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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 오브 라이프, The Tree Of Life, 2011]
20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수많은 인류에게 읽혀온 텍스트.
서방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사고의 근원. 이 텍스트는 바로 성경이다.
성경은 물론이고 코란, 슷타니파타, 베다, 그리고 그 외의 많은 경전들은 수세기동안 수많은 문명과 문화에 영향을 끼쳐온 근원적 텍스트이며, 오랜 세월에 걸쳐 완성되어온 인류 정신의 요람이다.
그렇기에 비종교인일 지라도 인류의 정신을 읽어내기에 적절한 텍스트를 찾는다면 단연 이러한 오랜 종교들의 근원 서적을 보아야하는 것이다.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전 인류가 고민하는 문제를 이야기하고자하는 거대한 주제를 내포하고있다.
그렇기에 감독은 인류의 근원이자 인간 정신의 원류를 찾는 텍스트 중 하나인 성경에 근간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감으로서, 말하고자 하는 거대한 주제를 보다 적확하게 풀어내고자 하였다.
특히 구약성서중 "의인이 고통받는 이유를 설명하고자"한 "욥기"를 영상적으로 재해석해내어 "삶, 믿음, 그리고 신의 의미"를 이성이 아닌 감성을 통해 느껴보고자하고있다.
영화가 "욥기"의 한구절로 시작되고, 주인공의 이름인 잭 오 브라이언(Jack O’Brien)의 앞글자를 따면 JOB(욥)이 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계속하여 신의 존재에 대해, 신에 대해 질문하고 고뇌하며 삶에대해 물음을 던지는 나레이션과 영상의 모습이 쓰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다시 "욥기"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삶이 가진 요소들은 인간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거대하기에, 뚜렷한 이유없는 고난과 유유히 흘러가는 생애 속 많은 역경과 의롭게 사는 이에게 닥쳐오는 불행 등이 어째서 일어나는지에 대한 의문은 오랜기간 인류의 의문으로 남아오고있다. 인류는 오랜 시간동안 의문을 품어왔지만 아직도 그에 대한 뚜렷한 답에 대해 종교에 따라, 개인에 따라, 문화에 따라 그 의견이 분분하다.
그 답에 대한 의견중 2000년 이상 인간의 정신이 축적되어온 텍스트인 성경이 제시한 답이 "욥기"에 나와있다. 그렇기에 본 글의 상기에 언급된 것처럼 "욥기는 위대하다".
물론 이 답이 옳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점은 인정하는 바이다.
허나 많은 이들이 이 성경의 답을 믿고 그 텍스트를 자신의 삶의 근원으로 삼아온 점을 보면, 성경의 답이 어떠하였는지에대해 이야기해보고 알고있는 것이 이후 자신의 정신적 성장에 도움이 될 자양분이 될것이기에 "욥기"는 비종교인이나 타 종교인에게도 큰 도움이되는 텍스트라 여겨지는 것이다.
종교적 관점이 아닌 인문학적, 역사적, 철학적 관점에서도 큰 도움이 되는 텍스트이며, 자신을 성찰하고 성장시키는데 큰 자양분이되는 인륜 2000년 지식의 결과물이기에, 성경의 "욥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인류에게 의미가 있는 텍스트인 것이다.
그렇기에 테렌스 맬릭 감독은 이 인류의 근원적 텍스트인 "욥기"를 영상화하고 영화라는 문법을 통해 재해석하여 관객들에게 보여주고자 하였다.
2000년간 서방 세계의 정신적 근원으로 여겨지고있으며 수많은 이들의 사고와 철학이 모인 인류 정신의 요람인 성경이 "왜 의인이라도 역경과 고난이 오는가"라는 인간의 물음에 답한 답변.
그 답변을 영화라는 매체로, 영화라는 매체가 할수있는 문법의 극대한 활용으로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텍스트적 감상과는 또 다른 영상매체가 지니는 독특한 감상을 이용하고, 영상 매체만이 해낼수 있는 모든 문법을 동원하여 만들어진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를 보노라면 테렌스 맬릭의 시도는 웅장하게 느껴질 정도로 성공적이라 생각된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트리 오브 라이프>는 가히 "성공적인 구약 욥기의 재해석"이라 불릴만한 작품이라 여기게 되었다.
구약성서의 "욥기"는 신을 잘 섬기는 의로운 욥이 어느날 아들과 딸과 재산을 잃고 본인은 병에 고생하는 "의로운 자의 고행"으로 시작된다. 이러한 고행에도 그는 악에 굴하지 않으며, 세명의 친구와 한명의 젊은이 그리고 신과의 대화를 통해 욥은 신께 보다 신실히 귀의하게된다. 신은 세상과 자신과 모든 법칙을 만드신 분이고, 너무나 위대하여 인간이 이해할수 없는 거대하고 웅장한 오직 하나의 존재가 신이다. 그렇기에 욥은 자신의 고행도 신의 것이며 행복도 신의 것이고, 신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고 그분의 행위에 인간의 눈으로 평을 하거나 이해하려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보다 순수하게 신의 섭리에 따르고 삶의 한계와 흐름을 오롯이 받아들이며 현실을 살아갈 수 있게된다.
