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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진도초등학교 총동문회 원문보기 글쓴이: 56이세진
그 섬에 가고 싶었다 – 완도(심봉,상왕봉,초개산,서망봉,남망봉,동망봉)
1. 완도 최고봉인 상왕봉, 그 뒤 오른쪽 멀리는 초개산(177.1m)
地盡溟波外 육지가 끝나는 곳 검푸른 바다 건너가면
山如蜀道危 아슬아슬 촉도처럼 험준한 산세
深冬多碧樹 한겨울 푸른 나무 울창하게 우거져서
亭午失陽曦 대낮에도 햇빛을 볼 수가 없다네
大壑龍蛇橫 골짜기엔 이무기들 또아리 틀고
窮林虎豹飢 숲속엔 굶주린 호랑이 표범
惟應木客在 오로지 응당 나무꾼은 있으리니
見我獨行時 혼자 가는 내 모습을 지켜보리라
―― 계곡 장유(谿谷 張維, 1587~1638), 「완도를 여행하며(行莞島中)」
▶ 산행일시 : 2026년 2월 28일(토), 금요무박, 흐림, 해무
▶ 산행인원 : 3명(악수, 메아리, 하운)
▶ 산행코스 : 대구미주차장,오봉능선,307m봉,391m봉,심봉,상왕봉,임도,427m봉,459m봉,독고개,273m봉,
임도,139m봉,나래교,초개산,서망산구름다리,서망봉,완도중학교,남망봉,동망봉,완도타워,완도항
▶ 산행거리 : 도상 15.4km
▶ 산행시간 : 07시간 48분(05 : 20 ~ 13 : 08)
▶ 교 통 편 : 엠티산악회(31명) 버스 이용
▶ 구간별 시간
23 : 40 – 신사역 4번 출구
02 : 12 – 고인돌휴게소( ~ 02 : 30)
04 : 40 – 완도 청소년수련원, A코스 산행시작
05 : 20 – 대구리(大口里, 대구미 大龜尾) 주차장, C코스 산행시작
06 : 05 – 전망바위(391m)
07 : 15 – 심봉(598m), 휴식( ~ 07 : 21)
07 : 35 – 상왕봉(象王峰, 644m)
08 : 03 – 남근바위
08 : 15 – 임도
08 : 33 – 427m봉
08 : 39 – 459m봉
09 : 07 – 387m봉
09 : 45 - ╋자 갈림길 안부, 독고개
09 : 51 – 273m봉
10 : 15 – 임도
10 : 21 – 139m봉
10 : 29 – 나래교
10 : 49 – 초개산(177.1m)
10 : 59 – 서망산 구름다리
11 : 13 – 서망산(西望山, 184m), 점심( ~ 11 : 43)
12 : 17 – 남망봉(南望峰, 152m)
12 : 45 – 동망봉(東望峰, 159m)
13 : 08 – 완도항, 산행종료, 버스출발(14 : 00)
16 : 00 – 고인돌휴게소( ~ 16 : 15)
19 : 15 - 양재역
2.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완도 1/25,000)
산행 그래프
제주도에 진작 변산바람꽃이며 보춘화, 복수초, 매화 등 봄꽃이 만발했다는 소식이 있기에 제주도와 가까운 남쪽나
라 완도에 가면 혹시 봄꽃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컸다. 완도 날씨도 주중 가장 좋은, 맑은 날이 될 것을
예보했다. 그래서일까? 엠티산악회 모객은 성황이었다. 31인승 우등버스는 차고 넘쳐 대기자까지 생겼다. 요즘
여행 특수인지 버스기사님은 3시간밖에 자지 못했다고 한다. 자기 체력자랑이라도 고객에게 섣불리 할 말이 아니
다. 완도까지 5시간 가까운 긴 운행에 깜박 졸기라도 하여 사고 날까 우리가 불안하다.
