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주춧돌”
기초(基礎)와 기반(基盤)을 마련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만큼 가장 힘겹고 오래 걸립니다. 건물만이 아니라 건강하고 올바른 인격과 인생을 건축하는 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성당을 짓거나 입주하게 될 아파트를 보고 있으면 ‘빨리빨리 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현장에서 보면 참 더 더디게 기초와 기반 공사가 진행(進行)된다고 여겨지게 됩니다. 그러나 일단 기공(起工)이 되었다면 더디게 보이지만 사실 설계사와 건축사, 감리와 감독, 그리고 시공사는 각자의 몫에 맞는 공사를 진척(進陟)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건강하고 올바른 인격과 정체성을 갖추어, 참되고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빨리빨리’ ‘ 더 높이 더 많이’ 무언가를 이루는 것보다, 그렇게 드러나게 될 행복한 인생의 건물을 지탱할 기초와 기반이 어린 시절부터 좀 더디고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차근차근 밟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 청소년들의 윤리적 도덕적 문제들에 대하여 그 원인과 치료방법을 의학자와 교육학자와 심리학자들이 한 목소리로 ‘가정’이라는 곳에서 찾고 있습니다. 건강하고 올바른 인격과 정체성을 지니고 각자의 몫을 제 때에 제 자리에서 발휘할 수 있는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가정에 있다면, 비록 힘들고 불편하고 쑥스러워도 한 사람으로서 그 자녀는 더딘 것 같지만 건강하고 올바른 인격과 정체성을 갖추어 참되고 행복한 자기 인생을 지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아이에게는 부모의 존재 자체를 비롯하여 부모의 인격과 정체성이 장차 성숙하고 성장하게 될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의 주춧돌이요 기초이며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에페 2,20-22)”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비신자 때부터 2-3년을 신앙생활하면서 신앙이 더디고 힘들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따져보면 당연한 것이고 긍정적인 현상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고, 죄를 끊고 교회의 신앙을 고백함으로써 분명 우리의 영적인 정체성은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육신과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육신과 정신이 영적인 정체성을 올바로 드러낼 수 있기 위해서는 수련(修練)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아닌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춧돌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수련, 하느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님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직접 보고 듣고 증언하였던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받는 수련, 교회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공동체적인 조화와 협력을 할 수 있는 사랑과 봉사의 수련이 필요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 토마스 사도는 오늘 상실과 의심을 통해 죽으신 예수님이 아닌, 부활하여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춧돌로 품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인간적으로 기대했던 예수님께 대한 모든 이상과 현실은 깨지고 말았지만, 성령과 동료 사도들의 도움으로 오로지 그리스도 예수님만이 신앙의 주춧돌이 되는 절대적이고 완전한 믿음의 사도로서 새롭게 지어지게 된 것입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곧 보지 않고도 살아계신 하느님과 그분의 아들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어 행복한 삶을 이룰 복된 믿음의 사도로 신축(新築)된 것입니다.
완전하고 흔들리거나 깨지지 않는 견고한 신앙을 간직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버리고 그리스도 예수님만을 주춧돌로 여기는 토마스 사도와 같은 수련의 과정은 필수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삶으로 드러나야 하는 것은 내가 아닌 가장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그리스도 예수님과 그분의 사랑>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