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람료 인상설로 인터넷이 뜨겁다. 2008년 영화관람료가 1만 원으로 인상된다는 설이 유포되면서부터다. 하지만 대기업 극장사업자들이 움직이지 않는 한 실체 없는 설에 불과하다. 영화관람료를 1만 원으로 올려야 한다는 영화인회의 이춘연 대표의 말은 마치 당장 내일이라도 현실화될 것처럼 뜨거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KTF, SK, LGT 등에서 일방적으로 내놓고 일방적으로 거둬 가버린 영화관람료 할인제도가 사라진 뒤 관람료 문제는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그러나 몇 차례에 걸친 영화관람료 인상 논란은 허공에 대고 삿대질하는 격이었다. 영화관람료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단체들의 성명 혹은 시뮬레이션 자료를 근거로 한 착시현상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만 해도 관람료 인상설이 세 번 불거졌다. 지난 5월,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영화관람료 9,000원 인상설'을 기억할 것이다. 인상이다, 아니다, 사실상 인상이다 공방이 오가던 논란은 허무하게 끝났다.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실은 영진위가 영화관람료를 500원 혹은 1,000원으로 인상하는 방안, 기존 주말 프라임타임을 평일로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문화관광부에 제출했다며 영진위가 영화관람료를 최고 9,000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진위의 문건 자료는 한국영화 수익구조의 변화를 예측하기 위한 단순 시뮬레이션에 불과했으며, 결정적으로 극장이 결정할 관람료 책정에 영향력을 미치기 어려웠다. 관람료 인상설은 6월 말에 또 한 번 불거졌다. 영화발전기금 신설 때문이다. 영화 티켓에 약 204원의 영화발전기금 부과금 적용이 실시되자 이 금액이 영화관람료 인상으로 직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힘을 얻었다. 그러나 문화관광부 공식 브리핑에 나선 관계자는 관람료 인상이 관객 감소로 이어질 수 있어 극장 측에서 영화발전기금을 이유로 관람료를 인상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우려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이번 관람료 인상설의 전후 사정은 이렇다. 지난 17일, 영화인회의,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등 영화계 단체의 홈페이지에 한국 영화산업의 미래를 위한 제안이라는 성명서가 발표됐다. 한국영화산업구조합리화추진위원회,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한국영상투자자협의회, (사)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감독네트워크, (사)여성영화인모임, (사)영화인회의 등 영화계 주요 7개 단체가 협의한 이 성명서에서 영화인들은 불법 복제, 불법 다운로드를 통한 영화의 유통이 근절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영화관람요금이 현실화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대다수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소한 물가상승률에 준하는 영화관람요금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게 주장의 요지였다.
성명서는 2002년부터 2006년까지의 소비자 물가지수 증가 수치와 영화관람요금 인상률을 비교했다. 5년 동안 소비자 물가지수가 11.4% 증가(연평균 2.3%)하는 동안 영화관람요금은 3.9% 인상(연평균 0.8%)됐을 뿐이며 더불어 같은 기간 영화제작비 상승률은 평균 31.7%(연평균 6.4%)로 훌쩍 뛰었다는 것이 관람료 인상의 불가피성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근거였다. 여기에 같은 날 오후, 여성영화인상시상식에 참석한 영화인회의 이춘연 대표의 깜짝 발언이 기폭제가 됐다. 이춘연 대표는 한국영화가 풀어야 할 세 가지 숙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제작비 3분의 1 절감, 영화관람료 1만 원 인상, 불법 다운로드 방지를 꼽았다. 그 가운데 영화관람료가 1만 원 정도로 올라야 한다. 이 내용을 추진하고 있다는 발언은 곧장 인터넷 뉴스란에서 영화계, 영화관람료 1만 원 인상 추진으로 둔갑했다.
