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잔틴(Byzantine)시대의 복식(395∼1453년)
(1) 사회·문화적 배경
비잔틴 제국의 이름은 원래 그리스의 번영한 식민지였던 비잔티움(Byzantium)에서
유래된 것으로 동로마제국을 의미한다. 비잔티움은 중세의 빠리라고 일컬을 만큼 중세
유럽 문화의 중심지였다. 수도인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은 동·서양의
접속점으로서 상업상·군사상 요지였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정치적·지리적 여건으로
문화가 발달하고 경제적으로도 부유한 국가였다.
비잔틴 제국의 문화 특징은 로마의 정치적 전통과 그리스 문화를 토대로, 기독교적인
요소와 동양의 문화가 융합된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한 것이다. 모자이크에 나타난
비잔틴 미술은 이러한 특징을 잘 반영해 주고 있는데, 그리스의 현세적 아름다움이
동방의 신비로움, 밝은 색채, 풍부한 장식성과 융합되고 종교적 관념과 결부되어
나타난 독특한 양식이다. 비잔틴 제국의 주된 종교인 기독교의 영향에 의해, 초기에는
정숙 및 금욕의 풍조가 생활 전반에 걸쳐 요구되었으나, 제국이 번성해 갈수록
장엄하고 화려한 양식을 띠게 되었으며, 또한 모든 문화에 영향을 미쳐 기독교의
정신이 복식에도 그대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스 문화와 기독교 사상 등 여러 요소가
복합된 비잔틴 문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동방 문화와의 교류로서, 이것은
비잔틴 제국의 정신적·물질적인 면을 변화시켰는데, 그 중 페르시아의 화려한 색채
감각과 중국의 견직물은 비잔틴의 조형 문화, 특히 복식의 특징적인 요소가 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비잔틴 문화는 당시 유럽 뿐 아니라 동방에까지도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2) 비잔틴 복식
비잔틴 복식은 유럽 제국의 궁정복, 귀족의 축제복, 승복으로서 이끌어져갔다.
기독교를 공인한 비잔틴 제국의 복식은 그리스와 로마풍의 스타일에 동양의 영향을
받아 풍부한 색, 화려한 장식, 호화로운 직물을 사용하였다. 그리스 복식이 리드미컬한
음영을 주로 한 조각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낸데 반해 비잔틴 시대의 것은 스스로 빛을
내고 색채·광택의 화려함이 강조됨에 따라 모자이크(mosaic)화적인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비잔틴 복식으로, 팔루다멘툼 (paludamentum)과 달마티카(dalmatica),
그리고 튜닉(tunic)을 들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클라미스(chlamys)가 로마를 거쳐 비잔틴 시대까지 계속 착용된
팔루다멘툼은 남녀 모두 착용한 기본 복식으로서 비잔틴의 대표적인 의복이 되었다.
그러나 후기에는 왕족, 귀족, 사제에 한해 공식복으로 착용되었다. 형태는 사다리꼴
또는 반원형의 천으로 왼쪽 어깨는 완전히 감싸고 오른쪽 어깨는 장식핀으로 고정시켜
오른손의 활동이 자유롭도록 하였다. 왕족의 것에는 원(圓), 양(羊), 비둘기,
십자(十字), 초상화, 종교화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사각형의 타블리온(tablion)을
붙여 계급 표시를 하였다.
달마티카는 고대 로마 시대 말기에 달마티아(dalmatia)지방에서 소수의 남녀 신자들이
기독교를 포교하기 위해 입기 시작한데서 유래하였고, 기독교가 국교로 인정되면서
왕족, 교황, 사제들 뿐 아니라 귀족들도 모두 착용하였다. 달마티카는 4세기 이후
재단법이 변하여, 고대의 드레이퍼리형 의복에서, 진동 둘레, 가슴이 좁혀져 상부가
몸에 맞고 아랫도련이 넓어지는 형태가 되었다. 형태는 직사각형을 반으로 접어서 양쪽
팔 밑을 직사각형으로 잘라내고 가운데 一자, T자, U자 또는 원형의 네크라인을
만들었으며, 거기에 풍성한 소매가 달려졌다. 이 옷을 펴 보면 십자가 형태를 이루어
종교적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달마티카의 특징은 어깨부터 아랫단 까지 그리고
소매 끝단에 보라색이나 붉은 색의 클라비스(clavis, clavus)라는 장식선을 넣은
것이다. 그러나, 결혼하지 않은 기독교 신자들은 클라비스나 자수 장식이 없는 간단한
것을 입었으며, 왕족은 종종 클라비스 이외에 전면을 화려하게 수놓기도 하였다. 이
옷의 재료로, 처음에는 린넨(linen)이나 거칠고 성글게 짠 모(毛)를 사용하다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에는 견으로 만들어져 화려한 의상으로 변하게 되었다. 달마티카는
르네상스 이전까지 중세복의 기본을 이루었고, 현재까지 사용되어 오고 있으며
유고슬라비아의 국민복으로 내려오고 있다.
