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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의 무게는 80kg이라고 했던가? 태어날 때부터 그 무게에 익숙해 하던 우리가 어느날 갑자기 무언가에
짓눌리 듯한 고통을 얻는다면, 그것은 단순한 공기의 무게가 아니라, 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정신적인 짐이 아닐까? 그 무게는 절대로 익숙해 질 수 없으니까.
3
[그로부터 10년 후-승준편]
팅커벨이 작은 몸을 떨며 흐느꼈다. 승준이 사라진 농가에 여지껏 머물던 피터팬은, 자리에서 일어나
녹이 슨 수도꼭지를 끊임없이 돌렸다. 과하다 싶을정도로 쉼없이 돌린 후에야 쏟아져내리는 더러운 물.
얼굴이라도 씻어내릴 심산이였지만, 그 마음마저 사라진다.
이 수도꼭지처럼, 쉼없이 눈물을 뱉어내는 저 요정에게, 그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죽지 않았어."
"……뭐라구?"
작은 소년이 그녀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변명뿐이였다. 처음부터 쭉 거절해왔던 소녀이기에, 승준이
교살되어 죽어가는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아이들을 사랑하던 소년이 아이를 죽이는 광경은 지금처럼 쏟아지는 눈물을
가눌 수 없을 만큼 공포스러운 장면이였으니까,
"이미 죽였잖아, 이미 한번 목숨을 뺏었잖아!"
"시간의 간격을 좁힌 것 뿐이야. 빨리 어른이 될 길은 이 거뿐이니까…………"
"피터팬………… 이러지마, 제발 이러지마! 네가 무서워!"
작은 소녀가 그보다 조금 더 큰 소년의 옷깃을 붙잡았다. 떨리는 손에 공포와 두려움이 가득 찼다. 놀라우리만큼 변한 소년에게
그녀는 아무 힘도 쓸 수 없었다. 이런 결과였다면 처음부터 이 곳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니였는데, 그를 네버랜드에서 빠져나오 게 하는 것이 아니였는데……………!
"어른이 되면 더 변할꺼야."
차갑게 그녀의 손을 뿌리치는 피터팬. 그로인해 그녀가 쥐고있던 넝마조각이 갈갈이 찢어진다.
"아마 지금보다 더 많이 죽이겠지, 아이들을."
"피터!"
"그러니까 네가 막아줘."
서글프게 웃는 모습에 팅커벨은 순간 철렁한다. 보석을 박아놓은 듯한 눈매가 아름다웠지만, '가짜'의 티가 확연히 난다.
아기처럼 해맑게 웃는 그의 행동을 거절할 수 없음에 자신이 미웠다.
사랑을 원하고 있는, 어머니를 원하는 그에게 대체 어떤 잔인한 말을 해야할까? 아마 이 간특한 소년의 유혹이 끝나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피터의 두 손을 잡고, 또 다른 아이의 시간을 좁힐 지도 모른다.
"무서워……………네가…"
이 말은 속으로 삭히는 그녀였다.
지독하게 반복되는 악몽처럼 또 다시 반복되는 뻐근함.
승준이 두번째로 무거운 눈꺼풀을 일으키며 마주한 곳은… 낡은 나무의 냄새가 가득한 곳이였다.
하지만 그 외에는 이 악취를 깨닫는 자가 없는지 모두 앞에서 떠드는 중년 남성에게 시선을 쏜다.
늙어버린 가구가 썩은 내를 풍긴다. 그 냄새를 더 이상 참기 힘들었는지 고개를 숙이며 코를 막는 승준.
"한 승준!"
누군가가 그를 부르자 그제서야 고개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그를 주목하고, 또한 그를 부른 남성의
목소리가 그를 향했지만 아직 정신이 혼미한 그는 주위를 두르며 근원지를 찾는다.
"한 승준!"
재차 불러지는 자신의 이름에 비로소 이 정적이 자신의 것임을 깨달았다. 어머니의 따듯한 부름보다는 조금 더 매섭고
날이 선 목소리, 하지만 이 것조차 다른 이들은 깨닫지 못하는지, 지겨운 듯 자신을 바라보거나 몰래 딴 짓을 벌이고 있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쥐여진 펜을 꽉 짓누른다. '달깍' 소리를 내며 깊게 들어가는 볼펜 심.
