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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 투성이 세상 속에서 생명수 샘물이 되신 예수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은 체질상 모든 것이 자급자족되는 에덴동산 같은 낙원에서나 제대로 생존 가능한 생명체들일 뿐, 야수들이나 독충들이 생존할 수 있는 밀림의 오지나 황량한 들판이나 메마른 사막 같은 곳에서는 쉽게 생존할 수 없는 연약한 생명체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러한 오지에서 제대로 생존하려면 짐승들의 약육강식의 수법과 독충들의 악습에 익숙하여야만 간신히 목숨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이런 일에 미약한 사람들 곧 독성(악)은 없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예수님이 저들의 생명수 샘물이 되어 주셔야만 주어진 수명대로 생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해 불순종한 죄악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된 자격을 상실한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생존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 감옥살이보다 더 못한 마적 떼 소굴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감옥살이는 그래도 경찰의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마적 떼 소굴에서의 생존은 풍전등화와도 같은 삶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오지에 인간들을 유배해 두고 그들 중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 그 무엇보다도 믿을 수 있는 심령을 회복하는 자녀들에 대해서는 개별(제한)적인 혜택을 주어 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와 그 집 사람들에게만 제한(개별)적인 낙원을 누릴 수 있도록 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모든 갈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생명수 샘물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지나가는 도중에 제자들이 잠시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구하려 간 사이, 야곱이 판 우물가에 앉아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 하였습니다. 유대인은 본래 사마리아 사람들을 천대하여 말 상대조차 하지 않는 법인데,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말을 걸어 온 유대인 예수님의 행동이 의아하여 사마리아 여인이 어쩐 일로 자기에게 말을 건네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이 지금 물을 달라고 한 자신이 어떠한 사람, 곧 그리스도인 줄 알았더라면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에게 도리어 물을 달라고 요구하였을 것이며, 그 때에는 예수님이 그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런 말씀을 들은 그 여인이 예수님을 보고 당신은 지금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떻게 이 우물물을 자신에게 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때에 대답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그 유명한 생명수 생물로써 자기 자신이 바로 그 생명수이심을 밝혔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4:13~14) 하셨습니다. 즉 사람이 한번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가 되어 그 사람 속에서 계속 솟아 난다고 하니 이런 물을 마시지 않으려는 사람은 세상에 아주 없습니다.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한복음7:37~38) 하신 말씀은 천하만민 모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목마름이라고 한 것은 단순한 물 부족에 의한 갈증만 뜻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생존하는 일에 소요(所要)되는 모든 방면의 부족을 통털어 목마름이라 하였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한 죗값으로 모든 것이 자급자족되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이마에 땀을 흘리거나 심지어는 목숨 바쳐 싸워 이겨야만 간신히 생존할 수 있는 세상에 살게 된 이상, 천태만상의 갈증에 허덕이는 목마름은 당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남들보다 돈이 많고 권세가 높아도 그들은 그 나름대로의 갈증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부자는 부자대로, 권력자는 권력자대로, 지식자는 지식자대로, 유명인은 유명인대로, 나름대로의 갈증에 사로잡혀 허덕이고 있습니다. 세계 제일의 갑부나 권세자도 지구촌의 자원이 메말라가고 기후가 변하는 것과 핵전쟁으로 인한 인류의 종말에 대해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인데 자신(인간)들의 능력으로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갈증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모든 갈증들을 해소할 수 있는 생명수 샘물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육적인 시각으로 예수님을 보면 부족 투성이입니다. 즉 누구보다 가난하고 의지할 데가 없고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해 피할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각종 이적기사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잠시 받는 존대만 생각하고 그를 어디든지 좇겠다고 하는 자들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누가복음 9:58) 하셨습니다. 육적으로 보면 세상 모든 사람들보다 가난하고 거처할 곳이 없고 피할 곳이 없는 고립무원의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그의 생애는 부족함이 전혀 없는 풍성한 삶 그 자체였습니다. 즉 그가 필요할 때 갖지 못한 것이 없었고 또 남에게 부탁 받았을 때 도와주지 못한 일이 한 가지도 없었습니다.
무엇이든 부족함이 없었고 무슨 일에든 불가능한 일이 없었으며 그 무엇도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가로막을 수 없었으니 사람으로서 태어나 자기가 소원하고 계획하였던 일들을 모두 성취하고 생존한 사람은 인류 역사상 예수님 한 분 뿐이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살 수 있었던 능력은 오직 하나, 곧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계심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사람이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고 순종하는 아들 노릇을 감당하고 있는 이상, 그에게는 모든 것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늘 함께 하고 계십니다.
