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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바로셀로나-구엘 공원(Parc Guell)
구엘 공원(Parc Guell)은 영국의 전원도시를 동경했던 구엘의 투자로 가우디가 언덕 위에 세운 공원이다. 구엘은 가우디를 후원한 바로셀로나의 재벌이다. 구엘 공원의 상단부에는 파도 모양이 밀려오는 형상을 그대로 표현한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바르셀로나의 시가지와 해변이 보이 곳에 본래 60채의 전원주택을 지어 공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자금난으로 30채만 지었으나 3채 밖에는 분양되지 못했다.
에우세비오 구엘 바시갈 루피는 19세기 중후반에 시작되는 까달루냐 문화의 르네상스 시대에 살었던 인물이다. 그는 나메스 대학에서 공부를 하였고 그리스 로마 문화에 상당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1900년 그는 바로셀로나에서 비교적 높은 지역인 빨라다산 등성이를 구입하였다. 그리스 신화의 올림피아의 파르나소스산처럼 만들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아폴로신이 사악한 뱀과 용을 죽여 땅에 묻은 자리를 기념하여 그리스인들이... 그 위에 도리아식 신전을 세운것을 본따 그는 가우디에게 아띠카식으로 아테네의 델포스 처럼 전원도시를 만들기를 제안하였다.
그리고 그는 삼각모양으로 뻗어있는 계단위에 하나님의 말씀을 교신하는 여사제의 형상과 델포에 있었던 델푸사.까소띠스.까스딸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세개의 분수를 만들고 싶어하였다.
1900년에 시작하여 1914년에 끝낸 구엘 공원은 돈 많은 재산가인 구엘의 부탁으로 시작했다. 처음부터 공원부지는 아니었다. 구엘은 원래 120~150m의 뺄라다 산기슭에 신개념 주거단지의 전원도시를 만들어 60채를 지어 분양하려 했었다.
그런데 2채만 지어 한 채는 변호사로 활동하는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 뜻대로 안되어 계획은 중단되고 구엘이 죽은 뒤 아들이 시에 팔아 공원으로 쓰이게 되었다. 지금은 바르셀로나 시 공원으로 무료이다. 입장료를 받을 움직임이 있다고 하니 관광객에게 입장료를 받는다면 그것도 굉장한 수입이 될거다.
천재 한사람이 이렇게 거대한 도시 사람들을 먹여 살리니 우리도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가우디는 뺄라다 산을 원형 그대로 살리기 위해 구불거리는 길을 만들어야 했고 패인 곳은 다리를 놓는 등 다른 개념으로 접근했다.
구엘 공원의 정문 두개의 집이 현관 역할을 하고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정면 계단 한가운데 귀여운 모자이크 도마뱀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올라가는 계단 양편으로 타일로 물결치는 외벽, 분수와 도마뱀 모양의 조각, 돌로 쌓은 기둥이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정면 계단 한가운데 귀여운 모자이크 도마뱀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올라가는 계단 양편으로 타일로 물결치는 외벽, 분수와 도마뱀 모양의 조각, 돌로 쌓은 기둥이 있다.
아폴로 신에의해 죽음을 당해 땅속에 매장된 뱀과용이 땅속에서 물을 지키고 있다는 그리스신화에서 나온것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리고 까딸루냐 지방의 르네상스는 굉장히 종교적이기 때문이다. 이영향으로 왕이 다니는 계단의 세 번째 분수에는 아라곤 왕의 휘장이 표현되어져 있기도 하다.
그리스극장 광장에서 떨어지는 빗물과 도리아식 기둥안에 설치해준 하수관을 통해 떨어지는 빗물을 모아두는 물탱크가 있다. 모아진 물은 왕들이 지나다니는 계단이있는 세개의 분수중에 세라믹재질로 된 용의 조각상이 물을 입으로 토하듯이 나오게 된다.
구엘 공원의 정문 두개의 집이 현관 역할을 하고 있다. 정문 측면의 두 건물을 돌벽으로 되어있고 창문과 다양한 색깔의 잘게 깬 타일로 들러 쌓여 있다. 유약을 칠하여 잘개깬 세라믹 모자이크는 지붕의 폐쇄된 둥근 천정 때문에 항상 빛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태양 광선이 항상 굴절되는 지점이 있다. 그리고 가우디는 입구 쪽 건축물 탑의 가저 높은곳에 네 개의 가지가 있는 십자가를 설치 하였다. 중세시대를 생각하면서 깔바리오산 처럼 그곳의 돌로 탑을 쌓아서 가장높은곳에 세 개의 십자가를 놓았다.
이 공원의 모티브는 북아프리카에서 얻어 타일을 재료로 한 모자이크 양식을 많이 썼다. 구엘 공원에 들어서면 정문 양옆으로 동화속의 집 두채가 있다.
