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북단을 오르락내리락하다
다시 강화도를 찾았다. 지난번 교동도를 다녀오는 길, 갑작스러운 아열대성 폭우로 예정했던 목적지를 들르지 못하고 그냥 돌아온 뒤 내내 허전했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강화도는 섬 전체가 문화재다. 보고 또 봐도 끝이 없을 것 같은 풍부하고 다양한 볼거리들이 사방 천지에 깔려있다. 그 가운데 핵심적인 것들은 강화군청 근처에 몰려있다.
도대체 강화도는 어떤 섬인가?
강화도를 갈 때마다 헛갈린다. 강화도 길목에 있는 김포는 경기도 김포시인데, 강화도는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속한다.
인천광역시 강화군은 군 전체가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져있다. 강화도가 제일 큰 섬이다. 김포시에서 강화도로 이어지는 다리는 강화대교와 강화초지대교 두 곳이 있다.
그리고 강화도에서 배로 연결되는 작은 섬들로 교동도, 석모도, 주문도, 아차도, 볼옴도 등이 있다.
강화도에는 수많은 군사시설이 있다. 고려 시대의 유물부터 조선시대의 진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지금은 북한과 강 하나를 마주하는 군사 요충지이다. 강화도를 서해에서 바라본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이어지는 뱃길 가운데 강화도로 들어오는 물길이 있다.
강화도 북부의 강화만에 들어서면 한강 하구가 나오고, 한강 물길을 따라 올라가면 장항, 행주, 망원 습지를 지나 양화진(합정동), 노량진까지 이어진다. 물론 조선 시대 얘기이며, 이 물길을 이용한 미국, 프랑스의 문화 침탈이 개화기 조선을 붉게 물들이곤 했었다.
그래서 강화도는 일본의 기타큐슈 처럼 외래 문명 유입 시기가 다른 지역에 비해 빨랐고, 그만큼 빼앗긴 것들도 많았다. 백성들이 당한 고난과 죽음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상처로 남아있다.
강화도 가는 길은 일반적으로 김포시를 통해 강화대교를 건너가는 방법이 있지만, 이번 길은 최북단 강변남로 격인 78번 지방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김포시를 가로질러 강화초지대교를 건너 진입했다.
① 초지진
1866년 고종 3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와 초지진 사이에서 격렬한 포격전이 벌어졌다. 당시 프랑스 함대의 로즈 함장은 양화진 절두산에서 머리가 댕강 잘린 천주교도들과 선교사들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중국 주둔지에서 달려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되돌아갔다. 1871년 고종 8년에는 미국의 아시아함대가 끝내 초지진을 무너뜨리고 상륙하고야 말았으며, 고종 12년이었던 1875년에는 일본 군함 운요호와 접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 옛날 전투 장면을 모두 보고 있었던 소나무가 지금까지 살아계시는데, 이곳저곳에 총탄과 포탄 파편 맞은 상처를 드러내고 있다. 이곳 초지진은 1656년 효종 7년에 강화유수 홍중보가 설치했다.
② 황산선착장과 강화초지대교
황산선착장은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에 있는 중형급 어항장이다.
여행은 9월 초순에 갔었는데, 모든 배들이 꽃게 잡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선착장 하늘 반쪽은 구름이 잔뜩 끼어서 비를 내리는가 하면, 또 다른 쪽은 맑은 하늘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선착장을 떠나 서해로 들어서면 바로 영종대교와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가 나타난다.
고깃배 사진 뒤로 보이는 다리가 2002년에 세운 강화초지대교이다. 선착장 마당에는 어판장과 횟집들이 줄줄이 있다.
③ 봉천산
원래는 마니산을 올라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직전에 아침 겸 점심으로 푸짐한 꽃게탕을 먹는 바람에 가뜩이나 무거운 몸이 더욱 처졌다. 그래서 만만히 보이는 산을 찾아 빈둥거린 끝에 발견한 산이 바로 봉천산이다. 그렇다. 봉천산은 해발 291m의 편안한 가족형 등산코스였다. 하점면사무소에서 연결되는 등산로를 오르기 시작, 천천히 걸으면 한 시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물론 중턱부터는 숨이 턱까지 오르는, 결코 룰루랄라 노래 부르며 오를 정도로 쉬운 산은 아니다. 중간에 시원한 약수터가 있고, 가끔 산기슭을 뛰노는 흑염소를 만날 수도 있다. 정상에 오르면 제천의식을 위한 단으로 추정되는 봉천대가 있고, 최정상에는 시원한 산바람을 맞으며 북한땅을 바라볼 수 있는 팔각지붕의 봉천정이 있다.