오늘 완도 산행코스는 3개로 나누었다. A코스는 청소년수련원에서 숙승봉, 업진봉, 백운봉, 상황봉, 심봉, 대구미로
진행한다. 약 10km이다. B코스는 C코스의 중간인 도암리재에서 완도항까지 7km이고, C코스는 대구미에서 심봉,
상왕봉을 넘어 초개산, 서망봉, 남방봉, 동망봉을 지나 완도항으로 간다. 약 15km이다. 완도 산행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준봉들이 연달은 A코스이다. 우리 일행 대부분이 그리로 간다. 그러나 나는 10년 전에 그 코스를 갔었다.
C코스는 상왕봉을 지나서부터 아직 가보지 못했다. 그리고 C코스가 15km로 가장 길다. C코스로 간다. 우리 버스
는 A코스 들머리인 청수년수련원 주차장, B코스의 들머리인 소가용리 버스정류장을 들렀다가, C코스 들머리인
대구미주차장으로 간다. 7명이 간다. 05시 20분이다. 오늘 일출시간은 07시 04분이다. 마을 닭들의 어둠을 깨우려
는 홰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지만 캄캄하다. 소형랜턴 밝힌다. 7명 일행 중 젊은이 4명은 나는 듯이 앞서가고,
우리 3명은 해뜨기 기다릴 겸사로 천천히 간다.
갈림길이 나오면 서로 비교하여 더 높은 곳을 오르는 길로 간다. 산자락 오르는 길은 널찍하고 완만하였으나 얼마
안 가서 곧추선 오르막이 이어진다. 상왕봉 644m봉이 만만하지 않다. 해발 10m 내외에서 오르니 봉봉이 준봉이다.
우리나라 남한에서 다섯 번째로 높다는 계방산(1,579.1m)의 경우, 그 들머리인 운두령이 높이 1,089m이니 불과
490m를 오르지만, 여기 상왕봉은 적어도 600m 이상은 올라야 한다. 간밤에 비가 왔다. 풀숲은 젖었고 바위는 미끄
럽다.
길게 한 피치 올라 전망 트이는 바위에 오르지만 어둠 속이라 보이는 것은 없다. 곳곳 길옆에 표지판이 있어 무슨
내용일까 궁금하여 랜턴 비춰보면 ‘쓰레기 투기금지’, ‘야생식물 채취금지’이다. 산꾼에게는 매우 모욕적인 표지판
이다. 우리가 가는 능선이 오봉능선이라는데 일로 직등하면서도 오봉을 몰라보고 간다. 울창한 숲속이다. 가늘지만
하늘 높이 쭉쭉 뻗은 나무숲이다. 그래서도 날이 더디 샌다. 엄청 올라온 하늘 트인 전망바위다 싶었는데 겨우
391m이다. 배낭 벗어놓고 가쁜 숨 고른다.
하늘 가린 숲속에 들었다가 잠깐 바위지대 나오면 얼굴 내밀기를 반복한다. 어느덧 일출시간이 지났다. 해무가
짙다. 심봉 슬랩에 오르고 해가 중천에 보름달처럼 떴다. 서둘러 슬랩 돌아 심봉 정상에 선다. 사방 트인 경점인데
해무로 어둑하여 조망이 흐릿하다. 해의 분투로 해무가 물러나기를 기다렸으나 오히려 더 엄습한다. 해무가 영화에
서나 봄직한 거대한 해일처럼 밀어온다. 건너편 상왕봉도 가린다. 슬랩 살금살금 돌아내려 상왕봉을 향한다.
상왕봉 0.4km. 잠깐 내렸다가 완만하고 길게 오른다. 어둑한 숲속이다. 그윽한 안개 속이다. 더 오를 데가 없어
상왕봉 정상이다. 정상 표지석 옆에 사각 돌탑의 봉수대가 있다. 너른 전망대와 절벽 밑을 발밑에서 아찔하게 내려
다볼 수 있도록 투명판을 약간 내밀었다. 상왕봉은 완도군 중앙에 위치한 봉우리로 ‘상왕(象王)’은 ‘상중지왕(象中
之王)’에서 취한 말로 불교에서 부처를 가리킨다고 한다. 전망은 해무로 완전한 무망이다. 전망대 안내도에 표시된
섬들을 대조하기조차 어렵다. 정상 표지석 앞의 암반에 둘러앉아 아침밥 먹는다.
