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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한국사 한반도, 40여년에 걸쳐 불타 오르다 - 고려 말 왜구의 침입
신불해 추천 1 조회 2,765 14.02.20 01:08 댓글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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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2.22 09:55

    @백운청산 주절주절 끌어 붙인다고 역사가 되는게 아닙니다. 개인의 개똥철학과 상상 속의 역사를 우기면서 타인과의 [소통] 자체를 배제하는 백운청산씨 같은 분들이 있어 이 나라의 역사인식이 쓰레기인 것이죠...^^; 기본적인 팩트조차 안맞는 헛소리는 그만 걷어 치우시길...ㅉㅉ

  • 14.02.22 14:34

    @춘자 성리학이 조선 망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것때문에 조선이 망했다고는 생각 안합니만 댓글 달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춘자님 충언 명심하겠습니다.

  • 14.02.22 14:34

    @[♥]CARDCAPTOR SAKURA 넵 알겠습니다~

  • 14.02.22 14:39

    @Draka 무신정변의 예는 적절하지 못한거 같습니다.제 댓글 논지는 무속신앙이나 불교나 도교등 통치철학 유효했다는 말이 아니라 고구려때부터 유교가 정치원리이면서 불교와 도교등이 민중이나 식자들에 부수적인 역활이 했던것이고 조선에 정도전이는 그런 기능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 14.02.22 14:44

    @무장나드 물론 한무제이후부터 나머지 백가들도 전문성이 높아지는것은 사실이겟죠.조선에 사화를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나드님과 저와 생각이 다를겁니다.고구려 무덤들에 보면 보이는 사신도들이 우리 선조들의 오행사상에 영향이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중국에 사신들이 고구려에 오면 도리 안맞는 사당을 짓고 숭배한다는 걸로 봐선 비록 무속신앙이지만 중국못지 않은 오행사상이 존재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14.02.22 14:47

    @무장나드 저는 역사가 일천하다고 여러번 말을 했습니다.민속학이나 고고학 또는 역사를 전공해야만 댓글을 달수 있는것은 아닐겁니다.댓글로 모르는게 있으면 가르쳐주는것이 맞는 것이지 사이비사학이라고 무시하고 말할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건 저로써도 어쩔수 없는 일이죠.

  • 14.02.22 17:11

    @백운청산 뭐가 적절치 않은데요? 사화나 무신정변이나 정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똑같은데요? 오히려 성리학 체제의 조선이 고려보다 훨씬 피도 덜 흘렸고 안정도도 높았습니다.
    정도전이 허용을 안 해요? 그래서 조선이 불교를 금했습니까? 왕실이 원찰 세우고 사대부들도 개인적으로 신앙하는 사례가 제법 있었습니다. 당장 조선 후기 사찰 상량문 보세요. 사대부들 시주가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불교나 도교를 계속 언급하시는데 그 '부수적인 역할'이 뭔지 구체적으로 좀 예를 들어주시죠? 이랬을거다 저랬을거다 if놀이만 계속하지 마시고.
    유교와 성리학을 까시다보니 잊으신 모양입니다만 그 불교와 도교도 우리 토착종교 아닙니다.

  • 14.02.22 17:14

    @백운청산 그리고 사이비는 당연히 무시해야 하는겁니다. 백운님은 병 나면 사이비 돌팔이 찾아가시나요? 말할 가치가 없으니 사이비라고 무시하는 겁니다.

    게다가 지금 기본적인 팩트도 안 맞는 헛소리라고 누차 가르쳐드려도 귀 막고 같은 주장만 되풀이하시는 분은 백운님입니다. 불교사원=사찰=가람=도량이 다 같은 뜻인지 아닌지도 모르시잖습니까.

  • 14.02.22 17:27

    @백운청산 성리학자들을 무슨 이단심문관으로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조선시대 풍수지리나 도참사상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다~ 성리학에서 나왔고 성리학이 나쁜겁니까?
    고려는 성리학이 뿌리내리지 못해 긍정적이다? 어떤 점에서 긍정적이었는데요? 백성들 버리고 강화도 쳐박힌거?
    이성계와 정도전이 '구체제'로 복귀했다? 어떤 체제요? 성리학이 뿌리내리기 전인 고려? 아니면 원 간섭기? 권문세족을 혁파한게 이성계와 정도전인데요?
    성리학이 사대의 충성맹세를 강화했다? 이거 근거는 있는 얘기입니까?
    다 틀렸다고 말씀드려도 '우리 민족의 뭔가가 있었을 것이다'라는 if만 끊임없이 반복하시는 중 아닙니까!

