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6. 성 니콜라축일. 주교성품 8주년. 유낙준주교.
앞길을 열어주시는 임마누엘의 하느님이 함께 하시는 성공회 사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나이다. 아멘.
+ 마음을 드높이 0 주님께 올립니다.
이는 성찬기도시에 집전자와 회중이 교송하는 말씀입니다. 예전에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 마음을 들어, 주를 향할지어다. 0 마음으로 주를 앙망하나이다.
마음이 주님을 향한다는 선포와 마음으로 주님을 갈망한다는 답변입니다.
이는 제 마음에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그렇게 성공회 신앙은 마음에 주님을 채우고 주님을 향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인생을 크게 살아라. Do life big.”는 것입니다.
인생을 크게 멋지게 살고자 바란다면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고 주고 매일매일 살고 멋지게 살고 싶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랑하고 섬기고 주고 멋지게 살고 싶어.”
I wanna love, serve and give, every chance I get, I wanna do life big.
이는 자미 그레이스 Jamie Grace의 Do life big의 노랫말입니다.
그렇게 크고 멋지게 살고 싶은 것이 성공회 성직자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것뿐입니다.
마음을 들어 주를 향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주님을 앙망仰望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주님을 우러러 바라보는 것입니다.
견진성사와 사제와 주교서품시에 “성령의 능력을 내리시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예전의 공도문에는 “성령을 받으라.”라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막달라 마리아에게 처음 나타나시고 안식일 저녁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요한20:19)”과 “성령을 받아라(요한20:22).”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가 너를 보내니 평화를 지니고, 성령을 받아 용서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Peace be with you.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20:21).” “성령을 받아라(요한20;22). receive the Holy Spirit.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다(요한20:23).”
보잘 것 없는 우리를 하느님이 부르셔서 광명의 삶을 살게 하셨으니
어려운 세상이지만 평화 속에서 살고, 성령을 받아서 용서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관계를 맺었으니 두려움 없이 평화 속에서 사는 성공회 성직자의 삶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성령을 받았으니 용서로 풀어 막힘없이 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아(낙준아), 야훼께서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들어서 알지 않느냐? 정의를 실천하는 일, 기꺼이 은덕에 보답하는 일, 조심스레 하느님과 함께 사는 일, 그 일밖에 무엇이 더 있겠느냐? 그의 이름을 어려워하는 자에게 앞길이 열린다(미가6:8).” 미가예언자는 남을 등쳐 치부한 것들인 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한 사람입니다. 결국 BC722년에 앗시리아에 의해 북 이스라엘은 망합니다. 그러면서 미가는 희망의 말씀을 준 것이 이 말씀입니다. The Lord has told us what is good, What he requires of us is this; to do what is just, to show constant love, and to live in humble fellowship with our God. It is wise to fear the Lord. 바르게 살고, 변치않는 사랑을 보여주고,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겸손한 우정의식으로 사는 것이 무엇이 선한지를 하느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바르게 행하고, 사랑을 보여주고, 하느님 앞에 겸손히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이 원하시는대로 살고자 성공회 성직자가 되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자신이 고귀한 서품도 받았기에 신도들의 섬김까지 받게 되어 복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기쁜데 실상은 바르게 행하지 못하는 실수투성이고, 사랑을 보여주기보다는 인색함을 늘 보여주고, 겸손하기보다는 거만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라 굉장히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삽니다. 기도로 고백도 하지만 점차 그 기도시간을 놓치기 일쑤입니다. 사제복을 입을 때마다 순간 스치는 부끄러운 마음이 보이기는 하나 금방 잊혀지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성직자라는 말보다는 몸쓸놈이라는 말이 더 적합한 듯 합니다. 신도들 앞에 서기까지 참으로 많이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인생입니다. 거룩함이라는 하느님의 특성이 제 안에 하나도 보이질 않습니다. 오직 겉옷만 거룩한 옷을 상징할 뿐입니다. 어려운 사람을 위로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결구 자기자신에게 예리한 창으로 매일 찌르는 자의 삶과 별반 다름없이 살아 매일 죽어가는 모습입니다. 다시금 성무일과의 기도로 추슬려서 자신을 하느님 앞에 서게 해 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눈에 들어옵니다. 한때는 이 말씀에 사로잡혀 산적도 있었는데 오늘 그 말씀에 젖게 됩니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요한10:10). I have come in order that you might have life- life in all its fullness.” 예수님이 자격도 되지 못하는 저를 부르신 것만해도 고맙고 감사한데, 제자로 삼으셨으니 너무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됩니다. 촌놈이고 지방대 출신이지만 사제로 쓰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피한 저를 가난한 이들의 집에 들어가게도 안내도 해 주시고, 최고대학인 옥스퍼드대학교 출신들과 우정을 나누게 해 주셨으니 너무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은 저희를 풍성하고 더 풍성하게 해 주셨으니 하느님께 저희는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하느님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주시리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7:14). The Lord himself will give you a sign: a young woman who is pregnant will have a son will name him ‘Immanuel.’ 임마누엘은 God is with us로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임마누엘의 하느님이 성공회 사제와 함께 계시니 사제의 앞길을 열려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이 얼마나 큰 복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러니 어두운 얼굴을 펴시고 환하고 기쁜 얼굴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을 받은 얼굴인데 고생하더라도 어둡지 아니하고 밝을 수밖에요. 그러니 신기한 인생으로 살게 하시고자 하느님은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제를 미워하면 자신에게 다가오는 복을 발로 차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한 것입니다. 자신에게 오는 복을 발로 차버린다면 어리석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를 현명한 사람으로 만드시는 하느님이시기에 하느님과 함께 사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겸손하게 살지 못한 자신의 삶을 바꾸어 겸손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성공회 사제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선포하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