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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선희 목사 / 믿음의 사람! (민 13:25-33)
1999년 12월 31일자 타임지 커버 에는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큰 얼굴이 독
특한 그의 얼굴이 거기에 실렸습니다. 그리고 '펄슨 오브 더 센츄리(Person of the
Century)'라고 타이틀이 쓰여져 있 었습니다. 25페이지에 달하는 긴 논문으로 아인슈타인에
대해서 기록 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20세기 를 대표하는 인물로 선정되었던 겁 니다. 20
세기를 그 많은 사건을 요 약하면 세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고 그렇게 타임지는 설명합니
다. '더 센츄리 오브 데모크라시(The Century of Democracy)' 민주주의 의 승리. 민주주의
를 위해서 싸우 고 투쟁하고 애쓴 그러한 백년이었 다. 또 '더 센츄리 오브 시빌 라이 트
(The Century of Civil Right)' 소 위 인권의 문제, 개인의 문제 이런 문제로 세계는 소득을
얻었고 얼마 간의 발전을 본 그러한 백년이었다. 세 번째는 '더 센츄리 오브 사이언 스 앤
테크놀로지(The Century of Science and Technology)' 과학과 기술의 세기였다 라고 모든
사상을 집약했습니다. 그래서 인문분야에 생각할 때에는 인권문제에 있어서는 인도의 간디
가 선정이 되고 정치분 야에서는 루즈벨트 대통령이 여기에 뽑혔고 과학기술분야에 있어서
는 아 인슈타인이 여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로 지명이 됩니다. 그리고 다시 많은 사람
들의 여론, 연구를 집약해서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가장 큰 인물이 누굴까? 한 사 람
만, 한 사람만 뽑아보자 한 결과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여기에 뽑힌 것이올시다. 그는 과학분
야에만 아 닙니다. 정치, 문학, 예술 그리고 도덕, 종교 심지어는 신학에까지도 큰 영향을 끼
쳤습니다. 여러분 잘 아는 그의 '띠오리 오브 릴레이티비 티(Theory of Relativity)', 소위
상 대성 원리, 상대성 원리라고 하는 것은 소위 '앱솔루트 레스트 (Absolute Rest)' 절대 마
진과, 여백 과 그리고 '앱솔루트 타임(Absolute Time)' 절대 시간을 폐기 처분하게 됩니다.
알거나 모르거나 우리는 그의 상대성 원리에 많은 영향을 받 고 그 속에서 지금 우리가 살
아가고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적인 것은 없고 상 대적인 것만
존재한다. 깊은 철학 의 세계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 을 보게 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과학의 기초는 진리이다. 과학하 는 자세는 믿음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없 이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유명한 그의 명언입니다. 모든 거 짓과 불신
이 사라져갈 때 비로소 진 리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되고 믿음 을 가질 때 거기서 힘을 얻게
되고 능력을 얻게되고 지혜와 평화도 얻 게되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다 행히 저는 프린
스톤 신학과 인연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인슈타인이 살던 집, 제가 공부할 때 그 가까이
를, 바로 옆에 있었으니까요. 그는 새벽마다 기도를 했는지 명상을 했 는지는 모릅니다. 그
러나 프린스톤 채플에 나가서 기도하고 나오는 모 습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고 특별히 그 주
변에 아인슈타인에 대한 여러 일화가 많이 남아 있어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얼마 전
에 프린 스톤에 가서 아인슈타인 박사의 그 연구실, 소위 아인슈타인 인스티튜 트(Einstein
Institute)라고 하는 데 를 둘러보았는데 누가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 분이 조금 더 살
아 계셨더라면 교회와 우리 신학계를 위해서도 크게 공헌할 수 있을 뻔했 다. 왜냐하면은
그는 말년에 더 깊 은 신앙을 얻었고 그리고 모든 힘을 한데로 모으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
고 그리고 하나님의 세계, 영원한 세계, 신학의 세계를 향해서 생각하 고 많은 글을 쓰다가
결국은 글을 마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을 유 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합 니다.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여러 분 지금 미국에는 재미있는 학문이 많이 나타나는 중에 성공학
이론이 라는 학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 야 성공하나? 그 성공 자체를 연구 하는 그런 많
은 연구논문, 연구 책 들이 나오는데 성공학 이론을 가장 성공적으로 보급하는 출판사가 있
습 니다. 나이팅게일 콘란트라고 하는 나이팅게일 콘란트 코퍼레이션이라 고 하는 회사인데
이 두 분에게 물 었습니다.
"그 많은 책, 그 많은 이 론 다 종합해서 성공의 비결을 간단 히 말하면 어떻게 말할 수 있
겠습니 까?"