거룩하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지옥 같은 환경에 처할지라도 그곳만은 개별(제한)적으로 에덴동산 같은 낙원이 형성됩니다. 즉 사막 가운데서도 오아시스와 같은 혜택을 개별(제한)적으로 받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즐겨 순종하여 하나님의 아들 노릇에 충실한 예수님과 같은 분들에게는 돈을 별따로 저축해 놓을 필요가 없으며, 또 막강한 군대를 양성해 자신을 경호할 필요가 없으며, 또 바람과 풍랑과 외적을 가로 막아 줄 바람(풍랑, 적군)막이 요새(군대)가 필요치 않습니다. 즉 세상 어떤 것도 그를 목마르게 할 수 없으며, 사단마저도 그의 뜻을 가로막아 온 인류의 죄악을 사하려고 하는 일을 저지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자신의 말씀을 순종한 사람들에게만 모든 것에 풍요하고 능력 있는 개별(제한)적인 샘물(낙원)이 되어 주십니다. 온 천하가 가물어 흉년이 들었을 때에도 하나님은 자신에게 충효를 다한 사람들에게 개별(제한)적인 풍요를 주십니다. 북쪽 이스라엘의 지도자 아합 왕 시대에 엘리야 선지자가 천하에 흉년을 선포하고 시돈 땅 사렙다 과부에게로 갔습니다. 마침 사렙다 과부가 아들과 함께 마지막 남은 밀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해 먹고 굶어 죽기로 작정하고 나뭇가지를 줍고 있는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열왕기상 17:14) 하시면서 마지막 남은 밀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구워 먼저 자기에게 달라 하였습니다.
사렙다 과부가 아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으로 여기어 먹어야 할 떡을 낯선 노인네가 허둥대며 찾아와 달라고 하였을 때, 이 세상 어느 어머니가 자식과 함께 먹고 죽을 마지막 떡을 그에게 주려 하겠습니까? 웬만한 사람이면, "당신은 살만큼 살았으니 일찍 굶어 죽어도 되지만, 우리들은 하루라도 더 살아야 되지 않습니까?"라는 악마의 평등관을 내 세워 거절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렙다 과부는 노인을 공경하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엘리야의 소원대로 떡을 구워 먼저 공궤하고 다시 밀가루통과 기름병을 살펴보니 밀가루통에 밀가루와 기름병에 기름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이 바로 깊은 생명수 샘물에서 솟아오르는 생수와 같은 원리로써 쓰고 나면 다시 채워지고, 떼고 나면 다시 원상대로 분량을 갖추게 하는 생명수 샘물(낙원, 천국)의 현상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같은 생수, 곧 제한(개별)적으로 주어지는 샘물(낙원)이 있기 때문에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의 장정과 여자들과 어린 아이들을 먹이고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가득 차게 거둘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같은 생수, 곧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에게만 좇아다니는 이동하는 샘물(낙원, 천국)을 지녔기 때문에 마적 떼 소굴과 같은 이 세상에 오셨어도 모든 사람들에게 꿀리지 않고 왕처럼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비록 모든 것을 선점하고 기득권 행세를 하였어도 예수님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 어떠한 풍성한 재물이나 막강한 군대라도 모두 하나님의 입김에 의해 순식간에 매말라 버릴 한방울 물들로만 취급해 경시하였을 뿐, 추호라도 존중해 부러워 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천하만민이 이 같은 한방울 물에 불과한 부귀영화에 목을 축이려고 아귀다툼하는 것을 측은하게 보시고 그들에게도 자신이 지닌 것과 같은 제한(개별)적인 생명수 샘물(낙원)을 갖게 하려고 하나님의 아들 되는 방법, 곧 복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세기적인 물부족 현상은 그 어떠한 과학지식과 문명의 이기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지구의 자원이 고갈되고 기후도 사람의 심성만큼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습니다. 물싸움, 식량싸움, 자원싸움으로 인류의 종말을 예약해 놓고 남은 순간만이라도 사단의 방법으로 떼 돈을 벌고 권력을 잡아 군림천하 하려 하는 것을 성공이라고 하는 이 시대의 인류의 식자들, 그런데 이제는 그리스도인들마저 이에 가세해 사단의 수단방법으로 어찌 하든지 부귀영화를 취하며 사는 것이 뱀 같이 지혜로운 일이라고 하며 기복신앙으로 치달을 뿐, 예수님과 같은 생명수 샘물을 소유하는 일, 곧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아들된 일은 포기해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수 샘물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아들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잘듣는 아들들이 되기만 하면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이 그의 보호자가 되십니다. 만물의 주인되신 하나님이 그의 보호자가 된 이상, 그에게는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고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이 항시 결재 카드가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는 지옥 자식들이 널려 있는 곳에서는 하나님이 총체적인 생명수 강물이 되어 줄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제일로 취급해 순종하는 자들에게만 개별(제한)적으로 생명수 샘물이 되어 주십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부패타락한 그리스도인들과 유명 신앙인들이 육적인 천국(부귀영화, 재물)만 요구해 가지려 할 뿐, 말씀 잘듣는 자녀들이 되어 생명수 샘물은 가지려 하지 않습니다.
