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교회 진도를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 된 데서 귀환한 대목을 누렸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신약의 믿는 이들을 예표하며, 따라서 교회를 예표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고전 10:11). 만일 이런 전제가 맞다면, 역대하 36장 끝부분과 에스라기 1장 처음 몇 구절이 동일하게 말한 다음의 내용은 (포로에서 귀환한) 우리의 현재 믿음 생활의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여호와는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영을 분발시키셨다. 고레스는 … 여호와 하늘의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왕국을 나에게 주시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그분을 위한 집을 건축하라고 나에게 명령하셨다. … 그분 백성에게 속한 이들에게는 …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계시는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게 하라. 그분은 하나님이시다”(스 1:1-3). 이 말씀을 현재 우리에게 적용하면, 대부분이 생각하듯이 ‘나중에’ 저기로 가는 ‘천국’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건축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이들의 유일한 목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딤전 3:15, 엡 2:22).
그때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번제물을 바치려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제단을 쌓았다. …
그러나 여호와의 성전 기초는 아직 놓이지 않았다(스 3:2, 6).
아침에 위 본문을 묵상할 때,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는 명령을 이행하려고 예루살렘에 돌아온 이들이 성전 건축의 기초도 놓기 전에 먼저 번제단부터 쌓은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번제단과 성전(교회) 건축의 관계와 오늘날 번제단은 우리에게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를 묵상한 결과입니다.
번제물과 번제단: 대부분의 주석과 설교는 위 제단을 주로 우리의 죄(들)를 처리하는 용도로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위 본문은 속죄제물 혹은 속건제물이 아니라, ‘번제물’을 드리려고 제단을 쌓았다고 말씀합니다. 참고로 이 번제물은 다른 제물들과 달리, 밤새도록 타는 불에 ‘희생제물 전체’가 온전히 다 태워지고, 그 향기는 “여호와의 만족”을 위하는 특징이 있습니다(레 1:9). 따라서 이것은 (주님의 몸인) 성전을 건축하려면 완전한 헌신을 통해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려야 하며, 이런 자격이 있는 분은 절대적으로 아버지의 뜻을 위해 사셨던 그리스도뿐이므로(빌 2:8, 요 5:30, 6:38, 8:29), 우리가 매 순간 번제물의 실재이신 그분께 “안수”하여 동일시됨이 필요함을 암시합니다.
십자가와 번제단: 성경은 주님께서 “자신을 버리시어” “예물”과 “희생제물”로 드려지셨다고 말합니다(엡 5:2). 그런데 그분께서 드려진 장소는 위 ‘번제단’이 아닌 ‘십자가’ 위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번제단의 실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이 죄만이 아니라 옛사람과 규례와 세상과 (세상 임금인) 사탄 등의 교회 건축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끝내셨다는 점입니다(롬 6:6, 엡 2:15, 요 12:31, 히 2:14). 이것 역시 그분이 번제물이셨음을 함축합니다.
자기 십자가와 번제단:구약의 번제단이나 예수님께서 죽으셨던 십자가 형틀은 지금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번제물은 어떻게 드리고, 또 번제단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알고자 주님을 앙망
했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드리라’는 말씀(롬 12:1)과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마 16:24). 아울러 “그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이라는 말씀도 떠올랐습니다(롬 8:13). 이런 말씀들을 종합해 볼 때, 번제단 즉 십자가의 실재는 ‘죽이는 효능’을 포함한 부활 하시고 지금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 즉 그 영이시고(고전 15:45), “자기 십자가를 지고” 즉 몸을 포함한 우리의 온 존재를 그곳에 가져가 끝내는 것이 바로 번제물로 드려지는 것이라는 빛이 왔습니다.
위 말씀을 추구하면서 다음 두 가지가 제 안에 무거운 부담으로 남았습니다. 첫째는 보혈로 죄들의 용서(칭의)만 받았으면 어찌하든 죽으면 천국은 간다는 사상은 ‘포로에서 돌아온’ 이들이 사는 동안 해야 할 일의 초점을 빗나가게 할 수 있음을 환기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주님의 성전이 무엇이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 성전이 건축될 수 있는지에 대해 널리 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전이자 주님의 몸인 교회는 보혈이 아니라 “주님 자신”의 “충만”을 통해 건축됩니다(엡 1:23). 이를 위해서는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 아닌 모든 것들이 제해지고(번제단인 십자가의 주관적인 체험을 통해), 생명이신 주님 자신이 우리 안에서 우리의 영과 혼과 몸에 채워지시고, 증가되셔야 합니다(엡 3:17, 19). 체험에 따르면 이러한 교회 건축을 가장 방해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 우리 옛사람(자아)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당장 죽으면 천국 갈 확신이 있으십니까?’ 보다는 ‘지금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살고 계십니까, 그리스도를 살고 계십니까?’라고 물어서 포로에서 돌아온 목적대로 사는지를 서로 일깨워 주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오 주님, 저의 모든 소유와 온 존재와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번제단에 올려놓습니다.
주님이 정하신 때와 방법 안에서 과정을 거치고 변화되어,
유용한 성전 건축 재료로 쓰임 받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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