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랬던가. “유명해져라. 그러면 네가 똥을 싸도 열광할 것이다.”
유명한 사람 입장에서는 아무런 타격이 없겠지만 ‘안’ 유명한 사람 입장에서는 참 씁쓸한 말이 아닐 수 없다.
▲ Artist's Shit, Piero Manzoni, 1961
[문화매거진=강산 작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전문가라는 기준을 삼을 때 대학 전공 등 학벌을 본다. 어떤 분야든 대부분이 그렇다. 예를 들자면, 여성의 권리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하더라도 ‘여성학 전공’이 아니면 전문가로 보지 않는 경우가 그것이다. 미술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그림을 좋아하고 그림을 많이 그려도 미술 전공자가 아니면 취미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힘들다.
사실 그럴 만도 하다. 예술의 경우 전공자들은 학창시절부터 피나는 노력을 했고 수많은 석고상의 소묘를 외웠으며 미대를 진학하기 위해 수많은 밤을 지새웠을 것이고 대학에서도 많은 경쟁과 전시 준비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며 재료비 등 돈도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 밖에도 비전공자인 내가 감히 알지 못하는 많은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 분야는 다른 분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특히 전공 관련으로 선택할 수 있는 취업의 문이 매우 좁다. 특히나 순수 미술 같은 경우는 더더욱 취업할 곳이 적다. 게다가 대부분 사람들의 예술에 대한 인식은, 예술가들의 피나는 노력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기에 보수도 적은 편이다.
이들이 그림으로 성공할 방법은 어떻게든 이름을 날려서 유명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부모님이 돈이 많지 않고서는, 미술을 전공하여 그림으로만 살아가며 유명해지기까지 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런데 가끔, 분명 그림과 완전 연관이 없는 것으로 전해져 온 유명인들이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하여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일반인들은 비싸서 엄두도 못내는 곳을 대관하여 갑자기 개인전도 열고 퍼포먼스도 한다. 게다가 자신의 작품이 박힌 굿즈를 고가에 판매하고 심지어 완판되는 모습을 보면, 일생을 바친 전공자들로서는 참으로 허탈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누가 그랬던가. “유명해져라. 그러면 네가 똥을 싸도 열광할 것이다.”
유명한 사람 입장에서는 아무런 타격이 없겠지만 ‘안’ 유명한 사람 입장에서는 참 씁쓸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이탈리아의 현대미술작가 피에로 만초니(Piero Manzoni)의 1961년 작품 ‘Artist’s Shit(예술가의 똥)’이 생각난다. 만초니는 생전에 자신의 작품을 거의 판매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말도 안 되는 고가에 팔리는 것을 보고 이를 비평하기 위해 자신의 똥이 든 캔을 작품으로 내놓은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이 만초니의 똥은 매우 고가로 경매에 책정되었다. 사실 그 안에 진짜 똥이 들었는지는 사람들은 알 바 아니었다. 그리고 고가로 구매한 캔을 뜯어 굳이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 똥인지 다른 것인지 확인할 간이 큰 사람은 없다. 또한 이는 그저 예술가의 똥이라는 작품의 의미로서 가치를 평하는 것이지 그 내용물은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초니가 이 모든 것을 계획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의 이 작품은 성공(?)했다.
내가 지난 6개월간 기고한 여성 화가들 중 그림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은 수잔 발라동, 니키 드 생팔은 자신의 아픔을 그림으로 승화했다. 최근 너도나도 개인사로 인한 아픔을 그림으로 승화한다고 하는 마당에 그녀들의 그러한 작품들이 과연 얼마나 관객들에게 감흥을 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들이 살았던 시대는 정말로 여성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대였다. 게다가 수잔 발라동은 사생아라는 손가락질을 받았고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화가들의 정부로 살며 그림의 모델 활동을 하다가, 어깨너머로 배운 그림이었기에 그 노력이 더욱 눈물겹다.
니키 드 생팔은 친부에게 강간을 당했고 그로 인해 내면에 우울과 폭력성이 생겼으며 이를 슈팅 페인팅이라는 예술로 탄생시켰다. 그들의 슬픔이나 아픔들이 그대로 마음속에 있었다면 어떤 인생을 살게 되었을지. 하지만 그녀들은 예술로서 자신의 아픔을 바라보았고 치유해 나갔다. 여성이 자신의 이름으로 살 수도 없던 시절,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일반적이었던 시절. 그런 척박했던 시절, 그녀들은 세상을 향해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렇기에 그녀들의 작품은, 시작부터 유리했던 남성 화가들의 그것보다 더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