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 20m 세로 8m의 청량제, 광화문 글판
2007년 환경재단은 '세상을 밝게 만든 100人'에 사람이 아닌 무생물체를 선정했다.
내로라하는 사람들 사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그것은 다름 아닌 '광화문 글판'이었다.
1991년부터 20여 년 동안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가슴을 적셔준 이 글판은
한남자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이력서의 학력(學歷)란에 언제나 '學力'이라고 적었던 그 남자는 실제 학력은 全無하다.
1920년대 가난한 가정 형편으로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지만 3년에 걸친 '천일독서'를 실천,
방대한 독서력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거목이 된 주인공. 그가 바로 교보생명 창립자
고(故) 신용호 회장이다.
신용호 회장의 인생은 그야말로 독서혁명이 일으킨 기적이었다.
누구보다 독서의 힘을 잘 알았던 그는 책이야말로 대한민국 발전을 위한 가장 필요한
미래자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신념에 따라, 그는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책을 보게 하기 위해 엄청난 모험을 감행한다.
1980년대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종로1가 1번지 금싸라기 땅에 서점을 설립한 것이다.
"이 사통팔달, 한국 제일의 목에 방황하는 청소년을 위한 멍석을 깔아줍시다.
와서 사람과 만나고, 책과 만나고, 지혜와 만나고, 희망과 만나게 합시다.
이곳에 와서 책을 서서 보려면 서서 보고, 기대서 보려면 기대서 보고, 앉아서 보려면 앉아서 보고,
베껴 가려면 베껴가고, 반나절 보고 가려면 반나절 보고, 하루 종일 보고 싶으면 하루 종일 보고,
그리고 다시 제자리에 꽂아놓고 사지 않아도 되고, 사고 싶으면 사 들고 가도 좋습니다."
- 이규태(2004), <<대산(大山) 신용호>>, 교보문고
그렇게 탄생한 서점이 '교보문고'이다.
그가 세운 서점은 어느덧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점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지만,
책을 향한 그의 열망은 결코 식지 않았다.
책을 읽지 않는 이들을 위해 1991년 광화문 교보생명 건물에 '글판을'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광화문 글판은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이곳을 지나가는 이들에게
삶의 희망과 위로를 전해주는 도심의 청량제가 되고 있다.
- 삼성경제연구소 발행, ‘삼매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