"은은 나는 광이 있고 연단하는 금은 나는 곳이 있으며 철은 흙에서 취하고 동은 돌에서 녹여 얻느니라 사람이 흑암을 파하고 끝까지 궁구하여 음예와 유암 중의 광석을 구하되 사람 사는 곳에서 멀리 떠나 구멍을 깊이 뚫고 발이 땅에 닿지 않게 달려 내리니 멀리 사람과 격절되고 흔들흔들 하느니라 지면은 식물을 내나 지하는 불로 뒤집는 것 같고 그 돌 가운데에는 남보석이 있고 사금도 있으며 그 길은 솔개도 알지 못하고 매의 눈도 보지 못하며 위엄스러운 짐승도 밟지 못하였고 사나운 사자도 그리로 지나가지 못하였느니라 사람이 굳은 바위에 손을 대고 산을 뿌리까지 무너뜨리며 돌 가운데로 도랑을 파서 각종 보물을 눈으로 발견하고 시냇물을 막아 스미지 않게 하고 감취었던 것을 밝은데로 내느니라"(욥기 28:1~11)하셨고,
"그러나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의 곳은 어디인고 그 값을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사람 사는 땅에서 찾을 수 없구나 깊은 물이 이르기를 내 속에 있지 아니하다 하며 바다가 이르기를 나와 함께 있지 아니하다 하느니라 정금으로도 바꿀 수 없고 은을 달아도 그 값을 당치 못하리니 오빌의 금이나 귀한 수마노나 남보석으로도 그 값을 당치 못하겠고 황금이나 유리라도 비교할 수 없고 정금 장식으로도 바꿀 수 없으며 산호나 수정으로도 말할 수 없나니 지혜의 값은 홍보석보다 귀하구나 구스의 황옥으로도 비교할 수 없고 순금으로도 그 값을 측량하지 못하리니 그런즉 지혜는 어디서 오며 명철의 곳은 어디인고 모든 생물의 눈에 숨겨졌고 공중의 새에게 가리워졌으며 멸망과 사망도 이르기를 우리가 귀로 그 소문은 들었다 하느니라"(욥기 28:12~22) 하셨고,
"하나님이 그 길을 깨달으시며 있는 곳을 아시나니 이는 그가 땅끝까지 감찰하시며 온 천하를 두루 보시며 바람의 경중을 정하시며 물을 되어 그 분량을 정하시며 비를 위하여 명령하시고 우뢰의 번개를 위하여 길을 정하셨음이라 그 때에 지혜를 보시고 선포하시며 굳게 세우시며 궁구하셨고 또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하셨느니라"(욥기 28:23~28) 하셨습니다. 이처럼 온 인류가 심혈을 기울여 찾고 찾는 보화가 바로 아무리 쓰고 사용하여도 메마르지 않고 마모되지 않고 끊어지지 않고 무한대로 솟아나고 제공되는 생명수 샘물입니다. 그러나 죄악의 종이 된 사람들에게는 체질상 그런 샘물을 지닐 수 없음을 알게 되자 결국 김일성이 같은 자들이 되어 남의 분복을 빼앗는 강도질로 생명수 샘물이 되고자 합니다.
온 인류가 사단의 속임수와 흉악한 습성에 인이 박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일을 허황된 일로 취급하기 때문에 생수의 근원 되신 하나님께 생수를 공급받아 살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만 간교한 들짐승 뱀(사단)의 수법으로 남들이 갖고 있는 분복들을 훔치고 빼앗아 갖는 것이 바로 사단이 개발해 낸 죽음의 웅덩이(성공)이며 또 거기에서 솟아 나오는 것이 바로 정화조 폐수(廢水)입니다. 이런 폐수의 풍부로 자랑하는 자들에 대해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야고보서 5:1) 하셨습니다. 사람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생수로만 참된 평강을 누릴 수 있을 뿐, 사단이 개발한 정화조 폐수, 곧 재물과 권세와 명예를 아무리 풍성하게 갖추어도 하나님이 펼치시는 총체적(우주적)인 재앙 앞에서는 모두 목말라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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