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어머니가 됐을 땐 자신도 모르는 위대한 힘이 솟아나는 것일까. 어머니들의 자녀교육에 쏟는 열정은 정말 몰아적(沒我的)인 사랑이다.
어머니도 그런 분들중의 한 사람이다. 교육에 관한 일이라면 재빨리 정보를 수집하고 다른 집 자식들보다 앞서도록 온몸을 바친 분이다.
어머니는 한 남자의 아내로서 아버지가 버시는 통역사의 월급에 만족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퇴근 후, 저녁 시간에는 우산을 손수 열심히 만드셨는데 집마다 팔러 다니는 일은 말주변이 좋으신 어머니 몫이었다. 부업이 본업보다 잘 되어 빨리 경제적인 기초를 닦았다. 승승장구하여 커다란 한옥 기와집도 사고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께서는 가정교육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으셨다. 교육은 몽땅 어머니 몫이었다.
어머니는 남편과 아기자기한 둘만의 시간을 갖기보다는 좀 지나칠 정도로 자녀교육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생활하셨다. 워낙 성격이 급하고 성취욕이 강하셨던 어머니. 생계가 대부분 어려웠던 시대였는데 친정집은 교육에 전념해도 좋을 환경이었다.
내 나이 다섯 살 때부터 집안 살림은 몽땅 집안일 해주는 언니에게 맡기고 조기교육에 불을 붙이셨다. 한글과 한자, 피아노를 동시에 배워야했다. 한글, 한자는 어머니한테 배웠고 피아노는 그 시절에 교습소가 없어서 소문이 난 어느 피아노 선생님 댁으로 내 손을 잡고 늘 데리고 가셨다.
폭우가 쏟아졌던 어느 날, 나를 업고 뛰면서 횡단보도의 찻길을 건너던 중, 갑자기 미끄러졌다. 다행히 사고는 없었고, 그런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피아노 선생님 댁에 갔다. 딸이 손가락에 통증을 느껴 힘들어하는 표정을 나타내도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하지만 그 시기는 친구들과 어울려 사회에 대한 인식을 하기 시작하는 때가 아니였던가. 맏 정성으로 아무튼 내게 큰 기대를 걸고 생활하셨다.
두 동생들에게도 역시 피아노를 가르쳤다. 하지만 노력하기 싫어하고 끈기가 부족했던 동생들은 한 달도 배우지 못하고 피아노를 피해서 도망 다니기 시작했다. 그래서 피아노를 열심히 가르치려던 어머니의 계획은 원점으로 돌아가고 대신 여동생에겐 바이올린으로 바꾸어 가르쳤다. 하지만 이 악기도 배우기 싫어해서 몇 달이 지나 동생들에게 악기 가르치는 일을 아예 포기하셨다.
피아노 처럼 싫증을 금방 느끼는 악기가 또 있을까요? 그런데 난 웬일인지 피아노 소리가 듣기에 좋았다. 조용히 앉아서 연주하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피아노에 월등히 뛰어난 소질은 없었지만 한 3년 정도를 무난히 배워 중급까지는 마스터한 셈이다.
코흘리개 시절, 동네 꼬마 친구들과 온몸으로 뛰놀고 싶었다. 철부지 시절이었으니 어머니의 교육열이 억압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던가. 음감이 발달 된다는 적절한 시기에 훌륭한 피아노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에도 감사하고 싶다. 음악의 기초 악기인 피아노 공부를 내게 시켜준 일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 든든하다.
첫댓글 아버님이 통역사이신데 퇴근후 우산을 만드셨고 어머니는 팔러다니셨다니
정말 생활력이 강하신 부모님들이십니다
저희형제들은 막내만 빼고 음악에 소질이 없었고 중학교입시가 있던 시절이라
대학생 입주과외나 친구누나 한테 과외받으러 다녔었습니다
원래 북한이 고향이신 분들이 생활력이 강하시죠 개성 한동네에서 사셨던 부모님이 서울로 피난 오셨어요.
젊었을 적~
30여년 피아노 학원을 운영했습니다.
유치원과 보습학원을 함께 운영하다 보니 피아노를 배울 기회 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내가 피아노를 잘 하는 줄 알고 있답니다~!!!
그러셨군요.
전공 안 해도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교육사업체를 잘 운영하여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상술이 뛰어나다는 점이 있어서 학원 운영도 잘 하시는 분들이 부럽습니다.