"여기가 어디지…………?"
아무도 듣지 못할 만큼 작은 목소리였지만 승준 자신의 귀에는 정확하게 꽂혔다. 얼굴이 하얗게 번진 여자 아이들부터,
크고, 그리고 작은 남자아이들이 한 군데 밀집된 곳,
유치원에서는 몸집이나 크기가 모두 비슷한 애들이 함께 숨을 쉬었는데, 이 곳은 그런 것에는 구애받지 않는 듯 했다.
그저 똑같은 무늬의 옷을 입고, 똑같은 머리 모양의 똑같은 숨과 똑같은 눈동자를 한 소년 소녀들이 가득한 교실이였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절대로 그들이 유치원 생이 아니라는 것!
"안들려?"
대답이 없자 조금 더 날이 선 고함, 그는 재빨리 정신을 바로잡았다. 그리고는 도리질을 치며 짧게 대답한다.
"아니요."
그의 대답에 만족한 듯 돌아서 다시 장황한 설명을 하는 중년 남자.
승준은 놀랐다. 방금 튀어나온 목소리가 누구의 것이던가? 아까의 자신보다 아주, 아주 더 많이
낮아진 목소리에 그는 무의식적으로 목을 쓰다듬었다. 조금 더 굵어진 목과, 조금 더 커진 손……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을때,갑자기 '훅'하는 기운에 또 다시 고개를 수그렸다. 어느 악취때문도, 갑작스런 고함에도 아니였다. 어깨를 짓누르는 이
기막힌 고통에 소리없이 아우성치고 있던 것이였다.
양 어깨에 거구의 장정이 앉아있기라도 한건지, 쉽게 일어나기 어려웠다. 고통이라면 이따금 줄어드는 텀이 있겠지만
이 것은 그렇지 못했다. 상상도 못할만큼 격한 충격에 그는 또 다시 머리가 어지럽다.
갑작스레 커진 몸에다가, 불어버린 어깨의 고통. 오른손에 쥔 공책을 짓이기던 동세도 뚝, 또 다시 그 고함을 들을까봐 숨도 참아내던 그의 행동도 뚝,오직 움직이는 것은 가늘게 떨리는 미간의 주름이였다.
조금씩 들썩이던 어깨를 진정시키고는, 아주 천천히.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벌써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농락하듯 돌아가듯 시계를 바라보며 그 작은 소년은 또 다시 공포를 느낀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일도 없이 이 들에게 동화되어 가는 것, 7살 어린아이의 상황정리 치고는
매우 탁월하고 알맞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였다.
어른이 된지─정확히 말하면 진짜 어른은 아니지만─ 처음의 시간은 어깨에 드리워진 무게를 감당하느라 그렇게 허비하고 말았다.
그 시간은 줄곧 엎드려 고통받아야 했다. 무언가 방송으로 멜로디가 울리고, 연신 교탁에 앉아 무언가를 가르치던 남자가
"오늘은 여기까지, 뒤에서부터 학습지 걷어와"라는 말과 함께 문을 나서자 그제서야 뚫린 듯 맑은 공기가 폐로 스며들어왔다. 덕분에 조금 덜해진 어깨의 고통.
왼쪽 팔로 어깨를 붙잡고, 오른쪽 팔을 연신 돌려대던 소년은 순간 그 동작을 멈췄다.
'언제부터 이걸 할 줄 알았지?'
동작을 멈춘채 알 수 없는 생각에 휩싸인 그는 두 팔을 축 늘어뜨리더니, 몇 초 안되어 무언가를 찾기 시작한다.
"어? 한승준, 뭐해?"
그리고 자신을 부르는 한 소년,
"………거울"
딱히 그가 누군지 지금 밝혀내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귀찮음에 앞서 그가 누군지 묻는다면 모든 것이
깨지는 기분이라서 일까.
"뭐야, 생전 처음 온 놈처럼……"
그의 말에 즐겁다는 듯 낄낄거리던 소년은 손에 쥐고 있던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작은 기계를 여러번 누른뒤 그것에 만족한
듯 흥얼거리다 이내 자신을 뚫어져라 보는 승준의 시선에 흠칫 놀란다.
