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읽었던 초파리 돌보기 초파리란 생물학적으로 볼때 여름철 음식물에 들러 붙는 아주 싫은 해충이라 할 수도 있다. 이런 초파리가 소설속 중요한 서사가 되니 작가는 모든 하찮은 미물도 관찰이 필요 하다는 생각.
원영이 직업을 갖고 싶어 했지만 경력 단절의 50대 여성인 그녀에게는 자신의 책상이 있는 직장을 구하기 어려웠다. 텔레마케터로 일할때 하루 9시간을 헤드셋 너머의 사람들이 비록 쌍욕은 안했지만 이 부분에서 정신 감정노동을 하는 노동자들믜 심정을 이해 할수 있었다. 사람들은 눈 앞에 보이지 않는 대상에 대해 험담과 욕설을 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경우도 있다.
원영이 초파리 실험실에서 일하게 되고 모르는 학생들 틈에서 학식을 먹고 점심 시간 산책을 하는 것이 직장인들의 자신만이 가지는 소소한 행복처럼 느껴 졌다.
원영이 페기처분될 초파리들을 가지고 와서 딸인 지유에게 주는 장면이 징그럽게만 느껴지는 벌레가 소설속으로 반짝거리며 들어왔다.
장면이 바뀌어 원영의 딸 지유 소설가가 된 권지유의 엄마인 이원영을 만나러 가는 장면과 지유가 출판사 미팅을 잊는 장면은 한가지에 몰두 하는 오로지 소설속 인물과 서사에 온 신경을 곤두세워서 주변을 잊는 작가의 프로 의식을 엿본다.
전업작가로 살아가는 고충을 트렌드에 맞는 글을 써야 하는 작가의 소명이 그리고 독자를 늘 의식하고 써야 하는 일까지.
원영이 지유에게 자신이 겪은 초파리를 돈보는 실험실 이야기를 들려 주는 부분은 소설은 단순하게 머릿속에서 연결되지는 않은 느낌. 지유가 원영의 기억을 더듬어 원영의 병이 산업재해로 재 해석 되ㅣ는지에 대한 것들이 지금 산업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처럼 생생 하다.
지유의 엄마는 내 소설이 부끄러워 이부분이 언제쯤 나의 작품을 가족들에게 특히 가장 가까운 엄마에게 읽힐까 하는 작가의 탄식이 들어 있는 듯 했다. 소설은 지유는 원영의 병명을 노화로 인한 것인지 산업재해에서 오는 어떤 병증인지 알지 못한다고 끝을 맺는다. 다만 원영의 소원대로 지유의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임솔아의 초파리 돌보기는 중년여성 특히 특별한 재능이나 고학력이 아닌 경력 단절의 주부가 대한민국에서 직업을 갖기는 어렵다는 사실 한가지와 초파리나 쥐 같은 실험을 하는 실험실에서 일하는 직군의 환경을 돌아 보게 하며 작가란 직업에 대해 독자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준 작품이라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