그러니까 애티튜드 앤 고울 (Attitude and Goal)이라고 했습니 다. 자세! 삶의 자세와 그리
고 목 표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환경을 말합니다. 그러나 환경이 성공을 만들어 주는
건 아닙니다. 환경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어려운 환경은 성공의 지름 길이 되는
것이올시다. 또 성공의 계기가 되는 겁니다. 그런고로 주 변환경을 탓하는 사람은 영영 구제
불능입니다. 문제는 그 모든 환경 과 사건에 대하는 내 자세, 나 자신 의 문제래요. 내가 어
떤 자세로 임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고 두 번째 는 목표입니다. 그가 세운 뚜렷한 추상적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지향 하는 구체적 목표가 분명해야한다 이렇게 말합니다. 다시 묻습
니다. 두 가지로 얘기하니까 복잡하니까 하나만 하나로 종합하면 그 성공의 비결은 뭐겠는
가? 그것은 믿음입니 다. 확신이 없는 어떤 성공도 기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슬퍼
하는 것도 믿음이 없기 때문이고 믿 을 수 없기 때문이고 믿음이 점점 약해지기 때문입니
다. 믿음! 거기 에 성공의 길이 있고 삶의 힘이 있 고 능력이 함께 하는 것이다. 이걸 우리
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서 가나안으로 지향하는 그 출애굽 역사라고 하는 것은
계시적 역사요 상징적 역사요 그리고 그 속에 무궁 무진한 살아있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
속에 구원론이 있고 교회론이 있 고 성령론이 있고 그리고 모든 문제 에 대한 해답을 주는
사건들이 거기 에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시대에 바로 그 자리 에 있
다고 생각을 하고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그런 여러 가지로 많은 것을 생각하는 중에 저는
이런 생각 을 해봅니다. 참으로 믿음은 귀한 것이요 믿음을 얻기가 어렵다 그런 생각을 합
니다. 자 보세요 이스라 엘 백성이 애굽에서 열가지 재앙을 겪었습니다. 그 400년 동안 노예
생 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희한하고 놀 라운 능력 열가지 재앙 내리시는 것 을 보고, 또 조
그마한 믿음을 얻어 가지고 다시 홍해로 나와서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고 반석에서 물
이 나오는 기적도 보았습니다. 여 러 가지 사건들을 보고 이를 통해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만 믿는 믿음을 주시려고 했 는데 참 믿음 얻기 어려웠습니다. 힘들었
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보십시다. 예수님과 3년 동안 동행 할 때 성경에는 대표적인 사
건 몇 가지만 기록합니다만은 얼마나 많은 이적, 얼마나 많은 말씀 들었겠습니 까? 희한하
고 놀라운 것 기적을 많 이 보고 보고 보았는데도 또 한다는 소리가
"믿음을 더하소서"
주님 앞 에 이렇게 간구합니다. 죄송하지만 내가 그 위치라면은 제자들을 꾸짖 겠습니다. 이
한심한 사람들아. 안 그렇습니까? 이 많은 사건을 보고 도 아직도 믿음을 얻지 못했느냐?
바른 믿음을 갖지 못했느냐고. 그 렇지 않습니까? 굳이 이스라엘뿐입 니까. 우리가 지금 얼
마나 많은 사 건을 겪었습니까. 개인적으로나 민 족적으로. 그리고도 아직도 믿음을 갖지 못
했습니다. 바른 믿음을 가 지지 못했습니다. 이 얼마나 슬픈 얘기고 얼마나 어려운 얘기입니
까. 믿음보다 귀한 일이 없습니다. 믿 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소중한 선물 입니다. 사건을 통
해서 기적을 통 해서 믿음이 생기지는 않는 거 같습 니다. 여러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엔돌
핀이라는 것이 뭔대요. 인터 몰핀입니다. 이 몰핀 맞은 것처럼 마음이 평안해지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이 생기는 거죠. 이런 일이 있어도 저런 일이 있어도 당황 하지 않습니다.
이런 엔돌핀이 팍 팍 솟아오르는 거 같은 그런, 그런 상태에 살면 남이 뭐라고 하던 말던
나는 나대로 조용한 믿음에 살아갈 수 있는 거예요. 몸도 마음도. 제 가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결혼주례 를 늘 많이 하는데 그 결혼주례를 할 때에 제가 주례사를 하는데 교인 들이
제게 주문을 합니다. 여러 결 혼식 하는 걸 참석 했댔으니까. 그 래 제가 좀 달리 해 보려고
이렇게 해 보았더니 차별대우한다고 싫어하 더라고요. 똑같이 해 달래요 똑같 이. 그리고 딱
한마디를 주문을 하 는 게 있어요. 그건 우리 이미 결 혼한 사람들에게도 많은 은혜가 되
니까 그 말씀은 꼭 추가해 주세요 그런다구요. 그래 주문이 뭐냐 그 러니까 내가 늘 얘기하
잖아요. 신 부에게 신랑이 저녁에 늦게 들어와 도 왜 늦었느냐고 묻지 마라 그러거 든요. 그
말을 꼭 해 달래요. 이게 꼭 필요하대요. 왜 그런지 아십니 까? 자 저녁에 늦거든 딴에는 사
랑 한답시고 어디 갔댔냐, 왜 늦었냐, 전화도 없었냐, 뭘 했냐 뭘했냐. 이 렇게 형사 취조하
듯이 물어보면요 이 취조 당하는 이쪽은 영 믿음이 없어져요. 그때는 절대로 미인이 없습니
다. 예쁜 여자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요. 그렇게 의심받으면서 내가 이 집에 들어와야 되나
이렇게 된데요. 믿음밖에 없어요. 전적으 로 믿어둬. 믿으면 편안하고 좋은 걸 이걸 의심해
가지고. 그래 뭘 어쩌자는 거예요. 여러분 이 의심 이라는 것은 무서운 바이러스예요. 이것
이 들어가면 다 망쳐요. 나도 불행해지고 저도 불행해지고 잘못하 면 다 죽는 거예요 아주.
