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전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몇군데 있는데
그중 하나가 초등학교 여름방학때 갔던 청주 비중리였다
어머니의 원적은 청원군 가덕면인데 북일면 비중리에는 큰이모님이 살고 계셨고
이종형님들이 서울 우리집에 자주 오셔서 몇달씩 머물다 가시곤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방학때 둘째 이종형님과 함께 그곳에 간적이 있었다
청주시내 형님 자취방에서 하룻밤을 자고 그다음날 아침 형님과 함께 청주고교
은사님을 찾아뵙고 내수까지 버스타고 가서 비중리까지 약 십여리 걸어갔다
형님의 시골집에는 이모님 내외분과 나이드신 시어머님도 함께 사셨고
그날저녁엔 마당에 모기불을 피고 모기장에서 잠을 청했다.
그다음날 형님과 초정약수에 가서 약수를 먹었는데 쓴 기억만 나고
저녁엔 집근처 비상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영화를 상영한다 하여 가서 봤는데
무슨영화인지 기억에는 안남는다. 다음날 저녁에 혼자 놀다가 거름통에 빠져
온몸이 거름 투성이가 됐는데 다행히 형님이 보시고 씼겨 주셨다
돌아오던날 형님과 이모님과 함께 내수까지 걸어 오며 개울물을 건너다
그만 물쌀에 휩쓸린적이 있었다. 이모님은 서울아이여서 허약하다
핀잔을 주었지만 이종형은 나를 얼른 구해주셨다.
대학졸업후 안기부에 필기와 체력검정에 합격하여 신원조회만 남겨놓았는데
외가집 호적등본을 띄러 청주 육거리시장 입구에서 부동산을 하시는
이종형님을 만나 오랜만에 비중 이모님댁에 가게되었다.
그다음날 가덕면사무소에 가서 어머니 호적등본을 띄어 제출하였지만 최종불합격하였다.
아마 아버님 고향이 이북이고 사촌형이 북한군으로 귀순한거와 관련있는것 같았다
그후 내결혼식에 그형님뿐아니라 다른 형님들 모두 와주셨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때
그형님은 장지까지 오셔서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셨다.
이제 어머님이 돌아가신지 20여년이 흐르고 그형님들과 그후로 만나보지 못했지만
어린시절 여름날의 그추억이 생각나 비중리에 재작년에 홀로 다녀왔다
청주는 많이 발전했고 내수까지 도시화됐지만 그마을은 그대로였다.
살아계시면 100세가 훨씬 넘으셨을 이모님은 안계실테고 팔십 내외가 되신
형님들도 그곳에 안사신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조용히 마을을 돌아다니다
인근 초정약수와 좌구산에 가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죽기전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몇개 안남았다
몇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수 있는곳이고 하나는 현실적으로 갈수 없는 곳이다
죽리고연(竹里孤煙)
저물녘 난간에 기댄 늙은이
아득한 들녘 흥취에 끌리네
성긴 수풀에 지는 해 비꼈는데
쓸쓸한 주막엔 외로운 연기
피어오르네
- 좌구산 김득신 시비에서 -
첫댓글 초정약수 저도 어린나이마셔서 그런지 약간 쓴맛이나더군요^^
나중에 어른이되서 마신맛은 또달랐죠 단맛을 느겼으니 ..
신원조회로 관공서취직어려운시대를살았죠
퍼니맨님도 어린시절 초정약수에 다녀가셨군요
저도 지난번에 가서 맛보니 먹을만 했습니다
76년 공무원 채용될때는 신원조회이상 없었는데
그후에 사촌형이 넘어와서 그런지 심하게 보더군요
아래는 초정약수 기념비입니다
얼마전 청주 청남대 다녀왔는데
넘 좋더라구여.
비중리마을도 궁금해 집니다.
비움조아님 반갑습니다
저도 청남대는 몇번 가본적이 있고
비중리는 청주에서 증평쪽 시골에 있습니다
그립고 그리운 ..
유년시절의 고향산천의 여름날 풍경들..
잔잔한 감동입니다
모깃불이란 참 반가운 단어속에 문득
어린날 아버지 손 꼭 잡고
제사 참석차 산골 큰아버지댁에 들어서니
매캐한 냄새와 불씨도 없는 연기속에
크다란 소 두마리가 넓은 마당 가운데 서 있었던 기억이나네요
지금은 다 들 미지의 세계로 떠나셨지만
니이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더니...
오늘따라 더 그리움만 한가득입니다....
미지수님 반갑습니다
우리가 어린시절을 보낸 60년대는 서울에서도
모기장속에서 잤고 비중리는 마당에 모깃불을 피우고 잤었지요
큰아버지댁에 갔었던 어린시절의 추억이 생각나시는 군요
이제는 모두 떠나시고 어느새 우리가 노년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저도 그 옛날 모기장 쳐놓고 그 속에서 잠잔 적 많지요. 모두 추억속으로....