④ 화문석문화관
강화도 화문석은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강화도의 특산물 가운데 대표 특산물이다. 화문석문화관에 가면 화문석 작품, 만드는 과정, 전통 기법 등을 두루두루 볼 수 있고 필요한 경우 현장에서 구입하거나 주문할 수도 있다. www.hwamunseok.co.kr
⑤ 강화도 고인돌
2000년, 고창, 화순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지석묘다. 이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묘 형태인 북방식 지석묘이다. 강화도에는 곳곳에서 선사시대의 유적이 많이 발견되었고 지금도 공사하는 곳 마다 새로운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지석묘 또한 고려산을 중심으로 약 120여 기가 있다. 사진 속의 지석묘는 높이260cm, 개석의 길이 710cm, 너비550cm이며 덮개석의 무게는 약 80톤이다. 10월23일과 24일에는 고인돌 광장에서 강화고인돌문화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문의 문화예술팀 032-930-3033
⑥ 고려궁지
기가 막힐 일이다. 몽골은 고려 정복을 위해 줄기차게 공격을 해왔었다. 고려 또한 쉽사리 그들에게 항복하지 않았다. 1232년, 고려의 고종은 항몽의 의지를 굳건히 세우며 무인들과 더불어 강화도로 천도를 감행, 이곳에 궁궐을 짓고 일종의 전시 정치를 감행했었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39년. 그러나 결국 정부 차원의 저항은 끝이 났고 고려는 몽골과 강화 조약을 맺게 된다. 당시 몽골은 고려에게 강화도에서 철수하면서 고려궁을 불태울 것을 강요했다. 고려의 궁은 그렇게 고려인의 손에 의해 불태워지고 말았던 것이다.
⑦ 강화평화전망대
민간인 출입 통제구역 즉, 민통선 안에 있는 전망대다. 민통선 검문소에서 내려 신분증을 제시하면 군인이 출입 표찰을 준다. 그것을 자동차 앞에 부착하고 5분쯤 달리면 전망대가 나온다. 1층에는 강화 특산품 판매소와 식당이, 2층에는 전쟁 관련 자료들이 있고, 3층에는 전망대와 스크린 시설이 있어서 북한의 모습을 눈 앞에서 감상할 수 있다. 철책을 빼면 더 이상 평화로운 장면이 있을 수 없다.
⑧ 성공회강화읍성당
1900년에 완공된 성당이다. 유럽의 교회가 한국에 들어와 한옥 예배당을 건축한 것은 선교 활동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이 건물의 공사는 당시 궁궐 건축을 담당했던 도편수가 했고, 석조 공사는 중국인 석공들이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전체 외형은 한옥 스타일이지만 내부 구조는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응용했다고 한다.
■ 강화맛집 - 충남서산집
요즘 가을 꽃게가 제철이다. 꽃게는 봄철에 한번, 가을에 한번 어획이 가능한데, 봄에는 암케를, 가을에는 숫케를 잡는다. 충남서산집은 꽃게 사업을 잘 하는 이 집 노모에 의해 강화에 자리잡은 명물 맛집이다. 이 집은 원래 인천 송도에서 30여년 전에 출발했는데, 관광지 강화도를 눈여겨 본 노모가 일찌감치 이곳을 점지, 쌍둥이 자매에게 하나 씩 물려주게 된 것이다. 육수는 게 뼈로 만들고, 절제된 조미법으로 꽃게탕이 비교적 부드럽고 담담한 게 특징이다. 꽃게탕, 꽃게찜, 게장백반을 먹을 수 있고 포장도 가능하다.
주소 : 인천시 강화군 양도면 인산리 409-1 문의 : 032-937-3996
[이영근 여행작가 / 사진 - 이영근, 안동수(다큐P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