"…………뭐야, 왜"
"거울말이야."
"그게 뭐?"
"어디……?"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귀찮은 투로 뒷 문가를 가르켰다. 그제서야 힘든 미소를 띠운채 행선지를 바꾸는 승준,
이상했다.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눈높이하며, 커진 목과 커진 손,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니 자의였지만 어째서 동화되려함을
본능으로 삼았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것이 이상했다.
그리고 가장 수상한 것은 낮아져버린 목소리, 그는 긴 다리를 휙휙 저어나가다 이내 시야가 검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아니, 그것보다는 카메라가 뒤집히면서 영상마저 뒤바뀌는 그런 모습이랄까……… 어쨌든 바뀐 시야에 적응하느라 괜한
애를 쓰고 있었다. 가볍게 말하자면 가누지 못한 몸을 책상가로 던져버린 것이였다.
아픔보다는 기막힘이 앞섰다.
우당탕, 순식간의 소란을 집어삼킨 충돌이였지만, 그의 친한 친구들 외에는 또 다시 자신의 일에 전념한다.
어정쩡한 모습을 가누기 힘들었는지, 이젠 일어나는 것 조차 버거운 승준,
"야, 야 이놈의 자식아. 왜이래!"
다소 애늙은이 티를 내며 그의 친구들이 승준을 부축여 세웠지만, 이내 또 휘청이는 다리,
"아파?"
또 다시 잦아드는 어깨의 고통과, 제 것이 아닌듯한 다리를 부여잡던 그의 귀를 난타하는 작은 목소리,
방금 전 그의 동세가 멎듯 이젠 숨마저 멎는다. 아마, 이 목소리가, 이 목소리가 환청이 아니라면,
더러워진 넝마를 털어내며 방금 전 자신이 앉아있던 자리에 걸터앉은 소년을 바라보며, 그는 입술을 깨문다.
"너무 여길 보지마, 다른 아이들은 날 못봐."
그 말에 그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버렸지만, 덜덜, 겨울처럼 떨리는 몸은 가눌길이 없다.
말하고 싶었다. 돌려달라고, 아니, 그 전에 이 상황에 대해 묻고싶다. 하지만 승준의 목소리는 모두에게 들렸고, 피터의
목소리는 오직 자신만이 들리는 이 빌어먹을 상황. 겨우 부축을 받고 일어서는 소년의 옆에는 이젠 더욱 작아진 소년이
다가선다. 그리고 공포.
놀란 것은, 승준이 놀란 것은 그의 존재가 아니였다. 피터의 옆에 함께 한 전신거울로 비친, 지나치게 자라버린
자신을 보며, 그렇게 또 다시 번쩍.
뒤집혀 버린 영상처럼.
친구의 야 어디가라는 음성도 무시해버린 채 그는 달렸다. 걷기도 힘든 그 다리로 부딫힐듯 아슬아슬하게 교실문을 빠져나가더니 복도를 걷던 중년 남성과 맞부딫힐때도, 그가 너 수업 안듣고 어디가냐라는 훈계형 목소리를 내뱉을때도 그는 달렸다.
턱이 낮은 계단을 내릴때에도 몇번이나 발이 뒤엉켰지만 신기하게도 넘어지는 일이 없었다.
옳지, 이럴땐 무시라는 말이 맞았다. 그는 정말 상관않고 달렸다.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중간에 또 다시 다리를 가누지
못하는 판국에 넘어질뻔도, 어깨를 짓누르는 고통에 주저앉을뻔했지만, 절대로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짧고 보슬보슬한 머리가 어느새 자랐는지 눈앞을 슬렁인다.
"…이상해"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음에도 내뱉어진 한마디.
이상했다. 달리면 달릴수록 제것이 되어가는 다리가, 이젠 넘어지는 일이 없다. 다리가 승준의 말을 알아듣고 있잖아.
의사대로 달려주고 있잖아.
맨 처음 피터를 만날때, 그때도 이렇게 숨이 가빴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이 다른 것은, 그의 상황이였다.
