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5.18묘역(민족, 민주열사 묘지)의 단장은 희생의 가치와 민중들의 손길과 바람이 우선되어야
많은 세월과 우여곡절 끝에 광주광역시에서 옛 5.18묘역(이하 민족, 민주열사묘지)을 단장한다고 한다. 이제서야 광주가 이곳에 안장되어 있는 많은 민족, 민주열사들의 영전에 조금이나마 체면이 서는 것 같아 다행스럽고 반가운 일이다.
신군부세력들의 정권찬탈에 맞선 광주가 고립무원의 학살을 당하였고, 1980년 5월 31일 항쟁 과정에서 희생되신 분들의 유해가 비닐에 싸인 채 이곳에 묻히면서 조성된 이 묘지는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망월동 5.18묘지라는 이름으로 인식되고 있다.
1997년 국립5.18민주묘지가 완공되면서 이곳에 안장되어 있던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이 새롭게 조성된 묘지로 이장해 갔고, 그 자리는 봉분만 남은 채 가묘의 형태로 사적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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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북구 운정동 제3묘역 옛 5.18묘역(민족민주열사묘역). ⓒ광주인 |
돌이켜보면 5.18희생자들이 묻혔던 이곳은 유가족들조차 내놓고 찾을 수 없었던 천형의 골고다였으나 광주학살의 진상규명을 통한 민주화의 실현을 열망하는 국민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1987년 6월 항쟁 과정에서 희생되신 이한열 열사가 이곳에 안장된 후 계속해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되신 분들의 주검들이 이곳에 안장되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결국 지금의 민족, 민주열사묘지는 5.18민주화운동에서 비롯되었지만 이후 지난했던 한국사회의 민주화운동의 고비와 그 고비를 죽음으로 넘어야 했던 순간순간들을, 민족, 민주열사들의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는 곳이다.
죽음이 만들어 낸 기록이자 현장이기에 이곳에 대한 단장과 관련 기념사업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광주는 이미 지금의 국립5.18민주묘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불행했던 과거를 기억하는 방법의 하나로써 유형적 기념사업에 대한 시행착오를 경험한 바 있다.
아직도 지적되고 있는 국립5.18민주묘지의 권위주의적이고 비 자연친화적이라는 비판, 무엇보다 아픈 과거를 기억하려는 국민들의 참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채 국가(광주시 행정)가 주도함으로써 빚어진 많은 문제점들이 그것이다.
1993년 김영삼 정부의 5.13담화로 시작된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유형적 기념사업은 국가폭력에 의해 무고한 국민들의 희생이 강제되었음에도 그 기념사업 또한 국가가 주도한 데서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출발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5.18유관단체와 시민사회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당시만 해도 기념사업보다는 학살책임자 처벌을 위한 고소고발 투쟁에 무게중심이 가 있던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5.18민주화운동의 유형적 기념사업은 이후 한국사회에서 진행된 불행했던 과거사의 재정립과 유형적 기념사업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광주처럼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부정적 측면이 더 많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불행했던 과거를 기억하는 장치로써의 유형적 기념사업은 이제까지 한국사회에서 진행되어 온 이른바 역사 바로세우기와 뒤 이은 국가의 기억만들기가 가질 수밖에 없는 근본적 한계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면서 출발되어야 할 것이다. 그
런 점에서 국가적 기억만들기의 기념사업들이 대부분 지향할 수밖에 없는 '완결형 기념사업'과 '행정주도형 기념사업'의 한계부터 넘어서야 할 것이다.
책정된 예산의 범위 내에서 주어진 시간 안에 완결해야 하는 행정구조적 특성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이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은 준비단계에서 충분하고 다양한 의견수렴이 가능하도록 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이해당사자들(열사들의 유가족, 관련 단체, 5.18단체, 전국의 민주화운동 기념사업의 주체들 및 유관단체, 그리고 무엇보다 이 묘지를 자주 찾았던 국민 일반)의 다향한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고 조정하는 문제부터 그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또한 완결형이 아닌 진행형 기념사업이어야 하고, 행정주도형이 아닌 국민참여형 기념사업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선 광주광역시가 추진해 온 일을 통해 그 가능한 방법 하나를 예시하자면 지금의 인권담당관실의 운영과 업무에 관한 것이다.
강운태 시장 취임 이후 광주를 민주, 인권, 평화의 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가장 먼저 직제를 마련한 것이 지금의 인권담당관실이었다. 물론 이에 대한 비판 역시 지금 적지않게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 직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관련 실무경험을 가진 전문가 개개인들을 망라하여 TF팀을 만들어 인권담당관실의 업무와 직제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준비하면서 이해당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종전의 행정적 편의성을 효율적으로 눈가림하기 위해 만들어진 위원회가 아니라 관련 실무 경험을 가졌거나 분야에서 나름의 전문적 신견을 가진 인적구성원들로 TF팀이 만들어졌고, 여기서 논의된 결과를 최대한 행적이 수용하면서 나름의 방행과 내용이 잡혔던 선례라는 점에서 고려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든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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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인 |
민족, 민주열사묘지가 불행했던 과거를 딛고 오늘의 민주주의를 이룩해 낸 한국사의 상징적 공간임을 부정하는 이는 없다. 심지어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할 수 없어 추념의 주객인 5.18단체 관계자들과 시민들이 이곳에서 별도의 기념식을 개최할 만큼 이곳은 한국 민주화의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따라서 이곳은 비민주적이고 반민중적이며 비도덕적인 세력들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성역이면서 동시에 폭력이라는 비민주적 매카니즘에 맞선 모든 세력들에게는 고향과도 같은 열린 공간이고 위안의 공간이다.
더구나 국가권력의 곳곳에서, 그리고 그런 국가권력을 추종하는 일부의 세력들에 의해 저강도이기는 하지만 파시즘의 망령이 곳곳에서 되살아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곳 민족, 민주열사들의 희생정신을 추모하고 이 분들이 희생될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과거를 기억하고, 나아가 그러한 불행의 재현을 막기 위해 지속적으로 결의하고 연대할 수 있는 공간을 새롭게 단장하는 것은 결코 단순하고 쉬운 일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광주의 시민사회는 그동안 5.18민주화운동 기념사업 과정에서 뒷전으로 밀리면서 나름의 설움과 고통을 겪어야 했던 그 상처와 아픔까지도 껴안는다는 반성까지를 담아 이 기념사업에 가슴을 열고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기념사업을 하겠다고 나선 광주광역시 역시 이러한 시민사회와 이해 당사자들, 그리고 이 사업에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를 희망하는 국민들의 요구를 수용하려는 적극적이고 열린 사고와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바라건데 십수억원을 들여 짓게 될 기념관(혹은 추모관) 시설부터 주제를 무엇으로 삼을 것이며, 일반묘를 옮겨 간 이곳을 어떻게 단장하고 참여를 희망하는 국민들의 풀한포기 돌멩이 한 조각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그리고 민족, 민주열사묘지의 주변에 산재해 있는 과거의 기억들(영호남 화합의 기념비, 돌탑쌓기, 남북합토제 등)을 어떻게 재정비할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일거리들을 면밀하게 살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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