  • 14.02.22 18:19

    @백운청산 "댓글로 모르는게 있으면 가르쳐주는것이 맞는 것..."...-_-; 백날 가르쳐주면 뭐해요. 인간 녹음기처럼 개똥철학 역사를 반복하는데...

    염치가 좀 있어보시죠...^^; 역사적 지식이 일천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소통]의 문제에요. 자신의 주장에 오류가 있으면 수정하고 좀더 생각해서 다른 의견을 게재하면 되는 겁니다. 근데 백운청산씨는 딴소리로 샜다가 나중에 같은 주장 반복하잖아요. "사이비사학이라고 무시하고 말할 가치가 없다"고 한적 없으요. 말장난 집어치우라는 거지...ㅉㅉ

  • 14.02.22 20:50

    @Draka 저도 병나면 병원으로 갑니다.사화는 이유야 어쨌든 합법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거고 무신정변이야 말그래도 무신들에 쿠테타를 사람이 죽어났가다고 해서 어떻게 동일선상에 놓습니까.
    이성계랑 정도전이를 싫어하는 것과 조선을 존재를 부정하거나 인정 안하는게 아니잖습니까

  • 14.02.22 20:57

    @Draka 불교와 도교는 차제에 두더라도 일단 저는 고려말이 국력이 회복단계이고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안했다면 더 긍정적으로 보는 관점과 draka님처럼 고려는 너무 부패해서 망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차이에서 이런 논쟁이 시작된것인데 이미 조선이 개국이 된상황에서 얘기를 하는건데 망해버린 고려하고 망하지 않고 조선이 개국했으면 하는 차이에서 만약이란 관점이 들어갈수 밖에 없었던거 아닌가요.구체제회귀란 그저 고려왕정이 발흥하는 상황입니다.조선이 개국하고 정치적인 형태만 변한거지 그게 개혁이 아니라고 봅니다.그리고 성리학이 사대와 관계가 전혀없다면 어떻게 청나라한테 2번을 당할수가 있습니까?

  • 14.02.22 21:27

    @백운청산 정치적 형태가 변한게 개혁이 아니면 뭐가 개혁입니까? 지금 말장난하나요?
    고려가 회복단계? 본문 글 읽어보시긴 한겁니까? 왜구 토벌도, 요동 정벌도, 주력이 사병이란 말입니다. 고려군이 아니라 이성계군 최영군이라구요. 나중에는 왕이 신하에게 동맹을 요구하기까지 합니다. 이게 제대로 된 나라입니까?

    성리학이 사대와 관계가 아주 큰 덕분에 고려는 왕호에 忠자를 쓰고 원나라 입맛대로 왕이 교체당했군요. 아주 큰 것 배웠습니다. 이것도 성리학 탓이죠? 더해서 몽골한테 털린 고려는 봐줄 수 있어도 청한테 당한 조선은 못 봐주시는군요. 아주 공평한 관점이십니다.

  • 14.02.22 22:38

    @백운청산 '사화'라는 용어 자체가 정치적 숙청이라는 비합법성을 반영하는 겁니다. 특정 정치집단이 다른 집단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역모에 옭아 죽이는 것과 직접 칼을 들고 쳐죽이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나요?!...ㅎㅎㅎㅎㅎ 전자와 후자는 목적과 결과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겁니다. 다만 해당 사회의 정치적 성숙도와 통치체제의 발전성을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후자의 대표적인 예인 '무신정변'은 오히려 관료집단 및 문벌귀족과 무인세력 간의 균형을 잡을 수 없는 수준의 정치적 미성숙과 통치체제의 비효율을 반영하는 것이죠...^^; 무신정변의 결과로 고려는 기존의 정상적인 통치체제가 붕괴했지만, 조선의 경우는 통치세력 내에서의 투쟁이

  • 14.02.22 21:29

    @백운청산 설마 두번의 호란이 숭명배금 그거 하나때문에 일어난 거라고 생각하신겁니까

  • 14.02.22 21:30

    @백운청산 일어나 '사화'가 여러차례 일어났지만 통치체제 자체가 붕괴한 적은 없습니다.

