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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kota dream song / The Last of the Mohicans
귀신은 전통적으로 무겁고, 장중하고, 심각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랬던 귀신들이 요새는 많이 업종 전환을 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때문인지 귀신들도 예능 프로 출연이 대세입니다.
한여름 무더위를 날릴 에어컨 역할을 하거나 영화와 게임 등에서 알바로 뛴다는 것이죠.
대접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대접을 못 받다 보니 귀신을 상대하는 분들도 사회의 아웃사이더인 경우가 많습니다.
요새 굿을 하거나 점을 치는 분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편은 아니죠.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가 주류가 된 세상이다 보니 생겨난 현상입니다.
설령 귀신 같은 것을 희끗 보더라도 마음이 순간적으로 놀라서 착각한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객관적인 세계에는 귀신이 없지만 가끔 순간적으로 착각해서 귀신을 봤다고 여긴다는 것이죠.
물론 요즘에도 귀신을 예전처럼 높게 대우하는 종교인들이 계십니다.
또 현대인이라고 세상을 객관적으로만 보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가령 늑대는 음흉하고, 곰은 미련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전에 제가 읽었던 장편소설 <늑대토템>에서는 늑대를 그야말로 당당하고 멋진 맹수로 그리고 있죠.
또 개는 멍멍 짖고, 시냇물은 졸졸 흐른다고 하는 말들도 그렇습니다.
개가 멍멍 짖는지 다른 나라 사람들한테 물어보시죠.
요새 사람들은 세상을 객관적으로 본다고 하지만 여전히 자기 식대로 볼 뿐이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가 인간들과 바둑을 두었을 때, 알파고에 대해 바둑 최고수라고 추켜세우더군요.
그러나 알파고는 자신이 바둑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어떤 수를 두고 신의 한수라고 한다든지, 인간처럼 직관력이 있다든지 하면서
알파고가 마치 의식을 지닌 생명이나 인간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더군요.
또 사람이 반려견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면 둘 사이에 공감하는 영역이 많아질수록
사람과 개의 대화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대화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길게 하면 복잡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 멈출까 합니다.
다만 사람은 그 어떤 대상과 대화를 많이 나누면 나눌수록 그 대상이 모래알이 되었든, 산이 되었든
살아 있는 존재, 대화가 통화는 존재, 영혼이 깃든 존재로 보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말만 남겨 두기로 하겠습니다.
참! 귀신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귀신이 무엇이냐는 이야기부터 해야겠지요.
여기서는 그냥 편하게 사람 혼령, 정령, 신령, 신을 모두 포함하는 뜻으로 썼다고 이해해주세요.
그리고 귀신의 역사라고 거창하게 썼지만 재미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다른 생각이 있으시면 얼마든지 댓글로 말씀해주시고요.
저는 저의 생각에 반하는 글을 보면 즐겁습니다. 제 생각과 다르더라도 거기에 뜻이 있고, 삶이 있고, 느낌이 있다면요.
제 블로그의 모토가 '공부의 즐거움'인데, 새로운 공부거리가 되거든요.
대신 욕설이나 일방적인 비방은 사양하렵니다.^^
생명이 있건, 없건 자연의 모든 것에는 영혼이 깃들었다고 본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 모든 것을 살아 있는 존재로 보며,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인간과 서로 소통할 수 있다고 여기던 때였죠.
우리는 이를 애니미즘(animism)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힘들 듯합니다.
어렸을 적에 집안 어르신들과 함께 산에 성묘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르신들이 마련해 간 제사 음식의 일부로 산 입구에서 산신(山神)에게 예를 올리더군요.
전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우리 산이면 산에 묘를 쓰던 말던 그건 우리 마음대로이지 않느냐고요.
하지만 아버지는 산에 묘를 쓰려면 산신의 허락이 있어야 하기에 감사의 예를 올려야 한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나중에 신화와 관련된 책을 읽으며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냥꾼이 멧돼지 사냥에 성공했다고 해보죠.
