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년생 화초[박이화]
마음을 비울 수 없다는 걸 아는데
반생이 걸렸다.
한쪽 눈만 감아도
원근이 달라지는 일이나
무심코 할퀸 손톱자국에
밤새도록
수억의 신경다발 뜬 눈으로 욱신거리던 일들
알고 보니
몸이 마음에게 보낸 절절한 위로
왜 몰랐을까?
사랑니 하나 빠져
잇몸 전체가 무너질 듯 흔들리는 걸
살점 한 조각 떨어져 나가
이렇듯 온 몸의 피가 거꾸로 몰리는데
어쩌자고
나는 너를 송두리채
뽑아버리려고만 했을까?
그 캄캄한 빈 자리
종양같은 검은 미움 꽉 들어차면 어쩌려고
오랫동안 시름시름
밑둥부터 썩어 들어가는 다년생 화초,
나는 끝내 뿌리 뽑지 않는다
내 몸이 마음을 달래며 그랬던 것처럼
* 일년생 화초와의 결별은 슬프지 않습니다.
일년생이라는 걸 알고 시작했기때문입니다.
다년생 화초는 해마다 꽃을 피우고 기쁨을 주었기에 변하지 않을거라 믿었습니다.
허나 나 몰래 밑둥부터 썩어들어가는 걸 몰랐습니다.
줄기 끄트머리가 뎅강 잘려나갈 때까지 몰랐던 걸 후회해봐야 소용없었습니다.
사랑을 주기만 하면 오래도록 살아서 꽃을 피워주는 줄 알았습니다.
안녕, 다년생 화초야.
첫댓글 내 안에 들어 있는 몇 뿌리의 다년생 화초들은 자주 내 몸을 아프게 하면서 내 마음을 달래고 있답니다. ... 뽑아 버릴 수 없다면 다독여야 하겠지요. 스스로 소멸할 때까지...
그러게요. 끄트머리 뎅강 잘려나갈 때까지.......^^*
죽었다고 더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서 버리려 했던 화초가 다음해 봄 게으른 주인을 위로하기 위해 살아서 지금까지 매년 크고 있네요. 물론 죽어서 버려진 것들이 더 많기도 하지만. 우리에 삶에도 그런 화초가 있지 않을까요. 안녕이라고 해야 할 것들과 나를 위로하기 위해 언젠가 살아날 것들이 내안에 동시에....
맞아요, 분명 죽은 화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듬해 봄에 싹이 나오면 큰 기쁨이죠. 누구나 그런 희망에 도전해봄직 하죠.^^*
`몸이 마음을 달래며 그랬던 것처럼.' 밑줄 그어봅니다 근데 왠 일이까요 락오페라 Jesus Christ Superstar에 나오는 "I don`t know how to love him."듣고 싶은 건
그 음악, 나마스떼에 올려주시죠, 기왕이면. ㅎㅎ
주페님은 내공이 깊으시구나. 난 일년생 화초화의 결별도 슬픈데...아무리 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들이 있어요. 단지 사는 일에는 내 의지와 소망을 벗어난 영역이 있다는 걸 알기에,어떤 일이든 지나갈 거라는 걸 ,또한 세월의 풍화작용을 믿기에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 뿐.I don`t know how to love him.저도 듣고 싶네요.
어떤 일이든 지나간다! 음, 좋은 말이예요. 플로우님~ 노래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