믿음. 어 리석을 정도로, 어린아이들이 부모 님을 믿듯이 말이에요 깨끗하게 믿 어두면 그렇
게 좋을 걸. 그런데 하 나님은 하나님 자신에 대한 믿음을 우리 인간이 갖도록 하시기 위해
서 백방으로 갖은 방법으로 이렇게 역 사하십니다 믿음을 가지라고. 그런 데 그 믿음을 얻
기가 이렇게 어려웠 다는 얘기고요.
또 하나는 믿음을 가졌을 때 아, 위대한 역사를 나타내세요. 믿음으 로 출애굽 했고 믿음으
로 홍해를 갈 랐고.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홍 해가 갈라져서 이렇게 절벽으로 이 루었을
때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게 이 보통 믿음입니까. 이거 물 속으 로 들어간 다음에 물이 딱 합
치면 어떡하나? 이거 보통 믿음이 아니 죠 이것만도. 사건마다, 믿음이 있 을 때마다 용기가
있고 평화가 있고 찬양이 있었어요. 그건 놀라운 역 사예요. 믿음으로 모든 역사를 이 길 수
있었어요. 또 하나는 이 믿 음을 지켜가기가 어려웠습니다. 이 런 모처럼 믿음을 가지고 큰
역사를 이루었다가도 조금 어려운 일 당하 면 또 원망하고 또 의심하고 그렇게 그렇게 엎치
락뒤치락 한 것이 출애 굽의 역사입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본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
들 은 온통, 그야말로 감사, 찬송, 축제 로 바꾸어졌지요. 믿음으로 충만했 지요. 그러나 가
만히 계산해 보면 열나흘만에 원망을 합니다. 조금 어려운 일이 있고 뭐 물이 마음에 안 들
고 또. 원점으로 다시 돌아가 는 거예요. 그래 원망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참 믿음
가지기 도 어렵고 키워가기도 어렵고 지키 기도 어렵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 성들이 가데스바네아까지 왔지요. 이제 요단강만 건너가면
되는데 바 로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시 험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의 믿음이 자격미달
이요. 믿음 없어요. 믿음 부족해요. 결국은 가나안으로 들어 가지 못하고 방향을 돌려서 다
시 광 야로 돌려보냅니다. 그 행적을 자 세히 연구해 보면요 다시 광야로 들 여 몰아쳐서
거기서 40년 동안을 훈 련을 받고 그 다음에야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믿음
입니 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은 가 데스바네아에 왔을 때에 이 사람들 이 열두사람 대
표를 보내서 저 가나 안 땅을 탐지하게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두 맥락이 있습니다. 본문 민
수기에는 탐지라고 되어 있습니다 탐지. 탐지하기 위해서 열두사람을 보내라 그랬고요 신명
기 1장 22절에 는 정탐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여기선 또. 정탐과 탐지는 다릅니다. 정 탐, 탐
지라고 하는 것은 단어가 달 라요. 이 히브리 원어에 보면은 투 어르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
말은 알아보고 또 한번 가 본다, 구경한 다는 그런 뜻이에요. 한번 알아보 는 정도요 이런
게. 그러나 정탐이 라는 것은 여기선 뤼가르라고 하는 말은 이것은 갈 수 있을까 없을까 전
략을 세우는 거예요. 의심을 가 지고 보는 거예요. 할 수 있을까 없을까? 이길 수 있을까 이
기지 못 할까? 탐지는 우리가 갈 곳이니까 얼마나 좋은 땅인가 보자 이걸 생각 하고 믿음으
로 보는 거예요.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탐지하 라고 했는데 이 사람들은 가서 정
탐 하고 왔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 는 것이에요. 그래서 보세요. 여기 에 정탐하고 온 사
람들은 회보하면 서 열 대표가 하는 말이요. 악평을 합니다. 그 땅, 거기는 삼키는 땅이 요.