    이성계와 정도전을 싫어한다는 "개인적 감정"이 역사를 인식하는데 강고하게 작용한다면, 그건 빨간색 썬글라스를 쓰고 온세상이 빨갱이라고 설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낄낄~

  • 14.02.22 21:34

    @Draka 아무래도 정도전이나 무인시대 같은 사극에서 고려백성들과 당시의 정치현실 고증을 ㅈ같이 한 모양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개막장 고려를 이렇게 고평가하는 인식이 나올 수가 없지요...ㅋ

  • 14.02.22 21:37

    @백운청산 전 고려가 너무 부패해서 망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딱히 어떤 입장을 가질 필요도 없이 그냥 고려는 부패하고 통치력을 상실해서 망한겁니다. 그게 역사적 사실이에요.
    고려가 망한 후 신진사대부들이 권문세족들을 혁파하고 개혁에 성공한 덕분에 우리 조상들은 전근대 극강의 통치 효율과 행정체계를 갖출 수 있었던 겁니다. 백운님은 대체 뭘 근거로 고려가 스스로 권문세족을 혁파할 수 있었을거라고 믿는겁니까? '만약~'과 '내 생각에는~'을 빼고 객관적인 근거를 대주세요.

  • 14.02.22 21:38

    @백운청산 조선의 개국과 함께 추진된 [과전법]만 살펴도 고려와 조선은 안드로메다급의 차이가 나고, 당시 백성들은 조선개국을 지상락원으로의 변화로 느꼈을 겁니다...^^; 조선의 개국은 '혁명'입니다.

    그리고 계속 궁금한 건데 그 고려증흥의 징조가 뭔지 좀 보여주시겠어요?! <고려사>를 아무리 뒤벼봐도, 심지어 중국의 <명사>를 뒤벼도 그런 기운은 저~~~언혀 없는데 말이죠...ㅋ

  • 14.02.22 22:31

    @백운청산 모르면 가르쳐주는게 맞는데 모르면서 아는척 단정짓는건 어찌 가르쳐줄 수도 없습니다. 전부터 느낀거지만 님은 유교를 절대악으로 보고 계신거 같네요. 아니라고 말씀하셔도 유교를 까기위해 불교를 띄우고 도교를 띄우고 토속신앙까지 띄우시네요.

  • 14.02.22 22:44

    @유럽제패 토속신앙 등이 널리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것이 어쩌면 국가의 '발전레벨' 자체가 낮은 상황을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게지요...^^; 중앙집권국가로 발전할수록, '민족국가'로 발전할수록 일정한 영역, 즉 국경 안에서 사는 구성원, 즉 인민이 문화적-역사적-사회적 동질감과 강한 유대감을 갖게되는 법... 그런 발전이 이루어지면 각 지역에 따로 놀던 문화와 종교 등이 하나로 통합되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거...ㅎㅎ;;

  • 14.02.23 12:54

    본격 답정너=.=

  • 14.02.24 11:03

    @▦무장공비 시간나면 저도 글을 올려볼게요.역사가 일천해서 더 이상 글 안올리려고 했는데 사이비글이라도 괜찮다면 올려보겠습니다.

  • 14.02.24 22:23

    @백운청산 보고싶습니다.

  • 14.02.20 12:11

    저당시 민중들은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전국토가 전쟁터이니........

  • 14.02.20 22:20

    사실 정도전에 나오는 회진현 부곡사람들은 당시 기준으로 보면 아주 잘사는 수준입니다. 당시에는 그 정도 의복을 갖추기도 힘들었고, 무려 온돌로 방을 뜨숩게 달구고, 징발 나와서 뒤지니 곡식이 몇 자루나 나오고, 혈색들도 좋고... 원래는 넝마 삼베옷에 누렇게 부황이 든 빼빼마른 거지꼴에, 하루 한끼 먹기도 힘들어야 제대로 고증하는 거죠...-_-; 왜구도 사시사철 쳐들어와야 하고...

  • 14.02.21 01:20

    @★海東天子☆ 가능한 고증이 아니죠. 엑스트라랑 배우들 고문한다고 욕먹을 수준.^^;;

  • 14.02.21 16:47

    @bookmark 도지사 "화면이 더럽다"

  • 14.02.21 18:56

    @타마네 "증발할라고 마을에 들으가믄, 처음엔… 아들만 보입디다. 솔나무 껍질을 벳겨 먹었는지 아들 입술이 죄다 새~까맣티…. 마당 한가운데까증 들어가 봐도 어른들은 없어, 다들 방 안에 있지비…. 멀뚱한 피죽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니 배 꺼질까봐 드러눠서 천장만 보지않고 뭐이겠어. 방서 아들 애비를 끌어내믄… 헛간바닥에 떨어진 쌀 한 톨이라도 줏어서 수레바퀴에 실고서 그 마을어귀를 벗어날라 할때믄, 온 동네 아낙네들 아들 통곡소리가… 십리 밖까증 따라옴메…. 그러다 잠잠해즈믄… 무시기 생각이 드는 줄 아오…? 전장터로 끌려가는 저 애비와, 뒈 남겨진 저 아들중에, 언놈이 먼저 죽을까."

