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2장]
15 너희 유다의 남은 자여 이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만일 애굽에 들어가서 거기에 살기로 고집하면 16 너희가 두려워하는 칼이 애굽 땅으로 따라가서 너희에게 미칠 것이요 너희가 두려워하는 기근이 애굽으로 급히 따라가서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을 것이라 17 무릇 애굽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는 모든 사람은 이와 같이 되리니 곧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것인즉 내가 그들에게 내리는 재난을 벗어나서 남을 자 없으리라 18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나의 노여움과 분을 예루살렘 주민에게 부은 것 같이 너희가 애굽에 이를 때에 나의 분을 너희에게 부으리니 너희가 가증함과 놀램과 저주와 치욕거리가 될 것이라 너희가 다시는 이 땅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도다 19 유다의 남은 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를 두고 하신 말씀에 너희는 애굽으로 가지 말라 하셨고 나도 오늘 너희에게 경고한 것을 너희는 분명히 알라 20 너희가 나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보내며 이르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전하라 우리가 그대로 행하리라 하여 너희 마음을 속였느니라 21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너희에게 명하신 말씀을 내가 오늘 너희에게 전하였어도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도무지 순종하지 아니하였은즉 22 너희가 가서 머물려고 하는 곳에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줄 분명히 알지니라
[설교]
어제 말씀에서 유다의 남은 자들은 예레미야에게 기도 요청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기도 요청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당시 유다의 남은 자들은 애굽으로 이주하려 했습니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바벨론의 침략을 피해, 애굽에 투항하여 숨어 있으려 했지요.
하지만 이러한 저들의 생각과 달리, 하나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유다의 남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저들의 생각에 적극 지지해주시길 바랬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에게 기도 요청했지요.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어떻습니까? 저들의 생각과 달리,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1다른 말씀을 주십니다. 어떤 말씀일까요?
본문 15절입니다. “너희 유다의 남은 자여 이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만일 애굽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살기로 고집하면.” 17절, “무릇 애굽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는 모든 사람은 이와 같이 되리니 곧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것인즉 내가 그들에게 내리는 재난을 벗어나서 남을 자 없으리라.”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아주 무시무시한 말씀으로, 유다의 남은 자들에게 경고하십니다. 그리고 이 경고는 달리 설명할 필요 없이 명쾌하지요. ‘너희는 절대 애굽으로 내려가면 안 된다!’ 아예 못을 박으십니다. ‘거기에 들어가면 너희는 무조건 망한다! 다시금 칼과 기근과 전염병이 너희를 칠 것이다!’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이때 칼과 기근과 전염병은 하나님께서 남 유다의 멸망을 경고하실 때, 주로 반복되었던 재앙입니다. 사실상 칼과 기근과 전염병은 그 나라가 맞게 될 철저한 패망 혹은 심판을 가리킬 때 주로 쓰이는 말이지요. 따라서 오늘 이 말씀에서 하나님이 애굽에 들어가고자 하는 백성들을 향해 경고하신 것은 당연히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남 유다에 내려졌던 패망의 그림자가 동일하게 이후 애굽에도 드리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실제로 후에 애굽은 바벨론의 뒤를 이은 페르시아에 의해 완전히 패망하게 됩니다. 어쩌면 바벨론에 끌려갔던 사람들보다 더욱 혹독한 심판이 애굽에게 닥쳐올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전혀 알 리 없었던 유다의 남은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경고하십니다. ‘너희가 지금은 애굽이 강성해보이고, 애굽을 의지하고 싶지만, 그러나 너희가 거기로 들어가면 반드시 패망하리라!’ 명명백백히 말씀하시죠.
그러나 우리가 내일 본문을 통해서도 보겠지만, 결국 이 사람들은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애굽에 내려가선 안 된다 경고하셨지만, 끝내 이들은 고집을 부리죠. 본문을 보면 ‘고집’이란 말이 두 번이나 반복되는데(15, 17절), 말 그대로 이 사람들은 고집불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결국 제 고집대로 살 것?! 뭣 하러 기도 요청했을까 싶을 정도로 이 사람들은 고집스런 자들입니다.
또한 이 사람들은 어제 본문에서도 살펴보았듯이, 거짓말쟁이들입니다. 어제 본문에서 이 사람들은 분명히 이렇게 맹세했습니다. 예레미야 42장 6절,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결국엔 자신들의 맹세를 스스로 어기게 만듭니다. ‘애굽에 내려가선 안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이 사람들은 곧바로 자신들의 맹세를 엎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0절에서 예레미야는 이 사람들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엄히 책망합니다. 본문 20절, “너희는 스스로 우리가 그대로 행하리라 하였으나, 너희는 너희 마음을 속였느니라.” 너희는 너희 마음을 속였느니라?! 바꿔 말해 너희는 말로는 순종하겠다하면서, 돌아서면 말을 바꾸는 거짓말쟁이들이냐?! 이렇게 예레미야는 이 사람들의 이러한 악함에 대하여 책망하고, 저들에게 경고를 반복합니다.
따라서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우리 역시 범하기 쉬운 이 이 죄의 기만성에 대해 다시금 돌이켜봐야겠습니다. 죄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 중 하나는 언제나 ‘자기기만’이란 문제가 있습니다. 자기기만이란 말 그대로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나는 순종하겠습니다!’ ‘나는 하나님 말씀 잘 듣겠습니다!’ 겉으로나 속으로나 이렇게 외칩니다. 하지만 돌아서면 어떻게 합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 순종이 불순종이 되고, 말씀에 대하여 겸손했던 모습이 어느새 교만이 됩니다. 이럴 때 자기기만은 우리 안에서 어떻게 작용할까요? ‘내가 언제 그랬는데?!’ ‘내가 언제 불순종했는데?!’ ‘내가 언제 교만했는데?!’ 이렇게 스스로를 계속 속입니다. 전혀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스스로 계속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입니다. ‘나는 괜찮아!’ ‘나는 잘하고 있어!’ ‘이 정도면 괜찮잖아!’ 이렇게 하면서 도무지 부려서는 안 될 악성 고집을 부리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죠.
이러한 점에 있어서 오늘 우리는 어떠한지 스스로 돌이켜보십시오. 또한 오늘 우리 교회 전반적인 분위기는 또한 어떠한지 잘 돌이켜보십시오. 그래서 이러한 점에 있어서 우리 각자와, 교회 모두가, 정말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깨어있길 위하여 이 시간 함께 기도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