사람을 삼키는 땅이요. 못 살 곳입니다. 아낙자손이 있고 장부가 있고 그리고 본래 이 유대
사람들이 좀 키가 좀 작지요. 그런데 이렇게 큰 사람들을 보니까 그 사람들 앞에 우리는 메
뚜기 같습디다 메뚜기. 자기 자신을 비하시킵니다 아주 그 축소시킵니다. 바로 이 시간에는
과거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 푸신 모든 은혜에 대한 믿음 하나도 없어요. 기적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믿음이 전혀 없는 겁니다. 그리고 보니까 이렇게 두려워하게 됐고 또 하나
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도 없어 요. 하나님 믿는 마음, 하나님 말씀 을 믿는 마음, 하나님의
능력을 믿 는 신앙이 한푼어치도 없어요. 그 래서 그들은 원망을 하게 됩니다. 이 사회심리
학에는 원인귀속이라고 하는 용어가 있습니다. 그 말은 어 떤 사건에 대한 원인을 어디로
돌리 느냐는 거죠. 내게로 돌리느냐 사 회로 돌리느냐 세상으로 돌리느냐. 이 사람들 여기까
지 와서 이제 이 어려움을 당하게 될 때 원인을 모세 에게 돌립니다. 왜 여기까지 우리 를
인도했냐? 모세를 죽이겠다고 합니다.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 다. 원망, 불평입니다요. 마
지막에 는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이 것이 믿음 없는 사람의 모습이요. 그리고 절망하게
됐습니다. 심지어 는 죽었더면 좋았을 걸 그럽니다. 그래서 민수기 14장에 보면은 하나 님께
서 대답을 해주십니다.
"오 죽 고싶다니까 죽여주마"
그럽니다요. 이런 응답이 나옵니다.
"내 귀에 들리는 데로 행하리라"
아, 무서운 말씀입니다. 그래 이스라엘 백성들 이 많이 광야에 엎드려집니다. 왜? 믿음이 없
어서. 믿음이 없어서. 그 런가하면 믿음 있는 사람 믿음의 사 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렇지
않습 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거기에 포도 한 송이를 둘이 매고 와서 보라고 하고
자랑을 합니다. 제가요 어렸을 때 성경을 읽으면서 포도가 얼마나 크면 한 송이를 둘이 매
고 왔나. 이건 좀 과장이다 이거 는 좀. 좀 과장이다 생각했습니다 제가. 생각했는데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제가 농촌출신이라서 그 언젠가 한번 그 농산물, 농산물 전 시회 하는
걸 제가 보러 갔어요. 아 깜짝 놀랐습니다. 포도 한 송이 가 얼마나 큰 지 이만해요. 포도
한 알이 이렇게 밤톨보다도 큰데 이 런걸 보고서 아 이 정도라면 포도 한 송이 둘이 매고
왔겠다 생각을 하고 그 때부터 내가 믿었어요. 요 새 뭐 거봉같은 거 꽤 크기도 하지 만 아
주 큰 포도. 이런 아름다운 땅입니다. 그런 좋은 것만 본 거예 요. 이건 우리가 들어가 살
땅이니 까. 그리고 이기리라. 또 한 가지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 그래요 밥. 이제 밥상 차려
봤으니까 먹으면 된 다 이거요. 이게 믿음이요. 얼마나 놀라운 얘기입니까. 이런 믿음이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하나 님이 기뻐하시면 저 땅은 우리의 것 이다. 축제하자 기
뻐하자 감사하 자! 이게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이 요. 그런데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즉,
믿음의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걸 생각해야 합니다. 긍정적이고 소망적이고 적극적
입니 다. 믿고 보면 이렇게 희한한 세상 을 볼 수가 있어요. 여러분 이 세 상에 문제가 많습
니다. 우리 나라 에도 문제가 많아요. 무엇이 문제 입니까? 믿음이 문제요. 또 하나 는 그
믿음이 주는 신용이 문제요. 하나님을 믿을 때 믿을 수 있는 사 람이 되거든요. 오늘 우리가
무얼 걱정하는 겁니까? 도대체 믿을 수 가 없어서 걱정이 아닙니까. 누구 를 믿어요? 믿을
만한 일이 하나도 없는 거 같아서 그래서 낙심이에요.
자 이제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 하나 님의 사랑, 하나님의
약속, 이것을 믿게 될 때 과거에 역사하신 하나 님, 나와 함께 계시고 또 미래에 함 께 하실
하나님의 역사를 그 능력 그 약속을 믿을 때 평안합니다. 이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름다
운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능력 안에서 생각하고 보게 될 때 나 자 신도 소중합니다. 나
를 통해서 큰 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에 가능함이 있고 여기에 오직 형통함 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여 호수아와 갈렙, 그를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불신앙으로 그 때
문에 멸망이 될 때 믿음의 사람 이 두 사 람만이 믿어서 구원에 이르렀습니 다. 요단강을
건너가는 축복을 누 렸습니다. 여러분 믿음을 새롭게 하고 여호수아의 뒤를 따라 믿음으 로
저 앞에 있는 가나안을 바라보세 요. 저 땅은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 다. 미래를 보는 자는
오늘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를 밥으로 보자! (민 13:25-14:10).