그때가 누군가를 잡기 위해서 달리는 것이였다면, 지금은 도망치기 위해서 달리는 것이였다. 아무리 동화되어감을 느낀다고
할지라도, 그는 미숙했다. 그리고 어렸다. 처참하리만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도망치는 것, 그리고 그 도망침이 달리는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 끝이였다.
전신 거울에 새겨진 자신을 볼 때 그 얼마나 잔인한 공포를 느꼈던가. 이전에는 그 큰 거울에 자신이 들어가고도 한참의 여백을
느꼈다. 하지만 비스듬히 세워도, 그리고 정면으로 세워도 큰 키 때문에 지금은 오히려 얼굴부분의 절반이 가려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모습을 느꼈는지 비스듬히 기울여 공포에 질린 얼굴까지, 아주 남김없이 드러내준 소년.
달라진 눈 높이가 키임은 진작에 깨달았었다. 목울대가 걸걸해질때까지 아무리 소리를 내봐도, 낮아져가는 목소리에 기겁해야 했다.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자라버린 것인가? 합리화도, 무시도 소용이 없었다. 애초에는 다른 이의 몸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 그 눈이, 어른이 된 소년의 눈은 이전의 7살 소년의 눈과 너무나도 닮았는데,
이 몸뚱아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의 것일까.
그는 생각하면 할 수록 커져오는 공포에 땅바닥을 울리는 발과 함께 조금 울었다.
그때, 멀리서 들려오는 멜로디, 그가 방금까지 있었던 교실에서 들려오는 것과 같은 멜로디였다. 거미줄처럼 얇은 끈을 꽁꽁 부여잡다 안타깝게 끊긴 것처럼 서서히 저물듯 사라지는 소리.
그와 함께 그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근처 게임방이나 문구점에서는 그처럼 학교에 머무르지 않는 몇몇 학생들의 발걸음만
세세하게 들린다. 이따금 안타깝게 욕짓거리를 내뱉는 무리도 보였지만.
모두가 자신을 열외시킨채 시간을 재작동시킨 것 같았다. 모두의 시간이 흘러가는데, 유독 거꾸로 오작동되는 생체시계.
순간 역한 기운이 몸속 가득히 퍼지는 것을 느꼈다.
"…우욱"
참을 수 있었지만 그럴 기분도 못 되었고, 참는 방법도 알지 못했다. 그저 입안 가득을 칼칼하게 매운 이 역한 이물질을
게워내는 것이 일이였다. 소리없이 벽을 짚고 선혈과 함께 뱉어지는 음식물, 아니, 음식물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쓰레기에
가까운 토사물들을 게워내는 그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처음에는 신경쓰지 않았지만, 갑작스레 구토증세를 보이는 소년을 보며 몇몇 상가 주민들이나 학생들이 그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꽤 오래 게워내고 있었다. 하지만 게워내면 게워낼수록 더욱 더 역해지는 감정에 몸조차 가누기 힘들다.
이상했다.
어째서이지?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입가를 닦으며 반문했다.
아니, 그보다 왜 내가 여기있는거지?
이미 커져버린 몸에는 여전히 어린 뇌가 숨어있었다.
그는 한참을 게워내고 난 뒤, 또 다시 조금 도망치다, 이내 주저앉아 울었다.
어른으로 동화된지 약 2시간만에.
<댓글을 달아주신 휘릿님 정말 감사드립니다~~사랑을 드려요..>_<>
첫댓글 제목이 너무 희릿해서 안 보여서인지 조회수가 안 올라가네요. 확실히 이런 구성이면은 즉흥적인 글 쓰기는 못하겠군요.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휴...ㅠ,.ㅠ조회수가 좀 낮아도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너무 감사해요, 다음편은 제목색도 바꾸고 구성도 수정을 해봐야지요! 저번부터 제 글에 관심가져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단테님!
문체가제가좋아하는문체에요.ㅋ_ㅋ이번편도재밌게봣습니다.!!담편기대할꼐요 ㅋ_ㅋ화띵
아하! 좋아하시는 문체라서 다행이예요.. 저도 사실 제 문체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했거든요~~~ 이번편이 저도 표현할수없이 꺼림칙한 편이라서 좀 걱정했는데 재밌게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