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때엔 밥통이 따로 없었다.
남겨둘 밥이 따로 없었다.
보리밥은 그냥 밥솥에 앉혀 밥을 하면 보리알이 퍼지지 않아
곱삶아야 했다.
보리를 한번 삶아서 보관하는 곳은 대바구니였는데
바람이 잘 통하는 실겅 위에 얹어 보관했다.
배가 고플땐 그 보리쌀 삶아 놓은 것도 손으로 집어 먹곤 했다.
어떤 때는 뒤주의 생쌀도 한웅큼씩 입어 넣고 우적우적 씹어먹기도 했다.
냉장고가 아니라 전기불도 들어오지 않았던 옛날얘기다.
요즘 나는 삼식이가 됐다.
밖에 나갈 일이 별로 없으니 밥통신세나 다름없다.
마누라가 밥을 해서 밥통에 퍼 담아 놓으면 때가 되면 퍼서 먹으면 된다.
그런데 밥통에 담아서 하루쯤 지나면 밥이 바짝 말라서 누룽지처럼 되는게 아닌가.
이빨도 별로 성하지 않은데 습기가 마르면서 딱딱해지니 먹기가 곤란해졌다.
할 수 없이 서비스센터를 찾아갔더니, 패킹을 갈아주었다(6천원)
그러구 나니 성능이 거의 새 것이나 다름없었다.
예전엔 우리나라에서 밥통도 제대로 못 만들었다.
국회의원이고 뭐고 간에 여자들은 일본만 가면 모두 조지루시(코끼리표) 전기밥솥을 사왔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세계에서 제일 좋은 밥솥이 한국산이라고 한다.
끊임없이 연구개발하면 세계일류가 되는 법이다.
우리는 일본을 우습게 보지만, 일본사람들이 한국산을 사지 않는 대표적인 4가지는
자동차,밥솥,손톱깎기, 한가지가 뭐더라 갑자기 생각이 안나네.
아마 전자제품이 아닌가 싶다.
밥통은 밥을 먹기에 좋도록 항상 따뜻하게 보관해 준다.
예전에 밥통이 없을 때 우리 어머니는 밥을 아들 밥그릇에 고봉으로 담아 뚜껑을 덮고 수건에 싸서
구돌막 이불 속에 넣어 두시곤 했다.
어디에 멀리 갔을 때도, 그날은 집에 오지 않는 줄 아시면서도 밥그릇에 밥을 담아 이불속에 넣어두시곤 하셨다.
아마 어머니의 사랑이 자식이 어디를 가건 항상 자기곁에 있는 것처럼 여기셨던 것이다.
가족간에도 보이지 않는 끈끈한 사랑이 없으면 가족간의 유대는 허물어진다.
자식을 때려 숨지게 하는 부모는 부모가 아니다.
공자도 "군군 신신 부부 자자"라 했다.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부모는 부모답게 처신해야하고 자식은 자식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라고 했다.
권력층에 있던 넘들이 하루 아침에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세상이다.
밥통보다도 못한 인간들이 설쳐샀는 세상이다. 오호 애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