    도지사님의 태클에도 고증에 성공!

  • 14.02.21 20:12

    @★海東天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14.02.20 17:22

    1367년에서 1369년에 이르기까지 아주 잠깐의 왜구침입이 없던것이 김용,김일 사신단 파견에 의한 효과라고 보는 의견도 있더군요 ㅎㅎ 그리고 수군재건에 대한 논의는 이미 공민왕 즉위 초 당시 부터 목은 이색이 '왜구로 인해 생활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활용하여 수군으로 싸우게 하자'는 건의를 한 예가 있기는 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포왜사'들의 활동이 시작되기도 하구요(뭐 한심한 꼴을 보이는 사례도 많지만, 그 이후부터 왜구 포로들이 잡혀올라오기도 합니다) 국민대 홍영의 교수같은 경우는 포왜사들의 수군이 나중에 고려가 수군재편할 당시에 수군으로 흡수되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기도 하고.....

  • 14.02.20 17:31

    왜구가 바다를 통해서 쳐들어 오기때문에 고려가 수군에 '아예 손놓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죠. 물론 체계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결국 1370년대에 들어와서야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정지장군이 기용되기 전인 1372년에 고려가 제주도 목호 토벌을 할 정도로 병선 및 수군을 어느정도 확보를 하고는 있었던 것으로 보아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낸' 정도의 것이 아니긴 합니다;; 뭐 시스템이 없어서 그걸 조정중이었던 것 만은 사실입니다만..........ㅜㅜ 어찌되었든 막장

  • 14.02.20 20:41

    아직도 왜구의 습성을 못버린 왜늠국....왜국을 정벌하여 세계에 민폐를 끼치는 그들의 악행을 근절합시다.

  • 14.02.20 21:40

    근데 궁금한게 왜구의 침략목적은 무엇인가요?
    단순히 해적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만만치 않아 보여서 지휘체계도 있었을텐데. '도'정도를 점령해서 임진왜란 때처럼 행정을 했다는 이야기는 못본거같아서요. 땅을 먹는게 목적은 아닌거 같고. 단순한 약탈이 목적인건가요?

  • 14.02.21 04:09

    왜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약탈' 이었습니다. 그때문에 대응이 더 어려웠고 침입이 지속된 면도 있죠. 왜구가 영토적인 면에 욕심을 내지 않았기 때문에 아기발도에게 '니들 고을 하나 점령해서 있는게 낫지 않는가" 하고 떠보는 모습이 나오기도 한거구요. 원구(元寇)의 복수설과 같은 정치적인 면에 중점을 두는 연구자들도 있기는 합니다만(왕의 초상화등을 약탈한 것 등을 근거로)그보다는, 큐슈내부의 내전으로 인한 식량 or 병량미 수급을 위한 약탈 집단(혹은 정규군)으로 보는게 타당하겠죠. 무엇보다 왜구가 '통일된 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대응이 곤란했던 점이 있기도 하고요;;

  • 14.02.21 19:02

    이 시대의 왜구를 '전기 왜구'라고 부르는데, 당시 일본도 가마쿠라 막부가 망하고 무로마치 막부가 세워지는 와중에 덴노가 두 명이 되는 '남북조시대'의 혼란기였고, 이에 주목해 세력이 밀리던 남조의 군대가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려/중국 화북지방 해안지대를 조직적으로 약탈했다는 가설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군대 유지할 돈과 식량은 없는데 내전에서 버티려면 군대는 필요하니 필요한 돈과 식량을 털러 외국까지 쳐들어갔다는 이야기죠. 그러니 당연히 군대를 남겨놓아야 하는 점령 등은 기피할수밖에요.

    그리고 이와 별개로 후기 왜구의 경우 주 공격대상부터 해적질의 목적까지 완전히 바뀐다고 보시면 됩니다.

