 기단갑석의 연화무늬의 선을 쪼은 정자국이 방금한 듯 남아있어
석수장이의 혼과 숨결을 지금도 생생하게 느낄수 있다.
모양이 워낙 특이해서 한번이라도 본다면 절대 잊혀지지 않는 이미지로 남아 있고
정형화된 일반석탑의 규격을 과감히 뛰어넘어 또다른 석탑의 미를 느끼게 하는 석탑이다
이런 원형석탑은 귀한 편인데 경주 남산 용장골의 삼륜대좌불도 위와 같은 원형이다
대웅전 뒤로 돌아가면 길이 두개로 갈라지는데 왼쪽 길로 가다보면
운주사의 유일한 마애불이 하나가 새겨져 있는데
무심히 그냥 스쳐가면 지나치기 쉽다
온전한 상태라면 꽤 볼만한 마애불 같은데 지금은 많은 균열로 탈락이 심하나
암벽의 요철부분을 그대로 살려 얕게 돋을새김 해 놓았다
거기다 이목구비도 비교적 반듯하고 불꽃무늬 광배가 아주 흐미하게 남아있는 등 ,,,
어느 정도 불상으로서의 격식도 갖추고 있어서,
어쩌면 좌우 능선과 발 아래에 돌부처들을 그들먹하게 거느리고
지켜보는 주인공으로도 보인다
애초에는 골짜기를 향해 트여 있었을 마애불의 시야가 지금은 나무들로 가려져 조망이 썩 좋지않았다
공사바위다
공사바위란 운주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바위로 처음 운주사를 지을때
공사책임자가 이곳에서 공사를 총감독했다해서 공사바위라 불린다고 한다
공사바위에 올라서면 장흥의 보림사가 들어앉은 유치산 줄기가 아스라이 들어오고
그 앞에는 황금 들녘을 꿈꾸는 용강리 일대의 들녘이 한 켠 펼쳐져 있다
그리고 지척에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천불천탑골의 불상과 석탑들이 있는 운주사가
한 눈에 들어온다
마치 용이 용틀임 하듯이 꿈틀대며 하늘로 비상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운주사에 온 사람들은 반드시 이 공사바위에 올라야 한다
여기를 올라서지 않고서는 운주사를 보았다고 말하지 말아야한다
여기서 바라보는 절입구는 아무 번잡한 장식없이 시작되는 산책로 같고 아늑하며 조용하다
절입구에서 대웅전까지 조용한 좁고 길다란 길이 이어진다.
왼편으로는 넓다란 잔디가 펼쳐져 시야가 넓게보여 좁지도 않다.
이 길은 참 소담스럽고 산을 옆에 끼고 있어 좁다랗고 길게 보여 운치가 있다
공사바위에서 내려와 운주사의 하일라이트 와불로 향했다
와불이란 열반에 들 장소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부처를 상징한다
즉 누워있는 부처이며 부처가 열반에 들어가는 자세를 묘사한 거다
따라서 운주사의 와불은 엄밀히 말하면 와불이 아니라
부처를 조각하여 완성해놓고 세우지 못한 불상이다
불상의 아래부분을 보면 이불상을 떼어내어 일으켜 세우려는 흔적이 남아 있다
허나 지금은 와불이란 명칭이 거의 고유명사화 되어버려 와불로 통칭해야 할것 같다
통상적으로 부부와불이라고 부르는데
이미 완성된 비로자나불과 석가모니불로 보고있다
부부가 나란히 누워있는 모습의 부부와불은 길이 12m에 폭 10m의
거대한 암반을 깍아 만든 불상 두 구다
일설에 의하면 도선국사가 천불천탑을 조성하던중 마지막에 이르러 닭소리가
나는 바람에 날이 샌줄 알고 천상의 석공들이 모두 하늘로 가 버려
미쳐 일으켜 세우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허나 사실은, 일으켜 세울때 돌의 결이 갈라질 위험이 있어
세우지 못한 것이다
와불이 일어서는 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천불천탑에 대한 민중의 염원이 담겨있고
이 와불이 일어서면 용화세상을 이룰 수 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첫댓글 운주사 답사기중 글이 넘 맘에 들어 (펌글)올림니다.글을 쓴 달 넘새분은 60여회 운주사를 방문하였다하니,
저도 수년 전 따뜻한 봄날 가 보았는데 너무나 평온을 주었던 절,그리고 수많은 부처님을 조각한 그 석공의 마음,도선 국사님 염원 마음으로
가슴이 져려오고, 멍멍함 찡함으로 기억에 남는절이고 시간 많이 가지고 가고 싶은 절이라 잊지 못하고 있던 절입니다,
한 번 참배 다시 가야하는데 달넘새 글월 읽으니 겨울철 눈오는 날 운주사 풍광을 꼭 감상하라하니,
그리고 공사 바위 올라 전체를 보고. 이번 순례 참석하여 운주사를 제대로 음미
그 옛날 석상 불상 조각을 했던 그 분들의 간절한 염원, 그 마음도 꼭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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