부모님께서 열심히 사셨습니다 다애님도 잘 성장하신 티가납니다
네, 열심히 살아오셨죠.
아버지께서는 어머니 하시고자 하는 일에 무조껀 따르셨구요. 두분이 한 번도 다투거나 큰 소리 내신 적도 없으셔요. 평화로운 집안 분위기 속에서 성장해 온 셈이죠.
어머니가 대단하신 분이셨네요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묻어나는 글입니다
저런 어머니들 쉽게 찾아보기는 어렵지요
오래오래 장수하시길 빕니다
건강하시게요
어머니께서 6년전, 90세를 일기로 하늘의 별이 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더 오래전에 돌아가셨구요.
제가 이제 72세가 되니 부모님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어머니를 요즘도 꿈에서 뵈일때는 그다음날, 어머니의 열성적인 교육이 생각나요. 난 내 딸에게 그런 정성으로 교육시키지 못해서요. 딸이 스스로 알아서 공부를 했구요.
@다애 아 그러셨군요
두 분의 명복을 빕니다
아 저랑 또래시군요
저도 부모님들께서
벌써 오래 전에 돌아 가셨습니다
1979년과 1996년
아버님은 환갑되시던 해에
어머님은 7순잔치하시고 그 해에...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합니다
열심히 성묘 다니고 제사 모십니다
스스로 알아서 하시는 따님도 효녀입니다
모두 다애님 복입니다
@청솔. 제 부모님 두 분 다 돌아가실 무렵에 시간을 끌지 않고 합병증 없이 순탄하게 눈 감으셨어요.
저는 이 점이 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애 맞습니다. 복이지요
저는 아버님은 몇 년 누워계셨고
어머님은 급사하셨습니다
오래 앓으시는 것도 그렇지만
급사하시는 것도 충격입니다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지요
얼마 후면 제 차례가 오겠지요
적당히 아프다가 갈 수 있다면
행복할 거 같습니다
@청솔. 죽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어른들이 말씀하셨는데~
어떤 분은 70세에 요양원에 입소하여 사시다 90세에 그 요양원에서 20년간을 환자로 시간 끌었어요.
어머님이 급사하셨을 때, 충격이 크셨겠어요.
우리 세대 모두는 노환으로 자연사하길 늘 기도해야겠어요
음악은 예술이라 타고난 소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음악에는 재주가 없는 족속들입니다. 저도 물론이구요.
아들이 6살때인가 한창 우리나라에 피아노붐이 일 때였지요.
우리 집 옆에 피아노학원이 생겨 날마다 피아노학원 원장과 인사도 나누고
아들을 피아노학원에 등록시켜 두어달째 다녔는데
싫증을 느끼고 피아노학원을 가기 싫어하는 눈치라 솔직하게 아들과 대화를 나눠
학원을 중단 시켰지요.
그 아들은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는데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게임업계에 발을 들여놓더니
지금은 서울의 '넷마블'에 근무합니다
악기를 배우려면 우선 흥미를 느껴야해요
피아노는 모든 악기의 기본이라
필수적으로 대부분 배우며, 너무 싫증을 내면 바이올린으로 바꾸어 가르치죠. 이악기는 배우기는 무척 어려운데 싫증은 덜 느껴요. 어쨋든 배우려는 욕구는 있어야 피아노 기초부분도 진도가 나가요.
박민순님 자녀는 전공을 잘 살렸으니 다행입니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악기나 스포츠나
본인이 좋아하지 않으면
억지로 는
안되더라고요
맞아요.
물 마시기 싫어하는 소를 억지로 끌고가는 격이죠.
공부도 마음대로 못 시키는데 더군다나 예능과목을 강제로 가르칠 수 없어요.
아~~부러워요. 어머님 생각 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그당시에
피아노교육을 받앗다는것은
굉장한 특혜였을겁니다..
교육열이 높으신 엄마의 사랑
대단한 엄마십니다
그만큼 좋은 환경에서 살았으므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집에 피아노 있는 집이 동네에도 저희집 만 있었구요.
국산 피아노 생산이 어려웠던 시절이라 어머니께서 미국산 중고피아노를 구입해 들여오셨지요.
@다애 아마도
면소재지에 한두대정도였을겁니다
부모님의 학구열 부럽습니다
@지 인 서울 제기동에서 살았죠. 이웃 학부형및 어머니들이 내 어머니의 교육열을 아주 부러워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