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이런 독후감이라니..., 창원대학교 이성철 교수님의 기상천외한 독후감입니다. 사회학자의 시평, 한 번 읽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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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태(2021), [슬쩍], 서정시학.
오인태 시인(평소처럼 오샘이라 부르겠다)으로부터 시집 선물을 받았다. 최근 골치 아픈 일들이 많았을 텐데 그 와중에도 귀한 시집 낸 것을 축하드린다. 시집 제목이 [슬쩍]이다. 서정시들을 수합한 것이다.(출판사도 서정시학...이네.) 시집 안에 <지금은 서정시를 쓰기 좋을 때>가 있다. 서정과 서사가 뭘까... 김형수는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 가>에서 서정의 반대말을 ‘권태’라고 했다. 나름대로 풀이 해보면, 나를 둘러싼 세계가 나에게 아무런 자극을 주지 않을 때 서정이 발생하지 않는다. 세상에 둔감하고 매사에 게으른데 무슨 일이 생기겠는가.
이 자극은 세상에 대한 관찰이 될 수도 있고, 부조리에 대한 저항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서정과 서사를 굳이 나누고 싶지 않다. [슬쩍]에는 서사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김형수는 또 다른 책,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 가>에서 ‘서사’를 ‘우여곡절’이라고 한다. 오샘의 [슬쩍]에는 서정과 서사가 어우러져 있다. 일상-사건-사태-역사가 어우러져 있다. 세상의 우여곡절을 풀어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우여곡절을 풀어내려면 기나긴 장시가 되어야 할 텐데, 이번 시집에 담긴 대부분의 시들은 짧다. 그것도 매우... 읽어보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어휘 속에 풍부한 것들이 가득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오샘의 시들을 읽으면서, ‘문화특질’(cultural traits)이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문화특질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문화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지만 그 속에는 아주 풍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예컨대 자본주의가 지닌 복잡다단한 문화의 내용을 한마디로 줄이면 ‘상품화’쯤이 될 것이다. ‘상품화’가 자본주의 문화를 한마디로 표현하는 문화특질인 셈이다. 그래서 오샘의 시는 짧지만 말랑말랑하지 않았다. 황석영 원작을 영화로 만든, <오래된 정원>의 한 장면에 윤희가 현우의 자작시를 듣고 난 후 이렇게 말한다. “짧지만... 의젓하네...”
아래부터는 내가 오샘의 시들을 읽으면서 들었던 느낌들을 적어본 독후감이다. 나도 오샘을 따라서 짧게 독후감을 써본다. 시 하나하나에 일일이 토를 다는 ‘훈고학적’ 독후감이라고 해둔다. 참고로 <>속은 시의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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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책 제목으로도 사용된 표제시다. ‘쓰윽’보다 나은 제목이라 생각한다. ‘슬쩍’이라는 부사 때문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들이 생각났다. <아무도 모른다>는 ‘몰래’였고, <이상한 가족>은 ‘슬쩍’이었다.
<날아라 펭귄>
책표지에도 펭귄이 서있다. 몇 년 전에 남원 시외버스 주차장에 내린 적이 있다. 화장실에 들렀더니 남원시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만든 벽보가 붙어있었다. “펭귄은 날지 못하는 새가 아닙니다. 펭귄은 바다를 나는 새입니다.”그리고 서경식 선생님의 <나의 영국 인문 기행>에 나오는, 시린 네샤트(Shirin Neshat)의 사진 <황홀, Rapture>이 함께 떠올랐다. 찾아들 보시길...
<호박잎쌈>
한 묶음에 천 원 하길래 사와서 쪄서 쌈 사먹었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레시피에는 깔깔한 부분을 제거하는 요령까지 있지만 그냥 삶아도 괜찮다. 기름기가 있는 음식을 먹을 때, 혓바늘이 돋은 부분을 바깥으로 해서 싸먹으면 깔끔하다. 쌈은 귀납에서 연역으로 나아가는 음식이다.
