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강정숙 시인이 《아직은 조금 오래 그리워해도 좋을》 시조집을 냈다. 시집 한 권에 이어 시조집으로는 두 번째이다. 자주 시집을 내는 사람이라면 예닐곱 권은 낼 만한 세월인데 신중하다. 알알이 영근 낱알 같은 시의 행간에서 감동이 단비처럼 적신다. 시어마다 오래 묵은 장맛처럼 사물을 대하는 마음이 웅숭깊어 아득한 존재의 근원과 생명의 생래 적인 고독을 읽어내는 절창의 시편들에 며칠 잠 못 이루었다. 「연꽃이 질 때」, 「풀들의 무덤을 지나며」 두 편을 음미한다.
꽃 지는 장능리 보은당 연밭에는
홍련 백련 어리연 부레옥잠도 있는데요 한낮의 햇살에도 어
둑발 이는데요 쭈구렁 씨방들 말리고 있는데요 말려도 마르지
않는 슬픔, 언제쯤 마르나요 저 꽃들 몸이래야 물컹물컹한 걸
요 예까지 따라온 애달품 때문에요 쪄낸 줄기 같이 허무러진 자
태지만 뿌리에서 자아올린 연약한 날숨이 방문객 발소리에 잠
시 잠깐
못물에 흔들리다가
가만히 잦아드네요
―「연꽃이 질 때」 전문
누구나 연꽃이 피어 한창일 때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나 또한 일전에 왕송호수에 연꽃이 피었다고 해서 급히 다녀왔다. 다산이 쓴 죽란시사 서문에도 “살구꽃 필 때, 복숭아꽃 필 때, 국화 필 때, 늦여름 연꽃이 한창일 때”의 시절에 시회詩會의 모임을 주선하기도 했다. 그러나 강정숙 시인은 꽃이 지는 모습에 주목한다. 소멸해가는 것들을 사랑과 연민의 마음으로 세밀히 살핀다. 그것은 약하고 아프고 늙어 소멸해가는 인간의 슬픔마저 떠올리게 한다. 스러져가는 생명의 마지막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인의 생명 사랑의 미학을 읽는다.
조상하듯 늘어선 갈대 긴 행렬 뒤로 아늑한 구릉 사이 요철
같은 풍경은 풀들의 공원묘지다 쓸슬하고 돌올한
저 무덤 한때는 맹렬한 생명력으로 위로 오르거나 옆으로
퍼졌으리 뿌리를 쭉쭉 뻗어서 꽃 피고 씨 영글고
그들의 한철은 긴긴 생이었으리 숨 끝낸 것들에게 속엣
말 건네본다 비로소 조금 보인다 당신에게 가는 길
―「풀들의 무덤을 지나며」 전문
장마철에는 풀과의 전쟁이다. 밭농사를 하다보면 더욱 실감하게 된다. ‘꽃들의 무덤’이 아닌 ‘풀들의 무덤’이라니 더 눈길을 끌었다. “구릉 사이 요철 같은 풍경이 풀들의 공원묘지”라고 명명한다. 풀들에게도 절정이 있어 종족 번식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을 거란다. 그 풀들의 마지막 시간까지도 결코 짧지 않았을 것이라고, 다시 생명이 자라는 데 자양분이 되어주는 거름의 역할까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 무엇도 생명이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그들의 한철은 긴긴 한 생이었으리” 라고 생명 본질의 깊은 사유를 드러낸다. 우후죽순 자라나 사람에게 밟히기도 하는 풀이라지만 결코 의미 없는 삶이 아닌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비로소 조금 보인다 당신에게 가는 길”이 자연물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시적 진리가 절대자를 찾아가는 길이 아닌가 싶다.
_ 편집실에서 읽은 새 책 / 최연숙 시인 (생명과문학 편집위원)
첫댓글 오마나^ 최연숙시인님 감사합니다. 작가의 심중을 섬세하게 살펴주셨네요. 글이란 읽는 사람의 정서에 닿아 여러 해석을 유추하게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별스럽지 않는 글도 해석에 따라 귀한 글이 되기도 합니다. 많이 고마워요^
시집의 시 편편 사유의 깊이를 헤아리느라 한동안 시집을 놓지 못했습니다. 감동을 선사해 주신 강정숙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깊이를 다 헤아리지 못한 부분도 있겠으나 제가 읽은 만큼 글을 적어보았습니다. 좋은 시를 써주신 선생님이 계셔서 참 행복합니다. 늘 건안하십시오. ^^
아직은 조금 오래 그리워 해도 좋음
그러네요. 그가 나 비록 멀리한다 해도 가끔은 그리워지는 글들을 찾을길 없어 몇번이나 헤맸던지
지금은 글에서 멀어졌음에도 가끔씩은 그리워지는 그 향기, 이렇게라도 감사해요 구입 해 볼게요~
아유 반가워요.
좋은 시조가 멋진 리뷰를 만났네요.
덩달아 고맙습니다. ^^
노정숙 선생님 공감 댓글 감사드립니다.
9월에도 건안 옥필하시길 기원합니다.
축하축하드립니다.
제가 사는 동네의 용문도서관에서도 많이많이 사랑받길 기원합니다. ^^
저도 추천 도서 신청했습니다. 많은 사랑 받게 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