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처서(處暑)'입니다.
그런데 새벽까지만 해도 안 그랬는데, 아침 나절 무슨 일인지 여름보다 더한 더위에 저는,
나를 이 세상에 살려두려면, 제발, 이 여름에서 벗어나게 해 줘! 하고 누군가에게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르면서 화풀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정말 너무 후텁지근해서 미칠 것 같드라구요.
물론 단 한 순간에 이 빌어먹을 여름이 가고 시원한 가을이 오지는 않겠지요.
제가 아무리 안달복달해도, 더위에 지친 제 몸을 갑자기 풀어줄 상황의 도래는 없을 것입니다.
그저 조금씩 조금씩,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은근 슬쩍 더위는 가게 되겠지요.
근데요, 오늘은 바둑 중계가 있는 날이거든요?
'바둑 올림픽'이라는 4년마다 열리는 가장 상금이 많은 세계 대회인 ‘응씨배’ 결승 2국이 있거든요.
그저께 1국에서 '신진서'가 이겨서, 오늘 이기면 챔피언이 되는 날이라...
아무리 더워도, 바둑에 빠져 있으면 그 더위를 잊으리라...... 하는 희망은 가지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그 걸 보기 위해(11시 반), 그 전에 청소라도 좀 해두고 싶었답니다.
그렇잖아도 더운데, 집안이 지저분하면 더더욱 정신이 혼란스러워서 그렇기도 하지만,
뭔가 좀 깔끔한 환경에서 바둑을 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였지요.
그래서 베란다 물청소부터 시작하여, 대청소는 아닐지라도 방도 어느 정도 쓸고 닦고... 샤워까지를 한 다음,
요즘에 한창 작업 중인(새벽에 일어나서도 작업을 했었거든요.) '파타고니아 풍광'을 보면서 바둑 시작을 기다렸답니다.
그 때까지는 더웠습니다. 내내 하늘은 시커맸는데, 비는 내리지 않은 상태로요.
근데요, 그 사람을 잡아먹을 듯하던 후텁지근한 더위는, 마치 ‘폭풍전야’와도 같은 것이었던가 봅니다.
왜 그렇잖습니까?
폭풍이 불어오기 직전, 전조증상처럼 아주 평화로운(그러면서도 불안한) 상태요.
그러니까 비가 오기 직전(어쨌거나 비가 오면 시원해지기는 하니까), 있는 대로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던가 봅니다.
아침 10시 반이 넘어가면서 빗소리가 들리더니, 바람도 함께 불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더위가 싹 가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 신기하고도 너무나 신통방통해서 저는 한참을 비내리는 모습을 바라보기까지 했는데요,
정말, 이 세상은 살 만한 상황(조건의 날씨)으로 확 뒤바뀌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쾌적한 분위기에서 바둑 중계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바둑을 보느라 다른 건 신경도 별로 쓰지 못했지만,
저녁 무렵이 되면서,
23살 청년 신진서가 중국 '세커'라는 동갑네기를 불계승으로 이겨,
세계 챔피언이 되었답니다.(이제 세계 메이저 대회 5관왕이 되었지요. 물론 지금 세계 1인자이기도 하구요.)
저 역시 지친 몸으로(바둑을 보면, 보는 사람도 지칩니다. 그런데도 바둑을 보게 됩니다.) 저녁을 먹고,
하루 종일(오늘은 낮잠을 못 잤기 때문) 컴퓨터 모니터를 보았기 때문에, 조금 일찍인 7시 경에 잠잘 준비를 하는데,
어? 오늘은 정말... 너무 잘 보냈네!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드는 것이었습니다.
요근래 근 한 달 정도를, '무더위'와 '열대야'로 나른하고 몽롱한 느낌으로 지내왔던 것 같은데,
모처럼 오늘은 뽀송뽀송한 피부와 제법 또렷한 정신상태로 하루를 보냈던 것입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뭔가 정상적인(살아가는 느낌의) 삶의 모습이 분명했던 것입니다.
잠도 제법 쾌적한 상태로 잤고,
첫잠에서 깨어나서도(밤 10시 반) 별 갈등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제 일을 하게 됩니다.
요즘, 그림 앞에서 멍- 하니 앉아있곤 했거든요.
정신집중도 안 되고, 또 어떻게 풀어나갈지... 정리가 안 돼서요......
아, 단 하루 사이에 저는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느낌입니다.
요즘 더워서, 그저 한밤중에(그래도 하루 중 제일 기온이 낮을 때) 잠깐씩,
그것도 웃통을 벗고(빤스 바람에) 겨우 의무적으로 그림에 손을 대왔던 것에 비한다면(아래),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물론 이 비가 개면('가을 장마'라던가요?) 잠시 또 더위가 기승을 부리겠지만,
그래도 이전 같은 더위는 아닐 것입니다.(제 희망사항이지요.)
이 정도만 돼도,
아,
살 것 같습니다.
첫댓글 며칠 째 늦장마로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오늘까지 내리고 다음 주 월,화,수까지 내리고 나면 제법 가을 냄새가 나지 않을까요?
올 여름 폭염과 싸우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디 저만 그랬을까요? 모두가 힘든 여름을 보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