튜닉은 고대 로마에서 착용했던 튜니카(tunica)가 비잔틴에서 더욱 화려하게 발전한
것으로, 간단한 T자형의 원피스 드레스이다. 그 형태는 소매가 길고 좁은 형이 주를
이루었고 활동이 편하도록 앞 또는 옆솔기선을 터 놓은 것이 많았으며, 허리에 띠를
매어 입었는데 남자는 허리보다 아래에 여자는 허리보다 위에 매어 입었다. 길이는
무릎까지 오는 짧은 것에서부터 발목까지 오는 긴 것까지 다양했고, 황제의 것은 양
어깨나 소매에 둥글거나 사각형의 장식이 있는데 이것을 세그멘티(segmenti)라 하며,
동·식물의 문양이 아름답게 장식되었다.
비잔틴 시대의 복식은 독창적인 디자인은 별로 없었고, 대부분 그리스의 복식이 로마로
전해진 것을 그대로 이어 받은 것이었고, 다만 실크와 금·은실의 자수, 보석 등을
많이 사용하여 중후하고 화려하게 조화시켜 나간 것이다. 그러나 남녀 구별이 뚜렷하지
않았던 복식이 5세기부터 성별에 따라 의복형태가 구별되기 시작하였으며, 장려한
복식미의 창안과 뛰어난 직물제조 기술의 발달은 서양복식발달에 큰 기여를 하였다.
(3) 장신구와 문양
비잔틴 시대에는 직물 이외 금·은 세공 기술과 유리 세공업이 발달하였으며 그 기법도
매우 정교하였다. 또한 보석이 풍부한 여건에서 그리스와 동방의 장신구가 전래되어
함께 사용되었으므로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였다. 왕관, 목걸이, 머리 장식품, 팔찌,
벨트는 예술적이고 화려하였으며, 장신구의 전체적인 모양은 보석을 많이 사용하여
색이 다채롭고 규모도 비교적 컸다.
종교적 색채는 양식화되어 성서에 나오는 장면을 전면적인 문양으로 나타내었다.
사용한 문양으로 원(圓)은 영원한 안녕을, 양(羊)은 그리스도를, 비둘기는 성경을,
십자형은 기독교 신앙을 상징하는 등 모두가 기독교에 관계된 것이었다. 색상도 종교적
의미를 포함하여 백색은 순결, 청색은 신성함, 적색은 신의 사랑, 녹색은 영원한 젊음,
황금색은 선행, 밝은 황색은 풍성함의 의미를 지녔는데, 이러한 풍부한 색 철학은 현대
의장(意匠)에 이르기까지 기본적 감각이 되고 있다.
비잔틴 시대 사람들은 그리스·로마인과는 달리 머리에 관을 쓰거나 장식하는 것을
중요시하였다. 남자는 짧은 단발 모양의 단순한 형태를 하였으며, 여자는 초기에는
로마인처럼 땋아서 내려뜨리거나 위로 올려 리본으로 묶었으나 후기로 갈수록
터번이나 베일 등으로 머리를 싸서 장식하였다.
2. 로마네스크(Romanesque)시대의 복식(11∼12세기)
(1) 사회·문화적 배경
동유럽에서 비잔틴 문화가 성행하는 동안 서유럽은 오랜 기간의 혼란기인
암흑기(5∼9세기)를 거쳐 11세기 경에 비로소 통일과 안정을 되찾게 되어 오늘날의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영국의 기반을 이루었다. 이 시기는 자급 자족을 원칙으로
하는 폐쇄적 농업 경제 구조였으나, 생산 기술의 발달로 도시의 성립과 농업 이외
수공업의 발달을 가져와 농업 위주의 경제 구조에서 공업이 분리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직물 공업이 기본적 체제를 굳혀 가기 시작하였다. 또한 당시의 교회는 정신적
안식처였을 뿐 아니라 직조·자수·금속 세공술 등도 가르쳤는데, 교회를 통한 직조나
자수의 보급은 이 시대의 의상·장신구의 미화에 큰 역할을 하였고, 이 후 현대
복식에서의 프랑스 자수 기법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종교적 이해 관계로 11세기에 시작된 십자군 전쟁은 당시의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 다. 그 전쟁의 목적 자체보다는 동방과 더욱 직접적인 접촉을 초래하게 됨에 따라
정신적·물질적 영향은 지대한 것이었다.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비잔틴 양식이
전개되어 교회와 수도원을 중심으로 새로운 양식의 예술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것이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십자군 전쟁이 가져다 준 또 다른 영향은, 모슬린(mousseline), 다마스크(damask),
새틴(sateen), 벨벳(velvet) 등의 견직물, 면직물이 진보된 직조 기술과 함께
동양으로부터 수입되어 복식의 양과 질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수공업의 발달로 중세 사회 수공업자들의 조합인 길드(guild)가 형성되어 활발한 생산
활동과 상업 경제가 이루어지고 활동량이 증가되어 의복의 형태도 생활에 적합하도록
몸에 맞는 형태로 발달하게 되었다. 또한, 당시 기독교는 신체의 노출을 종교심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몸을 전체적으로 다 싸고 외관의 존엄성에 가치를 두는
것이 특징이었다.
