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세상 참 편케 해준 인터넷도 성가실 때가 있습니다.
무슨 큰일 난 듯 제목 붙인 내용도 들여다보면 시답잖기 일쑤입니다.
한두 번 겪고는 애써 외면해 보건만, 시시콜콜한 게 하도 많아 거르기도 수월치 않습니다.
유명인 이혼(離婚) 소식 따위도 그중 하나인데요.
몰라도 되고 모를 뒷얘기가 상식인양 박힐 판입니다.
그 헤어짐을 나타내는 ‘離’는
두음법칙을 적용하는 첫음절이 아니면 본음 ‘리’로 적는다는 것이야말로 상식입니다.
그리하여 ‘이륙, 이직, 이탈’로 쓰다가 ‘거리, 난리, 분리’로 쓰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궁금증이 스칠 법하네요.
‘승낙(承諾)’은 왜 ‘수락, 허락’ 하듯이 ‘승락’으로 쓰지 않을까?
諾의 본음이 ‘낙’이잖아요. ‘수락, 허락’은 그럼?
한글맞춤법 제6장 제52항을 보자구요.
‘한자어에서 본음으로도 나고 속음으로도 나는 것은 각각 그 소리에 따라 적는다.’
그러니 본음 ‘수낙, 허낙’ 대신 입에 굳은 ‘수락, 허락’으로 쓴다는 얘기입니다.
발음을 쉽게 하려고 변화를 주는 활음조(滑音調) 현상으로
본음과 다른 소리가 굳은 것입니다.
‘곤란(困難)’ ‘논란(論難)’도 두음법칙과 헷갈리기 십상인데요.
‘난독, 난망, 난해’ 따위로 쓰는 걸 보면 원래 음이 ‘란’인데 첫음절에서는 ‘난’으로 쓰는가 싶지만,
難의 본음은 ‘난’입니다. 단지 극소수 낱말의 발음이 변했을 뿐이지요.
‘노기’ ‘노발대발’ 하다가 ‘대로(大怒)’ ‘희로애락(喜怒哀樂)’이라 하는 것
역시 활음조가 낳은 표기입니다.
일반명사만 그러느냐고요?
백제 무령왕(武寧王), 충남 보령(保寧), 경남 의령(宜寧) 등의 寧은
‘안녕’에서 보듯 본음 ‘녕’이 바뀐 것이랍니다.
며칠 안으로 단풍이 뜨겁게 타오른다는 한라(漢拏)산은 어떨까요?
拏 역시 본음이 ‘나’인데 활음조 현상으로 ‘라’가 됐습니다.
‘다를 이(異)’를 품은 ‘지리산’도 ‘이’의 극소수 예외이긴 하지요.
북한산 28일(그제), 계룡산 29일(어제), 속리산 30일(오늘).
명산마다 단풍 절정기가 코앞인데 10월은 속절없이 떠나려 합니다.
아, 시월(十月) 그대도 활음조 현상입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말123^*^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