현대인이라면 멧돼지의 존재를 포착하고, 이를 추적해서, 사냥에 성공한
자신의 경험과 능력, 인내, 체력, 사격 솜씨를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할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사냥의 성공 여부는 사냥꾼 자신의 능력에 달린 문제인데
자신의 인내와 체력과 노련한 경험과 사격 솜씨 때문에 멧돼지를 잡았다고 자랑한다는 거죠.
하지만 옛날에는 멧돼지를 사냥할 수 있는 것은
멧돼지의 신이 멧돼지를 사냥꾼에게 보내줘야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멧돼지 사냥을 떠나기 전에 멧돼지 신에게 멧돼지를 잡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예식을 올리고,
사냥에 성공한 다음에는 감사의 예를 올렸던 것은 그 때문이었고요.
에베레스트 등반대가 본격적인 등반을 시작하기 전에 현지 셰르파 등과 산신제를 올리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한 한국인 등반가가 그렇게 이야기하더군요.
산이 허락해줘야 에베레스트 산에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산에 오를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에베레스트의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라고요.
현대사회에도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본 시대의 유산이 남아 있는 것이죠.
영어에서 스펠(spell)은 단어의 철자를 말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스펠에는 마법, 마력, 주문(呪文)이란 뜻도 있습니다.
모든 것에 영혼과 정령이 있다고 생각했던 시절에는
사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그 사물에 마법을 걸거나 주문(呪文)을 거는 행위라고 봤던 것 같습니다.
이를 주술(呪術)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사람과 사물(혹은 자연, 생물)의 이런 관계를 주술적 관계라고 하고요.
요새는 늑대가 수명이 어떻고, 무엇을 즐겨 사냥하고, 늑대가 무는 힘이 얼마나 세고 이런 것만 외우지만
그때는 그것 외에도 늑대와 주고받은 많은 대화를 사람들이 기억했을 겁니다.
마치 우리가 친구와의 사이에 벌어졌던 많은 일과 대화를 기억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소수 인원끼리 떠돌이 생활을 하던 인간들이 점점 부족 단위로 뭉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자신이 속한 부족은 다른 부족과 달리 특별한 부족으로 여기게 됩니다.
덩달아 부족 사람들은
영혼이 깃들었다는 수많은 자연 속 존재 중에서도 하나의 자연물에 특별히 더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가령 어떤 부족은 붉은 사슴을 다른 자연물과 달리 더 특별히 여기게 된다는 것이죠.
그러면 그 부족은 붉은 사슴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기거나 붉은 사슴과 부족원을 하나로 여기게 됩니다.
또 부족원이 죽으면 붉은 사슴 신에게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붉은 사슴에게 인도되어 다른 세상으로 간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붉은 사슴에 대한 전설이나 신화는 부족원들의 입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해집니다.
이때 우리는 붉은 사슴을 그 부족의 토템이라고 부르죠.
단군신화에도 토템이 등장합니다. 크게 세 부족이 등장하죠.
자신들을 하늘(환웅)의 자손으로 여기는 부족, 곰을 토템으로 하는 부족,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부족, 이렇게요.
이때 각 부족원들 중에서는 특별히 토템과 잘 통하는 전문가가 부각됩니다.
우리는 그 전문가를 마법사, 무당, 샤먼, 점쟁이, 제관, 주술사라고 부르죠.
자연 속의 많은 존재들 중에서도 하나가 부각되듯이 부족원들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로 부각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위 그림은 붉은 사슴을 토템으로 하는 어느 인디언 부족을 묘사한 것입니다.
샤먼(무당)이 신과 접신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저는 부족이 자연의 특별한 존재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믿던 무렵부터 인간에게도 혼령이 있다고 여기며,
조상신(조상의 혼령)을 모시는 문화가 생겨나지 않았을까 추정해봅니다.
예를 들어 우리 부족을 곰의 후손으로 여긴다는 것은 조상, 핏줄을 의식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니까요.
조상, 핏줄, 후손을 의식한다면 인간들이 인간 조상에 대해서도 의식하게 되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부족 시대가 되면서 인간 부족과 부족 사이에는 자주 전쟁이 벌어집니다.