인도의 유명한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는 "지금 인도의 시급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묻는 한 영국 기자의 질문에 "인도의 시급한 과제는 경제 건설이나, 사회 복지 건설이 아니라 인격 건설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건실하고 진실된 인격이 건전할 사회를 이루어 나갑니다. 기독교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영혼 구원에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신앙은 구원받은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신학자 '본 훼퍼'는 "그리스찬이 되는 것은 참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숙한 인격자가 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마11:29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받으면서 주님 만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부정적인 열 사람과 긍적적인 두 사람의 이야깁니다. 더 쉽게 말하면 열 사람의 불 신앙과 두 사람의 신앙인의 이야깁니다.
■큰 제화회사에서 남아프리카에 두 명의 구두 세일즈맨을 시장 개척을 위하여 보내었더니 전보가 두 통이 회사에 왔습니다.
한 전보에는 "아프리카에 와서 보니 구두를 신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음. 그들은 구두가 무엇인지 몰라서 구두를 팔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음"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의 전보에는 "아프리카에 와서 보니 구두를 신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음. 그러므로 구두를 팔 수 잇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함"
누가 '할 수 있다'의 사람이고, '할 수 없다'의 사람입니까? 누가 적극적인 사람이고, 누가 부정적인 사람입니까?
오늘 본문 속에도 문제를 밥으로 보는 두 사람과 문제를 보고 절망하는 열 사람의 이야깁니다. ◀제목소개!▶
여러분! 하나님의 최대의 관심과 목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가장 소중히 여기시고,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귀히 여기시고, 높이시고, 역사의 주인공으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고, 그 사람 자신에게는 큰 기쁨과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냈던 역사의 주인공은 모세였으며,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는 여호수아가 인도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열심히 행진을 했습니다. 이윽고 바란 광야에 이르렀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 족장 한 명씩을 택하여 12명을 뽑아 가나안 땅을 탐지해 보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는 예비하던 가나안 땅을 구경하라고 보낸 것입니다. 12명의 정탐꾼들은 40일 동안 가나안 구석구석을 정탐합니다. 여리고, 예루살렘, 벧엘, 갈릴리, 헤브론 그리고 에스겔의 골짜기에 들어가 보니 포도송이가 어찌나 큰지 한 송이를 둘이 맬 정도로 큰 것을 증거로 가지고 왔습니다.
40일 만에 돌아온 이 12명은 각 지역의 대표들입니다. 요즘 국회의원 이상으로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돌아와서 먼저 모세와 백성들에게 보고를 합니다.
1. 먼저 10명의 정탐꾼들이 보고를 합니다.
민13:31절 이하를 보면,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합니다.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불 신앙은 언제나 현실만을 크게 보고 열등감에 빠지고, 절망으로 가득 찹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 보이지 않는 힘,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이것이 바로 불 신앙의 현주소입니다.
신앙인은 세상을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은 이스라엘 군인들을 절망으로 빠뜨렸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신앙으로 가득 찬 다윗은 이스라엘 전체가 두려워하는 현실을 믿음으로 대항했습니다.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고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왕하6장에 보면 아람 왕이 엘리사를 죽이려고 많은 군사를 보내어 엘리사가 있는 성을 에워쌌습니다. 이때 엘리사를 수종 드는 사환이 아람 군대와 병거가 성을 에워쌌음을 보고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왕하6:15)라고 절망의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때 엘리사는 사환의 눈을 열어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음을 보게 하였습니다(왕하6:17). 엘리사의 사환은 현실만 볼 수 있는 불 신앙에 사로잡혔기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나님의 군대는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 열명의 정탐꾼들이 현실을 보고, 가나안땅의 거민들을 보고 절망하고 있습니다.
2. 10명의 보고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①백성들이 소리를 높여 밤새 통곡합니다. 이 통곡은 "이제 죽었구나. 이제 망했구나" 절망의 통곡입니다.
②지도자를 원망했습니다. 2절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지도자와 주의 종을 원망합니다. 백성들이 출애굽의 두 지도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 것은 배은망덕한 일이며, 특히 두 지도자를 세우신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불 신앙의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들을 그냥 죽여 버렸으면 좋겠다고 아주 비관적으로 확대해서 해석합니다. 조그만 것도 아주 크게 생각합니다. 불 신앙의 징조입니다.
③하나님을 원망하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포기를 선언합니다.