2. 심봉에서 바라본 일출
5. 심봉에서
7. 심봉에서 바라본 상왕봉, 오른쪽 뒤는 초개산
8. 해무가 거센 해일처럼 밀려온다.
10. 해무는 온 산을 덮는다
전망대 안내도에 “저 섬에 가고 싶다 …” 라는 큰 글씨 아래 고금, 금당, 약산, 금일, 생일, 신지, 주도 청산 등 주변
의 여러 섬들을 소개하고 있다. 안내도의 “저 섬에 가고 싶다 …”라는 어구는 내가 이 산행기 제목을 “그 섬에 가고
싶었다”라고 한 것처럼, 임철우의 동명소설을 박광수 감독이 영화로 제작한 「그 섬에 가고 싶다」(1993)라는 제목
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 제목만을 생각하면 그 섬 미지의 풍광이 퍽 낭만적일 것 같은데, 영화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문재구(문성근 분)는 자신을 고향인 섬에 묻어달라는 아버지 문덕배의 유언에 따라 꽃상여를 배에 싣고 섬으로
향한다. 하지만 문재구의 친구이자 시인인 김철(안성기 분)의 예상대로 섬에 가까워지자 섬 사람들의 맹렬한 반대가
시작되고 배를 섬에 대는 것조차 거부당한다. (…) 회상하면, 40년 전 어느 날 섬에 난리가 난다. 무장한 인민군들이
(위장한 국군이었다) 동네 사람들 중 반동분자를 색출하기 시작하자 섬사람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이웃을 고발
하기까지 한다. 이 모든 사태가 섬에서 쫓겨난 문덕배의 농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섬사람들은 가슴 속
에 큰 한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 문재구는 어떻게 하든 아버지를 고향에 묻으려고 했으나 마을 사람들은 상여를 거부하다가 분노가 폭발해
서 배를 불태워버린다. 급기야는 실랑이 끝에 문덕배 시신마저 불타 바다에 빠트려버린다. 문덕배는 두 번의 죽음
을 맞이한 셈이 되었다. 이념갈등으로 섬 전체가 이념의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끝난다.”
벌써 A코스에서 온 등산객 한 분을 만난다. 심봉을 다녀오겠다고 한다. 이 분에게 지나온 봉봉들이 어떻더냐고 물었
더니 안개 속에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고 하니 나로서는 큰 위안이 된다. 이 분과 함께 완도항까지 갔다. 이 분은
대단한 준족이거니와(오늘 이 분만이 너끈하게 22km 완도 산릉을 종주했다) 아는 것도 많다. 나보다 15살이나
아래인데 산은 물론 식물에 대해서도 해박하다. 이 분 덕분에 황칠나무와 콩짜개덩굴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완도는
아주 옛날부터 황칠나무의 산지로 유명했다. 완도는 5번째 온다고 한다. 안개 속에 상왕봉 내리는 길을 더듬거리는
데 이 분이 길잡이 한다.
상왕봉을 오른 것처럼 급박하게 내린다. 길은 뚜렷하다. 밧줄 잡고 바위지대 내리고 잠시 올라 통천문인가 했더니
남근바위다. 남근 모양의 바위가 옆에 있다. 상왕봉에서 0.73km를 내리면 임도가 지나는 ╋자 갈림길 안부다. 지근
거리는 해무가 걷혔다. 그야말로 울울창창한 숲속을 간다. 459m봉이 대단한 첨봉이다. 459m봉 내려 바위지대를
가는 도중에 이초(異草)를 만난다. 바위에 수없이 달라붙은 작고 동그란 잎사귀의 덩굴을 보고, A코스에서 온 분이
‘콩짜개’라고 한다.