증평의 좌구산 근처 율리 휴양촌엔 오산에서 경찰(남편)로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귀촌한
여친부부가 살고 있어 가끔 아내와 가서 살아가는 이야기 나누고 밥도 같이 먹고 옵니다.
그 여친은 한 때 문학단체에서 같이 활동도 한 나하고 동갑내기인데
지금은 몸이 불편한 친정 부모님(아버지 90세, 어머니 88세) 집 곁에 살면서
부모님을 보살피고 계시죠.
저는 '부강약수' 먹으러 청주 옆의 부강약수터에
군 입대 몇 달 앞두고 다녀온 적 있어요.
박시인님 반갑습니다
이종형네 집에서 멀지않은 증평 좌구산 입구에는
큰저수지가 있고 팬션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여친부부가 그쪽에 살아서 자주 가셨군요
부강약수는 잘모르겠고 초정약수는 세종대왕이
다녀가셨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저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데다가 친가 친척도 다 서울에서 사셨고
외가는 제주라서 결혼 전까지는 두 세 번 가본 것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모깃불 피우고 모기장에서 잔 추억이 없어요.
제가 늘 그리워하는 곳도 서울의 한 복판 서대문 로터리 부근,
제가 어릴 때 살던 집과 뛰놀던 골목은 진작에 다 사라졌어도
그 동네를 그저 배회만 해도 마음 속 그리움이 좀 달래집니다.
그산님의 추억담을 읽으니 그 동네가 또 불현듯 그리워지네요.
달항아리님반갑습니다
저처럼 서울이 고향이라서 시골에 대한 추억이
많지 않으신가 봅니다. 저는 아버지가 단신월남하셨기에
친가쪽은 아예없었고 외가도 모두 청주에서 서울로 일찍 올라오셨는데
이모한분만 청주에 계셔서 어린시절 왕래를 많이 했었습니다
저도 제가 태어난 한남동과 어린시절을 보낸 원효로와 청파동골목들이
늘 그립습니다
어렸을 때, 여름날 외갓집에서의 추억이 아련하게 묘사되었네요.
세월이 흘러 산천도 변하고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은 없고요.
이제, 우리도 노년의 세월의 강을 건네고 있으니 말입니다.
본문 글, 사진에 있는
좌구산, 초정약수는 언저리만 다녀온 기억이 있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린하님 반갑습니다
어느새 세월의 강을 건너 부모님세대는
모두 떠나시고 저희가 제일 윗세대가 되어
이렇게 가끔 어린시절의 추억들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좌구산과 초정약수 언저리는 다녀오셨군요
댓글 감사드리고 시원한 여름 보내시기 바랍니다
반갑습니다.
비중리는 '나'씨 집성촌이지요.
저는 윗마을 비상리가 고향입니다.
87세인 큰언니는
예쁘지만 엄격한, 존경받는 선생님이었습니다.
언니나 우리집안을 기억 할만한분이 비중리에 몇분이나 살고 계실지 모르겠네요.
복도에는 제가 받은상장도 있었는데 지금도 있을지 궁금합니다.
토지분쟁으로 이웃마을이 소송하고 사이가 안좋지만 아이들 끼리는 잘놀았습니다.
학교,초정약수터와 함께
고향 떠난뒤 한번도 가보지 못한 저수지는 제 버킷리스트1위입니다
들꽃마루님 반갑습니다
비상리가 고향이시고 비중리가 나씨 집성촌이란걸 잘아시네요
이모부가 안정나씨로 비중리 이장을 하셨고 이종형들은 모두 찬자 돌림을
쓰고 있습니다. 아마 제 이모부와 제형님들을 잘아실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비중리가 죽기전에 가봐야 할곳중 한곳이었는데
버킷리스트이군요. 예전모습 그대로이니 조만간에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찍어온 안정나씨 사당 사진을 올려드립니다
저도 조만간에 아내와 81세 되신 둘째형님을 만나러 청주에 한번 가볼까 합니다
박완서 소설 제일 처음 읽었을때 같아요
잔잔한 그리움이 담긴 이야기 아주 담담하게
읽었어요 감사!!^^
몸부림님 반갑습니다
저도 박완서님의 소설을 거의 다 읽었고
제 닉네임은 그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 따왔고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와 그많던 싱아는 누가 다먹었을까는
글제목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제글은 재미가 없어 소수의 분들만 읽고
몸님의 글은 많은 분들이 좋아하고 독자들도 많습니다
재미없는 제글에 좋은 평을 해주시는 몸님 늘 감사합니다
@그산 '그 많던 싱아~'흔적을 찾는 탐방프로그램에 참여한적이 있습니다.