(2) 로마네스크 복식
복식은 게르만적인 요소와 고대 로마, 비잔틴 요소가 융합된 양식이 나타났으며 특히
기독교의 정신적 의미 표현이 강조되었다. 고대 복식 스타일이 주를 이루었고 여기에
새로운 동양적인 요소가 더해졌으며 십자군 원정으로 동방 문화를 받아 들임으로서
견직물의 수입과 소비가 증대되어 이때부터 의복의 형태가 복잡해지고 색채도
풍부해졌다.
로마네스크 복식의 일반적인 모습은 흰색의 린넨으로 만든 쉥즈(chainse) 위에다
블리오(bliaud)를 입고 맨틀(mantle)을 걸친 것이다. 그러나, 성직자의 복식은 여전히
비잔틴과 같았다.
쉥즈는 린넨(linen), 견, 또는 얇은 모로 만든 튜닉형 속옷으로, 윗몸은 꼭 맞고 소매가
좁으며 소매 부리에는 수를 놓거나 끝동을 달았다. 스커트 부분은 넓고 길었으며
목둘레에는 금·은사로 수를 놓아 장식하여 비교적 화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중세 말기에 슈미즈(chemise)로 바뀌었다.
블리오는 달마티카(dalmatica)와 수퍼 튜닉(super tunic)이 변형된 남녀의 기본
의상으로 9세기 후반 경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초기의 것은 몸통이 헐렁하고
소매부리가 넓은 원피스 드레스였는데, 12세기부터는 상체가 몸의 윤곽선이 나타날
정도로 몸에 끼고 하체는 통이 넓어 졌으며 발등을 덮는 길이였다. 또한 블리오는
소매부리가 넓어서 속에 입은 쉥즈가 보이며, 소매 끝이 땅에 끌릴 정도로 긴 것도
있어 중간에 한 번 잡아 매기도 하였다. 허리보다 조금 내려간 곳에서 곡선을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곡선화의 경향은 평면적인 비잔틴의 의복형과는 다른 것으로, 그 후
유럽 여자 복식의 실루엣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화이었다. 재료로는 동양에서 수입해 온
부드러운 견이나 머슬린을 사용하여 잔주름을 잡아 기능성을 살리기도 했으며 직물
기술의 발달과 함께 사치스럽게 장식화되었다. 오늘날의 블라우스는 이 블리오에
기원을 두고 있다.
맨틀은 고대부터 착용한 팔리움, 클라미스, 팔루다멘툼의 명칭이 바뀐 것으로, 여자의
맨틀은 반원형이나 직사각형이며 재료는 대개 아름다운 견에 견색사나 금사로 단을
장식하였다. 남자의 맨틀은 반원형·직사각형· 타원형이며 무릎 길이의 것이
많았으나 블리오의 길이가 길어짐에 따라 조금씩 길게 변화하였다. 입는 방법은 몸에
한 번 두르고 앞중심선이나 오른쪽 어깨에 핀이나 브로치로 고정시켜 입었다.
꼬르사쥬는 여자들의 블리오 위에 입는 조끼형의 옷으로, 밑단은 허리 주변에서
곡선상이며 그 위에 가죽이나 천으로 된 벨트를 허리에 매고 있고, 몸의 곡선을
나타내기 위해 블리오처럼 등 뒤를 트고 끈을 끼워서 잡아 당겼다. 꼬르사쥬의 부분이
따로 떨어지게 된 것도 있었는데 그것은 당시 병사가 착용했던 조끼인 지뽕(gipon)과
같은 모양이었다.
출처-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