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과 복고 사이에서 문화적 코드 실험
지적 모험 가득한 신서정의 세계로 귀환
김태형(42) 시인은 웹 디자이너와 서버 관리자까지 1인 3역을 해내는 멀티 플레이어이다. 고려대 문예창작학과를 서른 중반에 졸업하기까지 그는 짧지 않은 세월을 고교 졸업 학력으로 살았다. 대학에 가기 위한 공부보다는 시와 소설이 더 좋았고 학교라는 제도와 규율이 싫었다.그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고교 1학년 때 누나의 타자기를 만지면서부터이다. 타자기를 장난감 삼아 놀면서 불쑥 무언가가 쓰고 싶어졌다.
그는 만 스물두 살이던 1992년 계간 ‘현대시세계’ 신인 공모에 당선되면서 시인이 됐다. 그리고 장석주 시인에게 286노트북을 얻으면서 컴퓨터를 처음 접했고, 94년엔 486노트북을 구입해 각종 소프트웨어를 다운받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97년 정보제공업체(IP) ‘초록배 카툰즈’에 들어가 대중문학잡지 ‘엑스칼리버’ 기자로 일하다 같은 회사에서 만드는 문화웹진 ‘X-zin’ 편집장으로 일했다.
당시 그는 사이버펑크 시인으로 통했다. 김태형이라는 이름 대신 펑크시인 ‘이은’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이듬해 회사를 나와 국내 최초의 문학웹진이라 할 ‘offoff’를 창간한다. ‘offoff’는 3년 뒤 문을 닫았지만 그의 웹 노하우는 지금도 문단에서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다. 게다가 서울 홍익대 앞과 신촌을 중심으로 록카페가 부흥기를 맞았던 90년대 후반에 그는 록 음악에 심취했다. 서정이 담보했던 시적 몸체를 메탈 사운드의 즉물적인 금속성의 서정으로 대체하고 싶었다. 첫 시집 제목을 ‘로큰롤 헤븐’(1996)으로 정한 것은 그 때문이지만 이 시집의 가치는 금속성 비트의 울림에 있는 게 아니라 착 가라앉은 서정성에 있었다.
“오직 견뎌내는 일 견뎌내면서 서서히/ 밑으로 더 아득한 심해 속으로 숨차 오르는 일/ 그래 무겁다는 것은 얼마나 숨 가쁜 일인가/ 가슴 죄는 일인가 허파를 가지고 있다는 이 사실은/ 그 얼마나 솟구치는 벅찬 설렘인가 이 고요는”(‘노란 잠수함’ 부분)
김태형은 ‘노란 잠수함’에서 “아아 이제 이 흔들림은 너무나도 편안하다”고 노래했다. 그건 20대 중반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도 어른스러운 말이었다. ‘무겁다는 것은 얼마나 숨 가쁜 일인가’라는 구절은 돌아오지 않는 결핍의 청춘기에 대한 진솔한 고백인 동시에 모든 인간은 허파를 가지고 있다는 보편적 사실을 상기시킨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이 인식은 록 음악의 격정적인 비트 속에서 찾은 것이기에 더욱 빛난다.
하지만 그는 너무 빨리 등단했고 너무 빨리 실험을 했다. 첫 시집 이후 몇 년간 절필하다시피 하면서 첨단과 복고의 끊임없는 길항 관계에 골똘했던 그는 서정적 모험을 중시하는 그만의 시적 코드로 돌아온다. 그에게 서정이란 결코 고전적이거나 낡은 것이 아니다. 서정적 코드와 문화적 코드의 접점에서 그는 이른바 지적 모험으로 가득한 시를 선보이고 있다. 이전엔 거친 호흡을 따라갔다면, 이제는 이미지들이 안으로 집중되면서 소용돌이치는 상징의 힘에 몸을 맡기고 있는 것이다.
“수 킬로미터 떨어진 또 다른 무리와/ 젊은 수컷들을 찾아서/ 코끼리는 멀리 울음소리를 낸다/ 팽팽한 공기 속으로 더욱 멀리 울려 퍼지는 말들/ 너무 낮아 내겐 들리지 않는/ 초저음파 십이 헤르츠/ 비밀처럼 이 세상엔 도저히 내게 닿지 않는/ 들을 수 없는 그런 말들이 있다/ (중략)/ 들을 수 없는 말들은 먼저 몸으로 받아야 한다는 걸/ 몸으로 울리는 누군가의 떨림을/ 내 몸으로서만 받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코끼리 주파수’ 부분)
그는 지난해에 이어 오는 14일 몽골 고비 사막으로 떠날 계획이다. 아무것도 없는 절대고독의 상태, 근원적인 세계와 마주하기 위해서다. 유난히 소리에 민감한 그가 어떤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될지, 여행 이후의 시편들이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