<도다리쑥국>
아이씨밴드의 동명의 노래가 있다. 참 좋다. 이 노래가 <여수 밤바다>나 <벚꽃 엔딩>처럼 노후보장용 보험곡이 되었으면 좋겠다. 창원과 마산을 거쳐 통영의 연인을 찾아 나섰던 백석도 생각났고, 쑥국에서 쑥국새로의 도약이 자연스러웠다. 이는 <미역, 몸 풀다>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어구이>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 가 생각났다. 정약전도 서울이 아니라, 적소(謫所, 귀양살이 하는 곳)의 사립으로 귀를 쫑긋했기 때문에 적재‘적소’(適材適所)의 인물 창대를 만난 것이리라. 김준 선생님에 따르면,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전어가 흑산에 간혹 있지만, 육지 근처에 나는 놈만 못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단다.
<멍게 맛>
멍게에 얽힌 안 좋은 추억이 있다. 내가 멍게의 표준어는 우렁쉥이라고 말하자, 그런 말이 어딨노 하면서 다투려던 인물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좋은 추억도 있다. 남해에서 만난 오샘이 멍게 비빔밥을 해준 적이 있다. 오샘의 멍게 비빔밥 레시피를 공개한다. 1) 멍게를 썰어 통깨, 들(참)기름, 잘게 썬 쪽파나 실파 등으로 조물조물 무친다. 2) 갓 지은 흰 쌀밥에 1)을 얹어 비벼 맛있게 드신다. 나는 제 철의 멍게를 초장에 찍지 않고 늦은 오후에 몇 점하면 산뜻하게 해장이 되더라. 개인 차이가 있으니 선실험 후시행하시길...
<안동국시>
시의 내용에 나오지만, 여미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고 생각한다. 안동국시는 밀가리로 반죽해야한다. 밀가루 말고... 그것도 모르면서 시인이라고... 예컨대 구룡포의 해풍국수. 밀양 수산국수, 구포국수가 그렇다. 그러나 잘못 삶으면 모두 여미지 못한다.
<와신상담>
드러누워서 교만하게 찾아온 손님의 사연을 상담해 준 자신을 성찰하면서(와신상담의 나만의 해석이다. 딴지 사절~), 자세를 고쳐 앉아(시를 보니 분명히 앉아있는 자세다), 스스로 뜬(rising) 별이라 착각했던 자신을 다시 키우는(raising) 과정이 아닐까? 省察의 省은 아무리 작은 것(小)이라도 매일 같이(日) 돌아보는 것이므로... 그래도 매단 것은 너무 했다...고 생각한다.
<발자국 꽃>, <틈새>, 그리고 <새의 어원>
어쩌면 가장 강한 것은 유리가 아닐까. 보호하면 가강 강한 것이 된다. 유리창이 비바람을 막아주는 것은 우리의 보호에 대한 공생이다. 틈도 새고 새도 틈이다. 이 둘은 따로 놀지 않는다. 틈이 새를 새가 틈을 서로 메워준다. 그래서 틈새는 ‘사이’가 좋다.
<상처의 맛>
감히 패러디 해본다. 습작이려니 생각하고... (습작: 배껴 씀!) 어려운 말로 표절이라고 한다.
맞짱 뜬 자리
어설픈 주먹질에 생긴 꾸둑 살은 다 아프더라니
<뿌리>
어려운 말로 ‘리좀’이라는 게 있다. 콩나물은 물을 주지 않으면 곧 시들지만, 콩나무는 물을 찾아 나선다. 쓸 데 적은 것 찾느라고 매일 어딘가로 나서는 나에게 조용히 타이르는 셈이다. 좀 챙겨라 나와 너를...
<콩 타작>
콩 타작은 두 번 이루어진다. 추수 후의 타작(打作)과 볶을 때의 타작(打炸)으로... 처음은 자신을 살리는 것이고, 다음은 모두를 살리는 것이다. 콩은 뜨거우면 스스로 돌아눕는다. 원만구족하니까. 콩 많이 먹자.
<세워 귀!>
귀는 대개 세울 수 없다. 반자율신경계이므로... 다만 기울일 수는 있다. 시인의 세워는 귀를 기울이자는 말이다. 세우고 기울이는 것은 반대말이 아니다. 배려고 겸손이다.
<홍수 뒤>
정수윤 선생이 번역한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를 보니, ‘뿜어 낸다’의 강릉 사투리는 ‘꿈어 낸다’라고 한다. 넘치는 것보다 품는 게 낫다.
