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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깔리 경(S22:87)
Vakkali-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에 있는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무셨다.
2. 그 무렵 왁깔리 존자(*1)는 도기공의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중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때 왁깔리 존자는 간병하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했다.
3. “이리 오시오, 도반들이여, 그대들은 세존께 가시오.
가서는 나의 이름으로 세존의 발에 머리 조아려 절을 올리고
‘세존이시여, 왁깔리 비구가 중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금 그가 세존의 발에 머리 조아려 절을 올립니다.’라고 말씀드려 주시오.
그리고 다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연민을 일으키시어
왁깔리 비구에게로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여쭈어 주시오.”
4. “알겠습니다, 도반이여.”라고 그 비구들은 왁깔리 존자에게 대답한 뒤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비구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왁깔리 비구가 중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금 그가 세존의 발에 머리 조아려 절을 올립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드립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연민을 일으키시어 왁깔리 비구에게로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허락하셨다.
5. 세존께서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시고 왁깔리 존자에게로 가셨다. 왁깔리 존자는 세존께서 멀리서 오시는 것을 보고 침상에서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왁깔리 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만 하여라, 왁깔리여. 침상에서 움직이지 말라. 여기에 마련된 자리가 있구나. 나는 앉아야겠다.”
6. “세존께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으신 뒤 세존께서는 왁깔리 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왁깔리여, 어떻게 견딜만한가? 그대는 편안한가?
괴로운 느낌이 물러가고 더 심하지는 않는가?
차도가 있고 더 심하지 않다는 것을 알겠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견디기가 힘듭니다. 편안하지 않습니다.
괴로운 느낌은 더 심하기만 하고 물러가지 않습니다.
더 심하기만 하고 차도가 없다고 알아질 뿐입니다.”
7. “왁깔리여, 그대는 후회할 일이 있는가? 그대는 자책할 일이 있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후회할 일이 적지 않고 자책할 일이 적지 않습니다.”
“왁깔리여, 그러면 그대는 계행에 대해서 자신을 비난할 일을 하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계행에 대해서 자신을 비난할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왁깔리여, 만일 계행에 대해서 자신을 비난할 일을 하지 않았다면
그대는 무엇을 후회하고 무엇을 자책하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오랫동안 세존을 친견하러 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몸은 이제 세존을 친견하러 갈만한 힘마저도 없습니다.”
8. “왁깔리여, 그만 하여라. 그대가 썩어문드러질 이 몸을 봐서 무엇 하겠는가? 왁깔리여,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2) 왁깔리여, 법을 볼 때 나를 보고 나를 볼 때 법을 보기 때문이다.”
9. “왁깔리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왁깔리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 인식은 … 형성들은 …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10. “왁깔리여, 그러므로 그것이 어떠한 물질이건 … 그것이 어떠한 느낌이건 …
그것이 어떠한 인식이건 … 그것이 어떠한 형성들이건 …
그것이 어떠한 의식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11. “왁깔리여, 이와 같이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형성들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의식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12. 그때 세존께서는 왁깔리 존자에게 법을 설하시고 격려하시고 분발하게 하시고 기쁘게 하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독수리봉 산으로 가시었다.
그러자 왁깔리 존자는 세존께서 나가신지 오래되지 않아 간병하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했다.
“이리 오시오, 도반들이여. 나를 침상째 들어서 이시길리 산비탈의 검은 바위(*3)로 옮겨다 주시오. 어찌 나와 같은 자가 집안에서 임종할 생각을 하겠소.”
“그렇게 하겠습니다, 도반이여.”라고 비구들은 왁깔리 존자에게 대답한 뒤
왁깔리 존자를 침상째 들어서 이시길리 산비탈의 검은 바위로 옮겨다 놓았다.
13. 세존께서는 그날 밤을 독수리봉 산에서 머무셨다.
그날 두 신이 밤이 아주 깊었을 때 아주 멋진 모습을 하고
온 제따 숲을 환하게 밝히면서 세존께 다가갔다.
다가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한 신이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왁깔리 비구는 해탈하고자 의도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다른 신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그는 반드시 잘 해탈한 자로 해탈할 것입니다.”
두 신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이렇게 말씀드린 뒤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거기서 사라졌다.
14. 세존께서는 그 밤이 지나자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왁깔리 비구에게 가라. 가서는 왁깔리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라. ‘도반 왁깔리여, 세존의 말씀과 두 신의 말을 들으시오.
어젯밤에 두 신이 밤이 아주 깊었을 때 아주 멋진 모습을 하고
온 제따 숲을 환하게 밝히면서 세존께 다가갔습니다.
다가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서서 한 신이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왁깔리 비구는 해탈하고자 의도하고 있습니다.’라고.
그러자 다른 신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는 반드시 잘 해탈한 자로 해탈할 것입니다.’라고.
그리고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왁깔리여, 두려워하지 말라. 왁깔리여, 두려워하지 말라.
그대의 죽음은 죄악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죄짓는 자로 임종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16.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한 뒤 왁깔리 비구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왁깔리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왁깔리여, 세존의 말씀과 두 신의 말을 들으시오.”
그러자 왁깔리 존자는 간병하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했다.
“오시오, 도반들이여. 나를 침상에서 내려 주시오. 어찌 나와 같은 사람이 높은 자리에 앉아서 그분 세존의 교법을 들을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도반이여.”라고 비구들은 왁깔리 존자에게 대답한 뒤
왁깔리 존자를 침상에서 내려놓았다.
