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문공은 귀국하고 나서 대부들과의 술자리를 마련하고는,
구범(咎犯)을 불러 대장군으로 삼고 애릉(艾陵)을 재상으로 삼은 다음, 둘 에게 백만의 토지까지 하사했다.
그런데 개자추(介子推)는 작위를 받지 못한 채, 나이 순서에 따라 자리를 잡고 있어야 했다.
술잔이 세 번 돌자 개자추가 술잔을 받들고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
“용감하고 뛰어난 용 한 마리가 있었는데,
제 자리를 잃고 헤매자 그를 따르는 뱀이 두루 천하를 모시고 돌아 다녔습니다.
그런데 용이 깊은 못으로 들어가 편안한 자리를 찾고 나자,
뱀은 기름기가 바짝 마르도록 혼자서 단비 한 번 맞지 못하니, 이는 무슨 뜻입니까?”
문공이 대답했다.
“아! 과인의 잘못입니다. 내 그대에게 작위를 내릴 것이니, 새벽에 아침을 기다리듯 곧 이루어 질 것입니다.
또 내 그대에게 전지를 줄 것이니 하수와 동양사이의 땅을 내리겠습니다.”
그러자 개자추가 이렇게 말했다.
“제가 군자의 도를 듣기로, 말을 해서 얻을 자리라면 도 있는 선비는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며,
또 다투어야 얻을 수 있는 재물이라면 염치 있는 선비는 받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문공은 다시 이렇게 달랬다.
“내가 이렇게 나라를 되찾아 귀국할 수 있도록 해 준 사람은 바로 그대입니다. 내 장차 그대의 명예를 성취시켜 드리리다.”
그러나 개자추는,
“제가 군자의 도를 들으니, 아들로서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지 못한 자는 감히 그 후손이 될 수 없고,
또 신하로서 임금의 뜻을 읽어내지 못한 자는 감히 그 조정에 설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보면 저 자추 역시 천하에서 더 이상 찾을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고는, 마침내 개산으로 떠나버렸다.
문공은 사람을 보내 그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자 이를 안타깝게 여겨,
3개월이나 자신의 잠자리에서 자지 않고 1년이 넘도록 그의 이름을 불렀다.
시에 “떠나련다. 너를 두고 저기 낙원 찾아가리.
저 낙원에는 누가 그리 슬피 울리”라고 하였으니, 이 경우를 두고 부른 노래이다.
문공은 기다려도 그가 나오려 하지 않고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게 되자, “그 산에 불을 지르면 나오려니”하였다.
그러나 산에 불을 질러도 개자추는 끝내 나오지 않고 도리어 불에 타 죽고 말았다.
✼ 개자추(介子推): 춘추시대 春秋五覇의 하나인 진 문공을 망명생활 때부터 모셨던 인물.
문공이 굶주렸을 때 허벅지 살을 베어 먹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로 寒食의 故事를 남겼다.
그러나 기록과 표현은 典籍마다 각기 다르다.
✼ 개산(介山): 개자추가 숨었다가 죽은 산. 지금의 山西省 介休縣 綿山.
-《신서(新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