<절명>
이제하 작사작곡의 <모란 동백>이 생각났다. 조영남의 그것보다 낫다. 선운사 뒷간의 똥 떨어지는 소리처럼 뚝하고 깔끔하게!(안도현, <동백꽃 지는 날>)
<한 술의 생애>
뜨다가,
뜨겠지.
밥과 관련된 동사 중에 ‘들어가진다’라는 게 있다. 이 동사는 수동형일까? 사역형일까? 자발형일까? 타동사든 자동사든 모두 일생이다.
<문, 門>
묻기도 하고(問), 듣기도 하는(聞) 통로이다. 그래도 입은 가끔 닫고, 귀는 자주 열고...
<먼나무>
제주도에는 호남에서 오신 분들도 많다고 한다...
<관념론과 유물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관념론이고,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다’는 유물론 일까?
변증은 갈라치지 않고 보편 속에 특수가 관철되는 것이다. 시인도 그러하다.
<무릎>
고흐가 네델란드 시절에 그렸던 소묘들인 <슬픔>과 <노인>이 떠올랐다.
<별똥별>
내 눈에 와 닿는 저 별빛의 출발 시간은 모두 달라서, 내 눈에 막 닿은 이 별빛의 별은 이미 사라지고 없을 수도... 별이 내게 달려온 그 사연을 물어볼래도 이미 사라졌을 별은 어디서 찾나... 별은 내 가슴에?
<명저>
저자에게 가장 큰 혹평은, ‘서문이 가장 좋았어요’이다. 사람도 그렇다. 고전은 가장 오래 살아남은 책이다. 좋은 책은 형용사가 수식하는 것이 아니라 동사가 만든다.
<새소리에 깨다>
‘있을 것이다’와 ‘있을 것이었다’... 전자는 장차 겪을 일들에 대한 짐작이고, 후자는 겪었지만 세월이 지난 추억의 반추다. 미래까지 끌고 간다. 토씨 하나에 세월이 들어있는 셈이다.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이를 ‘정서구조’라고 했다.
<발설: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
소수서원과 선비촌, 그리고 부석사는 다녀왔지만 정작 청다리는 생각도 못했다. 방방곡곡에 널린,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의 진원지라고 한다. 참담한 역사가 담겼다.
<배꼽의 기원>
임인년(1962년) 1월 1일, 정부는 공용 연호를 단기(檀紀)에서 서기(西紀)로 변경 시행했다. 배꼽이 사라졌다... 시인은 배꼽을 얻었고...
<내 아우>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동생에게 병이 나면 상당히 아프다....
<구녕, 口寧>
사실주의의 기치를 올린 화가,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이 생각났다.
<똥줄이 탄다는 말>
제 3자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앉아서 사색(思索)에 빠져있는 동안 바깥사람은 사색(死色)이 됩니다...”
<청개구리 손님>
청개구리는 억울하다. 내 맘과 다르게 또는 반대로 행동하는 것은 사실 청개구리가 아니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개골개골 하는 것은 저간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우는 것이다. 뒤늦은 후회지만...
<파도의 발톱을 보았는가?>
몇 년 전 남해 물건리 앞바다에서 아래와 같은 소회를 남겼다.
저 먼 바다에서/ 거품 품으며/ 마구 달려와/ 입맞춤했지만/ 모래만 받아주더라.
<사랑>
실마리를 찾으려다 실타래로 들어가는 것
<어떤 투신>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일상>
일상은 잔잔한 수면 같지만(오이 사이소 오이) 그 속에는 사건과 사태가 있고(구급차 지나가는 소리), 종국에는 역사가 된다. 다니카와 슌타로도 자신의 시에 이런 말을 남겼다.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누가 무엇을 하든 그 짧은 시간 안에 ‘영원’을 품고 있다.”
<노인>
나이는 먹는 것도 있지만 드는 것도 있다. 동안보다는 동심이어야 나이가 들고 노인이 된다.
<원고청탁서>
정은문고에서 나온 <작가의 마감>을 단 네 줄로 요약한 시다.
* 시집 [슬쩍]을 읽으며 든 나의 생각들을 독후감으로 남겨보았다. 좋은 시를 길어 올려준 오인태 시인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