정작 칼을 뽑을 수 있는 쪽은 극장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영화관람료 인상 논란도 실체 없는 논쟁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대다수 관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는 거대 멀티플렉스 CJ CGV와 메가박스, 롯데시네마는 영화관람료 인상에 관해 적극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있다. CGV 홍보팀의 한 관계자는 영화요금의 현실화는 영화계 전체가 공감하는 부분이지만 극장 측에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최근 스크린 포화상태와 관객 감소라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는 현실에서 영화관람료 인상은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관람료 인상을 추진하지 못한다는 입장은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도 마찬가지다. 메가박스 마케팅팀은 관람료 인상에 대해 전혀 논의된 바가 없으며 계획도, 입장도 없다고 말했다. 롯데시네마 관계자 역시 이제껏 영화계에서 제기했던 영화관람료의 현실화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해왔다. 그러나 관람료 인상에 대한 저항이 심하고, 극장 입장에서는 관객 심리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당분간 인상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라고 답했다.
프리머스 녹색극장 대표이자 서울시 극장협회 천남중 부회장의 의견은 달랐다. 천 부회장은 오랜 시간 이동통신사와 카드사의 할인 서비스 때문에 영화관람료 시스템이 흐트러졌다. 이제 영화관람료가 현실화될 필요가 있다며 배급사와 부율문제가 달린 문제이니만큼, 배급사 쪽에서 적극적으로 관람료 차등 정책이나 인상을 요구한다면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관람료 인상은 몇 년 전부터 말만 많았다. 올려야 된다는 취지는 동의했지만 누가 먼저 하느냐, 어떻게 하느냐 눈치만 보고 시간만 끌어왔다며 가격 담합이 아니라 누군가 먼저 시작한다면 자연스럽게 적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극장 관계자는 반복되고 있는 관람료 인상 논쟁의 맹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영화관람료 인상설이 이슈가 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며 그는 낭설로 밝혀진 영진위의 영화관람료 9,000원 추진설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일부는 이런 논쟁이 반복되면서 영화관람료가 계속 오르고 있는 것으로 느낀다고 푸념했다. 실제로 관람료가 올랐다고 믿지는 않더라도 관람료 인상의 위기감을 반복적으로 느끼면서 영화계에 대한 불신만 키운다는 것이다.
이춘연 대표는 영화관람료 1만 원 인상은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네티즌들의 비난은 여전히 거세다. 영화계 안팎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시점에서 관람료 인상과 관련한 설들이 흘려졌을 때의 부작용은 적지 않다. 관람료 인상의 열쇠를 쥐고 있는 극장들이 부율문제와 관람료 합리성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관객 저항을 빌미로 움츠러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극장들 역시 관객들과 직접 대면한다는 이유로 제작사와 배급사들의 절실한 호소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대처에 대해 재고해봐야 할 것이다. 자칫 관객들의 비난을 살까 논의를 회피하기 바쁜 극장들은 지난 이동통신사, 카드사 할인서비스 제도의 도입과 폐지로 요금 부담을 관객들에게 전가시킨 주범이기도 하다. 천남중 부회장 역시 이렇게 관객 저항이 심해진 것은 어떤 점에서는 극장업자들의 잘못이라고 말한다. 한때 단기간의 관객 유입을 기대하고 무분별하게 이동통신사와 카드사들의 할인정책을 극장요금에 적용시킨 극장들은 앞으로 관람요금 인상이 꼭 필요한 시점이 도래한다 해도 관객들의 저항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눈앞의 이익을 좇은 것이 부메랑처럼 돌아왔다고 말하는 천 부회장은 다양한 요금 차등 정책에서 해법을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블록버스터와 작은 영화의 관람료를 차등 적용하거나, 개봉 이후 시점에 따라 요금을 달리 책정하는 식으로 일괄적인 요금 인상이 아닌 다양한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객들을 향해서는 과거 할인제도를 기준으로 관람료가 올랐다고 생각하기보다 원래 기준가로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는 영화계 전체가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호소이기도 할 것이다.
필름 2.0 송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