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안타까운 목숨이 채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저물었습니다.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차세대 스타로 꼽히던 최숙현(만22세) 선수의 사연입니다. 소속팀 지도자와 선배들의 폭력과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에 나선 상태입니다.
고 최숙현 선수는 지난달 26일 머무르던 부산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고인은 숨지기 직전 어머니와의 메신저 대화에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또 고인이 남긴 훈련일지에선 "비오는 날 먼지나게 맞았다"는 글도 기록해 뒀습니다. 상습적인 폭행의 정황을 말해주는 녹취록도 남겼습니다.
이후 지인들의 제보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전현 팀동료들이 최숙현 선수를 애도하며 그간 벌어진 일들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끊이지 않는 체육계의 그릇된 관행 무엇이 문제일까요?
최숙현 선수 측 주장에 따르면 최 선수는 감독과 팀닥터로부터 상습적인 폭행과 욕설에 시달려왔을 뿐 아니라 체중 조절을 이유로 수시로 굶어야 했습니다. 한번은 몰래 빵 하나를 먹었다가 20만원 어치 빵을 사와서 혼자 먹는 이른바 '식고문'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슬리퍼로 뺨을 맞는 모욕적인 처사도 당해야 했습니다. 현재 최 선수의 소속팀 감독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부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 선수 측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명백한 강요와 폭행, 상해 혐의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론은 최 선수를 안타까운 선택으로 몰고 간 지도자들에게 이보다 더 무거운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 선수가 폭력과 가혹행위에 못이겨 극단적인 선택을 한 만큼 위력에 의한 자살교사나 방조죄가 성립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많습니다.
아쉽게도 폭행과 가혹행위가 인정되더라도 자살교사나 방조 등의 혐의를 적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위계에 의한 자살결의죄를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데요. 자살결의죄의 형량은 살인죄에 준합니다. 자살의 의사가 없는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만든 만큼 살인에 준한다고 보는 겁니다. 그만큼 자살결의죄 성립 요건은 매우 까다롭습니다.
앞서 법원은 "위력자살결의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에 대한 폭행이나 협박 등의 위력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여 피해자가 그 의사결정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거나,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하여 피해자가 자살 이외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극히 곤란한 상황에 처하여 자살에 이를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폭행이나 협박이 극단적 선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경우에 한해 이 죄가 성립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고인이 가해자들로부터 의사결정능력을 완전히 상실했거나 극단적 선택이 아니면 곤란한 상황에 처해질 수 있다는 점 입증이 관건인데 현실적으로 인정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만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이하 폭력행위처벌법)에 따라 가중처벌은 가능해 보입니다. 형법상 강요나 폭행 혐의가 2명이상 공동으로 이뤄졌다면 형법에서 정한 형량의 2분의 1까지 가중할 수 있습니다.
이신광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서 알려진 내용이 사실이라도 결국 폭처법 이상의 혐의 적용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면서 "다만 죄질이 매우 불량하고 피해자가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점 등은 형량에서 크게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