<트리 오브 라이프>를 보노라면 어머니, 아버지, 첫째 아들 잭 삼자는 각자가 각기 하나의 "욥"이며 이는 삼자의 나레이션이 번갈아가며 화면에 나타나고 그 나레이션 별로 각기 다른 시선의 내용이 펼쳐지는 것으로 드러나는 듯하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 직장과 가족의 신뢰와 아들을 잃은 아버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사춘기적 모습이 수반되는 성장의 모습속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어머니가 아닌 반목하던 아버지를 더 닮아가게되는 첫째 아들 잭.
이 세명의 "욥" 각자가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극을 이끄는 주된 구성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종교적 텍스트가 어찌보면 비종교인이나 다른 종교를 믿는 이에게는 조금 받아들이기 부담스러운 이야기일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본인도 비종교인이기에 그러하게 느끼는 분들께 공감하는 구석도 있기는하다.
허나 테렌스 맬릭 감독은 이 텍스트가 지닌 종교적 색채에 보다 더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인간 본성이 가진 감성을 부가함으로서 비종교 관객에게도 거부감을 주지않고 그 텍스트가 지닌 본디의 의미와 웅장함을 오롯이 느끼게 해주었다.
모든 민족과 문명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생명의 나무", "성배"와 같은 인류가 태어날때부터 가지는 근원적 감정인 "어떤 위대한 것에대해 가지는 감성"의 상징물을 "욥기"의 택스트에 추가한 것이다.
북유럽 신화의 위그드라실, 에덴 동산의 나무, 조로아스터교의 하오마, 황금 가지 등으로 대표되는 세계수에대한 인류의 상상과 근원적 믿음은 자연적 질서에 대한 범신론적 담론과, 자연의 순환과 시간의 흐름과 같은 생태계적 진실에 대한 인간의 사고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성배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속 에아신의 물동이, 아일랜드 신화속 다그다의 솥 등으로 대표되는 생명의 샘이자 영원한 바다이며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생명의 창조와 삶의 근원적 탄생을 상징하고있다.
이러한 모든 인류의 근원적 공통 사고에 기원을 둔 물체들을 극중 요소로 사용함으로서 감독은 종교적 택스트가 지닌 특유의 색채를 하나의 종교속에 가두지 않은채, 보다 광범위하고 포괄적으로 이해되고 받아들여지게 만들어내었다.
텍스트가 지닌 본질적 의미는 훼손하지 않은채 그 의미가 보다 받아들여지기 쉽도록, 보다 웅장하고 광범위한 범위를 포괄하도록 만들어낸 것이다.
<트리 오브 라이프>의 영상은 폭포, 화염 등이 지닌 파괴의 이미지를 잔잔하고 드넓은 바다, 세포의 움직임, 나무의 푸르른 모습 등의 창조의 이미지와 병치하여 파괴와 창조는 함께 이루어진다는 인류의 근원적 깨달음을 드러내준다.
게다가 그 파괴와 창조라는 진리의 쌍생아를 이어주는 "시간의 유구한 흐름"이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고요히, 그리고 단호히 흘러가는 강물의 모습으로 상징화되면서, 극은 생의 창조와 파괴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이고 시간의 흐름속에 몸을 맡긴채 한계와 자연의 근원적섭리를 인정한채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말하고있다.
극이 지닌 종교적 색채를 인간의 근원적 텍스트로서 풀이하려는 시도는, 이러한 성찰적 결론을 보다 많은 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게해주어, 관객이 자신을 성장시키고 삶을 보다 잘 살아갈 수 있게 할 수 있을 기반적 소양을 함유하게해준다.
특히나 뛰어났던 극의 영상을 보자.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스탠리 큐브릭 감독과 함께 우주, 인간의 삶, 생명 그 자체를 이야기하고자 했던 특수효과의 선구자 더글러스 트럼블이 <블레이드 러너>, <브레인 스톰>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영화에 참여한 작품이 <트리 오브 라이프>이다.
큐브릭 감독과 함께 이루었던 영상미를 보다 진일보시켜 보여줌으로서 텍스트가 지녔던 본디의 "웅장함과 거대하고 그 자체로서 오롯한 존재에대한 느낌"을 성공적으로 관객에게 전해준 것이다.
그렇기에 더글라스 트럼블과 테렌스 맬릭의 만남이 가져온 시너지는, 영상적 문법의 모든 요소를 동원하여 완성된 미학적 이미지로 인류의 오랜 정신적 텍스트를 영상화시키는데 큰 공로를 해내었다.
