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28 공정하다는 착각 시 22:25-31; 행 8:26-40; 요일 4:7-21; 요 15:1-8
며칠, 몇 달째 손에 들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얼마나 좋은 책이기에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만큼 읽고 싶은데 읽히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저자가 세계 최고의 대학이라 불리는 하버드대 교수라는 선입견 때문일까요, 쉽지 않은 책이면서, 독서수준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감동적인 한 부분을 소개합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말로 유명한 마틴루터 킹 목사의 다른 이야기입니다. 맥락은 비슷합니다. 길거리 청소노동자와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같이 존중받는 사회를 이야기합니다. 1960년대,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에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흑과 백, 인권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시대가 아니었을까요? 지금도 청소노동자와 의사의 이미지는 아마도 하늘과 땅의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수업 방해를 이유로 청소노동자를 고발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60년대에 이런 말을 했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킹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길거리에 널브러진 쓰레기는 많은 세균으로 질병을 유발하고 급기야 생명을 위협합니다. 청소노동자는 세상의 생명을 살리는 직업입니다. 의사의 생명 살림과 무엇이 다르다 하겠습니까?” 나름 의식 있다는 우리는 과연 두 직업을 같이 존중할 수 있을까요?
위에서 말씀드린 책 제목이 ‘공정하다는 착각’입니다. 손에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오래 걸릴 수도 있지만, 같이 수준을 올렸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오늘 사도행전 본문에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는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돌아가면서 이사야의 글을 읽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저자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글을 쓴 사람’ 이기에 아무나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마침 성령의 지시를 받은 빌립이 지도를 해줍니다. 그러자 내시는 가던 길을 멈추고 세례를 받습니다. 이사야의 글은 단순한 글이 아닌가 봅니다. 마음이 뜨거워지는 글입니다. 즉각적으로 세례를 받을 만큼 강력한 글입니다. 글을 읽고 바로 행동으로 옮기게 되는 글입니다.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는 무엇에 감동을 받은 것일까요? 힘이 지배하는 세상, 돈이 힘이 되는 세상, 간다게의 내시는 한 나라의 모든 국고를 맡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막강한 권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왕 다음의 2인자입니다. 힘과 돈으로 되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단 하나 그것을 넘어서는 장르, 부분이 있으니 바로 신의 영역입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신의 허락하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의 글은 이 모든 것을 부정하는 글입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글입니다. 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습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 털깍는 자 앞에서 침묵하는 양,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없는 경우, 생명이 땅에 빼앗긴 경우, 신에게 이런 일이 가능한 일입니까? 그것도 스스로, 자발적으로 그런 길을 택했다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했다니 충격이고 까무러칠 놀람입니다. 신이 그러했는데, 어찌 가던 길을 그대로 갈 수 있단 말입니까? 즉각적 세례는 응당한 일입니다.
신은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요? 요한일서 본문이 응답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사랑의 표본, 사랑의 정의입니다. 그 어떤 사랑도 이런 사랑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표본이고, 정의입니다.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 정말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그 배경에는 존중이 있을 것입니다. 차이를 차별하지 않는 존중,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존중입니다. 애초에 하나님 앞에는 잘나고 못남이 없습니다. 그 부모의 잘못도 아니고, 본인의 죄도 아닙니다. 오롯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모습이고 존재입니다. 차이를 차별하는 인간의 욕망이 잘못입니다. 세상이 그렇게 물들어 가고, 그 세상에 속한 사람이 그렇게 물들어 갑니다. 이러한 때에 그리스도인으로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공정한 세상 만들 수 있을까요? 청소노동자와 의사를 같이 존중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에..
240428시 22:25-31; 행 8:26-40; 요일 4:7-21; 요 15:1-8
시 22:25-31
25 큰 회중 가운데에서 나의 찬송은 주께로부터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26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29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30 후손이 그를 섬길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31 와서 그의 공의를 태어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행 8:26-40
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ㄱ)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2)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37 6)(없음)
38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2)세례를 베풀고
39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7)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요일 4:7-21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 15:1-8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첫댓글 이해부족으로 다시 수정합니다.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가 맞을까요?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 간다게가 맞을까요?
주요 맥락은 아니지만
깜짝 놀라서 수정합니다.
꾸벅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