  • 14.02.24 15:17

    @푸른숲 문제는 큐슈에서의 남조세력이 최전성기 였을때에도 왜구의 침입은 있었고, 당시 무로마치 막부나, 남조가 슈고들에게 관료주의적 지배권을 형성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무엇보가 당시 슈고는 물론이고 국인층에 이르기까지 남조와 북조 세력사이를 왔다갔다 하는게 일반적 모습이었고 같은 일족사이에서도 정치적 입장이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는 아주 복잡한양상을 보입니다. 애시당초 남조의 카네요시 친왕의 직접적 군사적 근거라고 해봐야 키쿠치씨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 뿐이었고, 그 키쿠치씨 또한 자신의 직계영지를 제외한 다른 영지의 장원에 대한 영향력은 미비했습니다. 그런상황에서 수직적인 지시하달-지시복종 체계

  • 14.02.24 15:26

    @배달민족 가 이루어질 수는 없었죠. 일본에 이런 수직적 위계질서 체계가 보이는 것은 노부나가-히데요시대에나가서야 이루어집니다;; 일본에서 온 사신이 '난신이 할거하고 있고 침구하는 것은 서쪽지방의 완악한 백성들이다' 라고 한 이 구절에서 난신과 완악한 백성들을 구분한 것이 그 시절의 모습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죠. 물론 여기서 말하는 백성이라는 것이 말그대로 정말 땅이나 퍼먹고 사는 일반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남조나 북조에 직접적 영향을 받지 않는 세력이었다는 것을 의미하겠죠. 실제로 당시 일본에서는 악당(悪党)이란 집단이 전국각지에서 횡행하고 있었는데 이 세력들 중에는 성을 함락시킬 정도의 무장수준을 지닌

  • 14.02.24 15:36

    @배달민족 집단들도 있었습니다. 아지발도의 경우도 처음부터 왜구가 아니라 '왜구의 요청으로 온' 인물이었던 만큼 왜구 전체의 모습이 '통일적인 조직체계'를 가졌다고는 보기 힘들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남조가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은 상당히 있긴 한데 그런면에 있어서는 북조세력도 자유롭기는 힘들죠(예를 들면 피로인 송환에 가장 열을 보인 세력이 북조의 이마가와 료우슌인데, 그만큼 이 사람의 지배영역에서 왜구세력의 노예 유통망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때 이 사람이 왜구의 흑막이었단 주장이 제기되기도;;).

  • 14.02.21 16:34

    이게 고려말기여? 로마말기여?
    정말 후덜덜한 인베이전이네요.

  • 14.02.21 20:11

    로마토탈워1 확장팩 이름 바바리안 인베이션 = 직역 번역은 "오랑캐 침략"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14.02.22 01:28

    왜 이 글이 파이어됐나 했더니.... 진짜 오늘 날에도 [조선을 망하게 하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무지막지하게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씹선비 유교]라는 가상의 적을 창조해서 쉐도우복싱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일제가 만든 식민사관이 현실부정으로 가서 국뽕이 된게 환빠고, 비판작용 없이 그대로 순응한게 유교까 조선까인듯요.

  • 14.02.22 09:50

    조선의 유교와 오늘날의 유교가 안드로메다급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ㅄ들이 많지요...^^; 임금이라도 잘못하면 촌구석 선비도 상소문 들고 올라와서 대차게 까던 조선의 유교와- 오직 '충군애국'을 외치며 임금(천황)을 신격화하고 사무라이식 서열화를 강고하게 규정한 대일본 유교, 그리고 그 "황군의 후예"인 오늘날 쵸센인민들...ㅋ 백날 말하면 뭐합니까?! 지들 가슴속에 상상의 역사를 품고 개솔빼길 하는데...에효~~~

  • 14.02.22 22:08

    저 같은 쪼렙들은 이런 키배에서 내공 냠냠... 물론 백운청산 님 댓글은 읽지 않았습니다.

  • 14.02.23 00:09

    성리학이 딱히 조선을 망하게 하고 자주적이지 못한 우리나라를 만들었다는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되네요. 성리학 때문에 오히려 민본정치가 강화되고 귀족들만의 정치가 아닌 전문적행정관료들이 정치를 하게 되잖아요.

    뭐 적서차별이나 후기로 갈수록 남녀차별이 심해지기도 하지만 조선의 망운이 성리학때문은 절대 아닌것 같네요. 모화사상이 성리학 영향이라고 하셨지만 광해군때 북인들도 성리학자들...

    조선사회가 망한 이유는 성리학때문이 아니라 부패한 훈구대신, 그리고 그들을 대체한 사림들의 권력쟁탈, 가장 문제가 많던 세도정치... 결국은 성리학때문이 아니라 성리학과 반대되는 행동만 하는 부패권력 쓰레기들 때문이겠죠...

  • 14.02.24 16:17

    정작 성리학만큼 개인의 인격 수양을 중요시하는 학문도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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