광원의 효율적 활용, 심리와 직결되는 색조의 활용, 아래에서 위로 찍는 로우앵글, 상승의 시점이동, 클로즈업 등의 영상적 효과가 빚어내는 위대하고 성스러우며 웅장한 이미지들. 어느것 하나 허투루 보내지 않는 섬세한 미장센과 나레이션들.
이 모든 것을 보노라면 입이 다물어 지지 않는다.
게다가 <색, 계>, <페인티드 베일>, <더 퀸>, <킹스 스피치>로 유명한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음악은 그 영상의 감성을 두배, 세배로 증폭시켜주었다.
베를리오즈의 "레퀴엠"과 스메타나의 "몰다우"가 흐르던 우주의 영상, 아버지 오 브라이언이 연주하는 바흐의 푸가와 모차르트의 소나타와 같은 음악과 영상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전체적 극의 조율은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보는듯 적확하게 조율되어있었고, 굉장한 감명을 주고있다.
이성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감성적으로는 분명 어떠한 느낌을 받게되고 그로인해 영화가 끝난후 많은 생각을 해보게되는 작품이 <트리 오브 라이프>인 것이다.
숀펜, 브레드피트와 같은 명 배우들이 나오고 그들의 연기 또한 뛰어나다, 허나 배우들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편집이 빚어낸 몽타주가 만든 독특한 감상과 연상 작용, 영상과 음악의 감미로운 조화가 빚어내는 정신적 환희의 순간이 가장 중요한 감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상 사이에서 드러나는 상징화된 여러 요소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거대하고 웅장한 삶에의 주제의식은 관객을 압도한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나 데이빗 린치 만큼 어려운 영화는 아니라 생각되지만, 성경의 "욥기"를 모른다거나 극중 흐르는 음악들의 제목이나 사연을 모른다면(예를 들어 우주의 장면에서 맨처음 흘러나오는 가사인 "라크리모사"는 "눈물을 흘리다"라는 뜻이니 이 가사의 뜻을 알고 음악을 극을 감상하는 주요 요소로 여긴다면, 영상과 이야기의 진행에 있어 맥을 놓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약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영화일 수도 있다.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도 감성적으로는 무언가 크고 웅장한 것을 가슴속에 새길수 있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영화로 받아들여지는 영화이기는 하지만, 성경의 "욥기"를 읽고 삽입된 음악들의 제목과 각 음악의 사연을 알게된후 극을 감상한다면 이성과 감성이 조화롭게 영화를 받아들여 보다 심도깊은 감상이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 귀찮은 공부라니 무슨 말인가!'라 생각하지 마시고, 이러한 영화의 감상을 통해 삶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해 이해의 자양분을 얻을 수 있을지니.
"단순한 영화"라기보다는 "영화이기에 가능한 심상"쪽에 주목하여 <트리 오브 라이프>를 감상하여 주시길 바래본다.
인류 정신의 요람이 가진 텍스트를 성공적으로 영상화하여 독특한 심상을 제공하는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를 보다 많은 분들이 보고 많은 것을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
<시놉시스>
중년의 잘 나가는 건축가 잭 오 브라이언(숀 펜)은 19살 때 죽은 어린 동생에 대한 아물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있다. 그는 오랜만에 아버지와 통화를 하게되면서 문득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된다.
잭은 어린시절 미국 텍사스 주에서 오 브라이언 일가의 일원으로 살았다. 공장에서 일하던 가부장적인 아버지(브래드 피트)와 가정적이고 여성적이며 독실한 크리스천 어머니(제시카 차스테인)와 함께 지내는 세 아들은 언제나 자애로운 사랑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어머니를 잘 따르지만 엄격하기만 한 아버지에게는 경외심과 두려움을 느끼며 자라나게되었다.
특히 맏아들인 잭은 권위적인 아버지와 자꾸 부딪히게 되고 두 사람 사이엔 미움과 분노가 자리하게 된었다. 이 감정은 원래 음악가가 되고자 했던 아버지와 음악을 재능을 지닌 둘째가 좀더 정신적으로 친근해지면서, 어머니가 아버지와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그럼에도 아버지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점점 심화되게되었다. 그러던중 아버지가 실업을 하게되고 잭은 항상 강해보였던 아버지의 약한 모습을 발견하게되며 아버지와 화해를 시도하였고 그들 일가는 아버지의 일자리와 돈문제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되었었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기억에 더붙어 성인이 된 잭은 어머니가 동생의 죽음을 어찌 받아들이셨는지, 아버지는 어떠하셨을지, 그리고 자신은 어찌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를 다시한번 생각해보게된다. 그리고 결국 동생의 죽음도, 자신의 가족들에게 닥친 시련도 결국 자연의 섭리이자 신이 섭리이며 흘러가는 시간속에 살아가는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 것임을 받아들이게된다.
첫댓글 좋은 정보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