3절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그들의 안목은 순전히 불 신앙입니다. 자기들은 죽고 처자들은 다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위험 부담이 크다고 합니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안전하다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안전합니다. 작년에 고루 고루 여러 가지 사건이 났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고가 안 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음식 속에는 암에 걸릴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건강한 요소들이 백 배나 더 많습니다. 결혼해서 싸우는 경우도 있지만 안 싸우고 잘사는 경우는 훨씬 더 많습니다. 자녀를 낳아 기르다 보면, 말 안 듣고 속상할 때도 있지만, 잘 크고 훌륭하게 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무엇을 봐도 안 되는 쪽만 봅니다. 말을 해도 부정적인 말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통곡하고 적은 것을 크게 보고, '이제 꼼작 없이 죽었다'고 소리 쳤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생각을 가지고 믿음으로 봐야 합니다. 핵 잠수함이 우리 나라 동해로 돌아다닌다고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땅굴이 지금 서울 한복판을 향하여 뚫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과 군사력을 비교해 보면 우리 나라가 엄청나게 뒤떨어졌다고도 합니다. 저쪽에는 핵이 있다고도 합니다. 그렇다고 전쟁이 일어나면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빨리 죽어버려야지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바로 본문 속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고 있습니다.
④불 신앙인들은 과거에 집착합니다.
3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절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불 신앙은 틈만 나면 애굽(세상)으로 가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곧 죄악의 길로 되돌아가려는 우리의 그릇된 모습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눅9:62절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⑤불 신앙은 신앙에 도전합니다.
9-10절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 동시에"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외침에 저들은 돌로 쳐죽이려고 했습니다.
⑥불 신앙은 결국 죽음뿐입니다.
14:35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37절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불 신앙자들의 마지막은 죽음밖에 없습니다.
⑦불 신앙의 모습을 보신 하나님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불 신앙은 지금까지 누렸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게 합니다.
11절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줄 모르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3.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떤 사람인가?
▶10명의 보고를 듣고 통곡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옷을 찢었습니다. 답답하고, 안타깝고, 괴로워서 옷을 찢었습니다.
7-8절을 보면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가 나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이렇게 보아야 하고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부라운' 박사는 "있을 수 있는 일을 믿는 것은 신앙이 아니고 단순한 철학"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아무 것도 겁낼 필요가 없다고 '에드워드'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신앙이 굳센 사람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이미 혼자 있는 것이 아니며 믿음으로 나가면 혼자 걸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선한 계획을 세우시고 이루어 나가십니다. 누가 함께 하십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믿/
우리 모두 믿음의 말만 합시다. 부잣집 아들이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듯이 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만군의 하나님의 은혜아래 살아가는 성도는 낙심과 좌절과 불안으로 비관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은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여러분! 2004년은 이렇게 한번 믿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나와 함께 하시고, 나의 모든 삶을 축복해 주실 것을 믿고 바라보시면서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아멘!
①오늘 주제는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회중은 큰 문제를 만났습니다. 그렇게 믿고 바라보고 달려왔던 가나안 땅이 순식간에 절망의 땅, 통곡의 땅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몽땅 망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문제가 무엇입니까?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하는 절망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문제는 바로 불 신앙이 문제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온통 하나님의 기적으로 살았습니다. 하루하루를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으로 살았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이 언제나 같이 있었고, 만나와 메추라기와,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며 살았습니다.
가끔 문제도 있었지만 문제 때마다 하나님은 기적을 주셨습니다. 어두움의 문제가 있을 때 불기둥이 오고, 무더위의 문제 때는, 구름 기둥으로 덮어 주셨습니다. 배고픔의 문제는 만나로, 갈증의 문제는 반석에서 생수를 터뜨려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기적의 품안에서 살았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이 기적의 품안에서 사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②왜 생활 속에서 문제가 일어납니까?
욕심 때문에, 정욕 때문에 일어납니다.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는 광야에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만나를 주셨습니다. 감사 중에 감사할 일입니다. 그것도 매일 주시는 일은 특별한 감사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사를 몰랐습니다.
뛰는 사람은 걷고 싶어합니다. 걷는 사람은 서서 쉬고 싶어하고, 서 있는 사람은 앉고 싶어하고, 앉고 있는 자는 눕고 싶습니다. 누워 있는 자는 자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심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맛있는 만나를 매일 공짜로 먹다보니 탐욕이 생겼습니다.
민11:4절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배부르니까 고기 생각이 납니다. 또 생선, 수박, 부추, 파, 마늘 등등 먹고 싶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신본주의 음식인 만나를 먹을 때에는 문제가 안 생겼는데, 인본주의 음식인 생선, 수박, 마늘, 파, 부추 등을 먹을 때부터 문제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늘 문제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문제가 없는 곳은 오직 한 곳, 공동묘지뿐입니다. 죽은 사람이 문제를 당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일하면서 생기는 문제는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그러나 일하지 않으면서 생기는 문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보면, 부족한 물건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의견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교회가 일도 않고 나태하게 잠만 자다 생기는 문제는 부정적인 문제입니다. 이래도 문제, 제래도 문제입니다. 일을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문제에 긍정적으로 부딪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 생기는 문제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안 하다가 생기는 문제는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이스라엘의 문제 중에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을 불 신앙하고, 언제나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전염병처럼 독버섯같이 퍼져 나갑니다. 이 원망의 소리는 본문의 10명의 정탐꾼의 보고에까지 영향을 끼쳤습니다.