16. “도반이여, 어젯밤에 두 천신이 밤이 깊었을 때 아주 멋진 모습을 하고
온 제따 숲을 환하게 밝히면서 세존께 다가갔습니다. 다가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서서 한 신이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왁깔리 비구는 해탈하고자 의도하고 있습니다.’라고.
그러자 다른 신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는 반드시 잘 해탈한 자로 해탈할 것입니다.’라고.
그리고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왁깔리여, 두려워하지 말라. 왁깔리여, 두려워하지 말라.
그대의 죽음은 죄악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죄짓는 자로 임종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17. “도반들이여, 그렇다면 나의 이름으로 세존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절을 올려주시고, ‘세존이시여, 왁깔리 비구가 중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금 그가 세존의 발에 머리 조아려 절을 올립니다.’라고 말씀드려 주십시오. 그리고 다시 이렇게 말씀드려주십시오.
‘세존이시여, 저는 물질은 무상하다는 것에 대해서 의문이 없습니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라는 것에 대해서 의문이 없습니다.
저는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법에 대해서
제 자신이 욕구나 탐욕이나 애정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습니다.
저는 느낌은 … 인식은 … 인식은 … 형성들은 …
의식은 무상하다는 것에 대해서 의문이 없습니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라는 것에 대해서 의문이 없습니다.
저는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법에 대해서
제 자신이 욕구나 탐욕이나 애정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습니다.’라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도반이여.”라고 비구들은 왁깔리 존자에게 대답한 뒤 물러갔다.
18. 왁깔리 존자는 비구들이 물러간 지 오래지 않아서 칼을 사용해서 [자결을 하였다.]
19. 그때 비구들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비구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왁깔리 비구가 중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금 그가 세존의 발에 머리 조아려 절을 올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물질이 무상하다는 것에 대해서 의문이 없습니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라는 것에 대해서 의문이 없습니다.
저는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법에 대해서
제 자신이 욕구나 탐욕이나 애정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습니다.
저는 느낌은 … 인식은 … 인식은 … 형성들은 …
의식은 무상하다는 것에 대해서 의문이 없습니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라는 것에 대해서 의문이 없습니다.
저는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법에 대해서
제 자신이 욕구나 탐욕이나 애정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습니다.”
20.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시길리 산비탈의 검은 바위로 가자.
거기서 좋은 가문의 아들 왁깔리가 칼을 사용해서 [자결을 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들과 함께 이시길리 산비탈의 검은 바위로 가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왁깔리 존자가 침상 위에서 몸통이 거꾸로 된 채로 엎드려 있는 것을 보셨다.
그 무렵 자욱한 연기와 어둠의 소용돌이가 동쪽으로 움직이고 서쪽으로 움직이고 북쪽으로 움직이고 남쪽으로 움직이고 위로 움직이고 아래로 움직이고 간방위로 움직이고 있었다.
21. 그러자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여기 자욱한 연기와 어둠의 소용돌이가 동쪽으로 움직이고 … 간방 위로 움직이는 것을 보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것은 사악한 마라가 ‘좋은 가문의 아들 왁깔리의 의식은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라고 좋은 가문의 아들 왁깔리의 의식을 찾고 있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좋은 가문의 아들 왁깔리는 의식이 [그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
(*1) 왁깔리 존자는 사왓티의 바라문 가문출신이다.
그는 삼 베다에 능통했는데 처음 부처님을 뵙자 그분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세존가까이 있기 위해서 출가하였다고 하며, 먹고 씻고 하는 때를 제외하고는 온통 부처님만 생각하였다고 한다. (AA.ⅰ.250)
세존께서 이 경 §8에서 하신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는 말씀은 아주 유명하다.
한편 그의 아라한과의 증득과 죽음에 대해서는 경들과 주석서마다 조금씩 다르다. 앙굿따라 니까야(A1:14:2-11)에 해당하는 주석서에 의하면, 세존 곁에 잇는 것을 너무 좋아한 그가 세존의 떠나라는 말씀에 너무 슬퍼서 독수리봉 산의 절벽에서 뛰어내렸는데, 세존께서 “오라, 왁깔리여.”라는 말씀을 듣고 환희하여 허공을 날아오르면서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나와 있다.(AA.i.250~251) 그러나 이 경 §§18~2을 종합해 보면 그의 마지막 병상에서 세존의 말씀을 들은 뒤 자결하면서 아라한과를 얻은 것이 된다.
여러 주석서들은 그가 믿음 깊은 자들 가운데 부처님께서 인정하셨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앙굿따라 니까야(A1:14:2-11)에서도 그는 믿음 깊은 자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언급되고 있다.
(*2) 두 번째 구절에서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진정으로 부처님을 뵙기 위해서는 부처님이 깨달으신 법을 봐야 한다는 뜻이 분명하다. 그렇게 때문에 세존께서는 바로 다음 문단에서 왁깔리 존자와 교리문답을 하시는 것이다. 부처님이 체득하신 무상 고 무아의 법을 봐서 염오-이욕-해탈- 구경해탈지를 성취하여 깨달음을 실현해야 진정으로 부처님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3) 바로 이곳 ‘이시길리 산비탈의 검은 바위에서 고디까 존자도 자결을 하였다. 「고디까 경」(S4:23) §7.
출처:
https://m.cafe.daum.net/vipassanacenter/MfNY/303
각묵스님 옮김 『상윳따니까야』 제3권 344-354쪽
일부용어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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