물론 부족들끼리 동맹을 체결하기도 하고요.
전쟁의 결과로 어떤 부족은 다른 부족에게 복속되는가 하면 때로는 죽임을 당하는 일도 벌어집니다.
강한 부족은 주위 부족을 복속시켜 부족보다 더 큰 단위인 국가를 이루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신들의 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신들의 세계에서도 덩달아 전쟁이 벌어집니다.
독일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에 있는 제우스의 대제단에 새겨진 조각(부조)의 일부입니다.
가운데 키가 큰 여성이 아테나 여신입니다. 아테나 여신답게 왼손에 둥근 방패를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테나 여신이 싸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와 싸우는 걸까요?
티탄(영어로 타이탄)족 신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올림포스 신들은 티탄족 신들과 큰 싸움을 벌입니다.
사력을 다한 싸움이었죠. 올림포스 신들은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결국 승리합니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제우스를 받드는 부족을 중심으로 동맹을 맺은 부족들의 신입니다.
인간 세상에서 부족들 사이에 치열하게 싸움이 벌어진 것처럼 신들의 세상에서도 치열하게 싸움이 벌어진 것이죠.
위의 부조에서 티탄족 신들을 물리치는 아테나 여신은 당연히 올림포스 동맹에 속합니다.
오랜 신들의 싸움의 결과 가장 강력한 권능을 가진 최고 신이 등장합니다.
위 조각상은 신들의 신이자 하늘(天空)의 신인 제우스 신상입니다. 신으로선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이죠.
하늘의 신답게 오른손에 벼락을 들고 있습니다. 제우스는 때로는 독수리와 함께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는 제우스를 받드는 부족을 정점으로 한 세력이 티탄족 신들을 믿는 부족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조각상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위키백과)
서울에 있는 사직단입니다. 사(社)는 토지의 신을 말하고, 직(稷)은 곡식의 신을 말합니다.
사직단은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 두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어서 제단도 둘입니다.
우리가 사극을 보면 나라가 위태로울 때 신하가 임금에게 "전하, 종묘사직이 위태롭사옵니다" 하고 아뢰죠.
이때 종묘는 역대 임금의 혼(임금의 조상신)을 모시는 사당으로,
사직과 함께 나라에서 가장 성스럽게 여기던 곳입니다. 조선의 상징이자 조선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종묘와 사직에서 제사를 지낼 수 없다는 것은 곧 조선이 망했다는 것을 뜻하니까요.
그런데 중국에는 있었지만 조선에는 없던 제단이 있습니다. 바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단(天壇)입니다.
중국의 황제는 천자(天子)로도 불리는데, 천자는 하늘을 대리해 지상세계를 통치하는 자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따라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단은 황제국이자 천자국인 중국에만 둘 수 있었고,
하늘에 대한 제사는 중국의 천자가 제관이 되어 주관했습니다.
제후국인 조선에는 천단을 둘 수 없고,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인 조상신과 사직을 받드는 제단만 둘 수 있었죠.
이처럼 신들의 세상에 위계질서가 생기고 최고 신이 등장하는 것처럼 인간 세상에도 위계질서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최고의 신은 대개 하늘에 있거나 하늘신이 차지하는 것처럼
인간 세상에서도 하늘신을 모시는 자는 최고 권력을 얻은 자가 됩니다.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벽면을 장식하는 조각입니다.
그런데 괴물 같습니다. 바로 가고일(La Gargouille 혹은 Gargoyles)이라는 일종의 잡신이죠.
왜 가톨릭 성당에 잡신인 가고일의 조각상이 있는 것일까요? 기독교(가톨릭)는 유일신 종교인데 말이죠.
지금의 프랑스 땅에 기독교가 전파되어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기 전에도 토착 주민들이 믿던 신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신이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전통 신앙의 대상이 되었던 가고일은 기독교의 신을 모시는 성당을 지키는 역할로 지위가 격하된 거죠.