③하나님은 불 신앙의 보고를 드린 10명의 정탐꾼들을 벌하시고 믿음의 보고를 드린 여호수아와 갈렙 만을 들어서 쓰셨습니다.
민14:29-30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 세 이상으로 게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나님은 당신이 인정하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보호하시고 살리시며 일을 시키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버리십니다. 하나님은 12명의 정탐꾼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 만을 살리시고, 끝까지 쓰셨지만 10명의 정탐꾼은 죽이셨습니다.
14:38절 "그 땅을 탐지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
4.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쓰십니까?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사람을 쓰십니다. 그들의 신앙은 무엇입니까?
민13:30절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①그들은 먼저 백성들에게 믿음을 주었습니다.
13:30절 "백성들을 안돈시켰습니다" 겁먹은 정탐꾼들의 보고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곡하고 분위기가 살벌해졌습니다. 이때 두 사람이 그것을 안돈시켰습니다. 안돈이란 신앙의 재무장시킴을 의미합니다. 두 사람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믿음으로 설득합니다. 그리고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외칩니다.
얼마나 믿음직스럽고 착실한 지도잡니까? 신앙은 이것입니다. 능히 이길 것으로 믿고, 취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가나안 땅을 취할 것으로 믿고, 또 그들을 무찌르고 이길 수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확신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쓰십니다. 같은 장미를 보면서 어떤 사람은 가시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같이 보면서 그 마음의 상태에 따라 표현이 다릅니다. 그 느낌과 그 느낌에 대한 말이 바로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예배시간에 다른 집 아이가 떠드는 것을 보고 가정교육이 잘 안되고 수선스럽다고 생각했던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자식을 낳고 보니 그 예배시간에 떠들고 소리치는 것이 씩씩하고 귀엽게 보였다고 합니다. 10명의 정탐꾼은 모두가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확신을 가지고 있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10명의 정탐꾼은 '모세를 따라 가나안으로 가지 말고 한 장관을 자기들이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데모하고 있습니다. 이때 두 사람은 이스라엘을 안돈시킵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276명이 한 배를 타고 가다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14일간 죽느냐 사느냐 갈림길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절망 속에 빠집니다. 선원들은 배와 사람들을 버리고 도망하려고 했습니다.
행27:24-25절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믿노라. 사람들은 바울의 말을 신뢰하고 인정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평안함을 주는 긍정적인 여호수아, 갈렙과 바울과 같은 사람을 쓰십니다.
②문제를 밥으로 보는 사람을 하나님이 쓰십니다.
여호수와와 갈렙은 '그들을 우리의 밥이다' 라고 말합니다.
▶밥이 무엇입니까?
㉠밥은 영양가입니다. 여기서 문제를 밥으로 보았습니다. 사자는 다니엘을 밥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사자 때문에 더 왕에게 신임을 받습니다. 사자는 다니엘의 밥이였습니다.
고래는 요나를 영양가 있는 밥으로 생각하고 요나를 삼켰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고래 때문에 니느웨에 가게 되었고, 니느웨 성에 회개의 복음을 던짐으로 그 성이 구원을 받습니다. 고래가 요나를 삼킨 것이 아니라 요나가 고래를 요리한 것입니다.
바로는 홍해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독 안에 든 쥐처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나중에 보니 홍해 때문에 모두가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 때문에 죽게 되었다고 원망하였지만, 결과적으로 홍해는 이스라엘에게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이었습니다.
문제를 우리의 밥으로 보십시오. 여러분! 지금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건강이 문제입니까? 사업이 문제입니까? 무엇이 문제입니까? 문제를 밥으로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홍해가 가로 놓였고, 여리고 성이 버티고 있습니다. 큰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 때문에 그들은 살았습니다. 문제 뒤에 축복이 있습니다. 벧전4:13절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시29:10절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떠한 홍수 같은 문제가 다가온다 할지라도 그 홍수 위에, 그 문제 위에 하나님께서 좌정하고 계시면서 홍수를 다스린다는 말씀입니다.
시121:1-2절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8절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밥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밥이 없으면 사람은 살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밥과 같아서 꼭 필요한 것입니다. ▶양만 기르면 양끼리 붙어 자고 붙어살기 때문에 병에 걸리고 잠도 제대로 못 잔답니다. 그래서 꼭 염소 한 마리를 기른답니다. 염소가 양들을 흐뜨려 뜨리는 일을 감당합니다. 그래서 양들이 건강하게 자란다고 합니다.
