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 학과가 발간하는 월간 '러시아CIS 토크' (Russia-CIS Talk)는 2025년 8월호(2025년 8월 1일자, https://ruscis.hufs.ac.kr)에서 러시아를 중심으로 탈(脫)소비예트권 인프라 구축과 외연 확장을 통해 유라시아 통합을 지원하는 유라시아 개발은행(EDB)의 출범및 역할을 소개했다. 김재명씨(석사 과정, 러시아CIS학과 경제 전공)가 쓴 '유라시아개발은행(EBD의) 설립 배경과 목적은?'이다. 소개한다/편집자
**본 칼럼은 저자 개인의 의견이며, 학과와 바이러시아(www.buyruaaia21.com)의 공식 견해와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유라시아개발은행의 설립 배경과 운용
다자개발은행(MDB, Multilateral Development Bank)은 저소득 및 중소득 국가의 경제 개발을 돕기 위해 다수의 차입국(개발도상국)과 재원 공여국(선진국)이 참여해 설립한 국제 금융기관이다. MDB의 대표적인 사례로 아프리카 개발은행(AfDB), 아시아개발은행(ADB),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미주개발은행(IDB) 등을 들 수 있다.
1991년 소련의 해체 이후 독립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열악한 인프라 및 에너지 개발을 위해 외국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해야 했는데,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아시아개발은행(ADB)과 같은 지역 다자개발은행이 금융 지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기존 국제개발은행의 지원으로는 중앙아시아가 포함된 유라시아 지역의 전체 개발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아시아를 배타적 세력권으로 간주하는 러시아가 2006년 1월 카자흐스탄과 함께 유라시아개발은행(EDB, Eurasian Development Bank)를 설립했다. 낙후된 탈(脫)소비에트 국가, 특히 중앙아시아의 경제 개발을 지원하고 이를 토대로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 질서를 창출하기 위해서다. 대(對)러시아 경제 의존도가 높은 아르메니아와 타지키스탄이 2009년 ESB에 가입했다. 이어서 2010년 벨라루시, 2011년 키르기스스탄이 참여했다. 2025년 4월에는 우즈베키스탄이 가입해 회원국이 7개국으로 늘어났다.
EDB는 투자 활동을 통해 회원국의 인프라 개발, 경제 성장, 무역 및 경협 확대 등을 유도하고 유라시아의 통합 촉진을 핵심 목표로 한다. 현재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흑해무역개발은행(BSTDB), 신개발은행(ADB),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 주요 다자개발은행들도 EDB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인프라 투자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2020년 기준 ESB는 역내 다자개발은행 전체 투자 포트폴리오의 약 16%를 차지해 EBRD와 IBRD에 이어 세 번째 규모를 기록했다. 2025년 4월 기준 투자 포트폴리오 규모는 46억 달러이고, 7개 회원국에서 총 305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EDB의 핵심 메가 투자 프로젝트
EDB는 2022년 '유라시아개발은행 전략 2022~2026'을 발표했다. 여기서 EDB는 역내 통합 효과가 높은 투자 프로젝트, 이를테면 역내 국가 간 지속 가능한 공급망 구축, 인프라 건설 및 확충, 국가·국경 간 승수 효과(multiplier effects)가 큰 프로젝트에 우선적으로 자금을 지원할 것임을 밝혔다. 특히 운송 인프라 및 물류, 수자원 및 에너지 복합단지(Water and Energy Complex), 디지털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를 중점 분야로 설정해 2026년까지 총 109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계획했다.
이와 관련하여 EDB는 역내 통합 효과의 잠재력을 주목한 전략 모델을 기반으로 아래 세 가지 핵심 투자 메가 프로젝트(Key Investment Mega-Projects, KIMPs)를 선정했다.
첫째는 유라시아 교통 네트워크(Eurasian Transport Network)다. 이 사업의 목표는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국제 복합 교통·운송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바다 없는 내륙국으로, 해양으로의 직접적인 접근 경로가 부재하다. 이로 인해 경제 개발이 지체되고 주민들의 삶의 질도 떨어지는 지리적 핸디캡을 해소하기 위해 EDB는 해양과 대륙을 잇는 범유라시아 교통 연결성의 강화와 효율적인 물류망 구축에 투자의 우선 순위를 부여했다. 유라시아 교통망의 중추는 동서 및 남북 축을 따라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국제교통회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아시아, 유럽, 중동의 내륙과 항만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둘째, 유라시아 상품 유통 네트워크(Eurasian Commodity Distribution Network) 구축이다. ECDN은 유라시아 경제연합 (EAEU) 내 농산물 흐름을 관리하기 위한 현대적이고 개방적이며 통합된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한다. 동시에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고 도매 및 유통 센터와 같은 인프라를 현대화해 생산자로부터 소매업체까지 물류 체인의 간소화를 지향한다. 회원 국가 단일 물류 및 정보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농산물 시장 통합뿐 아니라 역내 및 역외 농산물 수출 증대와 공업망 비효율 감소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취약한 식량 안보 증진 목적도 있다.
마지막은 물·에너지 복합 단지(Water and Energy Complex)에 대한 투자다. 이 프로젝트는 중앙아시아의 만성적인 수자원 및 에너지 부족 현상 극복을 목표로 한다. 중앙아시아에는 관재 시스템의 노후화, 신기술 도입의 소극성, 그리고 비효율적인 하천 관리로 인해 아랄해 유역을 중심으로 심각한 물 부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EDB는 수자원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분야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함으로써 하천 관리 개선, 관개 시스템의 개보수, 효율적인 물 관리, 합리적인 수자원 배분, 파괴된 생태계를 복원하고자 한다. 동시에 역내 에너지 시스템을 병렬로 운영함으로써 신규 발전소의 건설 부담을 줄이고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을 높이려는 목표도 추구하고 있다.
◇EDB의 궁극적 비전
EDB의 메가 프로젝트 전략은 단순히 취약한 역내 인프라 개발에 머무르지 않는다. 궁극적인 지향점은 EAEU 회원국을 중심으로 한 범유라시아 통합권 형성이다. 이와 같은 비전은 역내 교통· 물류망 개발과 동시에 중국, 인도, 이란 및 걸프 국가들과의 상호 투자 확대를 통한 역외 파트너십의 강화로 가시화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과 이란의 남북 교통회랑과의 연결은 유라시아 개발 금융의 외연 확장과 깊은 관련이 있다. 탈소비예트권 역내 통합 강화와 역외 연계 심화를 토대로 EDB는 유라시아 대륙의 전략적 연결성과 공동 번영의 비전을 실현하고자 하고, 그 중심에서는 유라시아의 맹주를 꿈꾸는 러시아의 지정학적 야망이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