외래의 신과 전통적인 신이 만나 빚어지는 이런 현상은 다른 곳에서도 널리 일어났던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불교 사찰에 가면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전통적인 신앙의 대상이었던 산신(山神)을 모시는 산신각이 들어와 있습니다.
인간 세상의 정치 세력이 이합집산하며 제국으로 발전해가듯이 신들 사이에서도 세력 재편이 일어나는 거죠.
어떤 정치 세력이 약하거나 전쟁에서 패해서 강력한 정치 세력에 복속되면
복속된 정치 세력의 신은 사라지거나 악마, 괴물 취급을 당합니다.
사정이 그나마 나으면 가고일처럼 자그마한 자리라도 차지해
수문장, 수호신, 수호천사가 되어 일종의 경호 업무나 비서 역할을 합니다.
사정이 더 나으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올림포스의 12신처럼
급수는 한 단계 아래여도 동등한 신으로 대접을 받습니다.
이렇게 신들 사이에 위계질서 생기면 당당하게 신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귀신들은 어떻게 될까요?
요정, 님프, 정령, 용 등이 됩니다. 이들은 예전부터 자연물에 깃든 영혼으로 믿어지던 존재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강의 요정, 바람의 요정, 꽃의 요정, 산의 요정 들이죠.
동양의 용은 주로 비나 구름과 함께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비나 구름에 깃든 정령이 용으로 발전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신들은 요즘 신들과 근본적으로 격이 다릅니다.
만약 대한민국 대통령이 단군의 몇 대 손임을 선언하며 단군을 모시는 제사장이 되어 제사를 주관하고,
단군 신앙을 강요한다면 어떨까요? 다수의 국민이 들고일어날 것입니다.
국민들에게는 각자 종교 선택과 신앙의 자유가 있으니까요.
현대에서는 어떤 종교와 신을 믿을 것인가 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 사항이자 한 인간의 지극히 내면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현대의 신들은 주로 개인의 정신 생활이나 개인의 길흉화복에만 관여합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달랐습니다.
위 사진은 함무라비 법전이 새겨진 비석의 상단에 새겨진 그림입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지금으로부터 2천800년 전쯤에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제작되었습니다.
그림을 보면 함무라비 왕이 샤마슈(Shamash, 태양신이자 정의의 신)로부터 법전을 받고 있습니다.
이 법이 샤마슈로부터 전해받은 성스러운 권위를 갖는 법이니 절대로 어기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즉 과거에는 왕의 존재나 명령, 법의 정당성이 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예언자(혹은 제사장이나 왕)가 신으로부터 받은 계시나 신탁은 그 사회의 신성하고 절대적인 법이 되었죠.
유대교에서도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신으로부터 율법을 받고, 이 율법은 그대로 유대 사회의 신성한 법이 됩니다.
따라서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는 예언자의 주장이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으면 신성한 예언자의 지위를 부여받지만
실패할 경우에는 그 사회의 질서를 위협하는 거짓 예언자(요즘 말로 하면 사이비 종교 교주)로 몰려
큰 화를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공동체의 운명과 관련해 절대적인 권위를 갖던 신의 지위가 언제부터 추락하기 시작한 것일까요?
저는 이를 잘 보여주는 장면 중의 하나가 셰익스피어(1564년~1616년)의 <햄릿>이라는 생각입니다.
<햄릿>이란 작품이 등장한 것은 중세가 물러가고 근세가 시작될 무렵이었죠.
신이 거룩했던 시절에는 인간의 정신이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다가
육신이 죽으면 천국으로 가서 구원을 받는 것이 당연한 도리이자 의무였습니다.
그런데 햄릿의 삼촌은 계략을 써서 햄릿의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해 어머니와 결혼합니다.
여기에서 왕권은 신(그리고 신을 대리하는 교황)이 부여한 신성한 자리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계략으로 뺏기고 뺏는 자리로 등장합니다.
햄릿이 어떤 행동을 선택해야 할지 알려주는 존재도 무조건 복종해야 할 거룩한 신이 아니라 아버지의 혼령입니다.