③문제보다 하나님을 보는 사람을 하나님이 쓰십니다.
10명의 정탐꾼은 문제를 날카롭게 보았습니다. 그러나 문제 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전혀 보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적은 문제를 크게 보고 한숨을 짓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으신 분임을 믿지 못합니다.
본문의 주인공 여호수아와 갈렙은 문제를 정확히 보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안경을 쓰고 보니 그것들은 문제가 아니라 도리어 밥으로 보였습니다. 문제 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쓰십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믿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올라가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그 땅은 우리의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쓰시고 이런 사람들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주님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믿는 자에게는 오늘도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문제도 주시지만, 그 문제에 대한 기적도 주시는 분이십니다. /믿/
하나님 앞에선 문제가 없습니다. 병든 자에게는 치료함을, 배고픈 자에게는 빵을, 눈 먼 소경은 고치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문둥병자를 치료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문제라도 능치 못함이 없으십니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무엇이 문제입니까? 인간에게 닥쳐올 인생의 문제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는 불 신앙이 문제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에 모든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믿음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왜 의심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하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만나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이 나를 가리켜 목사라고 부릅니다. 제 아들들은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우리 사모님은 나를 여보라 부릅니다. 고향 친구들은 수천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이름도 각각입니다.
①창22:14절 '여호와 이레'
인생 길을 가면서 하나님이 준비해주시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여호와 이레라고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삭을 받지 아니하시고 아브라함의 믿음만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하시고, 준비해 놓으신 수양으로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여러분! 2004년 한해를 바라보십시오. 여러분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많은 복들을 준비하시고 기다리십니다. /믿/
②출17:15절 "여호와 닛시"
승리의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광야 길에서 아말렉 군대가 기습해 왔습니다. 그때 도저히 이길 것 같지 않은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기적적으로 승리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여호와 닛시'라고 불렀습니다. 출17:15절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하나님을 통해 승리를 맛본 사람들이 하나님을 부를 때는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③삿6:24절 "여호와 살롬"
살롬은 평강이란 뜻입니다. 두려움과 공포에 떨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 평강을 얻고 나면 하나님을 평화를 주시는 '여호와 살롬'의 하나님으로 불렀습니다.
④출15:26절 "여호와 라파"
라파란 의사란 뜻입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 하나님이라" 병들었던 사람이 고침을 받고 나면 하나님을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이라 부릅니다. 하나님은 의사십니다. 돌 파리 의사가 아니라 만병의 의사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우리가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모든 것을 맡기신 자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대하16:9절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또 하나님은 모든 문제를 우리의 밥으로 보는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끊음 없이 문제가 있습니다. 고난이 있고, 역경이 옵니다. 문제가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밥으로 보십시오. 영양가로 보십시오. 축복으로 보십시오.
사실 우리가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모세도 여호수아도 문제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다가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라고 믿는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이 신앙을 가진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근심걱정이 없습니다. 원망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감사만 있을 뿐입니다.
5.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마하트마 간디에게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군사도 없이 병력도 없이 돈도 없이 그토록 강력한 대영제국으로부터 당신의 조국을 해방시킬 수 있었 습니까?" 간디가 대답합니다. "내게는 내 조국을 해방시켜야 되겠다고 하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목표는 믿음은 군사력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①이스라엘 민족은 그 약속에 땅에 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민13:2절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땅, 약속의 땅은 쟁취하여야 합니다, 거기엔 가나안 족속들과 아낙의 거인들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성을 향하여 가고 있는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부단히 싸울 것들이 있습니다.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가나안을 쟁취하기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올라가서 취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②그 땅의 정복자가 되려면 먼저 하나님과 그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는 말씀이 지니고 있는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그 땅의 정복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과 그 약속을 믿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줄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완전하심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올라가 싸울 힘도 없고 싸워 이길 수도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힘이요 능력입니다.
③결코 자신과 세상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약속의 땅은 심히 아름답지만, 이미 견고한 성에 아낙 자손이 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생일 뿐입니다. 인생도 세상도 다 하나님의 주권에 있습니다. 오직 의지할 자는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뿐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나온 것은 자신들의 힘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여호와의 크신 팔을 의지하는 자만이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힘으로라야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힘과 능력의 원천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올라가서 취하자!' 이는 불 신앙을 버리라는 메세집니다.
④오직 승리는 주께 순종하는데 있습니다.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라' 이 말의 의미는 '순종하라,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그 약속을 믿는 자는 순종하여 그 말씀을 이루어야 합니다. 신앙은 용기 있는 결단입니다. 순종은 믿음입니다. 순종은 두려움을 이기는 힘입니다. 순종하면 큰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을 순종하는 자를 쓰시고 그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반듯이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04년에도 우리들에게는 많은 문제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불 신앙을 버리고 믿음을 굳게 하여 모든 문제를 밥으로 보는 한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4년 1월 11일 대예배 설교)
출처: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