오른쪽은 경비실, 왼쪽은 수위실로 교회 건물처럼 십자가를 세운 집이 앙징맞다. 하늘에서 내려다 봐도 옆에서 봐도 십자가를 볼 수 있게 360도로 만들었는데 그 모티브는 측백나무 열매가 벌어지는 모양에서 얻었다. 공원주위엔 온통 타일조각을 재활용하여 붙이고 커피잔을 거꾸로 박고 야자수 형상을 문에 도입하는 등... 그의 건축물엔 자연의 것들을 건축에 표현한 것들로 같은 것이 없다.
정문 측면의 두 건물을 돌벽으로 되어있고 창문과 다양한 색깔의 잘게 깬 타일로 들러 쌓여 있다. 유약을 칠하여 잘개깬 세라믹 모자이크는 지붕의 폐쇄된 둥근 천정 때문에 항상 빛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태양 광선이 항상 굴절되는 지점이 있다. 그리고 가우디는 입구 쪽 건축물 탑의 가저 높은곳에 네 개의 가지가 있는 십자가를 설치 하였다. 중세시대를 생각하면서 깔바리오산 처럼 그곳의 돌로 탑을 쌓아서 가장높은곳에 세 개의 십자가를 놓았다.
그 도리아식 신전 위에는 넓은 광장이 있다. 이는 델포에 있는 그리스 극장의 이름과 똑같이 지었다. 가우디는 구엘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자신만의 해석으로 도시를 꾸려 나갔다.
그곳 광장 하부에는 86개의 도리아식 기둥의 방이 있는데 그것은 순수 도리아식 양식과는 좀 다르게 표현되었다. 광장 밑에 주택단지가 완성된 후 시장으로 사용될 공간이었다.
이 공원에는 도자기로 잘라 만든 300석 규모의 의자 공연장, 시장, 물기둥과 천정 타일 조각이 있다. 그 아래서 이름 없는 악사는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타일 모자이크를 이용한 동화 속에 집 같은 가우디의 건축물들과 자연을 있는 그대로 살리었다. 조화가 뛰어난 산책로와 벤치들.... 그리고 가우디의 유품이 전시된 Casa Museu Gaudi가 가우디의 가족이 살았던 집이 공원 내에 있다.
계단을 올라가면 장터거리가 나온다. 80개의 기둥이 각각 높이가 다르게 서있고 그 아래엔 거리의 악사가 기타연주로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 장터거리 위로 올라가면 행사장이 있다.
이를테면 광장인데 가장자리엔 익히 들었던 벤치가 뱀 모양으로 구불구불 300명이 앉을 수 있도록 늘어뜨려 다리아픈 관광객들을 잠시 쉬게 한다.
이 벤치를 만들면서 가우디는 작업인부들을 앉아보게 하여 편안한 의자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요즘 각광받는 인공지능이라는 학문에 기초적인 사람이 아닌가 할 정도로 엉덩이 골반양쪽의 치골 거리를 재어 적당한 간격을 두고 불뚝 튀어나오게 하여 앉아보니 정말 편했다.
가우디는 왜 300명이 앉는 의자를 만들었을까? 그것은 60채 전원주택을 지으려 했을 때 한 가족을 5명으로 하여 60 x 5=300 계산이 나온다. 그래서 300명이 앉을 자리를 벤치로 만들었다니 직선으로 하면 너무도 짧은 길을 구부리며 만든 그를 천재라 부르는 건 당연하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이슬람풍은 공원 타일에서 나타난다. 타일로 만든 여러 형상은 주로 흰색과 청색이 어우러져 모더니즘적인 색채가 아랍인풍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가우디의 유품이 전시된 Casa Museu Gaudi가 가우디의 가족이 살았던 집이 공원 내에 있다.
가우디는 지형연구를 시작 하였고 주요 도로를 구성해 나갔다. 자연적인 도로의 기복을 평평하게 하기 위해 커브길로 만들어야만 했다. 가우디는 자연을 소중히 여겼으므로 경관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하여 그 주변에 있는 자연경관 그대로 살리며 도로. 다리. 수로등 토목공사를 진행했다.
이로 인해 영구적으로 사용할수 있는 경사진 도로를 건설할수 있었다. 가우디는 환경을 중요시했다. 아무리 환경을 해치지 않으려해도 자연훼손을 막을 수 없었다. 가우디는 이 단지 내에 상록수 교목. 소나무와 야자수 를 더 심었다. 게다가 백리향. 로즈메리. 금작화와 같은 관목을 더심었다. 이 곳은 구엘 공원에서 가장 노력이 기울여진 곳이며 색상도 다양하다.
행사장 바닥은 흙으로 덮어 비가 오면 아래의 80개 기둥으로 빗물을 통하게 하여 지하 물탱크에 받아 분수나 정원수로 이용함으로 물부족에 다소나마 해결책을 만들어 놓았다.
그 아래서 이름 없는 악사는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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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구엘 공원에서 뜨거운 햇빛을 피하던 어느 더운 여름날이 그리워지네요.
생동감있는 사진이군요 ㅎ
역시 멋진과 음악이 어울리네요... 즐감
구엘 공원에서 보고 있는 듯 합니다. 두 해 전의 이맘때 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