산행 이튿날 창경궁 대온실에 갔는데 우연히 반갑게도 이 식물을 보았다. 정명은 ‘콩짜개덩굴’이다. 학명은
Lemmaphyllum microphyllum C.Presl이다. 명명자 ‘C.Presl’는 체코의 식물학자인 칼 보리보이 프레슬(Karel
Bořivoj Presl, 1794~1852)이다. 콩짜개덩굴은 한국 국가적색목록(Redlist) 기준 평가의 약관심(LC) 종이다. 고란
초과 상록 여러해살이풀로 잎이 콩을 반으로 짜개놓은 듯한 모습이다.
잠깐 하늘 트인 바위에 오르니 가야 할 능선이 유곡심산의 첩첩 산이다. 허물어진 건물 지나고 길은 인적이 뜸하다.
안부에 내렸다가 다시 오르는 봉봉은 진땀을 빼게 한다. 독고개 지나 273m봉 오름이 그렇고, 송전탑 지나 189m봉
오름이 그렇고, 임도 지나 139m봉 오름이 그렇다. 구름다리인 나래교는 협곡을 연결했다. 나래교가 없다면 뚝 떨어
졌다가 오를 뻔했다. 초개산 긴 오르막도 되다. 정상은 산길에서 오른쪽으로 0.1km 벗어났다. 배낭 벗어놓고 들른
다. 정상은 나무숲 둘러 조망이 가렸다.
11. 상왕봉 가는 길
12. 상왕봉에서
13. 상왕봉 주변
16. 남근바위, 통천문인가 했더니 남근바위라고 한다. 남근모양의 바위는 뒤쪽에 있다
17. 해무가 걷힌 등로
20. 콩짜개덩굴, 전초를 약용한다
21. 심산유곡의 첩첩 산이다
초개산 내리면 서망산 구름다리다. 이 구름다리 아래도 협곡이다. 서망산 가는 길은 잘 났다. 산책로로 다듬었다. 긴
오르막이다. 정상에 올라 뒤돌아보는 지나온 능선과 상왕봉은 해무로 칙칙하다. 정상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다. 벤치
를 식탁 삼아 점심밥 먹는다. 나는 김밥 한 줄이다. 이제 날이 따뜻해지고 보통 김밥 유효기간이 4시간이라고 하니
점심 메뉴를 인절미 등으로 바뀌어야겠다. 서망산 정상에서 비슷한 고도로 조금 더 가면 호번정(湖藩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다음은 그 안내판 내용이다.
“난중일기 병신윤년(선조 29년, 서기 1596년) 8월 23일 조에 이순신 장군이 이정충 부장을 대동하고 망산에 올라
“則 左右敵路 諸島 歷歷可數 眞一道 要衝之地”(좌우를 살펴본즉 적이 다니는 길과 모든 섬을 모두 다 헤아릴 수
있는 과연 한반도 요충의 땅으로 국방의 요새로다) 라고 극찬하여 그 훗날 정유재란 때 고금도에 삼도수군 본영을
세워 군비를 정비하여 노량대첩에서 왜구를 섬멸하고 임진왜란을 대첩으로 이끈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삼망산
정에 그 사연을 기념코자 호번정이라 명명하였다.”
난중일기 관련 부분을 찾아보았다. 난중일기 4책 66쪽에 나온다. 안내판 내용이 사실과 약간 다르다.
“與副使同柱加里浦 則右虞候李廷忠亦先到 同上南望 則左右 賊路諸島 歷歷可數 眞一道要衝之地 而勢極孤危 不得
己 移合梨津”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부사(副使)와 함께 가리포(현재의 완도)에 배를 대니, 우우후 이정충 또한 먼저 와 있었다. 그와 함께 올라 남쪽을
바라보니, 좌우로 적들이 드나드는 길목의 여러 섬들이 역력히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참으로 한 도의 중요한 요충지
이나, 지세가 매우 외롭고 위태로워 보여, 어찌할 수 없이 군영을 이진(해남군 북평면 이진)으로 옮겨 합치기로 하였다.”