동생(햄릿의 삼촌)에게 왕위를 빼앗긴 아버지의 혼령은 스스로 복수할 힘이 없어 아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햄릿은 아버지의 혼령을 의심까지 합니다. 헉, 귀신(혼령)을 의심하다뇨! 귀신의 지위가 추락해도 많이 추락했습니다.
<햄릿>이란 작품에서는 내세가 등장하지 않거나 등장하더라도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전에는 신에게 맡겨서 사후에 신이 심판을 하도록 하면 되겠지만
이제는 햄릿이 진실을 알고, 햄릿이 정의를 세우고, 햄릿이 심판자가 되고 복수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신이나 죽은 사람의 혼령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의 고뇌에 찬 선택이 중요해지는 것이죠.
이를 대변하는 말이 햄릿의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입니다.
햄릿이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고뇌에 찬 결단을 내리며 이 독백을 읊조렸던 때가 대략 1601년 무렵이었습니다.
햄릿의 독백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에서는 30년 전쟁이 일어납니다.
구교(로마 가톨릭교)를 강요하는 신성로마제국에 신교 세력이 반기를 들면서 벌어진 이 전쟁은
최대의 종교전쟁이자 참으로 참혹하고 비극적인 전쟁이었습니다.
주로 독일 지역을 무대로 벌어진 이 전쟁으로 인해 신성로마제국 인구의 1/3이 죽었고,
인간을 상대로 갖가지 잔학한 행위들이 벌어졌으며, 전염병이 창궐하고, 수천 개의 성이 파괴되었습니다.
이 비극적인 전쟁은 1648년에 베스트팔렌 조약을 맺음으로써 끝납니다. 위 그림이 조약을 체결하는 모습입니다.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며
정신적으로는 교황이 이끌고, 세속적으로는 황제가 이끌던 가톨릭 제국인 신성로마제국이 사실상 붕괴합니다.
조약은 제후들에게 영토적 주권과 통치권을 완전히 인정하고,
가톨릭뿐 아니라 개신교인 루터파와 칼뱅파에게도 동등한 지위가 부여됩니다.
이에 따라 제후가 통치하는 지역의 종교는 제후가 어떤 종교를 믿느냐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세속적인 권력자인 제후들이 종교로부터 독립하고, 정치가 종교로부터 독립하게 된 거죠.
뿐만 아니라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던 무렵, 그러니까 1647년과 1649년 영국의 국민협정에서는
세계 최초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합니다.
점점 인권이 신장하고, 인간의 자유가 보장을 받고, 인간이 존귀한 존재가 되면서
인간에게는 종교와 신앙의 자유가 부여됩니다.
국가와 같은 공동체는 점점 개인의 종교와 신앙에 관여할 수 없게 되었고요.
덩달아 귀신의 지위도 추락합니다. 심지어는 그 지위가 역전되기도 합니다.
귀신이라는 근엄하고 막강한 존재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던 인간들이었는데,
이제는 귀신들이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인간에게 호소해야 하는 처지로 추락합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으니 사람을 놀래키거나 귀찮게 해서 관심을 끌어야 합니다.
운이 좋으면 친절한 사람을 만나서 자신의 원한을 풀 수 있는 길이 열리기도 하고요.
위 사진은 영화 <디 아더스>의 한 장면입니다.
이제 귀신이 사는 곳은 웅장하고 화려하고 멋진 사원이 아닙니다.
귀신들이 눈치 없이 사람의 집 한쪽을 빌려 살다가 봉변을 당하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이 영화에서 귀신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가 하면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합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영화 <알 포인트>에서는 누가 귀신이고 누가 인간인지 그조차도 헷갈립니다.
저는 이 영화를 두 번 이상은 본 것 같은데 누가 언제까지 사람이었고, 언제부터 귀신인지 헷갈립니다.
이제 인간과 귀신의 구별이 힘들어진 거죠.
그런데 저도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제가 귀신인가요, 사람인가요?
무더운 여름을 맞아 납량 특집으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귀신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딱딱한 글이 되었네요.
이게 다 제 능력 부족입니다. 오늘밤 직접 찾아 뵙고 사과 말씀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