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2년 6개월째로 접어들면서 러-우크라 양국이 전투 병력을 확보하기 위한 '동원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인구 3천8백만명(2024 통계청, UN, 대만통계청 기준)으로 러시아(1억4천여만명)의 3분의 1을 약간 웃도는 우크라이나는 개전 직후 계엄령과 총동원령으로 병력을 다수 확보했지만, 장기전에 따른 피로도가 커지면서 예비병력의 충원이 여의치 않는 상태다. 날이 갈수폭 확산되는 동원 기피 현상을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 5월 '동원 강화법'을 도입, 공권력에 의한 '강제 동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2년 9월 부분 동원령을 발령했다가 젊은 남성들의 엑소더스(대탈출)에 혼쭐이 난 러시아는 특수 군사작전의 참전 예비군을 구하는 '계약 군인 모집'에 올인하고 있다. 원래. 부분 동원령과 거의 동시에 계약 군인을 모집했으나, 동원된 예비군들이 훈련을 마치고 전선에 투입된 뒤인 2023년 5월께부터 활성화했다.
러시아의 입대 계약 사무소/사진출처:스트라나.ua
7월 초 현재 2024년에만 19만명과 입대 계약을 맺었다는 게 러시아 국방부의 발표다. 지금까지 64만명을 동원했다고 한다. 실제로, 러시아의 각 지방에서는 여성들이 빈둥거리는 남성에게 "해외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든지, 군에 가서 돈을 벌어오든지, 뭐든지 하라"며 등을 떠민다는 소리도 들린다.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7월 마지막날(31일)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전 계약병들에게 지급하는 계약금을 20만 루블에서 40만 루블(약 600만원)로 두 배 올렸다. 내달(8월 1일)부터 국방부와 계약하는 계약 병사들에게 당장 적용된다.
러시아 계약병은 계약금 외에 최소 20만 루블(소총수)에서 24만 루블(분대장급)의 월 급여를 받는다. 또 위험한 공격작전에 투입될 경우, 별도의 생명 수당과 각종 성과금이 기다린다. 예컨대 미국산 다연장로켓발사대(하이마스·Himars)를 파괴할 경우, 100만 루블을, 미 F-16 전투기를 격추할 경우, 1,500만 루블(약 1억 7천만 달러)을 성과금으로 받을 수 있다.
더욱이 모스크바시는 국방부와 계약한 시민에게 190만 루블을 일시불(계약금조)로 지원한다고 지난 23일 공식 발표했다. 모스크바 시민이 스스로 특수 군사작전에 참전할 경우, 복무 첫 해에만 정부와 시 계약금, 월급여, 수당 등을 모두 합쳐 520만 루블(약 7천8백만원)을 챙길 전망이다.
2022년 9월 동원된 러시아 예비군들이 훈련을 받는 모습/사진출처:현지 SNS ok
지난 3월에는 푸틴 대통령이 특수 군사작전 지역에서 사망한 군무원과 (경찰 등) 치안기관 근무자들에게도 500만 루블(약 7천5백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지시했다. 부상시에는 300만 루블이 위로금으로 제공된다. 이 지시가 주목을 받은 것은, 최전선 군인들에게 제공되는 보상 체계를 군무원 등 지원 인력에게도 확대 적용함으로써 노리는 사기 진작 효과다. 목숨을 걸고 작전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국가는 반드시 '목숨 값'을 보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러시아는 이같이 돈을 쏟아부은 덕분에 60여 만명을 전선으로 동원할 수 있었다고 보면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전사한 러시아 군인의 유족과 부상병들에게 지급되는 보상금이 2024년 예산 36조 6000억 루블의 약 6%인 2조 3000억 루블에 달한다는 추산이 최근 미 존스홉킨스대학과 (워싱턴 싱크탱크인) 국익연구소(CFTNI)에 의해 발표되기도 했다.
국방예산이 러시아(10조 7,750억 루블, 약 1,200억 달러)의 3분의 1(1조 6,900억 흐리브냐, 약 470억 달러)을 조금 넘는 우크라이나는 동원 병력에게 쓸 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개전 초기에는 계엄령과 총동원령으로 병력을 손쉽게 동원할 수 있었다. 러시아의 공격에 분노한 국민들이 자진 입대하기 위해 줄을 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 옛날 이야기다. 동원 대상자들을 전쟁터로 보내기 위해 공권력의 폭력도 불사한다. 강제 동원을 폭로하는 영상들이 인터넷에 차고 넘친다.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불화로 2023년 2월 경질된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총참모장(합참의장 격)의 뒤를 이은 알렉산드르 시르스키 총사령관은 병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대책을 제시했다. 돈이다. 그는 지난 3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군의 사기 진작을 위해 전투 비용(월급과 보너스 등 병사들을 위해 쓰는 돈)을 10만 흐리브냐(약 340만원)에서 20만 흐리브냐로 두 배 늘려줄 것을 요청했다.
물론, 수도 키예프(키이우)는 동원령에 따라 입대한 시민에게 3만 흐리브냐(약 100만원)를, 남부 오데사는 2만 흐리브냐를 지급하는데, 러시아 계약 군인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다. 또 최전선 군인들에게 지급되는 '전투 수당'이 적지 않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고 시르스키 총참모장은 주장했다.
우크라이나는 공권력으로 부족한 병력 동원에 나서고 있다. 사진출처:우크라군 총참모부 Генштаб ВСУ
돈 대신에 우크라이나가 동원할 수 있는 것은 공권력이다. 강화된 동원법을 근거로, 우크라이나 군동원및 징집위원회(약침으로는 군사위원회, 우리 식으로는 병무청)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상자들을 전선으로 데려가고 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 뉴욕 타임스(NYT)는 30일 우크라이나가 새 동원법 도입 이후 매달 최대 3만 명을 동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동원 인원은 5월 말부터 지난 겨울보다 2~3배 늘었고, 러시아의 한달치 계약 군인 규모와 맞먹는 수준이라고 NYT는 밝혔다. 일선 부대에서도 “심각한 병력 부족 현상이 나타났던 2023년 말에 비해 상황이 조금 나아지고 있다”거나, "지난 두 달 동안 자신의 여단에 2천 명의 징집병이 새로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훈련이 부족하거나, 신입 예비군의 체격 조건이 좋지 않다”는 우려도 빠지지 않는다.
앞서 로이터 통신도 우크라이나의 동원 규모가 지난 3, 4월에 비해 두 배 이상 커졌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이 7월이 끝나기 전에 전격적으로 계약병의 계약금을 2배로 증액한 것도, 우크라이나의 동원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또 모스크바시가 자체적으로 지급하는 '일시금'을 의식한 측면도 있다고 봐야 한다. 다른 지역에 비해 시민들의 참전 계약이 턱없이 적다는 비판을 의식한 모스크바시가 마지 못해 거액의 일시금 지급 약속을 내놨지만, 다른 지역 주민들에게는 위화감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다.
전쟁은 어차피 '돈싸움'이다. 장기전으로 갈수록 전쟁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국력이, 경제력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고 보는 이유다. 전쟁을 계속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사람과 무기(군사 장비)다. 모두 돈이 없으면 구할 수 없다. 특히 최전선에서 적의 총구 앞에 서 있는 군인들에게 돈은 사기 진작의 원천이다. 우크라이나가 죽었다 깨어나도 러시아를 이길 수 없다는 이유 중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