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한 분의 말씀으로 세상과 싸워 이기는 게 신앙.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세기 3:1~6)
위의 말씀에서 보시다 싶이 사람이 살면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 바로 하나님이 금하신 모든 일들에 대해 인간 육신의 육감(肉感)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이도록 하는 불신의 생각입니다. 즉 부모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것에 대해 자식들이 도리어 먹음직스럽게 생각하도록 하는 반골 정신은, 그것이 맛있게 생겼는데 왜 먹지 말라 하실까 하는 의심이며, 보지 말라는 것들에 대해 도리어 보암직하도록 유혹하는 것 또한 이쁘게 생겼는데 왜 보지 말라 하실까 하는 반발적인 태도이며, 또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데 대해 그런 일을 금지할 때에는 그 일이 자신이 보기에는 가장 재미 있는 일들로 생각되도록 합니다.
온 인류는 하나님이 하신 대부분의 말씀들에 대해 이 같이 육신의 육감적인 반응에 휩쌓여 재단(裁斷)해 대처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금하신 모든 일들에 대해 대부분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이고 느껴져 반발(의심, 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경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기 육신의 육감(肉感)이 그것을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이는 쪽으로만 반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역반응에 대한 결과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결론지어 질 뿐, 세상의 그 어떤 것들이나 행동도 인간 육신의 육감(肉感)이 예측한대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영생하고자 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만, 영생하려는 뜻과 목적과 방법에 대해서는 인간 육신이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과는 전혀 다른 반대적인 방향으로 반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이 꿈꾸고 그려보는 생존의 뜻과 목적과 방법이 아무리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것들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이 뜻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반대 방향(방법)일 때에는 그게 바로 자기 원수가 매설해 둔 지뢰와 함정으로 취급해 반드시 피하여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로마서 8:6~7)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 육신의 육감으로는 아무리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것들로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그것을 먹으면(행하면) 죽는다고 하셨을 때에는 그 먹고자 하는 육적인 충동을 원수가 매설해 둔 지뢰들로 취급해 밟지 말아야 하고 그 대신 사력을 다해 피해야 합니다. 믿음이란, 인간 육신의 육감적인 생존의 뜻과 목적과 방법이,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생존의 뜻과 목적과 방법과 상반될 때를 대비해 하나님이 미리 가르쳐 주신 정당한 선택입니다. 즉 사람의 육감(肉感)으로는 아무리 시냇물이 맑고 청량해 보여도 그곳에 명시된 푯말이 오염된 물로 표시되었을 때에는 육신의 목마름을 강력히 자제해 마시지 말고, 푯말에 기록된 말씀을 믿음으로 따라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되는 인간 육신의 육감(肉感)은 하나님의 명령과 같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육신의 육감은 자신을 유인해 죽이려는 사단 마귀가 매설해 둔 지뢰와도 같습니다. 오늘날 인류 사회가 육신의 육감(肉感)에서 나온 뜻과 지식과 지혜로 자신들의 근본 조상을 규명하려는 짓과 또 우주만물의 실체를 규명하려는 일은 마치 갓 태어난 자식이 살아계신 아버지의 말씀은 불신하고 스스로의 지식과 지혜로 자신이 존재 원리를 규명하려 하고 또 주변 사물들의 실체를 규명하려는 짓과 같습니다. 그래서 인간과 만물은 자연적으로 발생되어 진화하였다고 우기며, 또 마귀는 하나님이 없어도 지상낙원만 조성하면 더욱 재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의 심령 속에는 하나님의 선(성령)과 마귀의 악(악령)이 항상 상충하면서 인간 육신이라는 최소 단위(규묘)의 국가와 영토를 서로 자신들이 주도해 장악하려 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인간 육신의 육감적인 뜻과 생각과 욕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도구 노릇만 하도록 제한시키지만, 간교한 사단은 인간 육신의 육감적인 뜻과 생각과 욕구를 최상의 것으로 존중해 주면서 인간 육신의 육감이 생각하고 마음 먹는 것 이 외의 다른 결과란 하늘과 땅 중에는 없으며, 이것만이 지고지순한 생각과 쾌락들이니 사람들은 이것들을 누리고 즐기는 일들에 필요한 자격, 곧 재물을 갖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충동질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육신을 친히 제작하셨기 때문에 인간 육신이 무탈하게 영존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말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기만 하면, 만물들 또한 그 사람의 말을 믿고 순종해 생필품들을 만들어 공궤하고 또 우순풍조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해 거역하면, 만물과 자연들도 그 사람의 말을 불신해 거역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인간들이 만물과 자연의 막강한 능력에 굴종하는 노예들이 되어 육신이 마모(소멸)될 때까지 의식주를 저들로부터 구걸하여야 하고, 그래도 하나님께 회개치 않을 때에는 만물과 자연들이 그들을 괴롭히는 주적 노릇을 하게 됩니다.
인간 육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아무 것도 없는 죽음의 무(無)에서 태어난 흙으로 조성된 육신의 육감은 죽어 없어지는 내리막 길만 즐겨 가려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육신에게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 주어도 사람의 육신은 자신의 근본 고향인 죽음의 내리막 길로 치달으려 할 뿐, 영생하신 하나님 쪽으로 힘들게 올라가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육신의 지식적인 차이는 그 어떤 수치로도 규명할 수 없을만큼 격차가 크기 때문에 질낮은 인간 혈육의 뜻과 생각과 지혜로는 도무지 하나님의 경지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피조물인 사람의 육신과 하나님의 영이 대면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 뿐입니다.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린도전서 1:19~21) 하셨고 또,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로마서 1:19~20) 하셨습니다.
인류 5천여 년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신 설교 내용은, 오직 자신을 믿어야 할 분임을 나열해 주신 지식입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 이후의 사람들에게는 더욱 믿음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셨건만, 저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사랑과 지혜로 더욱 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해 지키려 하지 않고 여전히 그리스도 이전의 멸망할 자식들처럼 육적인 부강으로 남들 위에 뛰어나고자 합니다. 즉 주어진 풍요와 지혜로 지상낙원을 만들어 음란방탕으로 불로장생하고자 합니다. 신앙인들마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치 않고 다만 세상적인 무력이나 권세나 법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려 하고, 또 이들로부터 탄생된 통치자들은 적그리스도의 영으로 예수님의 복음을 거역하도록 막습니다.
이런 때에 믿음 있는 자들은 강하고 담대하여 한 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 여론을 대적해 싸우나, 믿음이 없는 자들은 세상 시류에 휩쓸려 떠내려 갑니다. 하나님께로 온 믿음은 일기당세의 믿음으로 세상과 싸워 이기게 하나, 인간 육신으로부터 자생된 인본주의 신학(신앙)은 세상 불신자들과 함께 공생공존하려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유명 선각자들은 거의 다 일기당세의 믿음으로 세상 죄악과 맞서 싸우는데, 이 시대의 신앙인들은 육적인 다수로 참된 성도들과 싸워 이기려 합니다. 한 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만 하나님이 동행하실 뿐, 사람의 다수를 믿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동행할 수 없습니다. 한 분 하나님의 말씀만으로도 능히 세상 만민들의 헛되고 거짓된 이론과 맞서 싸우는 믿음이 바로 아름답고 순수한 성도의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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