서망산을 이정표가 안내하는 길 따라 길게 동진하여 내려 동네에 내려서고 서쪽으로 방향 틀어 언덕배기 대로를
오른다. 고갯마루 가까이에 있는 완도중학교를 지나고, 길 건너 신흥사 입구를 지나고, 그 뒤의 포장한 임도를 오른
다. 임도는 KT 통신중계시설로 들어가고, 중계소 오른쪽 울타리에 바짝 붙은 소로를 따라 돌면 남망봉 정상이다.
아무런 표지판이 없고 우거진 덤불숲에 봉수대만 있다. 소로로 산허리 길게 돌아 동망봉을 향한다. 일출공원 버스정
류장을 지나고 완도타워 가는 대로를 간다.
동망봉은 완도타워주차장을 지나고 오른쪽 사면 소로로 오른다. 상당히 가파르고 긴 오르막이다. 막바지 스퍼트
낸다. 거친 숨으로 층층계단 전망대를 오르면 동망봉이다. 동망봉도 아무런 표지판이 없고 봉수대만 있다. 동망봉
바로 아래가 동망봉보다 더 높은 완도타워다. 76m라고 하니 동망봉 높이(159m)를 더 하면 235m쯤 된다. 입장료
2,000원에 45% 할인이라는데 거기에 들러서 볼 경치는 산행 중에 이미 다 보았다. 느긋이 대로 따라 내린다. 기대
했던 봄꽃은 아무 데도 없다.
그래도 완도에 왔으니 옛 선인들의 발자취를 찾아보았다.
고려시대 정언(正言)을 지낸 이영(李穎, ?∼1278)이 완도로 귀양을 오게 되었는데 그의 숙부였던 승려 혜일(慧日)이
함께 따라와 섬으로 들어가서 절을 세우고 살았다고 한다. 여기서의 섬이란 선산도(仙山島)로 오늘날의 청산도(靑
山島)를 가리킨다. 이때 혜일은 청산도로 들어가기 전 잠시 완도에 정착했고 법화암(法華庵)을 경영한 뒤 골짜기를
중심으로 명승을 취해 새로운 이름들을 명명했다고 한다. 다음은 이영이 완도에 귀양 와서 읊은 시다. 그때도 완도
는 해무가 자욱했다.
一山四面鎖雲煙 온 산의 사면이 구름 안개에 꽉 막혔는데
深閉松門向暮年 솔문을 깊이 닫고 늘그막을 보내자니
只有寒風鳴屋角 지붕 귀퉁이 불어 대는 찬바람만 오직 있고
更無遊客到菴前 암자 앞에 찾아오는 유람객은 다시 없네
早眠晏起閑居樂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남은 한가히 사는 낙이요
渴飮飢飡本分禪 목마르면 마시고 배고프면 먹는 것이 본래 참선이라
已得疎慵人不顧 게으름을 이미 터득하여 남들은 고려 않으니
修行粗了半因緣 대강 마친 수행이나 반 인연은 되는 거지
22. 맨 왼쪽 멀리가 남망봉이다
23. 앞 왼쪽은 완도호텔, 오른쪽 멀리 동망봉과 완도타워이다
24. 왼쪽 시설물이 있는 산이 남망봉
25. 멀리는 상산(象山)
26. 멀리 왼쪽부터 동망봉, 남망봉, 서망봉
27. 서망봉 호번정
28. 남망봉 봉수대
29. 동망봉 가기 전에 밭을 지나며 본 큰개불알풀꽃, 서울에도 진작 피었다.
30. 동망봉에서 바라본 동쪽 전경
31. 완도타워
32. 아래는 완도항과 주도(珠島), 멀리는 상왕봉
주도는 137여 종의 상록수가 있는 식물의 보고로 천연기념물 제28호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