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교 여자친구의 카페에서 퍼 온다.
<국보문학카페>에 올려서 글 더 보완하고, 글 다듬어야겠다.
영화 '바람의 파이터'의 주인공 최영의(최배달) /작성 중
1.
오늘은 2026. 10. 18. 일요일.
날씨 흐리고, 비가 내리고, 서늘하다.
2.
<국보문학카페> '세상사는 이야기 방'에 글이 올랐다.
스크랩 제126주년 독도칙령의 날 기념사
힘이 없는 정의는 무능이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독도평화33 대표 황용섭(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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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께서는 영화 『바람의 파이터』를 기억하십니까?
최영의, 곧 최배달 선생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세 차례 감상했습니다. 삶이 고단하거나 스스로 나약해질 때면 그분의 굳건한 의지와 불굴의 정신을 떠올립니다. 제가 그분에게서 발견한 것은 단순히 강인한 육체나 무술의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자신을 단련하고 어떠한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인간의 기개였습니다.
그 정신의 깊은 곳에서 저는 우리 민족의 ‘아리랑’을 느꼈습니다.
제가 그분에게서 느낀 애국심은 정치적 구호나 일시적 감정을 넘어, 자신의 뿌리와 존엄을 지키려는 뜨거운 민족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배타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인류 보편의 정의에 뿌리내린 조국애와 민족애입니다.
최배달 선생의 삶에서 제가 읽은 것도 바로 그러한 극기와 신념이었습니다.
..... ..... .
내가 댓글 달았고, 퍼서 여기에 올린다.
내 댓글 1
잘 읽었습니다.
보충설명이 필요
독도의 날 :
1900. 10. 25. 고종황제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제창.
오야마 마스타쓰(大山倍達) 혹은 최영의(崔永宜, 1923년 6월 4일 ~ 1994년 4월 26일)
전라북도 김제 출신으로 일본에서 활동한 한국계 일본인 무술가로, 극진가라테의 창시자.
국제가라테연맹 총재와 극진회관의 관장을 지냈다.
한국에서는 최배달(崔倍達)이라는 별칭으로 알려졌으며,
대한민국 영화 《바람의 파이터》의 실제 주인공. 영어권에는 Mas Oyama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최배달 성공 가도에 올랐다.
외국인이 우상이 될 수 없다는 여론에 일본 총리는 그의 귀화를 요구했고
최배달은 극진가라데 보급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본인으로 귀화했다.
그때 만들어진 이름이 바로 배달. 그는 일부러 우리나라를 뜻하는 배달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
금의환향한 최배달도 태릉선수촌에 기증을 마다하지 않았다.
내 댓글 2
일본 시마네(島根)현에서는 2005년부터 ‘다케시마의 날(竹島の日)’을 제정해 매년 2월 22일에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최근 뉴스(2023년 2월)에서는 독도에서 해상군사훈련을 실시.
세상에나, 대한민국 군대는 일본 자위대와 함께 군사훈련하다니!!
아직도 구한말의 친일파 후손들이 국내에도 득실거리고, 또 새로운 친일파가 득세한 듯 싶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이날
“다케시마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한 일본 고유의 영토”
라는 억지 주장을 또 한번 늘어놓았다.
* 윤석열 대통령 임기 중에 일본 자위대가 독도에서 합동훈련. ....
* 윤기중(윤기준) : 윤석열 대통령의 부친,
한일수교 직후 일본 문부성 국비 장학생 1호로 선발, 연세대응용통계학과 명예교수.
황용섭 님의 글이 더 있군요.
2025년 10월 25일
출처: 독도 평화 33 원문보기
글쓴이: 황용섭(독도평화33)
더 보완한다.
영화 '바람의 파이터'
최영의, 가라데(무술, 당수의 일종)
당수(唐手) : 일본 특유의 권법
본명은 최영의, 일본명 오오야마 마쓰다쓰(大山倍達:대산배달). 극진 공수 가라데의 대가. 현재는 고인이.
방학기씨의 만화 "바람의 파이터(1989.8.11~1993.7.20 스포츠서울 연재) "의 주인공이며 최배달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실전 가라테로 불리는 극진 가라테의 창시자.
이름 : 최영의(1923년 출생, 1904. 4.26 사망)
일본명: 오야마 마스다츠(大山倍達] 대산배달)
출생지 : 전북 김제 용지면 와룡리
주요 수상 : 전일본 가라테 선수권대회 제패(1946)
주요저서 : 《생명의 가라테》 《가라테는 무엇인가》
일본명은 오야마 마스다츠[大山倍達].
국제가라테연맹총재를 역임하였으며, 일본의 가라테 10대 문파를 비롯, 세계 무술인과의 100여 차례의 격투기에서 모두 승리,
최고의 파이터라고 부른다.
최배달은 극진 가라데를 창시한 실전 무술인이다.
초기의 극진 가라데는 보호구 없이 싸우는 대련을 하였고, 눈찌르기,낭심차기 등 온갖 위험한 기술도 허용하였으나
워낙 부상자가 많이 나와서 급소 공격은 금지하였다.
극진 가라데는 다른 무술의 장점은 받아들여서 흡수하는 유연성도 가지고 있어서 계속 발전하는 무술인 점은
동시대의 이소룡의 절권도 철학과 같은 면이 있었다.
결국 최배달,이소룡은 현대의 종합격투기의 시초인 셈이다.
일본 청소년이 뽑은 ‘위대한 인물 10걸’의 한 사람으로 16세 때 도일(1938).
야마나시[山梨]소년 항공학교에 재학하던 1939년 가라데 초단으로 입문, 1946년 지바현 키요즈미 산에서 입산 수도 후,
10개월 후 무도를 이룬 후 1947년에 24세의 나이에 전일본 가라테 선수권대회를 제패하였다.
그 후 전일본 무술단체의 표적이 되어 1:26의 대결, 1:100의 대결을 모두 승리하고, 일본 무술계를 제패한다.
1956년 6월 대산 도장을 여는데 이는 후에 극진 회관의 시초가 된다.
미국, 유럽, 태국, 브라질, 중국등 전세계를 돌며 시합을 벌이고, 단 한번도 패하지 않는다.
1953년 FBI에 초청받아 시연을 하고, 제자들을 가르친다.
이 당시 미육군사관학교에서도 호신술을 가르치며 많은 헐리웃 스타들도 그의 제자가 된다.
맨손으로 소를 쓰러뜨리는 공수를 했다.
47마리 중 4마리는 즉사시켰다.
나중에 보탠다.
비가 내리니... 나도 공연히 울울하다.
약간은 서늘하고, 춥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