산을 넘어 다니던 등교길에 싱아는 못 만났지만..
@그산 제가 제일 먼저 접한 책은 휘청거리는 오후였어요 맞아요 그산님 글의 진가가 아직 알려지지 않았는지 조회수와 댓글이 적어서 의기소침할까
제가 우려했어요 본래 진품은 수요가 많지 않아요^^
@들꽃마루 박완서님의 그많던 싱아는 누가 다먹었을까 탐방프로에 직접 참여하셨군요
저는 박완서님의 나목을 읽고 난후 그분의 책은 말기작품 두부까지 많이 보았습니다
지금은 내용은 거의 잊었지만 우리 부모님세대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오신
이야기로 감명깊으면서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몸부림 휘청거리는오후도 책으로 본것 같은데 드라마로도 본것 같습니다
제글을 좋게 봐주시고 우려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글쓰는 스타일은 쉽게 바뀌지 않고 저는 아마 딱딱하거나 무미건조해서
반응이 적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 그래도 가능하면 많은 분들의 글에 댓글을
달아드리고 제글을 찾으신 분들에게는 최대한 예의를 다하려 합니다
@그산 그산님의 글은 음식으로 치자면 식자재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려서 양념과 간을 최소화한 건강하고 품격있는 요리입니다. ^^
제가 우리 그산님 글을 정말 좋아하고 늘 응원하는 것은 아실 테고요.
이곳에서 오래도록 글벗으로 교류하며 늙어가십시다요^^
@달항아리 아이구 달항아리님 감사합니다
아마 이카페에서는 저를 알게된지 가장 오래 되신 분일겁니다
달항아리님은 저뿐 아니라 다른 많은 분들에게도 댓글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하셔서 쓰시는 고마운 분입니다.
그닉네임처럼 은은하고 향기가 오래가시는 분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에 나가지 못하는점 늘 죄송하며 저도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6.18 12:13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6.19 09:38
항상 아련한 그리움 가득한 글로 저희들 잊고 살았던 과거 한 지점을 그리워하게 만드시는 그산님 오늘도 우리 모두가 지나왔을 그래서 더 공감이 가는 글 잘읽었습니다
운선작가님 반갑습니다
나이들면서 어린시절 겪은 그리운 추억들을
홀로 또는 아내와 함께 찾아다닙니다
이제는 뵐수없는 다정했던 그분들 생각에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눈시울이 젖어옵니다
늘 따뜻한 댓글 주시는 운선작가님께 항상 고마움을 느끼며
행복한주 되시기 바랍니다 !
언젠가 충북 영동분이 이런이야기를 합니다
영동은 예나 지금이나 변화된게 없고 늘 그대로라해서 영동이라고...
그러면서 청주에도 지명따라 운명이 결정된 동네가 있는데..
바로 비상리 비하리라는 동네라고..
마침 글에 비상리 비중리 나오는걸 보니
비하리도 있을듯 합니다.
혹시 청주공항 있는 동네 아닌지요?..ㅎ
가을이오면님 반갑습니다
고교동창과 회사 여직원중에 영동사람이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경상도억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릴때는 그냥 비중리만 알았는데 비상리 비하리가 있다는걸
본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옆에 청주공항이 생겼다는데 날飛자를
넣은 우리조상들의 선견지명이 있어서라고 합니다
팝음악을 좋아하시는 가을이오면님께 오늘은 이노래를 들려드립니다
https://youtu.be/sSrYIfMMoRw?si=D1mqe_4AU1KNxQIz
PLAY
그 당시 중요한 국가 기관은..
신원 조회가 철저했었죠.
실력은 있으나 가족 중에 결함이 있으면..
들어가지 못했죠.
지금도 아마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여전할 것 같네요.
어릴 때 청주의 기억..
잘 읽었습니다.
김포의 추억을 공유하신 김포인님 반갑습니다
제동창중엔 안기부들어간 친구가 여럿이 있습니다
7급공무원신분으로 들어가서 수당이 본봉보다 많았다고 합니다
그친구들은 지금 두둑한 연금으로 편안한 노후를 즐기고 있습니다
후회는 없지만 가보지않은길에 대한 아쉬움은 약간 있습니다
답글 감사드리며 즐거운 한주되시기 바랍니다
옛추억을 먹고 삽니다.
네 추억은 현재를 살아가는 힘이 될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과 그리운 사람들에 대한 추억이 담긴 글
잘 보았습니다.신원조회에서 떨어지는 기억까지...
선배님 반갑습니다
사실 안기부는 적성에 맞지 않는 곳이고 그후 다른 좋은 직장에 들어가
아쉽지 않았는데 그곳 출신 동창들이 많은 연금을 받고 사는것을 보고
조금 아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